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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1

   “나중에 꼭 저택에 들려주세요!”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다며 아쉬운 티를 팍팍내면서 이사벨이 떠나간 후 그녀의 간절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이는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알른 영애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철혈의 상인이라 불리는 아르테아 백작이 저리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건가요.”

   

   난 차마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발을 움직였다. 아르테아 가문의 당주가 신성에 미쳐 사는 인간이라 그렇다는 말을 납득시킬 자신이 없었으니까.

   내가 답할 생각이 없음을 눈치 챈 조이는 그 이상 묻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거세 보이는 분들이 많네요.”

   “그야 여기는 모험가들의 섬이니까. 여타 영지와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아서의 설명이 옳았다. 암초가 가득해 항로를 모르면 들어올 수도 없는 군도라는 지역은 명목상의 지배자가 존재할 뿐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이는 없다.

   

   단적으로 말해 얻을 것이 없는 곳이라 그 누구도 손을 대려 하지 않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희귀한 자원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섬마다 있는 중소규모의 던전은 특이하지만 그 곳에서 나오는 채취물은 다른 던전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 뿐.

   

   모두들 14개의 섬과 던전을 모두 관리하는 것에 비해 얻는 것이 적다 판단했기에 이 섬은 일단 왕국의 영역에 속해 있긴 하지만 정작 왕국의 그 어떤 귀족도 이 곳을 관리하지 않는다.

   

   그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을 누가 관리하느냐. 바로 모험가 길드다.

   

   적당한 난이도와 각자의 특색을 지닌 14개의 던전은 모험가들이 실력을 키우기에 괜찮은 장소고. 거기에 매력을 느낀 모험가 길드는 나라에 계륵처럼 여겨지는 이 곳을 자기들이 관리하고 세금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안 그래도 이 섬을 맡으려 하는 이가 없어 곤란해 하던 왕국은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이 섬은 모험가의 섬이 되었지.

   

   “덕분에 여긴 모험가 생활을 한다면 한 번쯤 들려봐야 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준 후에도 아서는 군도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섬의 생리라거나.

   

   섬마다 있는 던전들의 특징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말이다. 그 중엔 다소 부정확한 정보가 섞여있긴 했지만 열성적으로 말하는 아서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꼈다.

   

   평소에 군도 쪽에 관심이 있던 건지 아님 내 시험하겠단 말에 경각심을 느끼고 필사적으로 조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특하네. 역시 향상심이 있어야 가르칠 맛이 생긴다니까.

   

   “근데 3왕자님. 왜 다들 약해빠진 거야?”

   

   가만 아서의 설명을 듣고 있던 프레이는 자그마한 악의조차 섞이지 않은 순진무구한 목소리로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목소리가 다소 컸던 탓일까. 주변의 모험가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하아. 프레이. 넌 진짜.”

   “왜? 사실이잖아? 여긴 제대로 된 무술도 모르는 바보들만 한 가득인걸.”

   

   프레이의 말대로 군도에 있는 모험가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못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여기는 살기는 팍팍하지만 얻을 것은 마땅찮은 장소니까. 여기에 머무는 것은 자칭 모험가랍시고 어깨를 피고 다니는 어중이떠중이 뿐이지.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대륙의 대형던전을 공략하거나 용병단에 들어가 자기 실력을 인정받는 걸 선호하거든.

   

   그래도 여기 일주일 이상 머물 건데 벌써 모험가들이랑 마찰을 빚을 필요는 없어. 우리 주변을 지키는 기사들 때문에 날선 시선을 보낼 뿐 차마 불만을 표하진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던 나는 모험가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읊으려는 프레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한테 매번 발리기만 하는 허접검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허접 아냐. 바보 검사야.”

   “그래. 그래. 허접검사♡”

   “허접아니라니까!?”

   “맞잖아? 바보검사?♡”

   “그러니까 바보 아냐! 난 허접… 허접? 음?”

   

   자기모순에 빠져 허우적대는 프레이를 데리고 숙소 쪽으로 향했다. 짐을 푼 후에 바로 던전으로 향하기 위해서.

   

   “내 알기로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수행해야 할 절차가 있는 것으로 안다만?”

   

   ‘그거 미리 다 끝내뒀어요.’

   “당연히 미리 준비해뒀답니다. 왕궁에 처박혀 있던 불쌍왕자님처럼 제가 무지할 거라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기분 나쁘거든요.”

   

   자질구레한 여러 절차는 이미 끝내뒀다. 대부분 평민이고 귀족이라고 해봐야 명예직이나 남작 정도뿐인 모험가 길드에 우리들이 단체로 들어가 봐라. 어떤 개판이 나겠는가.

   

   그래서 난 미리 카리아에게 부탁해 수속을 밟아달라고 이야기해두었다.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던전 공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저어. 알른 영애. 그럼 저희 바로 던전으로 향하는 건가요?”

   

   ‘네. 배에서 충분히 쉬셨잖아요?’

   “배에서 하루종일 잤으면서 또 쉴 생각이야? 얼빵이. 너 그러다가 얼빵돼지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런 일 없거든요!”

   

   뉴먼이 준비해 준 숙소에서 빠져 나오자 우리의 호위로 따라 붙은 기사들의 옆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된 것이 보였다.

   

   과묵한 인상을 주는 남성은 기사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우릴 발견하고는 예를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고귀하신 분들. 이 섬에서 여러분들의 안내를 맡을 리아스의 벤버라고 합니다. 편히 벤버라 불러주십시오.”

   

   그 모습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귀족 가문의 남성이라 생각할 법 했지만 나만큼은 그 속에 숨겨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자신을 벤버라 소개한 이 남자는 변장을 한 카리아였다.

   

   목소리도 외모도 어투도 버릇도.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었지만 그녀의 안에서 흩어져가는 악신의 기운이 그녀임을 증명했다.

   

   사람 하나 붙여줄 거라더니 자기가 직접 올 줄이야. 어쩐지 베네딕이 군도행을 쉽게 허락하더라. 카리아가 따라 붙을 거니까 큰 문제없을 거라 생각한 거구나.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죠. 하루에 두 던전을 공략하려면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카리아의 안내를 따라 첫 번째 던전에 도착했다. 그 던전에 해안가 쪽에 자리 잡은 것으로 다른 던전에 비해 괜찮은 물건이 나오기에 여러 모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중형던전은 대형던전과 달리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던전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카리아가 미리 자리를 맡아두었으니까.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던전 공략이라니이이.”

   “재밌다. 만날 이랬으면 좋겠어..”

   “너만 재밌는 거다. 프레이 켄트.”

   

   투닥대는 세 사람을 데리고서 던전 안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친구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꽂힌다.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전두지휘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나한테는 친구들의 바람을 들어 줄 능력이 있다. 지금 스펙을 생각해보면 이까짓 던전 쯤 채 1시간이 걸리기 전에 돌파할 수 있을 걸?

   

   그렇지만 난 앞으로 해야 할 것을 이야기해주는 대신 가만히 아서를 바라봤다.

   

   “불쌍왕자님. 제가 써 둔 완벽한 책은 당연히 다 외우셨겠죠?♡ 그렇게나 자신만만 하셨는데 아직까지 독파 못 한 건 아니겠죠?♡”

   “그건 왜 묻는 거냐.”

   “못 하셨어요?♡ 얼마든 해보이겠다더니 허세였군요?♡ 푸흐흫♡ 불쌍왕자님 답네요♡”

   “무슨 소리냐. 당연히 다 외웠다. 그저 던전에 들어와서 그걸 묻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뿐이야.”

   “뭘 것 같아요?♡ 무능하고 무력하지만 눈치 하나는 좋은 불쌍왕자님이라면 아실 것 같은데♡”

   “…설마 내게 던전의 공략을 지휘하라는 거냐?”

   

   눈을 끔뻑이는 아서를 보고 입술을 끌어 올렸다.

   

   “네 시간 안에 공략 못 하면 굉~장한 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열심히 해주세요♡ 벌을 받고 싶은 거라면 대충 하셔도 되고요♡”

   

   의욕을 돋구기 위해 아낌없이 도발의 말을 내뱉었더니 순식간에 아서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오냐. 해주마. 네 시간안에 던전을 주파해주지. 대신. 내가 성공하면 넌 네 이마를 내어줘야겠다.”

   “제 하얀 이마에 그렇게나 흔적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정말 변태적인 취향이시네요♡ 역겨워요♡”

   “…쯧.”

   

   혀를 차는 소리에 웃음으로 답해준 나는 메이스와 방패를 꺼내 들어 최전선에 섰다.

   

   흐흥. 그럼 이제 플레이어가 아니라 NPC로써 아서의 지휘에 따라보도록 할까.

   

   *

   

   조이는 아서가 지닌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 그의 지휘를 따라 몇 번이나 던전을 공략해 보았던 그녀다.

   

   그의 옆에 루시라는 규격 외의 존재가 있어서 흐려질 뿐. 아서 또한 나이에 걸맞지 않은 침착함과 노련함을 지닌 것은 마찬가지였다.

   

   “루시. 정면에 싸우지 말고 버텨라.”

   “이렇게 귀엽고 연약한 여자애를 선두에 보내시다니. 귀축이시네요.”

   “…프레이. 너는 그 동안 뒤에서 오는 둘을 처리해.”

   “갈게.”

   “갔다가 돌아와라. 혼자 날뛰지 말고.”

   “…칫.”

   

   헌데 지금 아서가 보여주는 능력은 단순히 또래보다 뛰어나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말고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그의 지휘능력은 이미 노련한 기사를 떠올리게 할 지경이었다.

   

   처음 들어와보는 던전일 터인데 어렵잖게 길을 찾아내는 것도. 안에서 달려드는 마물에 대처하는 것도. 여러 함정에 대응하는 것도. 심지어 중간 층에 있는 보스를 공략하는 것도. 모두 다 이전과 비할 수 없이 현격히 성장한 상태.

   

   알른 영애께 던전의 공략법을 배우겠다 하신 건 기억해. 근데 그 때로부터 겨우 한 두달 지났을 뿐인데. 심지어 그 동안 제대로 공부할 여유도 없었을 텐데. 이렇게나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3왕자님의 재능이 대단한 걸까. 아니면 알른 영애께서 건네 준 책이 대단한 걸까.

   

   “조이. 멍하니 있지 말고 마법을 준비해라.”

   “이미 해 뒀답니다.”

   

   조이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미 완성되어 있던 아홉 개의 마법진을 실현시켰다. 그러자 각 마법진에서 얼음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쏘아져 마물의 갑각 사이로 파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각 안에서 서리가 끼는 소리가 나더니 마물들이 조각마냥 부서져 바닥에 널부러진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마법의 사용. 단번에 마무리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던 아서는 그 풍경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지만 정작 조이는 별 일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얼빵 영애. 마법이 사나워졌는데? 나한테 발린 게 많이 짜증났나봐?”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대련을 거듭하다보니 굳이 마법이 화려할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좀 바꿔봤을 뿐이죠.”

   

   아서는 어깨를 으쓱이는 조이를 질리다는 듯 바라봤다. 아무리 파트란 가문의 피를 이었다지만 저 녀석이 지닌 마법적 재능은 규격을 넘었어.

   

   어쩌면 다음에 파트란을 이을 사람은 제프 파트란이 아니라 조이일지도 모르겠.

   

   “…꺄악?!”

   

   아서의 경탄은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을 밟고 미끄러지는 조이를 본 순간 사라졌다.

   

   “푸흫. 푸하하핳. 얼빵이 진짜 얼빵하네!”

   “웃지 말고 일으켜 세워 주기나 하세요! 빨리요!”

   

   취소다. 저 녀석이 파트란을 이으면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조이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아서는 어느새 돌아온 프레이를 보고 눈을 끔뻑였다.

   

   뒤편에 느껴진 기척이 꽤 많았는데 그새 다 처리하고 온 건가?

   

   “다 약해. 재미없었어.”

   “…그래. 그것 참 아쉬운 일이구나.”

   

   …이 정도라면 가능해. 홧김에 수락한 내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진정 괴물 같은 재능들을 마주한 아서는 주먹을 꼭 쥔 채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렸다.

   

   루시 알른이 내리는 벌칙을 피하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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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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