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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1

    <371 – 판도라의 상자>

     

    재단은 결코 오크노디를 자유롭게 놔주지 않는다.

    그녀의 재능을 안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즈앙은 크루즈선에도 이사장의 저택에도 함께 했다.

    심지어는 그 이사장을 직접 대면하기도 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경험으로 쌓인 모든 데이터가 말하고 있다.

     

    “편지상자의 존재를 알면서도 감추지 못한 이유는 그것밖에 떠올릴 수 없었어. 그리고 당신의 반응을 보니 내 예상이 맞았나보네.”

    “륭 노사께서 이런 가르침은 주시지 않았습니까? 다른 조직의 일에 개입하여 화를 자초하지 말라.”

     

    조나의 살기가 짙어졌다.

    결코 진심은 아니다.

    주변을 성가시게 배회하는 모기를 향해 손짓을 하듯이 반사적인 행동.

    그 미약한 본능만으로도 즈앙은 자신이 전개한 무형의 영역이 가차없이 찌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

     

    이 정도의 강함이다.

    이 정도의 사내이다.

    이런 집사조차도 재단의 품을, 이사장의 압박을 벗어날 수 없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은 모두가 알던 것 그 이상으로 위험한 조직이다.

    오크노디의 곁에 있을 때에는 그 사실을 망각했다.

     

    ‘어떻게 잊지 않을 수가 있겠어?’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나의 자랑만을 했으니까.

    면회를 다녀온 뒤에는 특히나 더 그랬다.

    나도 집사 하나 데리고 다니고 싶다, 라는 마음을 여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품었을 정도로.

     

    “오크노디는 말이야. 항상 호루라기를 차고 다녀.”

    “……”

    “그게 있어야 집사와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가방에도 넣지 않고 몸에 가지고 다니는 거야.”

    “……”

    “오크노디는 암살자로서 천부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온전히 개화하지는 못했어. 너무 많은 감정을 지니고 있으니까.”

     

    조나는 짓눌리면서도 끈질기게 제 주변 한 치의 영역만큼은 지켜내는 즈앙의 독심에 과연 범상한 1학년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즈앙의 특별함은 영역보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도 증명되었다.

     

    “이 편지마저도 그 비정한 이사장의 계획이라면 분명 오크노디는 크게 상심하겠지.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어른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낄 거야.”

    “그건…”

    “내게 말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어. 암살자는 밤의 일을 새벽에 저무는 그림자 속에 흘려보내니까.”

     

    즈앙은 그가 외면해왔을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그에게 떠밀었다.

     

    “당신이 정해. 이 상자를 불태우고 없애버릴지. 배신감의 끝에 진정한 무감에 눈을 뜨도록 만들지.”

     

    조나의 기를 밀어내며 스스로 집무실을 떠나는 작은 발걸음을 그는 막아설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작은 발걸음 앞에서 누구보다도 약했기에.

     

     

    * *

     

     

    강의가 없는 일요일.

    모처럼 빈둥거리며 <불량학생> 도전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용사가 제출한 과제의 페이지 사이에 풀칠을 하고 꼭꼭 누르는 장난을 치던 도중이었다.

    머리 위에 슥 하고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아주 따가운 시선이 등을 찔렀다.

     

    “아, 아무것도 안 했어요!”

     

    냉큼 풀을 소매에 집어넣고 과제를 덥썩 덮어 등 뒤로 돌리며 돌아섰다.

    다행히도 나를 주시하던 사람은 용사나 성녀, 용사친위대의 일원이 아니라 지나가던 교관이었다.

     

    “오크노디 1년생.”

    “넹?”

    “조나 교수의 호출이다. 따라오도록.”

     

    휴.

    머야, 그냥 말이나 전해주러 온 거였네.

    안심하고 뒤따르던 내게 교관이 엇박으로 딜 넣는 악질패턴마냥 불쑥 말했다.

     

    “다른 학생의 제출된 과제에 장난질을 치다가 적발된 벌금은 100포인트다.”

    “윽.”

    “초범이니 이 정도에 그쳤지, 이후에도 발각된다면 훨씬 큰 지출을 각오해야 할 거다.”

    “네에…”

     

    앞으로는 방심하지 말고 과제보관함 속에 들어가서 풀칠해야겠다.

    근데 그럼 어느 게 용사 과제인지는 어떻게 구분하지?

    아닌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나?

    용사랑 같은 강의를 들은 죄로 전부 풀칠해버리면 그만이지!

    도전과제도 많이 오르고 그게 좋겠네.

    제출한 과제에 방어마법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한 학년 빠르게 깨닫게 하는 것도 고인물 선배로서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는 것이지, 암!

     

    “오크노디 학생을 데려왔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집무실에 도착하자 날 데려온 교관은 집무실 밖으로 나가 복도 벽에 기립했다.

    조나의 명령만을 따르는 사병처럼 근처에서 대기하는 모습을 보아 재단에서 붙여준 보조인력이든 아카데미에서 붙여준 감시의 눈이든 하나는 확실하겠네.

     

    “왔어?”

    “즈앙? 여기서 모해?”

    “너희 교수님이 불렀어.”

     

    또각.

    쿠키를 깨무는 모습조차도 참 즈앙답다 싶을 정도로 조심스럽다.

    결코 큰 조각을 한 입에 삼키는 일 없이, 독 기미라도 하듯이 작은 조각을 침에 녹여먹고 반응을 살피듯이 기다린다.

    언제 봐도 참 경계심 많은 소동물 같은 즈앙과 달리, 나는 테이블에 놓인 쿠키를 앙 벌린 입에 털어넣고 입 안에서 씹어 삼켰다.

    음~ 행복해지는 단맛이야!

     

    “왜 불렀어요, 조나?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낮부터 또 부른 거예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조나의 낮간지러운 표현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 어어…

    이럴 땐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아하.

    당황하던 얼굴에 소악마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슬쩍 다가갔다.

     

    “조나도 참. 저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떨어지고 싶지 않아도 조나는 교사, 저는 학생. 학사일정에 얽매인 몸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다리에 등을 기대오지 말아주십시오.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진지한 이야기라.

    그럼 진지하게 들어줄까?

    의자에 폴싹 뛰어올라 앉으니 조나가 눈짓으로 테이블의 쿠키접시 옆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

     

    “이것은 제가 모신 역대 아가씨들의 편지가 들어있는 상자입니다.”

    “역대 아가씨… 다른 아가씨들…?”

    “이 상자를 열어본다면 아가씨는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과 저로서는 감추고 싶었던 과오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비겁한 사람.

    즈앙이 입으로 욕을 했다.

     

    “열어보거나 불태우거나 모두 아가씨가 마음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요! 갑자기 전여친이 숨겨둔 과거를 고백하는 것처럼 뜬금없다고요!”

     

    엉뚱한 표현에 딴죽을 걸고 싶은지 즈앙의 입이 간질거렸다.

     

    “갑자기 왜 이런 사실을 저한테 알려주시는 거예요? 비밀로 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건…”

    “죄책감 때문에 그런 거예요? 현남친한테 순애가 되어버린 여친이 이 남자라면 자기 과거도 받아줄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지금의 몸과 다른 성별로 바꾸어 빗댄 탓인지 즈앙의 가면 아래로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즈앙.

    그래도 알맹이는 남자라서 이쪽이 더 익숙한 걸 어떡해.

    나중에 임플란트 해줄 테니까 용서해줘!

     

    “아가씨의 말씀대로입니다.”

     

    조나는 발뺌을 하는 대신 솔직하게 수긍했다.

     

    “저는 지금 아가씨의 온정에 기대어 자비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패임에도 감히 용서받고 싶다는 어리석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당당했던 집사지만 오늘만큼은 살벌한 얼굴 아래로 죄책감이 언뜻 스쳤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비슷한 무대 아래, 구해내지 못한 학생들이나 최애캐를 바라보던 뉴비시절의 내가 그러했듯이.

    조나의 모습은 분명한 나의 과거였다.

    덥썩!

    손을 잡아주자 조나의 몸에 흠칫 힘이 실렸다.

    마치 잘못 건드리면 다칠지도 모를 아기를 대하듯이 조심스러운 태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꽈악!

     

    강하게 힘을 주어 손을 잡자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흠칫함이 조나의 손에서 느껴졌다.

     

    “먼저 놓지 말아요.”

    “아가씨?”

    “손을 잡고 놓는 것은 전부 제가 정해요!”

    “…!”

    “애초에 고인물이 애정캐의 배경설정을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집사까지 신규 플레이어블 캐릭터처럼 고유스토리가 실장 될지는 몰랐지만요!”

     

    호감도 100의 집사를 내가 왜 싫어해?

    무조건 내 편인데!

    조나의 눈에 감동이 차올랐다.

     

    “그럼 불태우시는 겁니까?”

    “넹? 그걸 왜 태워요? 다 봐야죠.”

    “??”

    “신규이벤트를 스킵하는 고인물은 없다구요! 스크립트 하나까지 다 핥아먹어야 하는데 아깝게 반찬투정을 하면 어떡해요?”

     

    상자를 열어보더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그러면 읽어도 되잖아?

    나 믿고 거기 딱 서서 기다리구 있어!

    자신감 넘치게 뻗는 손.

    편지상자를 열려는 손길이 위로 휙 딸려 올라갔다.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가씨인 내 뜻을 거스르는 조나의 자기주장.

    그의 강경한 태도에 솔직히 놀랐다.

    조나는 이런 억지를 부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구나.

    때맞춰 이벤트도 떠오른다.

     

    ━━━

    <판도라의 상자 돌발이벤트>

    조나는 역대 아가씨들의 편지가 담긴 상자를 가져왔지만 그것을 당신이 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조나의 치부가 담긴 과거의 흔적을 보면 재단에 대한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충성스러운 집사가 공개되길 원치 않는 비밀을 억지로 들추어내는 것이 주인으로서 올바른 자세일까요?

    비밀을 향한 순진무구한 아이의 갈망과 집사의 비밀을 지켜주는 어른의 성숙함 사이에서 당신이 결단을 내릴 시간입니다.

    ━━━

     

    미지의 선택.

    양자택일의 갈림길.

    하지만 고인물에게 미지란 없다.

    설령 신규이벤트라도 그렇다.

    파파의 저택에서 얻은 힘은 단순히 도감수집용 요리가 전부가 아니니까.

     

    [안목기능의 경험치가 200을 넘었습니다.]

    [특성전문화 <보상예상>이 발동합니다.]

     

    [편지를 열람할 시, <재단의 비밀정보>와 <조나의 치부>, 조나의 충성도 하락을 습득합니다.]

    [편지를 열람하지 않을 시, 보지 못한 편지의 내용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일정기간 상태이상 <불면증>에 시달리며 집사 조나가 재단의 보복을 당합니다.]

     

    파파의 저택에서 진귀한 물품을 잔뜩 감정하고 올린 안목이 제 효력을 발휘했다.

    한쪽은 상이 있고 다른 쪽은 벌이 있다.

    바보라도 뭐가 더 가치 있는지 알 수 있는 기로.

    마음이 기울어지며 조나의 품에 잡힌 손이 샤샥 빠져나갔다.

     

    “!”

     

    미처 조나가 막아설 새도 없이 탁자로 손이 뻗어나가는 순간, 머리 위의 모자가 꿈틀거리며 <텔레파시>를 통해 머릿속에 목소리를 전달했다.

     

    [열어보지 않아도 돼.]

    “?”

    [저기에는 내가 쓴 편지도 들어있거든.]

    “!”

     

    2대모자씨가 깜짝 놀랄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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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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