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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2

       카우렐리아에서 유명한 하이엘프 가문 두 곳을 꼽는다면, 하나는 유피엘이 속한 피어바인 가문이고, 다른 하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특히 로스차일드 가문의 위세는 하늘을 찌른다. 정·재계, 연예계, 의료계 등등. 이들이 장악하지 못한 분야가 없었다.

       

       법조계도 마찬가지였다.

       

       현직 검찰총장, 그리고 그 휘하의 수많은 검찰들이 로스차일드 출신이다. 

       

       오늘 유피엘이 로스차일드 본가를 찾은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부탁이야. 너 말고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

       

       유피엘은 어느 여인 앞에서 머리를 푹 숙였다.

       

       여인의 이름은 ‘리케 로스차일드’. 일리야드 아카데미를 졸업한 유피엘의 동문이었다.

       

       단, 리케가 유피엘과 친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일리야드에 있었을 시절, 리케는 유피엘이 마나 고갈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트집 잡아 괴롭혔다.

       

       같은 하이엘프라서 눈치를 보며 괴롭히긴 했지만, 할 수 있는 짓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리케는 유피엘을 쏘아보다가 비웃음을 지었다.

       

       “도움? 무슨 도움?”

       

       그러자 유피엘은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 딴에는 자신이 부탁을 들어줄 줄 알았나 보지.

       

       어림도 없다.

       

       “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못 들어주겠는데? 아직 말단이라고는 해도 나는 검찰이야. 곧 있으면 승승장구할 몸이라고.”

       

       유피엘이 말한 부탁이란, 로스차일드의 힘을 사용하여 붙잡힌 시위 주모자들과 세실 르네이 총장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리케 혼자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가 검사이긴 해도 말단이라 힘이 없는데다가,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양심이 있으면 나한테 주문하지 마. 내 커리어 망치지 말고 꺼지란 말이야.”

       

       리케는 손을 내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리케. 넌 총장님이 불쌍하지도 않니?”

       

       유피엘이 되받아쳤다.

       

       “지금 나라가 이상해. 완전히 미쳐있다고. 총장님은 별다른 잘못도 안 하셨는데 잡혀가셨어.”

       “잘못을 안 하긴 뭘 안 해. 잘못했으니까 사법 처리를 받은 거 아냐. 아, 학창시절 하루 종일 마법 공부만 하던 샌님이라 잘 모르는 건가?”

       

       리케는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범죄자의 뜻에 찬동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범법자가 될 수 있어. 우리나라 형법이 그래. 이쪽 전공한 것도 아니면 얌전히 돌아가서 발이나 닦고 자라고. 너한테도 불똥 튀는 수가 있으니까.”

       

       물론 이 시점에서 리케도 살짝 뜨끔하긴 했다.

       

       법 공부를 하면서 배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학창시절 유피엘이나 레니냐에게 했던 짓이 엄연한 ‘폭력’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부정하고 살아왔다. 입 닦고 가만히만 있으면 평생 들킬 일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로스차일드’니까.

       

       이런 거대한 가문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도 법의 테두리 바깥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돌아가.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오지 마.”

       

       리케가 다시 한번 팔을 휘적거린다.

       

       물론 가란다고 곧바로 갈 유피엘이 아니었다.

       

       “법을 배웠으면 인권도 잘 알 거 아니야. 양심도 없어? 최소한 잣대는 하나만 가지고 살아야지!”

       

       리케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제아무리 피어바인 가문의 아가씨라고는 해도, 이곳은 로스차일드의 집 앞. 하인을 시켜 얼마든지 내쫓을 수 있었다.

       

       “이봐, 거기 누구 있…!”

       

       털썩.

       

       유피엘이 무릎을 꿇은 건 그때였다.

       

       ‘이 녀석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리케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유피엘이 거액의 사채라도 쓴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일의 전말을 들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그 행색이 비굴하기 짝이 없었기에 그리 느껴질 정도였다.

       

       이윽고 유피엘은 무릎을 땅에 닿게 하고 머리를 처박으며 간곡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발. 지금 매달릴 사람이 너밖에 없어. 나 이번에 국회의원 된 거 알지? 권력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입법부에도 찔러보고 행정부에도 찔러봤지만 다 묵살당했다고. 이젠 사법부밖에 없어. 그러니까 빚 한 번만 지게 해줘.”

       

       하이엘프는 엘프 중에서도 자존심이 산처럼 높다. 그런 이들이 다른 이에게 엎드리며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수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이다.

       

       리케는 지금 아주 진귀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후우.”

       

       단순히 웃겨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들어서 그런 것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깨에 바짝 들어갔던 힘이 쫙 빠지고 말았다.

       

       “…….”

       

       슬슬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리케는 손을 들어올렸다.

       

       

       **

       

       

       최종적으로 리케는 유피엘을 물러나게 했다.

       

       “나가.”

       

       얼핏 들으면 단정적인 어조였다.

       

       그러나 화법에는 언어적인 추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의 높낮이, 떨림, 맵시와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에 따라 그 사람의 정신상태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리케의 축객령은 망설임이 있었다.

       

       그렇다고 큰 것은 아니었다.

       

       살짝, 아주 살짝 흔들렸을 뿐이었다.

       

       어느 것 때문에 흔들렸는지 곧바로 분석이 들어갔다. 그리고 한동안 리케는 그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유피엘의 말대로 양심에 찔려서 그런 것인지, 그녀가 불쌍해 보였기에 그랬던 것인지,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무의식이 움직였던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원인이 있었던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아무렴 어때? 앞으로 유피엘을 만나지만 않으면 될 일이야. 그러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리케는 그리 생각하며 하룻밤을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리케, 마나 고갈증이 있는 나는 그렇다고 치자. 금안족들은 이제 전계정령의 가호를 받아 마력초 없이도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었어. 애당초 그들을 억압하고 있었던 건 같은 금안족이 아니라 마왕이었다고. 저들이 무슨 잘못이 있니? 내 말에 논리적으로 틀린 점이 있으면 제발 얘기해 달란 말이야.”

       

       리케의 마음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유피엘이 다시 찾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주제를 조금 바꾸어서, 금안족이 무시당해선 안 되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내, 내 앞에서 그럴 거면 법원에 가서 따지란 말이야!”

       

       리케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자충수였다.

       

       “너는 검사잖아.”

       

       유피엘의 그 한마디가 리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따지고 보면 유피엘의 말에는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미디어에서 알음알음 보도하는 대로 금안족은 자유롭게 마도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금안족은 마법을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박해받았다. 마법을 못 다루는 종족은 여신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종족이고, 따라서 실패작 내지는 악귀와도 다름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어. 쟤네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아버렸지. 그래서 지금 정부가 뭔 짓을 하는 줄 알아? 지금 저기서 시위하는 금안족이 마왕군 잔당이래, 잔당! 쟤네 숫자가 적으니까 정치적으로 표팔이 하려는 거 안 보여?”

       

       혐오를 이용한 위정자의 표 모으기. 그 희생자가 소수 종족인 금안족이 되었다. 저 5만 명 정도만 박해하고, 자별하고, 억압한다면 현 정권은 앞으로도 많은 지지를 받을 테니까.

       

       다만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저들을 짓밟아야만 하는 이유 말이다. 핵심을 파고든 유피엘은 그 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

       

       이쯤 되니 리케는 할 말이 없어졌다.

       

       단지.

       

       “내가 두 번 다시 여기 나타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뒤로는 어제와 똑같았다. 자기 할 말을 마친 유피엘은 리케에게 넙죽 엎으려 애원하다가 리케가 단호하게 대처하자 포기하고 떠났다. 

       

       물론 포기했다는 것이 오늘 포기했다는 뜻이지, 내일부터 안 오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젠장.”

       

       그런 생각을 한 뒤로 며칠이 흘렀을까?

       

       거의 2주째 유피엘을 물리친 리케는 슬슬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러지?”

       

       리케는 쌉싸름한 미소를 흘리며 씻고 나왔다. 최근에 맡고 있는 수사를 간단하게 정리한 뒤 자리를 잡고 쉬었다.

       

       문득 TV를 틀자 요 며칠 사이에 보던 광경이 튀어나왔다.

       

       [남부 지역 플로반스에서 벌어진 봉기가 진압에 실패했습니다. 닷새 전, 정부는 300명의 군용 마도사를 남부 지역에 추가 투입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저 반란군 새끼들.”

       

       리케는 혀를 쯧쯧 차댔다.

       

       그러나 이전까지와는 달리 그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지 않았다.

       

       리케는 계속 화면을 쳐다봤다.

       

       금안족 하나가 마수가 아니라고 부르짖다가 봉과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다. 그 금안족이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한 다른 금안족이 경찰의 머리를 깨부순다. 또 이에 분노한 동료 경찰이 그 금안족을 쳐부순다.

       

       폭력과 폭력이 소용돌이처럼 맞부딪히고, 유혈이 낭자하게 터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다.

       

       단, 화면에선 경찰이 다치고 죽는 장면만 보여주는 중이었다. 금안족이 피해를 보는 장면은 전부 잘라내거나, 짙게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머지않아 리케는 이 찝찝한 기분이 자신이 지닌 어느 지식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헌법.’

       

       리케는 책장에서 헌법 전문이 적힌 책을 꺼냈다.

       

       [전문(前文)]

       

       [우리 카우렐리아 민주공화국은 민중의 의지를 뿌리 삼아 일어난 국가이므로, 자유 & 평등 & 복지의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하며, 이를 온 국민에게 보장함으로써 본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이어나간다.]

       

       자유, 평등, 복지.

       

       리케는 TV 화면을 다시 살폈다.

       

       – 자유롭게 입출국할 권리를 달라.

       

       금안족은 자유를 부르짖고 있었다.

       

       – 다른 종족과 차별 없이 대해달라.

       

       금안족은 평등을 부르짖고 있었다.

       

       – 우린 마수가 아니라 눈이 노란 인간, 엘프로서 당신들과 같은 후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금안족은 복지를 부르짖고 있었다.

       

       리케는 헌법 책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유행성 독감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안 쉬어졌다. 오한이라도 온 것처럼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내,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이전까진 합격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특수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사가 되고, 사회적인 명성과 물질적인 풍요를 대대손손 가져가고 싶었다.

       

       그것이 로스차일드의, 명족의 방식이었다.

       

       때문에 법문을 읽고 외우는 것에만 급급했다. 본질을 보지 못했다. 정작 그 뜻을 헤아리려 하거나 사회 문제에 결부하려 했었던 적은 손에 꼽았다.

       

       검사가 되어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리케 자신을 그동안 소시오패스처럼 만들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괴롭혔던 애들이 전부 자신보다 공부 잘하고 학점 잘 받던 녀석들뿐이었다. 처음 1년 정도는 레니냐가 1등이었고, 레니냐가 떠난 이후로는 유피엘이 늘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나, 나는.”

       

       리케는 파들거리는 손으로 헌법을 주웠다. 책을 펼치고 전문부터 시작해서 모든 문항을 하나씩 훑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곰곰이 읽을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그동안 암기했던 것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새로운 무언가가 밀물처럼 파도쳐 들어왔다.

       

       아무리 빠르게 읽고 이해하며 넘어가려 해도 쉽지 않았다. 한 시간에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모든 국민은 적법한 절차가 아니고서는 처벌, 보안처분, 압수수색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받는다. 모든 국민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조항을 병적으로 읽어나갔다. 갑자기 왜 자신이 이러는지는 스스로도 모르겠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명료했다.

       

       지금 자신은 두려웠다. 

       

       그렇게 한 줄씩 읽어나가던 리케의 눈동자가 한곳에 머물렀다.

       

       [모든 국민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리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TV를 향한다.

       

       금안족은 여전히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sorka 님, 두줄 기념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집필하려고 컴퓨터를 키려 했는데 얘가 안 켜지는 거 있죠? 파워 서플라이? 같은 게 나간 모양이던데… 어쩔 수 없이 다른 기기에서 작업했습니다. 여러모로 힘든 싸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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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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