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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0

       평화적으로 목소리를 낼 생각이었다.

       

       “야, 대통령이 계엄령 내렸단다!”

       

       누군가가 경찰이 한 말을 주워들어 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루머인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선동 말이다. 때문에 레니냐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꾹 참고 비폭력 시위를 고수하려 했다.

       

       그러나.

       

       “마왕군을 몰아내자!”

       

       경찰들이 일제히 경찰봉을 휘둘렀다. 양쪽 옆으로는 헌병이 마법을 사용하며 덮쳐왔다.

       

       “레니냐,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어.”

       “이제 어쩌죠?”

       

       고민할 틈은 없었다. 경찰과 헌병이 벌써 코앞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게 된다면 개처럼 쳐맞고 교도소로 끌려가는 것 말고는 미래가 없었다.

       

       “싸워야만 한다.”

       

       엥켈톤의 말에 레니냐는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다.

       

       엥켈톤은 빠루를 준비했고, 블랑카도 숨겨둔 볼트액션 소총을 꺼내 쥐었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레니냐는 아공간을 뽑아내서 스태프를 소환했다.

       

       귀족, 공무원, 브루주아지. 

       

       그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을 향한 분노가, 이곳 플로반스에서 쇄도한다.

       

       “마수 새끼들…! 커헉!”

       “저년은 확실히 마수다. 빨리… 으아악!”

       

       레니냐는 자신을 ‘마수’로 단정지으며 공격해 오는 모든 이들에게 분노의 철퇴를 선물했다.

       

       처음에는 폭력을 행사할 생각이 없었다.

       

       가끔 분에 못 이긴 시위자가 경찰과 다투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은 경우는 있어도, 전반적인 질서는 갖춰가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전면적인 폭력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를 몰라도 싸워야만 했다.

       

       레니냐는 경찰을 하나씩 하나씩 양파 껍질을 까는 듯 후려대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 저기 금안족이 있다! 체포해!

       

       에테리아로 망명할 때 겪었던 수모. 억울함. 치욕감.

       

       그리고 분노.

       

       걷잡을 수 없이 토해냈던 분노.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엘프들이 왜 저러는지도 잘 모르겠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고는 하는데, 그 권력이….

       

       “그 권력이 뭐가 대수인지 모르겠다고─!!”

       

       [상급 전계마도 ─ 일자뢰(一字雷)]

       

       싯누런 전장(電場)이 바닥에 내리그어진다. 빛을 전달하는 광케이블처럼 순식간에 앞으로 뻗어나간 전격이 아스팔트 위를 수놓는다.

       

       어찌나 강력한 전격이었는지, 섬전이 사방으로 되튕기며 경찰들을 감전시키고 또 쓰러뜨렸다.

       

       “어, 어억.”

       

       경찰복을 입은 권력자들이 픽픽 눕는다.

       

       앞부분이 뻥 뚫린다. 레니냐는 스산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

       “…….”

       

       번갯불이 끝나는 지점에서,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푸른 눈동자. 서글서글한 인상.

       

       그러나 지금 매우 당황하고 있다.

       

       레니냐의 눈빛에 순간적인 일렁임이 생겼다.

       

       “…유피엘.”

       “…레니냐.”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옛 친우.

       

       마나 고갈증으로 늘 좌절한 삶을 살았던 레니냐의 학창 시절 친구는, 어느덧 권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레니냐, 정말로 너니?”

       

       정적이 흘렀다. 레니냐는 전투 자세를 천천히 풀었다. 낫에 걸린 사슬을 손목에 감아 고정했다.

       

       “네가 이 시위대를 이끄는 거야?”

       

       유피엘이 물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야.”

       

       이 시위대에서 가장 강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고, 또 학력과 학식이 가장 높은 것도 자신이었으며, 엘프국에 기대했던 만큼 가장 실망한 것도 자신이었다.

       

       하지만 주동자는 엥켈톤 아저씨나 막시 삼촌 정도 되는 사람들. 레니냐는 시위대의 물살에 올라탄 지식인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다 부질없다.

       

       레니냐는 조소를 머금으며 유피엘에게 되물었다.

       

       “왜. 날 체포해서 감방에 집어넣으려고?”

       “아니야.”

       “거기, 가슴팍에 달린 거. 국회의원 배지네. 공무집행이니 뭐니 하면서 잡으러 온 거 맞구나.”

       “아니야!”

       

       유피엘이 괴롭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동무, 아는 사람입니까?”

       

       블랑카가 개머리판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레니냐에게 물었다.

       

       “그래, 아는 사람이었지.”

       “아는 사람치고는 번듯한 위정자로군요.”

       

       블랑카는 유피엘 앞으로 침을 퉤 뱉었다. 유피엘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 말 좀 들어 봐.”

       “미안하지만 지금은 듣고 싶은 생각 없어.”

       

       레니냐는 뒤쪽을 가리켰다.

       

       분노에 사로잡힌 금색 눈동자가 수백 쌍.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금안족이 이만큼이나 모였다는 것은, 그들의 참을성이 끝에 다다랐다는 걸 의미한다.

       

       “나… 아니. 우리에겐 짊어질 것이 있거든.”

       

       유피엘의 손이 툭, 하고 힘없이 떨어진다.

       

       레니냐도 안다. 서로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쯤은.

       

       하지만 전진해야 한다. 고작… 고작, 2년 정도 사귀다 만 친구의 정에 못 이겨 후퇴하느니, 여기서 모든 것을 결착내어야 한다.

       

       밀어붙여야 한다. 싸워야 한다. 투쟁해야 한다.

       

       금안족의 정당한 권리를, 이 빌어먹을 나라로부터 되찾아와야 한다.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싸우지 좀 말자고!”

       “레니냐 동무, 이 나라 정치꾼들은 한놈도 빠짐없이 늘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저년의 말은 들을 필요도 가치도 없습니다.”

       

       그리 말한 블랑카가 소총을 들고 돌진했다.

       

       블랑카는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유피엘을 보호하려는 경찰들의 머리를 족족 후려쳤다. 유피엘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다가 경찰들의 품에 가려져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다고 시위대의 진격이 멈추는 건 아니었다.

       

       시위대는 기세를 몰아 중앙광장을 온전히 차지했다. 그와는 반대로, 경찰들은 시청이 있는 곳까지 쭉쭉 뒤로 밀렸다.

       

       헌병대가 사각을 찌르고 들어와도 소용없었다. 그들 백 명보다 레니냐가 훨씬 강했다.

       

       이윽고.

       

       탁!

       

       플로반스 시청에 붉은 노동기가 꽂혔다.

       

       “와아아아!!”

       

       금색 눈동자를 지닌 이들,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다른 눈동자를 지닌 이들. 모두가 해맑게 소치리며 노동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동무, 우리가 반동들을 몰아냈어요!”

       “잘했다 레니냐!”

       

       엥켈톤 아저씨가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블랑카도 해맑게 미소를 지으며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었다.

       

       “그래, 이거지.”

       

       어려운 결정이었다.

       

       유피엘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아마 친구와 대화하는 동안 경찰과 헌병대가 태세를 가다듬었을지도 모르고, 도착한 지원 병력을 각개격파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섭섭하면서도 또 등골이 오싹하다.

       

       “이걸로 플로반스는 거의 우리 거네요.”

       “동무들, 수고했소.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오. 다른 지역의 봉기도 성공시켜서 썩어빠진 이 나라를 반드시 뒤엎읍시다!”

       

       레니냐는 낫과 망치를 집어넣고 아무 돌에나 걸터앉았다. 한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엥켈톤과 블랑카 부녀도 그 옆에 앉으며 뜨거워진 몸을 식혔다.

       

       “보, 보고입니다!”

       

       그때 전령이 허겁지겁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수도 지역의 지도부가 모두 궤멸했답니다!”

       “뭐라고?”

       

       수도라면 레니냐의 삼촌인 막시가 있는 곳이다.

       

       “삼촌은? 막시 삼촌은 어떻게 된 거야?”

       “레니냐 동무의 삼촌께서는 끝까지 저항하시다가 경찰봉에 맞아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중앙교도소로 이송되고 있다고….”

       

       레니냐는 벌떡 일어났다.

       

       “시위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지도계층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실 르네이 총장을 비롯하여 시위에 호의적이었던 인사들 또한 구속영장을 청구받았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막시 삼촌에, 르네이 총장님까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두 사람이 한꺼번에 투옥되거나 투옥될 위기에 놓였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가자, 수도로.”

       

       레니냐는 이를 갈며 낫을 꺼내들었다.

       

       

       **

       

       

       [카우렐리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계엄이 선포되는 즉시 카우렐리아 당국은 불온세력의 지도부를 즉각적으로 체포하고 동조한 이들까지 투옥하는 초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나라 꼬라지가 아주 그냥 개판이구나.

       

       나는 한숨을 쉬며 마력초를 물었다.

       

       그러나 불을 붙이기도 전에 빼앗기고 만다.

       

       “에테르 어린이, 담배는 피우면 안 돼요.”

       

       내 시선이 오른쪽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그곳에는, 붉은 단발에 붉은 눈동자를 한 소녀가 내 마력초를 뺏어든 채로 서 있었다.

       

       로테 살리에르.

       

       한때 내 친구이자, 이제는 가족이기도 한 소녀.

       

       내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대학원생 주제에 말이 많아요.”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너, 마력초 뺏고 자꾸 그러면 오늘 야근이야.”

       “정말? 기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으아아악! 대학원생이 교수 잡는다!

       

       어째 로테 상대로는 평생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화제를 전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테 살리에르 학생? 첫 논문 주제로 뭘 정하고 싶나요?”

       “플레어-핵융합 발전이요.”

       “그건 나한테도 존나 어려운 건데.”

       

       짝!

       

       앨리스가 입술을 때리고 정령계로 돌아갔다.

       

       “…….”

       

       입단속, 아직도 하는구나.

       

       “그러면 우선 사전 조사부터 해야겠네.”

       “그럴 줄 알고 관련 논문은 싹 다 찾아왔어.”

       “어디 보여줘 봐.”

       

       나는 로테가 가져온 논문을 하나씩 훑었다.

       

       첫 번째 논문. 저자, 에테르.

       

       두 번째 논문. 저자, 에테르 하이젠버그.

       

       세 번째 논문. 저자, 에테르 살리에르.

       

       뭐여 시벌.

       

       이렇게 놓고 보니 여포가 따로 없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 논문은 없어?”

       “플레어든 핵융합이든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너 말고는 없는걸.”

       “나중에 다른 사람이 쓴 건?”

       “그것도 찾아봤지. 그런데 레퍼런스를 찾아 들어가면 네 것만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가져왔거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플레어 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나와 클라이스 하스펠트가 전부였고, 이마저도 흑주의 영역으로 들어서면 나 말고는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하다. 여신은 이해한 것만을 마법으로 부릴 수 있도록 세상의 법칙을 정해 놓았다.

       

       흑주는 근본적으로 핵물리학 지식과 닿아 있으니, 전계마도 전공이 아닌 한 이 세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조차도 로테는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전공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 정도라면 4년 안에 박사를 받고도 남겠군.

       

       “자, 그러면 이걸 바탕으로 ‘발전’이라는 소주제를 잡아보자. 최종 목표는 너무 머니까, 일단 에너지 순생산을 할 수 있는 방법부터 모색하는 쪽으로.”

       

       그렇게 새 대학원생의 논문 지도를 한창 해 주고 있을 무렵이었다.

       

       [정령계로 와주세요.]

       

       이번엔 또 뭐야.

       

       “왜? 무슨 일이야?”

       “미안해. 여신님께서 부르신다.”

       

       여신이 갑작스레 메신저를 보내가며 부를 정도다. 엄청나게 중요한 일임이 틀림없다.

       

       “정령 일도 쉬운 게 아니구나.”

       

       나는 로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정령계로 향했다.

       

       정령계에 도착해 자동차 기름 채우듯 마력을 풀충전한 뒤, 곧바로 여신을 영접한다.

       

       여신은 여느 때와 같았다. 3학년에 접어든 컴공과 학생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예에…. 에테르 양. 빛살같이 달려와 줘서 고마워요.”

       

       어째 얼굴뿐만 아니라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신도 죽을 수 있나?

       

       그런 잡념을 떨쳐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말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게 빠르겠죠.”

       

       여신은 수경을 만들어 하계를 비추었다. 불바다로 편한 카우렐리아의 정경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레니냐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고, 유피엘은 세계수 밑에 쭈그리고 앉아 질질 짜는 중이었다.

       

       “둘 다 당신 제자였죠?”

       “네. 그런데요.”

       “가서 잘 달래줘요.”

       

       잘 살펴보니 두 사람은 반목한 모양이었다. 레니냐가 일방적으로 거부한 감이 없잖아 있어 보이지만.

       

       “이데올로기의 문제인가요?”

       “어떻게 보면 그래요.”

       “정령은 정치적인 일에 개입할 수 없잖아요.”

       “그래요. 그렇긴 한데….”

       

       여신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저 레니냐라는 아이, 잘못하면 제2의 마왕이 될 수도 있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MI) 로테의 대학원 등록금은 에테르+아카샤+로즈마리가 로테네 집에서 묵는 것을 대가로 면제받았습니다. 일종의 전세(?)계약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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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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