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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1

        

         

       전장에서 잘못된 판단은 죽음을 부른다.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은 죽음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며, 잘못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단두대 아래에 제 목을 밀어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잘못된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은 목에 밧줄을 걸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으며, 잘못된 곳에서 마음을 풀어 넣는 것은 사신이 낫을 들고 자신의 바로 옆까지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잘못된 판단은, 곧 죽음이다.

         

       하지만 이 빌딩의 주인은 참으로 자애롭고 자비로운지라, 잘못된 판단을 한 이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생명을 빼앗을 수 있으나 생명을 빼앗지는 아니하였으며,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있을 수 있도록 폭발 함정이나 절단 함정 역시 만들어놓지 아니하였으며, 마시는 즉시 칠공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고꾸라지는 독 역시 풀지 아니하였다.

         

       사지 멀쩡하게 숨이 붙어있을 수 있도록, 그저 자신이 부리고 있는 것들을 이용해 온건하게 그들을 제압하려 할 뿐이었다.

         

       흙발로 집에 들어온 무뢰배에게 이러한 자비라니.

       당하는 이들마저 감읍하여 말을 잇지 못하게 할 인품이 아니겠는가?

         

       가장 먼저 발동한 것은 그림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양 벽면을 메우고 있는 곰팡이였다.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온도 속에서 곰팡이는 활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곰팡이독소(Mycotoxin).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포자를 조심조심 뿜어내어 엘리베이터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고, 그 포자는 서서히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중독시키기 시작했다.

         

       강한 독은 아니었다.

       사람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에 빠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곰팡이독소의 효과는 단 하나.

         

       뇌와 중추신경계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진짜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힌다는 것은 아니다.

       잠시, 아주 미약하게 장애를 일으키는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박진성이 직접 개량했기에 일반적인 곰팡이독소보다 강한 효과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는 아니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만 하더라도 이 곰팡이독소에 어지간히 오래 노출되지 않는 이상에야, 눈에 보일 정도의 이상이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박진성의 또 다른 안배가 더해졌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였다.

         

       화족 가문에서 그들에게 작전에서 사용하라며 주었던 장비 중 몇몇에는 진성의 수작이 닿아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장비는, 오염되어 있었다.

         

       진성이 미리 심어놓은 약물이나 곰팡이, 기생충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평소에는 잠들어 있다가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작동해서 착용자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말이다.

         

       예를 들자면, 호르몬에 영향을 줘서 용기가 넘치도록 만든다거나.

       과도한 집중 상태로 만들어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시야를 좁게 만든다거나.

       일부러 아드레날린 분비량을 늘려서 몸을 가볍게 만들고 몸의 사소한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거나.

       빌딩의 특정 장소에 들어가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귀신이 장비에 깃들게 만들어서 저주를 품게 만들거나.

         

       그리고.

       면역력을 낮추고 특정 성분에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들거나.

         

       [ 어? 뭐지? 뜨끈한 것이 흐르는데…? ]

         

       오염된 장비.

       곰팡이독소.

         

       이 두 개가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장비에 숨어있다가 착용자에게 기생한 열대 기생충, 레슈마니아(Leishmania)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자리 잡은 코의 점막을 망가뜨려서 코피가 흐르게 만들고, 감염에 취약하게 만든다.

       곰팡이독소는 호흡기로 들이키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는 듯 피부에 들러붙기 무섭게 독소를 몸에 퍼뜨리기 시작했고, 한껏 떨어진 면역력은 그 독소를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성이 장비에 설치해 두었던 마이크로니들(Microneedle)에 묻어있는 약물은 면역체계가 곰팡이독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방해했고, 오히려 곰팡이독소를 강화하고 뇌의 특정 부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 잠,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시야가 이상하게 흔들리거나, 몸의 균형이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거나, 근육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하는 명백한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코에서 턱까지 느껴지는 이 뜨끈하면서도 간지러운 감각이라니?

       이건 코피가 아닌가!

         

       그들 중 몇몇은 마스크를 벗어서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갑자기 왜 코피가 흐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런 이상한 일이 발생할 때는 마스크를 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에 적신 천이나 마스크를 더 껴입거나, 아예 방독면을 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왜 몸이 이상해지고 왜 코피가 흐르겠는가?

       높은 확률로 독성 물질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그 독성 물질을 막기 위해서 얼굴을 더 칭칭 감거나, 방독면을 끼거나, 공기정화 아티팩트를 사용하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아예 숨을 참고 버티는 한이 있더라도 외부의 공기를 차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이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것조차 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 어? 어…. 어. ]

         

       더 빠른 감염이다.

         

       망가진 코의 점막으로 침투한 곰팡이독소는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속도로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소뇌에 기능 이상을 일으켜서 술에 한껏 취한 것처럼 그들이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약물과 반응해 강력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서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 허, 허억. 허억. ]

         

       그렇게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팀의 반절 이상이 무력화되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쉬지 못해서 헐떡이며 괴로워하고 있었고, 어지럼증 때문인지 헛구역질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증상이 심한 이들 몇몇은, 아예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철저하게 수색해서 동료를 구출하겠다고 다짐한 아까의 다부진 모습과는 다르게,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최후였다.

         

       [ 독, 독이다! ]

         

       [ 잠깐만, 독? 이런 상황에서 매뉴얼이…?]

         

       이러한 광경을 본 다른 이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고 반절 이상이 바닥에 쓰러져서 괴로워하고 있다니.

       당혹스러워할 만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혹스러워하기에는 또 다른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스으으윽.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던 함정.

         

       악귀(惡鬼).

         

       스으으윽.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듯한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악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의 천장에 눌어붙어 있던 악귀는 프레스에 짓눌린 것처럼 넓고 얄팍한 몸뚱이를 움찔움찔 움직이고 있었고, 가죽 전체에 빼곡하게 자라나 있는 머리카락을 조종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침투시키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의 천장에 있는 환풍기에서 머리카락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스으윽.

         

       엘리베이터 뚜껑의 틈새로 머리카락이 들어간다.

       엘리베이터의 조명으로 들어가 조명을 감싸서 새까맣게 만들고, 엘리베이터를 어둠에 감싸이게 만든다.

         

       머리카락은 실이 풀리는 것처럼 너무나도 매끄럽게 엘리베이터 안까지 도달하였고, 갑작스러운 어둠에 당황하고 있는 그들의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꽈아아악.

         

       그렇게 내려앉은 머리카락은 밧줄처럼 단단하게 엉켜서 목을 꽉 조였다.

         

       [ 윽, 으윽! ]

         

       교수형을 집행하는 사형집행인처럼, 악귀는 머리카락을 그들의 목에 휘감고 그들을 들어 올렸다.

         

       대롱대롱.

         

       그들은 허공에 매달린 채 바둥거렸다.

       어떻게든 자기 목을 조르고 있는 머리카락을 끊어내기 위해서 손톱을 바짝 세우고 밧줄을 긁었고, 어떻게든 틈새를 만들기 위해서 목과 머리카락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손톱이 살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손톱이 부러지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머리카락은 풀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들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꽈아아악.

         

       임기응변으로 손끝에 기를 불어넣어도 요지부동.

       철사처럼 단단하고 강력한 머리카락은 쉽게 뜯어지지 않았고, 그들을 목매달아 죽이겠다는 듯 점차 위로 올라가며 그들을 매달았다.

         

       박.

       바악.

       뿌드득.

         

       손톱 소리.

       손가락 소리.

       손톱이 머리카락에 스쳐서 내는 소리.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끝에 짓이겨지는 소리. 철사 같은 머리카락에 피부가 베이는 소리. 목과 머리카락 사이에 들어간 손가락이 강한 힘으로 그대로 부러져버리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

         

       소리가 들린다.

         

       캑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숨통이 막혔을 때 사람이 내는 그 소리가 들린다.

         

       단말마.

       한 모금의 공기를 갈망하는, 죽기 직전의 사람이 내는 그 소리.

       튀어나올 것 같이 눈알을 부릅뜨고, 얼굴이 새파래진 채 공기를 갈구하고 구걸하는 인간의 비명.

         

       [ 컥- ]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게 된 이들이 내는 최후의 소리.

         

       – 아가야 공기 의자 위에 댕기 머리 모가지 감고 천장에 뛰노누나 어이쿠야 대들보에 긴 머리끝이 걸렸네 구렁이 휘감듯 댕기 목에 감기고 공기 의자 구름처럼 흩어지니 컥컥 얼굴 빨갛고 퍼런거이 예쁘기도 하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모습이 거꾸로 자란 꽃처럼 색도 곱다 고와….

         

       투둑.

       투두둑.

         

       마스크를 벗은 이들은 제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뒹군다.

       목이 매달렸던 이들은 죽기 직전에 풀린 채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똥오줌을 지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평화로워졌다.

         

        – 흔들흔들 꽃망울 물구나무서서 흔들리는 것 같구나 아가 머리가 꽃처럼 핀다면 얼마나 좋을꼬….

         

       그 평화를 축하하듯, 악귀의 노랫소리가 엘리베이터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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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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