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3

       클레어와 앨리스의 통장을 만들어 줄 때, 우리가 번 돈을 나누어 넣어주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약간의 돈을 더 넣어주었다.

        

       아주 많은 금액은 아니다. 내가 넣어준 금액과, 정산받을 금액을 3분의 1로 나눈 금액을 함께 넣었다.

        

       전기세나 식자재 비용은 내가 번 돈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래도 회사 다닐 때 나름대로 열심히 모아둔 적금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다.

        

       아무튼, ‘아주 많다’라고 할 정도의 금액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사볼 정도’의 금액이기도 했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지는 못해도 꽤 괜찮은 외투를 하나 사거나, 이름 있는 브랜드의 운동화나 작은 액세서리, 혹은 블루투스 이어폰 같은 것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니 나는 두 사람이 그 돈을 어떻게 쓸지 궁금했다.

        

       놀러 나갔을 때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데 쓸 수도 있고, 길 가다가 액세서리 판매점에 들러 귀걸이나 반지, 목걸이를 살 수도 있고, 아니면 화장품 같은 것을 살 수도 있지만— 사실 그중 먹을 것을 빼면, 이 나라의 문화 가 아제르나 제국과 다르다는 특성상 이 두 사람에게는 완전히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나라 화장품이 이 두 사람한테 잘 맞을까? 나는 피부 색조니 뭐니 하는 것은 잘 모르지만,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의 피부 색조에는 큰 차이가 있다던데. 비슷한 색깔로 보여도 멜라닌 색소가 부족하다던가 뭐라던가.

        

       ……뭐, 애초에 화장 같은 것을 해본 경력이 있다면 나보다는 이 두 사람에게 더 많을 테니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레이스의 흑백합 소리를 들었을 때조차 화장을 따로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지 하루 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내가 체크카드를 준 바로 다음 날.

        

       “나, 가고 싶은 곳이 생겼어.”

        

       앨리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서 나는 조금 놀랐다.

        

       그런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은 클레어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송 시간 전에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든 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휴방 공지를 한 적은 없으니까.

        

       진짜로 몸이 아파서 하지 못하는 일이 아니라면, 혹은 갑자기 정말로 급한 일이 생겨서 도저히 방송을 켤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휴재 공지는 전날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각 한번 한 적 없는 게 아깝잖아.

        

       원래 이런 건 한 번 약속이 깨지면 쌓아놓은 신뢰도 한 번에 깨지는 법이다.

        

       “그건 알고 있어.”

        

       그리고 앨리스도 그 사실을 무시할 성격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쪽으로는 나보다 훨씬 깐깐했으니까.

        

       지난번에 공포게임을 하느라 새벽 늦게 잠들었을 때를 제외하면, 앨리스와 클레어는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깨웠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사준 이후로 두 사람의 스마트폰에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알람이 울리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그나마 클레어가 의뢰를 수행하던 때처럼 일어나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이 주변 지리를 익힌 이후로는 아침에 다 같이 나가 바람도 쐬고, 가벼운 운동도 하고 들어온다. 가끔은 그때처럼 여의도 공원에 가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고.

        

       아무튼 저녁 먹을 시간까지만 오면 될 일이니까.

        

       “좋습니다. 그럼 준비하고 나가도록 할까요.”

        

       씻는 거야 아침에 다 씻어 놓았으니, 옷만 입으면 된다.

        

       어째 앨리스의 표정이 조금 긴장한 표정이라서 나도 덩달아 긴장되기는 했지만.

        

       뭐, 앨리스가 우릴 이상한 데로 데려가기야 하겠어.

        

       *

        

       이상한 곳은 아니었다.

        

       아니지, 뭐랄까. 특정한 사람들한테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요즘이야 종종 데이트하는 커플들도 보이는 곳이긴 했지만.

        

       아무튼 요즘 같은 시대에 이상한 곳이라고 하면 여러모로 욕먹기 좋은 이곳은, 국제전자상가, 통칭 국전이었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거의 한 시간 거리라 서울 사람의 거리 감각으로는 굉장히 먼 곳이기도 했다.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고.

        

       “혹시 이런 쪽의 취미에 관심이 있었습니까?”

        

       그랬다면 미리 말하지.

        

       이렇게 보여도 아직 가슴 깊은 곳에 타오르는 덕심의 불꽃이 있었다.

        

       이쪽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귀찮아서 신작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한 번 찾아서 보기 시작한다면 몇 작품이고 계속 볼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원래라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할 나이였다가, 이렇게 실비아 팬그리폰이 되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고쳐지기도 했고.

        

       “……아직은 아니거든.”

        

       “아직은 아니지만, 굳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언니, 여기가 어딘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게임 패키지들이나, 우리 집에 있는 작은 앨리스를 구매할 수 있는 곳입니다.”

        

       물론 나는 굳이 여기 와서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기분 내러 나왔다가 한 번 와보자 싶어서 와서 덤핑 된 게임 몇 개 주워가는 수준이었으니까.

        

       현금으로 사면 깎아주는 곳이 있다지만 사실 인터넷으로 사고 포인트 적립 받는 쪽이 더 낫기도 했고.

        

       그래도 직접 보고 직접 구매한다는 메리트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나는 오타쿠였으니까.

        

       “오.”

        

       나의 설명을 들은 클레어는 눈을 반짝였지만, 앨리스는 정색했다.

        

       “그러니까 아니래도.”

        

       하지만 이미 앨리스를 데리고 동인 행사에 나가는 상상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말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셋은 거기 참석하면 무조건 코스프레 라인으로 가야 하나? 따로 등록비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생긴 게 이렇다 보니, 그냥 구경하러 왔다고 하면 안 믿어줄 것 같다. 행사도 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경향이 강한 곳이고.

        

       뭐, 그거야 조금 먼 이야기고.

        

       “여기 와 본 적 있지?”

        

       앨리스가 그렇게 물어보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안내 좀 해줄 수 있을까? 9층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앨리스가 조금 쑥스럽게 말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동료가 늘어나는 건 환영이지.

        

       아직 오전 시간이다. 구경하고 나오는 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오후에는 홍대 입구라도 가볼까. 아니면 용산이라던가.

        

       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하며 두 사람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앨리스와 클레어는 9층에 들어서자마자 조금 충격받은 표정을 했다.

        

       “어…….”

        

       “그게, 그러니까…….”

        

       내 방에서 피규어 하나만 볼 때는 몰랐겠지만, 세상에는 그 피규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피규어도 엄청나게 많다.

        

       가령—

        

       “켁.”

        

       클레어가 목이 졸린 것 같은 소리를 내서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내가 예전에 사지 못했던 그 클레어 피규어가 있었다.

        

       피규어 자체에 가격표가 붙어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중고 피규어인 모양이다.

        

       클레어의 그 표정을 보고 앨리스는 묘하게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앞장서서 그 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어, 잠깐—”

        

       클레어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했지만, 그렇다고 따라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가의 가게가 그렇듯 내부는 꽤 비좁다. 그래도 이곳은 그런 가게 중에서는 규모가 꽤 큰 곳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세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가자 이미 안에 들어있던 사람들과 함께 꽉 차버린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힉.”

        

       그 클레어가 그런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우리 세 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들어간 앨리스도 조금 기겁한 표정으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겠지.

        

       우리 세 사람은 누가 봐도 코스프레한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서브컬쳐 전체로 보자면 아제르나 전기가 차지하는 부분은 그렇게 크지 않다. 나름대로 인기를 얻은 게임 시리즈지만 그렇다고 일본에서 사회적인 현상 수준으로 취급되었던 다른 작품들이나, 동인 행사에서 엄청나게 큰 지분을 차지했던 작품이 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 판매로도 유명한 곳.

        

       안 그래도 여러모로 눈에 띄는 외모인데, 우리 캐릭터를 알아보았다면 이쪽을 보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세 사람이 모두 그 본인이라는 게 웃기네.

        

       내가 앨리스의 등을 살짝 밀어서 앞으로 보내자, 그제야 앨리스는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아, 어…… 어떤 일로 오셨나요?”

        

       계산대에 앉아있던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앨리스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손가락으로 옆에 있던 나를 척 가리켰다.

        

       ……응?

        

       혹시 나더러 대신 말하라고 하는 건가?

        

       하지만 참 기이하게도, 그 아저씨는 곧장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커다란 상자 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아?”

        

       큼직한 피규어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피규어 상자에 그려져 있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장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깐 낭패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외국인으로 보였기 때문이겠지.

        

       “네, 맞아요.”

        

       하지만 앨리스가 침착하게 대답하다 크게 안도하는 표정이 되었다.

        

       피규어 가격은…… 십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내가 앨리스 통장에 넣어준 돈으로는 충분히 사고 남는 돈이었다.

        

       그리고, 나는 계산하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그제야 앨리스가 여기 온 이유를 깨달았다.

        

       ……이거 설마, 복수하려 든 건가?

        

       내가 자기 피규어를 사놓은 것 때문에?

        

       아니, 설마 방송에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난번의 이야기를 이어서 조금만 더 해드리자면, 사실 저는 피자보다는 타코나 부리토를 좋아합니다. 피자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만 모아둔 느낌이라 좋아요.

    퀘사디아도 타코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역시 제일 좋아하는 건 부리토입니다. 그 안에 밥이 들어간다는 게 정말 좋아요.

    파인애플 볶음밥은 제가 먹어본 적이 없어서 이렇다저렇다 말씀은 못드리겠습니다만, 저는 파인애플을 음식에 넣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피자가 제 앞에 있으면 웬만한 맛은 먹어요. 다만 제일 자주 사먹는 피자가 포테이토 피자라서 파인애플 올라간 피자를 잘 먹지 않게 될 뿐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기에는 포테이토 피자도 모욕적이지 않겠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아메리카노도 엄청 자주 마시네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이탈리아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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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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