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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2

    <372 – 으레 있는 일>

     

    2대모자씨는 그저 <대답하는문>에 갇혔다가 풀려난 불쌍한 학생이 아니었나?

    예상치도 못한 연결고리는 고인물인 나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으음?”

     

    저 편지상자에 들어있는 편지를 썼다는 말은 재단의 아가씨이자 조나의 역대 아가씨 중 하나라는 말이 되는데.

    그럼 2대 모자씨는 아가씨 선배였다는 말인가!?

     

    “음음. 이게 이렇게도 될 수 있구나!”

     

    신기하긴 한데 아귀는 딱 들어맞는다.

    보통 캐릭터의 배경설정이나 호감도이벤트, 고유스토리 등은 그 캐릭터의 주변에 관련된 인물이나 사물이 숨어있는 경우가 으레 있다.

    어떤 물건의 사연이라거나 주변인물이 감추고 있던 비밀이라거나.

    즈앙의 저 <가면>만 해도 즈앙의 고유스토리와 관련이 있잖아?

    재단의 아가씨인 내 주변에 전대 아가씨가 숨어있다는 이런 설정, 오크노디라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로서 내 고유스토리에 어울리는 이벤트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게임캐릭터가 된 기분이네!’

     

    솔직히 재밌다.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하며 즐겨왔던 세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란 가슴 깊이 충족감이 차오른다.

     

    “조나한테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무엇을 말입니까, 아가씨?”

    [아직은 말하지 말아줘. 그에게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재단에 회수당하고 싶지도 않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싫다는데 봐주자.

     

    “아가씨?”

    “아니에요. 역시 결정했어요. 이렇게 하기로.”

     

    테이블로 뻗은 손은 원하는 것을 붙잡고 단숨에 편지상자에 불을 붙였다.

     

    [돌발이벤트 <판도라의 상자> 완료]

    [당신은 미지의 위험이 기다리는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위해 파국을 외면한 당신. 오늘 외면한 위기가 언젠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막연히 떠오르고 사라집니다.]

    [이 선택에는 보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열어보지 못한 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상태이상 <불면증>에 걸립니다.]

     

    조나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즈앙도, 2대모자씨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봐요?”

    “그 흐름에서라면 틀림없이 열어볼 거라고 생각했어.”

    “아이 참. 즈앙도 그렇게 눈치가 없으면 어떡해?”

     

    뉴비들이 이렇게 눈이 어두우니 고인물의 입장에서 훈계를 안할 수가 없다.

     

    “잘 들어. 연계퀘스트가 있는데 퀘스트를 안 받고 보상만 챙겨가는 선택지와 연계퀘스트를 받는 대신 페널티를 감수하는 선택지가 있으면 무조건 후자를 골라야만 해!”

    “퀘스트? 선택지?”

    “당장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눈앞의 달콤한 과실을 취하는 우를 범하면 훗날에 후회하게 되리라는 옛 성인들의 고사를 말하고 계시리라 추정됩니다.”

    “역시 조나는 똑똑해!”

     

    내 말이 바로 그거다.

    강아지의 “참아!” 실험과 비슷하다.

    당장 사료 한 알을 못 참고 홀랑 먹었는데 주인이 등 뒤에 사료 한 주먹을 감추고 있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때야말로 밤에도 서러워서 잠이 안 오고 개장에서 낑낑 울겠지.

    연계퀘스트에도 그런 덫이 숨어있다.

    작은 이득에 눈이 멀면 큰 손실을 입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된다.

    신규 스크립트야 군침이 돌지만 그거 참으면 얻을 보상이 더 크잖아?

    게다가 어느 쪽이건 새로운 경험이기는 고인물인 내게는 마찬가지다.

    2대모자씨가 편지 중 일부는 자기가 썼다는 고백까지 했으니 남 몰래 편지의 내용을 슬쩍 엿들을 수 있어서 사실상 불면증 페널티도 해제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유리한 여건 속에서 굳이 편지상자를 열어보는 우를 범할 이유가 없지!

     

    “괜찮겠어? 재단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괜찮아. 파파가 할 짓이야 대충 예상이 가니깐!”

     

    여태껏 연결점이 없는 게임상의 이벤트라 생각했던 것들의 배후에 모두 재단의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얼추 예상이 간다.

    어떤 이벤트가 재단의 이벤트로 엮이며 아카데미 생활을 위협할 수 있을지.

     

    ‘교수를 괴롭힐 방법은 강의를 듣는 학생이 강의를 듣지 못하게 괴롭히는 것!’

     

    재단의 중급닌자, 아니 중급스파이들이 암약하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재단의 중급장학생 스파이들을 색출해내는 것!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게임에서처럼 은근슬쩍 하나씩 사고사로 처리할까?

    원래도 2학년 2학기부터 외부세력의 스파이 교관이나 범죄조직의 스파이 선배들을 색출해서 제거하는 컨텐츠가 있긴 했으니 아주 생소한 일도 아니고.

    머 당장 고민할 일은 아닌가!

     

    “아무튼 이걸로 조나는 만족했죠?”

    “아가씨는… 그걸로 괜찮으십니까?”

    “머가요?”

    “당신을 모시는 집사의 지난 과거와 결함, 그런 것들을 모두 어둠에 묻더라도 제게 일말의 의혹도 지니지 않고 지금까지의 관계를 이어가실 수 있습니까?”

     

    일말의 의혹도 없을 것 같은데. 당장 머리 위에 조나의 과거를 아는 2대 모자씨가 있으니까?

    만일 모자씨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더라도 설정집 따위에 화를 낼 내가 아니다.

     

    “아가씨들 중에 사귀던 전 여친이 있어요?”

    “아가씨들과 불순이성교제를 하지는 않습니다.”

    “아가씨들이 중량 치는데 옆에서 도와준다면서 꼬리친 적 있어요?”

    “아가씨들의 피와 살이 되어줄 소중한 훈련으로 장난치지 않습니다.”

    “그럼 됐네요! 아무 문제없어요.”

    “그래도 아가씨에게 괜한 짐을 얹은 것 같아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집사로서는 실격일지도…”

    “그런 얼굴 하지 마요!”

     

    집사가 그런 쏟아지는 비에 과제가 젖어버려 절망한 티토소가스러운 표정을 짓다니.

    괜히 내가 악덕 고용주라도 된 것 같잖아.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 해병> 시절의 집사가 이상하게도 혼자 저런 울적한 얼굴로 있었던지라 특히나 더 양심이 찔린다.

    가끔 직접 캐기 귀찮은 재료를 캐오라고 시키거나 자본금으로 세계각지의 맛있는 음식을 사오라고 시키거나 강화에 쓸 강화재료를 제국의 눈을 피해 사재기하라고 시키기는 했지만 매번 봉급도 보너스까지 얹어서 잘 챙겨줬는데.

    그때 집사는 왜 그랬는지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다.

    조나는 그런 얼굴 시키지 않을 거야.

     

    “원래 유능한 캐릭터에게는 그렇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법이에요. 아이린만 해도 어렸을 때에는 미숙한 마법실력 때문에 빙결마법에 병사를 얼려 죽인 경험이 있는걸요?”

    “…”

    “그래도 성장하면 근사한 쿨뷰티미소녀가 되니까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넘길 수 있죠. 차가운 성격을 가지게 된 원인도 알게 되고요. 배경설정이라는 건 이렇게나 훌륭한 일인데 싫어할 리가 없잖아요?”

     

    즈앙의 가면 아래로 쏘아지는 시선이 굉장히 따갑다.

     

    “왱?”

    “하아. 뭐 됐어. 이젠 묻는 것도 바보 같아.”

     

    모처럼 어른스럽게 위로를 해줬는데 즈앙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

    조나 역시 수심이 더욱 깊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습니까… 아가씨의 격려의 말씀, 금과옥조처럼 이 몸에 새기겠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성심껏 모실 것을 다짐합니다.”

     

    조나가 굉장한 각오를 다진 얼굴로 말했다.

    의욕이 생긴 것 같아서 다행이다!

     

     

    * * *

     

     

    ‘비겁해.’

     

    자신이 직접 결정하라고 충고해줬더니 하룻밤 고민하고 부른 자리에서 본 꼴이 이 모양이다.

     

    “중요한 결정을 여자가 저지르도록 떠넘기다니, 비겁한 남자네.”

    “우우. 즈앙~ 조나를 나쁘게 말하지 마!”

    “오크노디 너도 문제야. 저런 나쁜남자한테 놀아나다니. 그래서는 장래가 걱정된다고?”

    “조나는 나쁜 남자가 아니야!”

    “네~ 네. 그러시겠지.”

     

    새침하게 돌아서는 즈앙.

    떠나려던 그녀를 조나가 불러 세웠다.

     

    “도비라는 이름의 실종된 학생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학생을 찾는다면 변방교수들의 연구실을 찾아가도록 하십시오.”

    “…하아. 정말 당신들 재단은 모르는 게 없네. 처음부터 다 알고도 모르는 체 시치미 뗐던 거야?”

     

    사람 머리 위에 올라선 것처럼 비대칭적인 정보력을 구사하는 오크노디가 누구에게 그 못된 버릇을 배웠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졌다.

     

    “오크노디.”

    “왱?”

    “모자는 나중에 가지고 놀고 잠깐 도와줘.”

    “음… 1시간 45분 동안만이라면!”

    “1시간 45분 뒤에는 뭘 하는데?”

    “쿨타임 돌아오는 기능훈련하기!”

    “또 숨기야?”

    “아니. 관찰!”

    “이상한 기능을 훈련하네. 갑자기 관찰은 왜?”

    “파파랑 놀면서 관찰이랑 안목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갔거든. 조금만 더 올리면 새로운 기능특전을 개방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이사장의 관찰력과 안목을 배운 오크노디인가…

    불길해도 이렇게 불길할 수가 없다.

    그래도 저 지뢰를 파헤치는 건 나중의 일.

    우선은 이 모든 사건의 계기였던 도비라는 녀석이 어느 연구실에 감금당해있는지 찾아 나설 시간이다.

     

    “응? 2대모자씨가 짐작이 가는 교수님이 있대!”

    “모자씨?”

    “2대모자씨는 재단에서 가져온 암흑적성평가모자에 깃든 두 번째 자아야! 1대모자씨는 벽에 감금했는데 보러 갈래? 잘 지내나 안부인사도 할 겸.”

    “안 궁금해.”

    “힝.”

    “그 암흑적성평가모자가 도비를 납치했으리라 추정되는 교수님은 어떻게 짐작하는데?”

     

    모자를 양손으로 붙잡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오크노디가 알았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위어드 교수님이 공부나 훈련은 해봤자 재능이 부족하고 끈기도 없어서 성취가 기대되지 않는 낙제예정의 하급생을 매년 이맘 때 랩실로 납치한대!”

    “…납치해서 뭘 시키는데? 그런 멍청한 학생이 교수가 요구하는 수준의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작년에는 실습에 필요한 정령을 깨우는 일을 했대.”

    “정령? 정령술사는 꽤 소질이 필요하잖아. 그건 재능이 좋은 학생 아니야?”

    “정령의 단잠을 깨운 사람은 정령한테 메차쿠챠 얻어맞는데 그거 대신 맞아줄 사람이 필요하대!”

    “…”

     

    샌드백 담당노예가 있는 랩실이라니, 위어드 교수의 연구실은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즈앙은 자신이 알고 있는 위어드 교수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위어드 교수님은 머리에 꽃을 달았어!

    -몸매가 굉장하시지…

    -여자들이 다 위어드 교수님처럼 입고 다녔으면 좋겠어. 자연친화적이고 좋잖아.

    -근데 필기는 시발.

    -하… 진짜 좋은데 좆같은 교수님…

    -위어드 교수님이 랩실에 들어올 1학년을 모집한다는데 가볼까? 거기선 필기 안할 거 아니야.

    -선배들이 절대 오지 말라던데.

    -왜?

    -돌 먹인대.

    -…

     

    위어드 교수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학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설렘으로 시작해서 괴로움으로 끝났다.

    그런 교수님의 연구실에 내 발로 찾아가야 하는가…

    도비를 향한 불쌍함보다 위어드 교수를 향한 꺼림칙함이 커지기 시작한 즈앙이 이걸 가야 하나 말아야하나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극한직업 랩실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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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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