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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2

        

         정말 타이밍도 안 좋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온갖 귀찮음과 불편한 접근성 및 아까운 정밀 장비 손해까지 보게 만들었던 정보 통신업 관련자들의 단체 근신 처분이 마침내 철회되었다.

         

         이제 정확히는 외곽 지역의 잇달은 폭력 사태와 엑사테크의 공중 전함이 출격해야 진정되었던 과열된 분위기를 고려해 보호 관찰 기간을 조기 종료했다고 설명하는 게 맞으려나.

         

         아무래도 메트로폴리스 사회 전반에 걸친 불안 심리가 반체재 정서로 변질되거나 집권 세력을 향해 분출되는 걸 우려하여, 괜히 더 자극하지 말고 양면적인 유화책도 고려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인데….

         

         뭐, 당장 나한테 중요한 건 눈치 보거나 대리인을 쓸 필요없이 다시 외출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별 트집 안 잡히고 넘어갔다고 좋아해야겠지만. 그렇게 편히 합리화하는 게 분명 이성적이고 이득인 판단이겠지만!

         

         “…………짜증나.”

         

         허나 감정이란 녀석이 그리 쉽게 통제되는 물건이었다면 인간이 어찌 고민의 동물이겠나?

         

         인내의 미덕을 잊어버린 것도 아닐진대, 이 몸이 된 이래로 흐름과 기세에 맡겨 밀어붙인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그런 부분은 조금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하나같이 다 잘 끝났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삐끗했으면 지금처럼 안정된 기반을 구축하는 건 무리인 사건과 일정의 연속이 아니었나. 성격을 어느 정도 아는 인물들을 상대로 담판을 지은 거라 쳐도 위험한 다리를 너무 많이 건너지 않았나.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반추해봐도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기에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니.

         

         …다만 이번 건에 한해서는 제발 중간 과정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씨발 누군가 그냥 올바른 정답만을 콕 집어서 알려주면 좋겠다.

         

         아마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정확한 판단 기치를 세울 수 있는 명제이기에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이 더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요인이었지만… 아무튼 내 작은 바램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

         

         분위기와 음악, 그리고 각종 향에 취해 살짝 몽롱해진 의식을 다잡음과 동시에

         

         정말 눈알이 빠져라. 요 며칠간 계속 틈 날 때마다 살펴보던 걸로도 모자라, 아예 사이버웨어에 백업까지 한 화상 데이터를 노려본다.

         

         원본은 조악한 열화 영상이오, 최선을 다해 살을 덧붙여도 사건의 재구성밖에 되지 않는 발굴 현장의 기록물은 아무리 다각도로 돌려본다 한들 달라지는 게 없었지만… 이러면 적어도 최근 내 모든 관심과 신경을 사로잡은 문제의 남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출신 미상 및 세부 경력 불명의 흔하디 흔한, 혹은… 잘 쳐줘서 썩 괜찮은 실력을 보유한 용병 킴.

         

         얼핏 보면 메트로폴리스에 널리고 널린 신분 불명자나 사연 있는 떠돌이 방랑자일지라도, 내가 친히 그 배경을 조사해봤거늘 적당히 시민증 브로커가 위조한 걸로 보이는 사회 기록과 시민 등록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게 드러난 시점에서 완전 아웃이다.

         

         킴이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은근히 드러내 보이면서, 또 한편으론 킴벌리 혹은 요아킴 등등 몇몇 영미권 이름의 줄임말이나 애칭에도 부합하니… 단조로운 네이밍 센스라며 혹평할 마음은 안 들었다.

         

         오히려 꽤나 깜찍하고, 나름 속뜻이 느껴지는 것 같은 발상이라며 무어라 칭찬을 했으면 했지.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으니.

         

         세상엔 넘어선 안 되는 도의적 선이라든가, 누구도 크게 떠들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라든가. 어지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영역,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주제 같은 게 있는 법이다.

         

         가령 선객이 있는 화장실에 들어갈 경우 바로 옆자리 소변기는 웬만하면 피해주는 것, 버스에서는 안쪽 좌석부터 착착 채워 앉는 것.

         

         나 같은 경우에는… 보통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지켜지지 않아도 그냥 그러려니, 무슨 이유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넘기는 편이었다.

         

         다만 이제 딱 하나, 내가 한사코 타협하지 못했던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게임. 네오 헤이븐.

         

         도합 일만 시간은 우습게 오버. 기억나는 한 학창 시절 모든 여가 시간을 갈아 넣은 걸로도 모자라, 자취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종종 일정과 외출을 미뤄가며 매달렸던 만큼 내 취미이자 인생의 낙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 다른 경쟁형 온라인 게임들처럼 실력적인 측면에서 자존심을 세웠던 건 아닙니다? 패키지 게임은 궤가 다르지. 더군다나 과거의 내가 그럴만한 손재주가 됐으면… 아마 프로 게이머 관련 진로를 진지하게 알아봤을 거고.

         

         내가 말하려던 건 어디까지나 관련된 지식, …그리고 네오 헤이븐이라는 잿빛 세계관을 조금 과할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태도.

         

         시간이 흐른 지금이야 감정을 많이 곱씹어 억누르고 차분히 이성을 되찾았다지만. 아마 내가 그때 구역질이 날 정도의 불쾌함과 거슬림, 형언할 수 없는 짜증과 격노에 휩싸였던 이유도 그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

         

         좋아, 아예 이 참에 확실히 단언해두도록 하자.

         

         나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주인공에게 곧이곧대로 내 운명을 내맡기듯 크게 의존하고픈 계획도, 그럴 느슨한 마음도 없다.

         

         설령 헬레나를 비롯해 날고기는 도시의 괴물들을 뛰어넘는 잠재력을 보유한 미래의 초인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많은 어긋남과 균열,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현상과 결과가 수도 없이 발생하고 나타나겠지만. 그 비틀리고 거센 강줄기를 억지로 바로잡아 원하는 방향으로 꺾을 능력과 자본, 든든한 지원군을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얻었다고 믿고 있거든.

         

         그러나 모순되게도, 예전부터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 특별한 시기와 잔인한 이벤트를, 이야기의 메인 배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이 있었다.

         

         …그래, 과장 좀 보태서 애틋하게 바라고 있었다고 감히 표현해도 좋으리라.

         

         누군가 왜 입이랑 몸이 따로 노는 사람 마냥 현장에 있지도 못했던 주제에 계속 철철 미련을 흘리고 있는 거냐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다만 그 주인공이란 자리와 무게에 어울리는, 응당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을 뿐이라고.

         

         팬심이라는 게 어디 적당히 좋아해서 생기는 물건이던가? 내심 품는 기대치라는 게 마음대로 높이거나 줄일 수 있는 기준점이라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네오 헤이븐의 지식을 활용해서 이득은 취할지언정, 특정한 누군가에게 손을 벌려 콩고물을 얻어먹을 생각 따위는 일절 없었어도. 내심 바라고 있던 기준이라는 건 분명 존재했으니까.

         

         응, 쓸데없이 얘기가 복잡해졌다.

         이걸 어떻게 풀어 말해야 내 복잡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 받을 수 있으려나.

         

         기본적으로 ‘네오 헤이븐’에서 주인공이란 플레이어의 캐릭터이며, 동시에 캐릭터 메이킹 때 고르는 특성에 따라 그 배경이 정해지는 인물이므로 내 개인적으로 선호라면 몰라도 인격적인 분석에는 별반 의미가 없다.

         

         그건 미리 정해진 틀이나 규칙이 있는 게 절대 아니었으니까.

         특히나 대상이 사람이라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무작위 그 자체, 혼돈이나 다름없는 데다가.

         

         당장 나만 하더라도, 굉장히 길거리 용병스러운 쓰레기가 나타날 경우 그걸 교정하기 위한 성격 개조 계획까지 수립하고 있었으니… 사실 말은 다했지 뭐.

         

         따라서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그 정의, 보통은 사물의 근간이라 규정하는 원론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이자 조금 무겁고 이상할 수 있는 고찰.

         

         주인공이란 무엇이냐. 주인공이란 어떤 존재더냐.

         

         글에서, 만화에서,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게임에서.

         사람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모든 창작물과 떠올릴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 중에서 그들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가질 수밖에 없는 한가지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면.

         

         헬레나의 결별과 불길, 쇼우 녀석의 집착 같은 갈망, 레오나르의 소망 등을 내가 정면에서 차마 외면하지 못했듯. 보는 이의 정신을 사로잡는… 모두가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눈부시고도 찬란한 별이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주인공의 시나리오를 유도하려고 나름 대비했었다는 이야기,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설령 그런 간섭을 취하게 되더라도. 행동의 진정성을, 결심의 빛남을, 품은 기상을 높이 사서 존중하려는 각오를 끝마친 채 진지하게 마주하고자. 엄청 마음의 준비를 다지고 고삐를 강하게 당기고 있었다면 조금 부연 설명이 되려나.

         

         그저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는 순간을 소중이 할 수밖에 없는 혜성, 관리 소홀로 때가 타거나 망가지는 건 절대 피하고픈 예술품과도 얼핏 비교할 수 있겠네요. 예.

         

         …후우.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는 건 물론, 상당히 과몰입하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거나 어이없어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내가 그런 거에 의미 부여하지 않고 쿨하게 여기기엔 아무래도 너무 짧은 시간내에 극적인 경험을 많이 해본지라.

         

         어쨌든 자고로 이야기의 주인공이란,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흩뿌리며, 영광된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짊어진 지도자이기도 한 것처럼.

         

         뭐, 최근에는 악당이나 이기적인 주인공도 많다 한들, 사사로운 선악의 구분을 떠나서 스스로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한 존재라면. 아무리 밉상이어도 미워할지언정 싫어할 수는 없는 특별한 점을 품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그가 좋은 선택이던 나쁜 선택이던, 구경꾼이자 ‘주인공 캐릭터’를 경험해본 나는 어디까지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기다리다가 나온 결과에 납득할 수 있는 만큼.

         역으로 이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를 떠넘긴 채로, 그때 그때 대응만 하는 수동적이지만 편한 포지션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기도 했고.

         

         스토리-삶-을 진행함에 있어서 가로막는 장애를 불사르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한다.

         

         간지러운 곳을 귀신 같이 눈치채고 먼저 긁어주는 전속 비서 제로가 있다 쳐도, 졸지에 정말정말정말 많이 아쉬운 육탄전 스펙을 반영구적으로 보유하게 된 내 개조 시술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 또한 옆에서 구경하는 걸로 대리만족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건 사소한 덤.

         

         하여간 나타날 주인공이 어떤 인간이든지 간에, 관련된 인물들을 사로잡을 매력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 장점을 가졌으리란 건 서사적으로 그리고 운명적으로 분명한 만큼.

         

         여태 겪은 발자취가 어떻던 나보다 기구한 사연을 가진 건 아니겠지만, 앞으로 수많은 사건에 휘말릴 사고 체질을 보유한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꽤나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기도 하니. 굳이 원작 게임 이야기를 떠나서 친밀감을 가지기도 쉬우리라 잔뜩 기대했는데….

         

         “동향 사람이 웬 말이냐고요. 그것도 하필 여기서…!!”

         

         “아샤 양, 간만에 가게에 내점해준 건 반갑지만 과음은 안 되네. ……그리고 가끔은 전화만 하지 말고 집에도 좀 들르게. 별로 안 바쁘면 오늘도 좋고. 오죽하면 우리 메리가 ‘아나스타샤 언니… 이제는 연예인이 돼서 집에 못 놀러 오는 거야…?’ 같은 소리를 하겠나.”

         

         꿀꺽!

         

         더없이 공감은 가는 인물이지만. 친하게 지내는 걸 고려하기 이전에 ‘주인공’이란 자리가 가진 가치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여지껏 보호하려고 애썼던 네오 헤이븐이라는 강에 떨어진 초대형 돌덩어리를 어떻게 치워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오는 상황에.

         

         이래서 머나먼 이국 타지에선 오히려 고향 사람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 걸, 달짝지근하고 새콤한 맛이 감도는 칵테일과 함께 목구멍 아래로 확 내려버렸다.

         

         …….뭐요. 설마 여태까지 주절거린 게 전부 술꾼의 주정이었냐고?

         

         네이, 네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감성적으로 술을 입에 대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범 시민답게 마약도 안 하고 항정신성 약물도 여성용 호르몬 약을 제외하고는 다 끊었는데. 아무리 술찐이라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고 싶어서 알코올의 힘을 좀 빌어볼 수 있는 노릇 아닙니까? 어!?

         

         평소라면 바로 끼어들었을 제로가 유달리 조용한 것도 다름이 아니다.

         

         어차피 이제는 원작 스토리도 시작한 만큼 적당히 아는 얼굴들을 마주쳐도 괜찮겠다.

         

         다른 사람에게 이 답답함을 뭉뚱그려 토해내고자 예의 그 의뢰 알선소 겸 바에 나와있는 만큼, 대작하고 있는 슈나이더 씨가 있으니 평소대로 말동무를 해주기 보단, 얌전히 가게 근처에서 경호에 치중해주고 있는 와중이니까!

         

         “으으으…!!”

         

         부르르 떠는 듯한 신음 소리와 함께 힘을 준다.

         

         달콤함이 흐려지자마자 곧바로 솟구치려는 취기를, 신체 내부에 능력을 발휘해 분해를 촉진하는 걸로 가시게 만들었다.

         

         아니면 가시게 만드는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해야 맞으려나…?

         

         전기 발생 및 신호 언어화라는 유일무이한 무기를 단련하는 걸 게을리할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 짬짬이 다른 응용법을 연구해보고 있는데. 이게 상상력과 감각으로 행하는 영역이다 보니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적어도 전처럼 꼴사납게 딸꾹질을 하거나, 테이블에 머리를 박진 않았으니 효과가 있다고 짐작만 할 뿐이지. 이 복잡한 고민이 뇌리에서 영 떠날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사고 능력이나 기억력도 아직 말짱한 것 같고.

         

         취하기 위해서 일부러 아는 바에 나와 술을 마시는데 정작 한계 허용량이 바닥이라 한 잔 마실 때마다 알코올을 날려버려야 한다니. 정말 이게 맞아?

         

         이건 효율이 나쁘다 못해 없는 수준이잖아, 그냥.

         

         심지어 수도 없이 몸소 겪어본 신체 감각에 따르면, 방금 능력 발동에 사용한 열량이 섭취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쓰레기 가성비… 예상치 못한 정신 노동의 연속… 쓸데없는 시간 낭비… 무의미한 신세 한탄….

         

         “……쓰읍. 아니, 왜 저만 이런 억울한 감정 소모를 해야 할까요.”

         

         “아가씨치고는 상당히 드물게 약한 소리를 하는군? 어떻게, 잘 안 풀리는 일이라도 있나?”

         

         “있긴 있죠… 살짝 들춰보는 순간, 문자 그대로 세상 전체가 달라지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젯거리가.”

         

         어렵다 어려워. 이걸 당장 지체하지 말고 들이박은 다음 제로를 시켜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아니면 상대가 나와 이미 마주친 전적이 있는 만큼 주변을 맴돌며 어찌 되어먹은 영문인지 살펴야 하나.

         

         속으로 한탄을 거듭하고 있을 때… 탁!

         

         추가로 주문한 적도 없거늘, 분위기가 영 아닌 것 같은 나에게 술을 더 내주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 여겼는지 주문도 안 한 사이다를 한 잔 테이블 위로 건네준 슈나이더 씨가 무심한듯 시크하게 걱정을 해주셨다.

         

         “흠, 아직 팔팔한 현역인 자네에겐 잘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덮어두고 싶은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많이들 생각하곤 하지. 허나 진실은 문제를 안에 응어리지게 만들어서 찰랑이라는 걸 막을 뿐, 몸으로부터 떼어내는 건 더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난 믿는다네.”

         

         “……여기서 머리 싸매고 있을 게 아니라, 피곤하더라도 일단 늦기 전에 참견하라는 말이죠 그건?”

         

         말이야 쉽지.

         

         아저씨 본인이야 상식적인 측면에서 한 조언이겠으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혈질과 의지의 한국인에게 선뜻 먼저 다가가 ‘너, 시발 이세계에서 게임하다 끌려왔지!?’를 시원하게 박아버리라는 소리처럼 들려서 상당히 머뭇거리며 대답했지만.

         

         그는 가볍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내젓고는 세세한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아니지, 완전히 털어내 버릴 수 없는 녀석이라면. 모르는 사이 끈적하게 들러붙지 않도록 시야 안에 두고 꾸준히 잘 관리하라는 얘기와 더 비슷하네.

         

         왜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좋은 말도 있지 않나? 발을 뺄 수도 없고, 무작정 해결하기도 곤란하다면. 역으로 더욱 집요하게 굴게나. 골칫거리가 손 안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하도록.”

         

         “……흐응. 뭐, 그것도 꽤 그럴싸하긴 한데요.”

         

         ‘정신적으로 피로하다는 하소연엔 전혀 도움이 안 돼서 미안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하는 야박하면서도 따듯한 말씀도 하시는 걸 보면 내 혼잣말을 나름 귀 기울여 들어주신 건 여러모로 틀림없었다.

         

         연륜이 물씬 묻어나지만 그리 시원하진 않은 답변에 턱을 괴고선 발끝을 까딱이다가.

         

         나와의 친분 때문인지 평소보다 풀어진 표정으로 와인 잔을 슥슥 닦고 계신 모습에. 그래도 게임 때 자주 보던, 가족을 잃은 탓에 한껏 날카로워진 중후한 얼굴보다 이런 느슨한 면모를 볼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라는 점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 전자 조사할 기록이 없다면 휴민트(HUMINT), 목격담과 증언을 토대로 인물을 재구성하면 될 노릇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킴이 주인공이라면 배경은 몰라도 프롤로그 이전에 의뢰를 수행하거나 이쪽 의뢰 알선소를 들락날락하며 다른 용병을 비롯한 사람들과 맺은 관계는 존재할 터.

         

         따라서 자연스럽게, 당장 앞에 계신 슈나이더 씨만 해도 평소에 킴을 상대로 영업한 전적이 있을 게 틀림없다! 아마도.

         

         토대로 행적과 행보를 취합하면 이 킴이란 녀석이 구체적으로 주인공이란 역할을 의태했는지도 정확히 판별할 수 있을뿐더러. 이게 계획된 일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찌 된 영문인지도 맥락을 파악할 수 있지 않겠어?

         

         슈나이더 씨의 조언(?)처럼, 말마따나 융합한 공허 광물의 영향으로 점차 강해지기 전, 그 싹이 연약한 이 초창기에 호된 매질을 해서 밟아 놔야 할지 조심스럽게 물을 줘서 키워야 할지도 정할 수 있고 말이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면 친히 옆에 두고 조지는…… 크흠! 실수, 스스로 진실을 실토할 때까지 집중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렸다?

         

         “슈나이더 씨, 그 혹시… 킴이라는 용병. 대체 뭐하는 놈인지 엮이거나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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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을 희망하시는 독자님의 73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휴재 기간에 주신 코인에 대한 감사 후기를 못난 글쟁이가 이제야 올립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지금 입영하시면 그나마 몸은 좀 더 편하실 수도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네요. 몸 성히 다녀오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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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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