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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3

        

         본격적인 메트로폴리스 번화가로 들어가는 대로 입구 부근, 꽤 준수하고 다양한 계층에 분포하는 유동 인구를 보유한 장소에 위치한 페일 로드 바는 반쯤 거친 용병들의 집합소 겸 알선소로 쓰이는 가게치고는 상당히 썩 괜찮은.

         

         …아니지, 이거 큰 실례를. 일반적인 술집과 비교해도 설비와 분위기가 엄청 좋은 편이다.

         

         내가 뭐 음주가무를 자주 즐긴다고, 오히려 시대상에 비하면 굉장히 금욕적인 편이라 그런 걸 재단할 경험이나 자격 따위를 제대로 갖춘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 동네에서 이런 21세기 느낌나는 인테리어의 가게를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 정도는   그 고풍스러운 레벨이 꽤 입증되었다 여겨도 좋을 것이다.

         

         무사히 노후 자금까지 한몫 챙겨서 사지 멀쩡하게 해결사 업을 은퇴하는 걸로도 모자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까지 꾸리는데 성공하신 우리 노련한 운영자의 철학도 있지.

         

         눈이 딱 피로하지 않게 조명 은은하고, 음악도 충분히 감미롭고.

         각종 다양한 요구에 맞출 수 있도록 준비된 음료 재고가 많아 주문이 편하고, 큐볼 수준의 껄떡이가 아닌 이상 다른 손님에게 참견 걸치는 인간 비중도 낮고.

         

         이제 몇 없는 불편 요소라면 너무 노골적으로 상스러운 성행위나, 여자나 남자 끼고 놀다가 그대로 소파에서 뒹굴라 치면 분노한 주인에게 쫓겨난다는 점 등이 있겠으나.

         

         그건 곧 남사스러운 꼴을 덜 봐도 된다는 소리나 다름없으니 나에겐 오히려 이득! 음.

         

         고로 남은 단점 중 하나라면, 별실을 제외하고는 공간이 넓게 탁 트여 있는 탓에 떠드는 소리가 무분별하게 새어 나갈 수 있어서 비밀 이야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물론 이것마저 신경 써서 도청 방지책을 베풀거나, 흔히들 쓰는 간단한 방식으로 상호 간에 사이버웨어 통신을 통해 은밀하게 라인을 구축하면 그만인 노릇. 여차하면 따로 프라이빗 메신저 프로그램을 쓰는 방법도 있다.

         

         중추 신경계, 혹은 아예 머릿속에 작은 스마트 컴퓨터를 임플란트로 박고 다니는 시대에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책이 한두 개는 아니지 뭐.

         

         하여간 그런 가게의 준수한 무드에 어울리지 않는 작당모의를 하는 사람이 카운터 석에 무려 둘.

         

         한 명은 그… 놀랍게도 바 사장님 본인이오, 당연히 나머지 하나는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찾고 있는 내가 되시겠다.

         

         “킴……이라. 아무리 평생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자네의 부탁이라 해도, 사적인 의뢰나 비밀 유지 서약과 관련된 부분을 함부로 ‘크게 말하기’ 곤란하다는 건 알고 하는 얘기겠지 그건?”

         

         식기구와 테이블을 정리하는 척, 곁눈질로 주변을 쓱 둘러본 슈나이더 씨가 무심한 태도를 가장하고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가장한 대답을 돌려주셨다.

         

         와중에 ‘크게 말한다.’라는 부분에만 상당히 묘한 악센트를 주신 걸로 보건대, 이쪽에서 바란다면 나중에 살짝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몰래 귀띔해줄 수 있다는 여지를 은근히 남겨 주신 것만 같아서 꽤 감사하나.

         

         그, 안타깝게도 정작 제가 궁금한 건 용병업과 의뢰에 얽힌 심각한 정보가 아니라 고 깜찍한 인간의 성격과 사연, 피를 못 속이고 점심 메뉴로 돈가스와 제육을 찾아다닌 전적이 있는지 없는지 같은 오히려 사사로운 발자취입니다만.

         

         “에이, 그런 게 필요하면 어디 기업 데이터 센터를 기웃거리고 말지. 설마 제가 아저씨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무리한 얘기를 꺼냈겠어요? 그냥 주변 평판이나 소문 비스무리한 게 궁금해서 그랬죠. 전 자택 근무가 기본이라, 생각하시는 것보다 길거리 소문에 엄청 어둡답니다?”

         

         “뭐,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꽤나 안심되는군.”

         

         그런 암묵적 동의를 마지막으로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곧이어 서로가 서로에게 씨익.

         

         어딘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음흉한 웃음을 지어 보인 우리는 더 망설일 것도 없겠다 빙빙 둘러서 돌아갈 것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이름을 듣자마자 그렇게 바로 말꼬리를 흐리신 건 짐작가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은거죠? 어디 애태우지 말고 시원하게 말씀해주세요~ 이래 봬도 저한텐 그래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 확답하긴 어렵지만, 악용은…… 가급적 최소한으로만 할 테니까.”

         

         “알아서 적당히 써먹겠다는 건 다행이지만, 거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 차라리 빈말로라도 해코지는 없을 거라고 약속하지 그랬나. ……내 입장을 봐서라도 잠자리가 너무 뒤숭숭하지만 않게 해주게.”

         

         “네네네, 알았으니까 빨리요…!”

         

         ‘제로? 거기 있지? 진짜 혹시 모르니까 잠깐 무슨 핑계를 지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마사나리 좀 귀찮게 해 줄래? 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슈나이더 씨가 말하는 거 녹음도 다 해주고.’

         

         – 스토커 교란 프로토콜, 기꺼이 실행하겠습니다. –

         

         한껏 들뜬 상태로 슈나이더 씨를 재촉하면서도 동시에 제로에게 내 언행을 상시로 엿듣고 있는.

         

         일자형 카운터 석의 저어어어 멀리 반대편 끄트머리에 앉아 ‘무탄산 무설탕 기포 콜라’라는 메가 코프 식단에는 포함된 전적이 죽어도 없을 것 같은 의문의 음료를 노려보고 있는 전속 경호원 씨의 견제와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이족보행형 녹음기 역할도 잊지 않고 얼른 부탁했다.

         

         쇼우 녀석에게 무슨 명령을 하달 받았는지도 몰라도 이제 스토커라기보다는 전속 경호원 역할에 충실한만큼 어느 정도의 신뢰와 친분 관계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는 게 마사나리와 나의 현주소였지만….

         

         당장 저번에 엘리시움 소속 현직 헤드 헌터로 활약하는 마르티나조차 그녀를 보면 기겁하는 걸 보니까, 나와 마주친 사람들을 경호를 명목으로 따로 뒤에서 은근히 막 ‘관리’하는 모양인데.

         

         다른 부탁은 다 들어줘도 내 대인관계를 염탐하는 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고집이 남아있음을 선명히 느꼈으니까 이런 건 또 알아서 눈치껏 조심해야지.

         

         단순 협박으로만 무사히 끝난다면 모르겠으나, 괜히 뭔가 아는 게 있을 수도 있는 킴이 기업 잠복 요원 냄새를 풀풀 풍기는 마사나리와 마주쳤다가 괜히 과잉반응해서 시너지 대폭발이라도 일으키면 어떡해?

         

         기껏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자, 그 알 수 없는 사연과 속내를 바닥까지 싹싹 파헤쳐도 모자랄 나만의 연구 대상이.

         ‘자고 일어났더니 그새 에나마에 끌려갔는데요?’ 같은 개 막장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존재하는 건, 단순한 농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절대로 회피해야 할 재앙이나 마찬가지지.

         

         어? 이게 쓸데없고 허황된 과대 해석이 아니라, 내가 아는 한 유일무이하게 에나마 연구소에 다녀갔던 21세기 한국인은 아예 몸이 물리적으로 갈아 끼워졌다니까 글쎄??

         

         존나 문자 그대로 비가역적 신체 대격변을 경험하게 된다고요! 세포 재생 기술을 토대로 재창조되면서 외부 인자와 뒤섞인다는 게 씨바 마냥 유쾌할 리가 없잖아!

         

         뿅 하고 난데없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주 끔찍하고 차가운 중간 과정… 혹은 과정이라 부르기도 민망하게 기계적이며 철저한 개조 공정이 기다리고 있대도!

         

         ……왜 새삼스레, 오해하거나 착각할 일말의 여지도 없는 사건을 남의 일처럼 풀어서 설명하려 드냐고?

         

         그야 아직도 삭제 데이터까지 추출해가며 장막을 들추고 본 그 불편한 진실을 떠올리면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리니까!

         

         “으으으…! 술기운도 다 날아간 마당이라 안 좋은 기억이 자꾸.”

         

         이럴까 봐 애태우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드렸는데, 너무 포괄적인 질문인지라 어떻게 서론을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걸까. 슈나이더 씨가 너무 뜸을 오래 들이시네.

         

         원망까지는 전혀 아니고 미묘한 초조함 정도? 하여간 그런 감정을 진득하게 담아, 굳이 예쁘고 알아듣기 쉽게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알고 있는 썰을 좀 풀어달라며 텅 빈 칵테일 잔 끄트머리를 입술로 살짝 깨문 채 슈나이더 씨와 아이컨택을 계속 했는데.

         

         뭔가… 뭔가 오가던 대화의 순서가 똑바로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똑같이 이쪽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엉뚱한 표정이. ……예?

         

         “헌데, 갑자기 그런 섭섭한 시선을 보내와도 곤란하네만. 적어도 자네가 어느 킴을 얘기하는 건지는 말을 해줘야 나도 내용을 정리해서 입을 열던가 하지 않겠나?”

         

         “……아니, 인맥도 겁나 넓으시지. 알고 계신 킴이 여럿이에요? 아저씨의 개인적인 옛날 용병 인맥까지 들춰내려던 게 아니라, 전 그냥 최근 애송이 용병 하나를 찾던 건데.”

         

         “그렇게 뭉뚱그려 말한다 한들, 당장 여기 들락날락하며 일감 찾는 인간 중에만 킴이 서넛은 족히 된다네. 계획 배양 도중 입양 파기나 집단 고아 같은 일이 생기면 공무원 놈들이 알아먹기 쉽게 집단으로 같은 이름을 붙여서 기수를 관리하는 통에, ‘제임스’나 ‘톰’처럼 흔한 이름을 크게 부르기라도 단체로 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곤 하지.”

         

         “뭐라고요.”

         

         응, 아무래도 킴이 센스있는 가명 겸 별명이라 칭찬했던 건 취소해야겠다.

         

         잘 생각해보면 예전에 뭐 고아로 자란 다음, 별도로 후원자를 얻어서 겨우 해커 생업에 투신했다던 켄도 일본계 동양인이라는 좁은 분류군에서 상당히 흔한. 한국으로 치면 이제 철수 같은 이름이었구나 참.

         

         나무를 숨기려면 숲 속에 숨기랬다고. 귀찮게시리, 킴 이 자식이 흔해 빠진 명칭으로 벌써 정보 수집에 이런 혼선을 초래해?

         

         버릇없게. 누가 초장부터 이런 꼼수 아닌 꼼수 같은 걸 부리랬냐? 어?! 콱씨.

         

         여기까지 치밀하게 고려한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보나마나 앞으로 물어보고 다닐 때마다 어느 킴을 찾는 거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게 생긴 수고로운 광경이 이미 뻔히 보이잖아.

         

         슈나이더 씨야 협조할 의지가 만만한 데다가 친분이 두터운 지인이니 아무 문제없다 쳐도.

         

         다른 꿍꿍이 가득한 놈팽이들에게 말이 길어져서 꼬투리 잡히는 것도 싫고, 공연히 내가 숙이고 들어간다는 티를 팍팍 내서 협상 빌미를 쥐어 주는 건 더더욱 피하고 싶다.

         

         어… 사람 찾기 비스무리한 일을 하는 시점에서 아쉬운 입장이 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기야 하겠지만.

         

         “더 자세하게 아는 건 없나? 사람을 수소문하게 된 연유나 계기 정도는 짚어줄 수 있어야 나도 범위를 좁힐 수 있….”

         

         “현 스틸볼 용병단, 큐볼 패거리 소속. 바깥 공기를 그대로 들이마시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요하게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다니고. 키는 평균보다 약간 낮은 아시안계 어조의 젊은 남자, 정확히는 171.2 센티미터에 다소 평범한 체격. 드물게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듯 상당히 부유해 보이는 기반 장구류,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할렘 언저리에 거주지를 가진 채 도시 안으로 꾸준히 출퇴근함. 네오 헤이븐 현지 기록은 미미하나 최근 왕성한 활동으로 경력을 쌓고 있음.”

         

         “…아, 그건 확실히. 딱 하나밖에 없겠군.”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서는, 잠깐의 막힘도 없이 두두두 알고 있는 내역을 줄줄이 읊는 나를 향해 아저씨가 이미 집에 놓인 포크와 나이프 개수까지 조사한 것 같은데 뭘 더 알아내려고 그러냐는 듯한 질린 기색을 내비치셨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다른 도리가 없다.

         

         무언가를 공부하고 학습한다는 건 그만큼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

         이미 짊어진 게 많아도 너무 많아서 탈인데, 나라고 여기서 더 머리와 가슴 한 켠에 꾸역꾸역 이것들을 우겨 넣는 걸 즐기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이런 걸 두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시정이라 하던가…?

         

         미안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 모든 파편을 종합하여 잡아채려는 건 단순 지푸라기나 뜬구름이 아니라 킴의 실체이자 본성이다. 그 외에 부수적인 정보들은 참고 자료에 불과할 뿐이고.

         

         “아직 아무런 데이터가 없어서 미상인 부분이 남아있기는 한데… 다른 건 다 됐으니까, 부디 대범한 이 남자의 평판을. 그리고 온갖 사람을 겪어본 슈나이더 씨가 느낀 주관적인 평가를 들려주시면 그걸로 족해요.”

         

         “뭐, 이름만 뭉뚱그려 알아서 물어본 게 아니라 찾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면 그냥 알아서 계속 조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아무래도 세상이 넓어서 그런지, 전자 기록을 싹싹 털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귀신 같은 인간도 있는 법이더라구요. 단순 전자 데이터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

         

         뚜렷이, 확실하게 잘라 단언한 태도에 피치 못할 사연이나 벌써 응어리가 져버린 집념을 느꼈는지 슈나이더 씨도 꽤 중요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신 것 같았다.

         

         자, 옛말에 네가 진정 누구인지. 올바르게 살아왔는지를 결정하는 건 의외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냉정한 타인의 시각이란 격언이 있었지 아마?

         

         그간의 행실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저울에 올려놓을 재료로는 딱 좋네, 사람의 호의에 무응답으로 일관한 이 뻔뻔한 먹튀범 녀석.

         

         이걸 기점으로 나와 킴의 여러 주변인들을 한 명씩 골라 대질 심문을 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기필코 너의 영혼까지 들여다 보고야 말겠다.

         

         나를 욕심 때문에라도, 앞으로 너와 엮일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각오와 함께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난 손깍지를 꽉 끼고 탁자에 올려놓은 채 자세를 바로 하여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끝마쳤다.

         

         

         

         “……흐음, 그러고 보니 헬레나 양이 자네가 사적으로 만나려는 남자나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알려달라 부탁했었는데. 분명 새치기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라 했었나?”

         

         “거 남의 소문을 캐물으려 한 주제에 할 말이 아니란 건 아는데. 제발, 그러지 말아주실래요…? 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이, 당신. 번호표부터 뽑아!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겨주신 댓글에 답글은 고사하고, 최근 오타 지적도 몰아서 수정한다 해 놓고 자꾸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 굉장히 부끄럽지만… 눌러주신 추천과 댓글 모두 남김없이 체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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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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