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황금 나무의 잔재 ( 1 )
“여기 새 도끼 좀 가져와! 무슨 나무가 이렇게 튼튼한 거야?”
“적당히 커다란 나무 조각이면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한쪽 손이 날아간 셰이드와 기절한 발리안을 제외하면 개척 탐험대의 인원 중 부상이 심한 사람은 다행히도 없었다. 심한 부상의 기준이 죽지 않고 어떻게든 숨이 붙어있다는 뜻이라면 말이다.
누군가는 절뚝거리고 누군가는 기다시피 하여 하늘의 기둥처럼 솟은 황금 나무의 잔재에 도착한 것이 반나절이 지났을 무렵.
이들은 열심히 도끼질하여 까맣게 타버린 황금 나무의 껍질을 부수거나,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웠다.
이것이 바로 탐험대가 고생하며 그로아나 수림까지 들어온 이유였다.
지금은 까맣게 타올라 비틀어진 황금 나무였지만, 괴조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 여전히 막대한 신성을 품고 있는 황금 나무였다.
탐험대의 진정한 목적은 황금 나무의 잔재를 확보하는 것.
‘이 탐험대의 표면적인 이유는 여러 왕국이 연합해서 그로아나 수림을 개척하여 인간들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이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로아나 수림은 야생과 대자연의 땅이다. 척박하고 험난한 야생은 아직 문명의 걸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셰이드는 이번 탐험으로 이 사실을 여실히 실감했다.
‘…높으신 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나무토막을 챙겨오라는 거야? 이깟 커다란 나무에 무슨 쓸모가 있다고.’
의문스러운 점이 많기는 하지만…
자신이야 뭐, 시킨 일이나 하고 돈만 받아서 부하들 굶기지만 않으면 장땡이니.
부하들이 황금 나무에 도끼질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셰이드에게 부단장이 다가왔다.
“껍질이나 고목의 파편, 나뭇가지는 할당량만큼 채운 것 같슴다. 이제 애들 적당히 물려서 돌아감니까?”
“그래. 야영지까지 곧바로 돌아가자. 이제 볼 일은 전부 봤으니 이 지긋지긋한 숲에 더 있을 이유가 없지.”
셰이드의 말에 부단장이 뛸 듯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야! 우리 이제 집에 간다! 이 거지 같은 마경이랑 안녕이다!”
“으아아아! 드디어! 드디어!!”
“이제야 좀 따뜻한 물로 씻어 보겠구나!”
부하들의 호들갑에 셰이드가 쓰게 미소 지었다. 그로아나 수림은 아무리 봐도 인간이나 다른 종족들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었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은 햇빛을 가려 사시사철 그늘을 만들었고, 습하고 더운 공기에 무수한 벌레가 창궐하기 일쑤. 어둠 속에는 이름 모를 맹수와 마수가 도사리고 대부분의 풀과 과실은 맹독을 머금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엘프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 거지?’
엘프들은 온전한 신성을 가지고 있던 황금 나무의 가호 안에서 안락하게 지내왔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셰이드에게 엘프들의 이미지는 생존과 사냥의 배테랑이 되어갔다.
“전부 챙겼으면 돌아간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목적을 달성한 이들의 발걸음이 한없이 가볍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왕국 연합에서 우리를 위해 연회도 열어준다고 하니까! 다들 가랑이까지 빡빡 씻고 깨끗한 옷으로 입고 와라!”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화려한 연회와 분내 나는 귀부인들이었다.
* * * * *
결국 마감 시간에서 5분 정도 살짝 넘기고 모든 자료를 취합할 수 있었다.
얼마나 두들겼는지 손가락이 살짝 아릿하게 저려올 정도.
대머리 팀장은 5분을 넘겼다는 사실이 영 불만스러운지 나를 살짝 흘겼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당했다.
‘이 정도면 존나 완벽하게 했다 솔직히.’
흠잡을 곳 없는 취합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되고 요약된 엑셀이 팀장의 눈을 현혹했다.
결국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쓰!’
부리나케 자리로 뛰어와 핸드폰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선다. 마음이 조급했다.
괴조라는 레이드 급 보스와 전투를 시작하고 벌써 15분이나 흘렀다.
어떤 형태라도 전투의 끝이 정해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발리안에 대해 알고 있는 케넬름이 어지간히 보다가 도와줬으리라 행복 회로를 돌렸지만, 내 눈으로 보지 못했기에 조금 불안했다.
“…거기에 케넬름이 교육 방침은 묘하게 조금 뭐랄까… 거칠고 와일드하단 말이지.”
케넬름의 교육 방침은 심플하다.
잘 배웠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못 배웠다면 죽거나 죽을 만큼 아플 것이다.
‘이 무슨 야생의 교육법…’
케넬름은 모든 것이 격변하고 부딪히고 싸우던 격동과 야만의 시대에 살던 인물.
살아생전을 끝없는 전투와 투쟁으로 보냈다고 했으니, 그런 과격한 교육 방침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게임에 접속하여 전투 결과를 확인했다.
“…어?!”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터진 감탄사에 급히 입을 막았다.
전에 있던 사무실에서도 몰래 게임하다가 걸리면 크게 눈치를 봐야 했었다. 지금의 빡센 사무실은 더 말할 것도 없는 법.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다시 살살 눈을 돌려 전투 화면을 재차 확인했다.
<레이드 성공! 그로아나 수림의 ‘괴조’를 무찔렀습니다!>
휘황찬란하게 나와 있는 레이드 승리 문구!
그제야 긴장이 탁 풀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떠오르는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싸웠길래 레이드 급 보스를 아무런 도움도 없이 잡아냈는가.
혹시 케넬름이 도와준 건가ㅡ 싶어서 바라봤지만…
– 절레절레.
SD 케넬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발리안 이 미친 쌍검충 녀석이 케넬름의 도움도 없이, 나의 지원도 없이 레이드 급 보스를 잡았다는 소리였다.
“와… 이거 진짜 제대로 미친놈인가?”
겨우 C 등급 쌍검으로 혼자서 레이드 급 보스를 잡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주 약간의 지원만 해줘도 금방 날아오를 것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이 정도 잠재력이라면 케니스와 거의 동급이 아닐까.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혼자서 괴조를 잡은 거야?’
의문이 솟아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확인할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나중에 퇴근하고 집에 가서 색안경으로 살펴봐도 늦지 않는다.
타다닥, 타타타다닥.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도대체 쌍검으로 어떻게 괴조를 잡은 거지? 그것도 연속 공격에 추가 화염 공격이 전부인 검으로?’
위기의 순간에 극적인 각성을 해냈나? 그것도 아니면 발리안의 잠들어 있던 쌍검의 재능이 개화?
이런저런 두근거림을 안고 퇴근하여 집에 들어와서 재빨리 색안경으로 레이드 과정을 확인했다.
“에… 뭐야. 실질적인 딜은 셰이드라는 단장이랑 다른 애들이 전부 다 했네? 발리안이 와서 막타만 친 거였어?”
그리고 전투가 정점을 향하였을 때.
발리안이 창을 귀신같이 내지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아무리 봐도 창을 더 잘 쓰잖아!”
도대체 왜 쌍검을 고집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 심지어 발리안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보면 쌍검을 대하는 녀석의 태도는… 광기 그 자체.
고개를 젓고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얘는 밥도 쌍검으로 먹고, 결혼도 쌍검이랑 할 녀석이다.
발리안 대신 괴조를 거의 죽음까지 몰고 간 셰이드 단장과 그의 부하들을 향해 카메라를 고정했다.
“흠. 생긴 건 그냥저냥 평범하게 생겼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셰이드 단장을 비롯한 부하들 중 신체 일부가 없는 이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는 것일까.
이들의 사냥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개개인의 무력은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지만, 온갖 함정과 도구를 동원하여 보스를 사냥하는 모습이라니.
‘으음…’
무력으로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기믹을 활용한 트리키한 플레이라고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간 생각해 본 적 없는 전투의 방법이라 매우 참신했다.
‘…지금 보니까 몸이 한 군데씩 아픈 애들이 좀 많네.’
단장은 한쪽 손이 없고, 누군가는 손가락이 없거나 귀가 뭉개진 사람도 있고, 심하게는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 조금 더 살펴볼까.”
만약 이들에게 적당한 무기를 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무엇을 만들어줘야 할까.
썩 즐거운 고민을 이어갔다.
어느새 화면에서는 화려하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탐험대의 성공적인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의 한가운데였다.
형형색색으로 차려입은 귀부인과 공녀들이 탐험대 주변을 돌며 웃음을 흘렸고, 궁중 음악대는 열심히 경쾌한 선율을 연주했다.
“오. 이러니까 진짜 판타지 무도회 느낌이 확 사네.”
쿵짝쿵짝, 흥겨운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 사람들. 탐험대의 사내들은 저마다 굶주린 미망인이나 무르익은 귀부인, 혹은 풋풋한 공녀를 향해 꽃을 찾는 벌처럼 떠나갔다.
남은 것은 머릿속에 쌍검밖에 존재하지 않을 발리안과 단장으로서 높으신 분들과 밀담을 나누는 셰이드.
– “꿀꺽… 꿀꺽… 크으. 이 와인, 딸꾹. 정말 끝내주는데에! 내 쌍검의 절반만큼이나 끝내줘! 딸꾹!”
거하게 취한 발리안이 알 수 없는 헛소리를 떠들었다.
이 둘을 보는 것은 재미가 없기에 화면을 옮겨 연회장의 정원으로 향했다.
곳곳에 의도적으로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게 설계된 수풀과 커다란 나무들이 보였다. 그 속에서 들리는 은밀한 속삭임과 살맞춤의 철썩거림.
생각 이상으로 노골적인 소리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졌다.
– “야, 야야야야한 건 안 됩니다!!”
순식간에 튀어나온 케넬름이 터질 정도로 붉게 변한 얼굴로 화면을 가렸다.
…그렇게 말리지 않아도 중세의 아기 만드는 방법을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순순히 케넬름의 말대로 화면을 돌렸다.
한때의 열락을 위한 퇴락의 정원이 아닌, 예술을 위해 세심하게 조성된 정원으로.
노련한 정원사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정원은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우아한 곡선의 형태를 자랑했고, 점점 뜨거워지는 계절에 맞춰 피어나는 꽃망울은 터지기 직전의 물감과도 같았다.
“좋네. 조용하고, 아름다워.”
달밤이 내려앉은 정원은 아득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어우러져 어딘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멍하니 정원의 풍경을 케넬름과 함께 바라봤다.
– 부스럭.
그러한 정원의 구석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
행색은 무도회에 참가하는 이의 옷처럼 화려하지만, 하는 행동은 양상군자의 그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딘가 켕기는 것이 있는 듯한 모습에 그림자를 따라 화면을 옮겼다.
한참이나 나아가던 그림자는 미로처럼 만들어진 구역에 들어서더니 벽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돌연 어느 벽을 있는 힘껏 밀었다. 넝쿨 사이에 가려져 있던 문이 열리며 순식간에 그림자를 집어삼켰다.
– “…??”
“도대체 이게 뭔.”
벽을 넘어 카메라를 옮기자 보이는 것은 아래로 이어지는 긴 계단과 그 끝에 위치한 석실이었다. 좁지만 화려한 석실 안에는 얼굴을 가린 이들이 여럿 앉아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무슨 비밀 집단이라도 있는 거야?”
설마 아직도 악마 숭배를 하는 멍청이들이 있는 건가?
마지막 사람이 들어오자 상석에 앉은 이가 입을 열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듣기 좋은 미성이 흘러나온다.
– “다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이셨다는 것에 저는 정말 큰 감사를 느끼고 있습니다.”
– “…”
– “…”
누구 하나 대꾸하는 이 없는 석실.
상석에 앉은 이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지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 “오늘로 드디어… 마지막 열쇠가 저희들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단어에 한껏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다. 상석에 앉은 이가 탁자 밑에서 커다란 나무토막을 꺼냈다. 까맣게 그을린 황금 나무의 조각이었다.
– “저희는… 이로써 불로불사의 생명체가 되는 겁니다! 이, 황금 나무의 신성을 이용하여,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늙지도 않고 병들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영원히 이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격하게 흥분한 인영이 힘차게 외치며 나무토막을 높이 들었다. 그 모양새는 어린 사자를 들어 올리는 원숭이가 겹쳐 보였다.
황금 나무의 토막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눈빛에는 뜨거운 열망과 욕망이 이글거렸다. 우레처럼 터져 나오는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은 없었지만, 석실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한참이나 석실을 바라보며 입을 벙끗거리다가 케넬름과 눈을 마주쳤다.
“…??”
– “…??”
그, 뭐요…?
불로불사…?
그게 가능해?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주인공은 업무에 치여서 개꿀잼 똥꼬쇼를 놓쳐습니다… 따흐흑! 따끈한 녹화본이나 봐랏!! 대신 불로불사 선언을 들어버린 주인공…!! 호곡…!!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