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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2

       식성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당연히 내가 가진 식성은 표준적인 한국인의 식성이었다. 너무 느끼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적당히 짜고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아제르나에서 지내며 그 나라 음식에— 아니지,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보다는 주로 벨부르나 이벨리아 쪽의 음식에 적응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근본적인 입맛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에는 실패한 모양이다.

        

       몸도 완전히 바뀌어버렸는데 입맛 하나는 바뀌지 않은 게 조금 신기할 정도다. 혹시 이런 입맛은 영혼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어쨌거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요즘 살맛이 났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그리고 각종 국물류 요리들을 먹으니 힘이 났다. 게다가 여기는 아제르나와는 다른 세상이 아닌가. 한국 음식뿐만이 아니라, 그쪽에서는 거의 먹지 못한 아시아의 음식은 거의 다 먹을 수 있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는 먹지 못할 테니 열심히 먹어둬야지—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다만, 지금 나와 함께 지내는 두 사람의 식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음식을 꽤 마음에 들어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두 사람에게 한국 음식만을 먹일 수는 없다.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것들이 많은 아제르나 제국의 토속 음식은 제외하고, 그래도 그럭저럭 먹어볼 만한 음식들을 모아보더라도 아제르나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보통 기름진 것들이었다.

        

       거기에 소스는 고추보다는 토마토나 크림을 자주 썼고, 면의 형태도 소면의 형태가 아니라 스파게티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다. 그야 애초에 서양을 배경으로 했으니 당연하다. 그것도 일본인이 바라보는 서양이었으니, 그 음식들이 좀 과장되게 서양다운 것도 이해한다.

        

       클레어와 앨리스는,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아무리 편하게 지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 집에 돈 한 푼 내지 않고 얹혀있으니 보통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두 사람은 식사가 입맛에 조금 맞지 않더라도—

        

       “마, 맛있네, 응. 그렇게 맵지는 않아.”

        

       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을 한다던가,

        

       “다른 나라의 음식도 확실히 먹어볼 만해.”

        

       라고, 음식의 절반도 비우지 못한 채 말하곤 했다.

        

       그래, 다른 나라의 음식이라도 처음 먹으면 맛있다. 두 번째, 세 번째 먹을 때까지도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 먹으면, 질린다.

        

       내가 스파게티 같은 음식을 만드는 데 도전해보거나, 근처 빵집 중 가장 평가가 좋은 곳에서 식빵을 사 오거나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와 함께 지내는 내 자매가 여기서 나쁜 인상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면 그럭저럭 서양 음식, 주로 유럽 쪽의 음식다운 음식을 먹으면 눈이 반짝거렸으므로, 그다지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생각했다’.

        

       “……클레어, 당신은 믿고 있었는데.”

        

       “응!? 왜 그래, 언니? 내가 뭔가 잘못한 거야?”

        

       잘못했지.

        

       공포게임 방송을 한 뒤로 시청자가 늘었다. 우리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따로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겁하는 장면이 클립과 움짤로 만들어져 이런저런 커뮤니티에 퍼진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 이름을 물어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도네도 늘었다.

        

       생활에 더욱 여유가 생길 것 같아, 피자라도 시켜 먹자고 생각했는데—

        

       “……이건?”

        

       피자 상자 뚜껑을 연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 피자 상자 안의 피자에는, 파인애플이 올라가 있었다.

        

       “……아뇨,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 잘못된 것은 아니다.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는 것이 범죄인 나라는 없다. 어쩌면 이탈리아에서는 불법일지도 모르지만—사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피자 대부분이 불법이겠지만—아무튼,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으래?”

        

       하지만 클레어는 확신하지 못한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클레어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어차피 이 둘에게는 이 나라에 있는 모든 음식이 ‘외국 음식’이다. 설령 우리가 아제르나에서 먹던 피시 앤 칩스를 여기서 사 먹는다고 해도, 결국 그건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이 아니라 영국 음식이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한테는 ‘음식은 이래야지’라는 기본적인 선 자체가 없는 상태라는 소리다. 어차피 여기서 먹는 건 전부 처음 먹는 음식이나 다름없으니.

        

       그걸 먼저 떠올렸어야 했는데.

        

       “피자 위에 파인애플이라니, 신선하네.”

        

       신선하긴.

        

       신성모독이겠지.

        

       “그렇지? 그래서 이걸로 시켰어.”

        

       클레어는 금방 활짝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민트초코도 영국에서 만들어졌었나 그랬던 것 같은데.

        

       ……아이스크림 사러 가면 맛은 무조건 내가 골라야지. 큰일 날 뻔했네.

        

       “언니.”

        

       나를 부르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피자 상자를 둘러싸고 앉은 클레어와 앨리스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 먹어?”

        

       여전히 나를 조금 불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클레어가 조금 불쌍했다.

        

       ……그래, 피자에 파인애플 올려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파인애플을 피자에 올려 익혔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피자가 왔는걸.

        

       나는 비어있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나를 언니라고 생각하는 클레어도, 그리고 나를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앨리스도, 내가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눈치 볼 필요 없는데.

        

       “그럼, 먹을까요?”

        

       “응!”

        

       “그러자.”

        

       내가 제일 먼저 피자를 한 조각 들었다.

        

       페퍼로니와 피자치즈가 한데 어우러지듯 올라가 있었고, 그 위에— 파인애플이 올라가 있었다.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혀에 가장 먼저 닿은 것은 아직 식지 않아 따뜻한 피자 도우.

        

       한 번 씹으니 바로 느껴지는 것은 잘 녹은 피자치즈였다. 너무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면서도 묘하게 짭짤한 그 기름진 맛은 내가 평소에 먹던 피자와 아주 비슷했다.

        

       아제르나에서 먹던 피자와는 맛이 조금 달랐지만, 뭐 솔직히 나는 이쪽 피자가 더 내 취향이니까.

        

       다시 한번 피자를 씹자 느껴지는 것은 소시지였다. 살짝 매콤하게 간이 된 페퍼로니 특유의 소시지 맛이 느껴졌다.

        

       그 익숙한 서양 맛을 천천히 느끼며 한 번 더 턱을 움직여 씹으면—

        

       느껴지는 파인애플.

        

       열대과일 특유의 달콤한 맛이 혀를 순식간에 감쌌다.

        

       솔직히 나는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편이다. 통조림 하나를 따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

        

       하지만, 파인애플을 피자에? 굳이? 어째서?

        

       인상을 찡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의 두 자매, 특히 이 피자를 고른 클레어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맛있어!”

        

       “그러게. 맛있네.”

        

       그렇구나. 맛있구나.

        

       하긴 아제르나 제국의 음식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발전한 음식이긴 하지.

        

       그래도 계속 입에 넣으니 점점 먹을 만해진 것 같긴 했다.

        

       파인애플만 없었으면 더 먹을 만했겠지만.

        

       “많이 드십시오.”

        

       나는 피자 한 조각을 다 끝내고, 다시 한 조각을 들면서 말했다.

        

       “어? 언니는 그걸로 끝?”

        

       “네, 저는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아침을 넉넉하게 먹었나?”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보다는…… 굳이 더 먹고 싶지 않을 뿐이다. 물론 완전히 극혐할 정도의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남은 조각을 전부 해치웠다.

        

       ……내가 더 먹었으면 부족했겠구만.

        

       *

        

       “두 사람 모두,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말에 클레어와 앨리스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그러고 앉으십니까?”

        

       “어, 아니, 그러니까 그게 좀, 아까 식사할 때도 그렇고, 언니가 조금 화난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를 시켰다는 이유로 마구 화를 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예 안 먹은 것도 아니고.

        

       “화내려는 거 아니니 그냥 편하게 있어도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릎 꿇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나는 한숨을 꾹 참은 채 두 사람 앞에 카드를 한 장씩 놓았다.

        

       “어.”

        

       “이건.”

        

       “체크카드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벌어둔 돈은 내 돈이다. 물론 그걸 나 혼자만을 위해 쓸 생각은 당연히 없고, 일단은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한 비상금으로 둘 생각이다.

        

       하지만, 방송으로 번 돈은 셋이 정확하게 나누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나 혼자 버는 것도 아닌데.

        

       물론 아직 정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나 벌었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우리가 방송으로 번 돈을 적당히 나누어 넣어두었습니다. 두 사람 다 같은 금액입니다.”

        

       사실 통장은 이미 전에 만들어 두었다. 두 사람 인터넷 은행 계좌를 각자 만들어 두었고, 이 카드는 그때 신청해둔 체크카드였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한도 안에서 써도 좋습니다. 만약 필요한 것이 있는데 돈이 부족하면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클레어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카드를 받았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써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을 믿으니까요.”

        

       “…….”

        

       내 말에, 두 사람은 잠깐 말을 잊은 것 같았다.

        

       “이렇게 받기만 해서 미안.”

        

       클레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받기만 한 적 없습니다.”

        

       나는 클레어에게 살짝 웃어주며 말했다.

        

       “여기 저 혼자 있었으면 그냥 시들어갔을 뿐일 테니까요. 두 사람이 있어서, 매일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은 저 혼자 번 돈도 아니니까요.”

        

       “……언젠가 다 갚을게.”

        

       앨리스가 말했다.

        

       “제가 갚는 중인걸요.”

        

       “…….”

        

       내 말에 클레어와 앨리스는 잠깐 아무 말도 없다가,

        

       “으꺅!?”

        

       동시에 나한테 달려들었다.

        

       아니, 감사의 포옹을 하고 싶으면 좀 덜 거칠게 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웃으며 두 사람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저는 하와이안 피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고 할까요.

    민트초코도 좋아합니다.

    만약 아이스크림 가게에 민트초코를 포함해 맛의 종류가 31개라면, 앞의 30개가 전부 품절된 상태에서 한 번 사먹어볼 만큼 좋아합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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