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1

       남부 지역을 평탄한 시위대는 준군사조직을 넘어 이제는 무장단체가 되었다. 스크롤을 장비하고, 마력초를 구비하였으며, 자체적으로 훈련도 한다.

       

       이러한 특성 탓인지, 정부에서는 이들을 ‘반란군’으로 규정했다.

       

       레니냐는 이에 비분강개하여 엥켈톤 등을 이끌고 북상했다. 목적지는 수도 메르헤름으로, 교도소에 갇힌 자신의 삼촌과 은사를 구할 요량이었다.

       

       레니냐의 행동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신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여신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과거 마왕군 간부였지요. 당신이라면 저 붉은 머리 소녀를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 말하는 여신의 목소리에선 피폐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 소녀도 언제든 구시대의 마왕처럼 변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신님.”

       “알아요. 정령은 인간만사에 개입할 수 없죠.”

       

       여기서 인간만사란, 정치를 의미한다.

       

       레니냐와 유피엘의 일, 그리고 이번에 벌어진 소요 사태는 확실히 정치적인 일이었다.

       

       정령은 정치적인 일에 관여할 수 없다. 여신 스스로 그런 규율을 세워놨다.

       

       그런데 지금 여신은 그 규율을 깨려고 한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수는 없어요. 앞으로는 정말 아니다 싶은 일에는 어느 정도 개입할 겁니다.”

       “그게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도요?”

       “세상이 망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러면서 여신이 부탁하기를, 이번 사태를 진정시키고 두 사람의 관계를 원만히 돌려달라고 했다.

       

       “…세상을 두 번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어려운 부탁이라는 건 압니다. 그러니 일을 잘 처리해 준다면 포상을 내리도록 할게요.”

       “포상이라니. 어떤 것 말입니까?”

       “저번에 보니 치킨을 그리 먹고 싶어하던데.”

       

       치킨이라.

       

       치킨?

       

       “아렌스 대륙에도 치킨은 있잖아요.”

       “슈프림 마요.”

       “……!”

       “스파이시 양념, 마늘바사삭, 뽀링클.”

       “…….”

       “그런 건 없잖아요?”

       

       나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켰다.

       

       솔직히 얘기해서, 아렌스 대륙에서 먹는 치킨은 닭을 기름에 튀긴 덩어리에 불과하다. 음식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21세기 대한민국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겉바속촉 탱글탱글 달착지근한 네임드 치킨을 먹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지구에 몇 번 들를 기회를 드릴게요. 어때요.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급한 일이라도 터지지 않는 한 정령이 지구에 갈 수는 없다. 반드시 여신의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카우렐리아를 안정시키는 조건으로 옛 터전에서 먹었던 치킨 이용권이라니.

       

       “치킨값 주시나요?”

       “예? 네… 뭐.”

       “알겠어요. 할게요.”

       

       아무리 봐도 개이득이라는 결론이 섰다.

       

       나는 여신에게 인사한 뒤 포탈을 타고 카우렐리아의 세계수에 강림했다.

       

       “여신님,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때 유피엘은 재단 위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수도로 돌아온 이후, 그녀의 안색은 몰라보게 초췌해져 있었다. 나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녀를 맞이했다.

       

       “어린 양이여, 무엇이 그리 급박한가.”

       

       나는 짐짓 위엄을 세우며 바닥에 착지했다.

       

       “다, 당신은!”

       

       유피엘은 총 세 번 놀랐다.

       

       마나 고갈증에 걸린 자신에게 내려오는 정령이 있다는 것에 한 번.

       

       내려온 정령이 수계가 아닌 전계정령이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내려온 전계정령의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는 것에 마지막으로 한 번.

       

       “아스테야… 아니, 에테르 선생님!”

       

       그러고 보니 유피엘에겐 내 부활을 얘기하지 않았다.

       

       비단 유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로테나 프레이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내 부활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로즈마리가 공인인 탓에 그녀가 전계정령과 계약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나, 정작 그 정령의 생김새를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왜냐. 정령은 카메라에 안 담기거든.

       

       생각해 보니까 이건 왜 이런 거냐.

       

       연구할 게 하나 더 늘었다.

       

       그렇게 연구주제를 하나 더 확보한 나는 헛기침과 함께 본제로 돌아왔다. 유피엘이 여전히 멀뚱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간다. 유피엘은 눈을 끔뻑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부활하셨군요.”

       “뭐, 그렇게 됐다 이 말이야.”

       

       순간, 유피엘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녀는 내 양손을 붙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선생님, 못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세요. 어떻게 하면 레니냐를 설득할 수 있죠? 저, 이대로라면 친구가 적이 되어버려요….”

       “자, 자. 일단 침착하고.”

       

       꺽꺽 울어대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느껴진다.

       

       아직 어리군.

       

       국회의원 자리에 있기에는 애가 모질지 못해.

       

       이럴 땐 1천년 묵은 인간관계 노하우를 지닌 내가 나서서 조언해 주는 수밖에 없다.

       

       “레니냐가 네 말을 들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지?”

       “네, 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단순한 이야기야. 사람이 눈깔 뒤집히면 충고 따위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거든.”

       

       대학생 시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다룬 교양서적을 읽은 적이 있다.

       

       단, 그 책에서는 이런 전제를 적었다.

       

       “대화할 의사조차 없는 사람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쨌거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건,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봤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말에, 유피엘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죠?”

       “레니냐가 너와 대화할 마음이 들도록 해야지.”

       “어떻게요?”

       “우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

       

       레니냐는 어릴 적부터 온갖 차별과 차별은 다 받아왔다. 부모는 없었으며,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은 삼촌 한 명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살아왔다. 차별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일리야드를 졸업하기만 한다면 모두에게 큰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금안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리야드에서 쫓겨났다. 가족인 삼촌은 구치소에 갔다. 그녀를 이해해 주던 르네이 총장마저 레니냐를 두둔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수사를 받고 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가족이나 은사라는 버팀목도.

       

       모든 것이 박살 나고 있는 삶이었다.

       

       “이런 삶인데, 너 같아도 대화하려 하겠어?”

       “아….”

       

       유피엘은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순금으로 덧칠된 국회의원 배지.

       

       일제강점기로 빗대어 말하자면, 수년간 같이 독립운동했던 동료가 못 본 사이에 친일파로 변절하여 욱일기를 들고나온 꼴이었다.

       

       나 같아도 그런 옛 동료가 전범기를 흔들며 ‘내 말 좀 들어봐!’ 이러면 미친년이구나 하고 쌍욕을 날릴 것이다.

       

       “제가 잘못했네요….”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유피엘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깃들었다.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없으니?”

       “행동으로 보여야죠.”

       

       유피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활로가 보였어요.”

       

       

       **

       

       

       유피엘과 헤어진 나는 일단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초조해할 건 없지.”

       

       당장 두 사람이 화해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법만 수십 가지다.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금방 화해할 수도,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거기까지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유피엘의 의사도 존중하거니와, 아직 무른 그녀에게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대학원은 기본적으로 방임 교육이다.

       

       암, 스스로 헤쳐 나가야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방향성 제시 정도다.

       

       “로테, 나 왔어.”

       

       나는 대학 연구실로 돌아왔다. 로테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아니, 만든다기보다는 설계하는 중이었다.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작업하고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로테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다가갔다. 정령이었기에 발을 땅에 닿게 하지 않고도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갈 수 있었다.

       

       좋아, 놀래켜 볼까.

       

       그리 생각하며 덮치려던 찰나.

       

       “우왁!”

       

       로테가 이리처럼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노, 놀랐잖아!”

       “조금 전에 부르는 소리 들었거든? 내가 눈치 못 챌 줄 알았어?”

       “허어….”

       

       로테가 키득키득 웃으며 팔을 들어올렸다.

       

       로테의 손은 내 양쪽 볼에 안착했다. 내 볼따구를 전분 주무르듯 주물주물한 로테는 자신이 그리고 있던 계획서와 청사진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주제를 전환했다.

       

       “네가 다녀온 동안에 이걸 계획했어.”

       “발전기 모델이네.”

       “응, 기본적인 원리는 기존의 에너지 생성기와 똑같아. 물을 끓여서, 터빈을 돌리는 거지.”

       “처음부터 너무 거창하게 하는 거 아니야?”

       

       로테는 이제 석박통합 1년차다. 이만한 연구를 이끌어나가려면 나라도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로테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발전에 쓰일 수 있도록 에너지 범위를 조절하는 게 먼저겠지? 그러려면 흑주의 위력을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는 기구부터 만들어야 해.”

       “기구라.”

       

       기구라면 스크롤과 마석 몇 개로 1년 안에 가능할 듯하다.

       

       아니, 1년이 무엇인가. 우리 콤비가 플레어를 완성했던 속도를 생각한다면 1개월만 주어도 해결할 수 있다. 단, 재정이 충만하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리고 로테네 집안은 엄청난 부자였다.

       

       “이론상 흑주에 그 기구를 연결하면 원하는 양만큼 핵융합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 거야.”

       “결국 실험을 해야겠군.”

       “그래, 하지만 나 혼자선 어렵겠지. 어디 내 연구를 도와주실 착하고 귀여운 지도교수 없나?”

       

       와, 와, 와…. 이것 봐라?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데?”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또 못 할 건 없지.”

       

       실제 학생들 가르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 하루는 널널하다. 즉, 무한 뺑뺑이를 쳤던 2년 전에 비교하면 근무환경이 많이 개선됐다.

       

       이는 자연스레 전계정령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었다.

       

       나와 로테는 해당 조절기를 설계하느라 연구실에서 4시간 정도를 보낸 뒤 부식으로 건빵을 까먹으며 집에 돌아왔다.

       

       “조금 있으면 저녁이군.”

       

       지금쯤이면 유피엘이 뭔가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신의 부탁을 떠올린 나는 잠시 정령계로 돌아왔다. 수경을 통해 유피엘이 어디서 무얼 하나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어디 보자.

       

       “뭐여.”

       

       유피엘은 로스차일드 본가 앞에서 머리를 박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단… 새벽에 써두었던 비축을 풀었습니다

    다시 라이브가 되니 참 빡빡하군요…

    컨디션에 유의하면서 연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