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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3

    <373 – 교수님의 연구실>

     

    교수의 연구실.

    무언가 전문적인 기자재들이 놓인 실험대에서 실험이 있을 것 같고 부산히 움직이는 조교들과 교관들이 즐비하리라 생각했던 즈앙.

    그녀의 예상과 달리 위어드 교수의 연구실은 거대한 식물원이었다.

     

    “식물동아리 그거 왜 있어? 여기가 식물원인데. 위어드 교수님 조교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동아리는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조교는 납치당해서 하는 걸지도 모르니까?”

    “동아리도 선배들한테 납치당하잖아. 계약서에 의거해서 강제로 꼬박꼬박 일하거나 포인트로 위약금을 물어줘야 하고.”

     

    즈앙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오크노디는 무언가 답을 아는 것처럼 보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걸 말해줘도 되나 고민하는 얼굴로 어정쩡한 웃음만 지었다.

     

    “됐어. 그렇게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래서 위어드 교수님은 이 식물원의 어디에 있을까?”

    “저어어어기!”

     

    들어왔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천장이 100m도 넘게 높아진 식물원의 중심에 아주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마치 돌을 깎아 만든 원형 석조계단처럼 나무 표면에 돋아난 나무계단을 따라 저만치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옹이구멍.

    그곳에서 짹짹 하는 귀청이 터질 것만 같은 소리가 들리자 즈앙이 물끄러미 오크노디를 돌아봤다.

     

    “저길 가자고?”

     

    성량만 들어봐도 대형종이 틀림없는 아주 커다란 새의 울음소리는 1학년이 아니라 3학년이라도 으레 겁을 먹을 만큼 위험하게 느껴졌다.

     

    “거긴 정문이고 옆에 쪽문이 있어!”

     

    마력을 덧씌워 눈의 성능을 강화하니 망원경처럼 성능이 향상된 눈이 사물을 확장시켰다.

    자세히 관찰하자 나무껍질 사이로 사각형의 문처럼 보이는 작은 흠이 보였다.

    심지어 저 위험천만한 나무계단을 뛰어다니며 부지런히 무언가를 나르는 학생인지 교관인지 모를 사람들도 드문드문 있다.

     

    “누가 먼저 오르는지 시합할래?”

    “그래.”

     

    교수의 연구실 아니랄까 봐 오르는 길에도 보안장치가 여럿 있었다.

    발목에 감기는 덩굴트랩, 길목에 자리한 벌집, 끈끈이가 발라진 끈끈이발판, 밟는 순간 바스러지는 낙엽발판…

    시합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즈앙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오크노디. 위어드 교수님은 조교들이 여기서 낙사하기를 바라는 거야?”

    “아닐걸? 다른 교수님들이 보낸 스파이나 침입자를 격퇴하기 위한 장치일 거야!”

    “조교들은 여길 어떻게 드나드는 거야?”

    “몸으로 배우던 선배들한테 배우던 하지 않았을까?”

    “난 나중에 조교는 절대로 안 할 거야.”

    “헤헹. 다들 그 말 하더라! 포인트 받기 전에는.”

    “…조교일이 그렇게 포인트가 짭짤해?”

    “꽤 좋대! 휴학하고 교관 하는 것보다는 학기 중에 조교 하는 편이 수지가 맞을 걸?”

     

    과연. 조교와 교관이 하는 일이 묘하게 비슷해서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는데 재학생과 휴학생의 차이가 있었나.

    알아서 손해 볼 건 없는 정보를 쌓으며 즈앙이 손으로 끈끈이를 방출하며 나무벽을 타고 올랐다.

     

    “앗, 치사해!”

    “길 따라서 올라가라는 법은 없잖아.”

     

    한방 먹인 기쁨에 즈앙이 슬며시 웃으며 지름길을 개척했다.

    엄청난 속도로 나무발판을 몇 개씩 뛰어넘으며 도약하던 오크노디였지만 결국 즈앙의 수직등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뒤늦게 도착했다.

     

    “대운동회에서는 비행마법 썼잖아. 이번엔 안 써?”

    “일정크기 이상의 비행체가 감지되면 둥지에서 짹짹이가 나오거든!”

    “…아까 그 엄청 커다란 기척?”

    “응!”

    “교수님은 정말 악취미네. 그런 허접스러운 이름을 대형괴수한테 붙이다니.”

     

    거대수에 둥지를 차린 대형괴수에게 당했다고 하면 베테랑모험가의 실패담으로 들리겠지만 짹짹이에게 습격당했다고 들으면 허접삼류모험가의 우당탕탕 오합지졸 모험기가 되지 않는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침입자들이 위어드 교수의 연구실의 위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기만전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허접한 이름의 파수꾼이 있으면 누구라도 방심하지 않을까.

     

    “아무튼 내기는 내기야. 소원 하나 들어줘.“

    “알았어. 뽀뽀 한 번 해주면 되지?”

    “어림도 없어. 나중에 비싼 거 시킬 거야.”

    “힝.”

     

    쪽문을 밀고 들어가자 코가 뻥 뚫리는 맑고 상쾌한 공기와 함께 내부통로가 나타났다.

    통로의 저편에는 다양한 마법이 걸린 실험실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의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흐흐흐, 이년 몸집이 아주 야들야들하네. 애지중지 잘 키운 보람이 있어.”

    “으으윽, 여기 좀 도와줘. 발버둥이 너무 심하잖아.”

    “크크크. 오빠들이 순순히 먹여줄 때 받아먹지 않으면 입에 개구개를 씌워버린다?”

    “자, 이걸로 꼼짝 못하겠지. 투정 부리지 말고 주는 대로 얌전히 먹어!”

     

    대화의 내용은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범죄사각지대를 노리고 교수의 랩실에서 조교들끼리 여성조교를 향한 범죄를 저지르는 건가?

     

    ‘흐음. 잘됐네.’

     

    즈앙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찔러 죽여도 될 고깃덩어리가 나타났으니까.

     

    “오크노디. 들어가자.”

    “엥. 굳이?”

     

    남의 일이라며 시큰둥한 오크노디를 이끌고 억지로 들이닥친 연구실.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헐벗은 몸으로 입에 물려서는 안 될 것이 물린 가녀린 피해자를 생각하고 들이닥쳤던 즈앙은 몹시 당황했다.

    여자는 보이지도 않고 촉수 달린 육식식물에 달라붙어 먹이를 들이붓는 남자조교들만 있었다.

     

    “크흐흐. 이 우람한 촉수를 봐. 배양액을 열심히 조합해서 키운 보람이 있지 않아?”

    “개소리 좀 그만하고 넝쿨 안 풀려나게 잘 좀 붙잡고 있어! 가시넝쿨이 등짝을 때려서 존나 아프다고 미친놈아!”

    “…”

     

    기대했던 광경과는 동떨어진 실태에 참담한 심경에 사로잡힌 즈앙.

    조용히 걸어 나오는 그녀에게 오크노디가 물었다.

     

    “육식식물이 밥 먹는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즈앙도 취미가 참 별나다.”

    “오해야. 다른 걸 생각하고 들어갔어.”

    “화염초? 빙결초?”

    “사람인 줄 알고 도와주러 들어간 거야. 겸사겸사 사심도 채울 겸.”

     

    그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연구실에서 저런 이상한 거대식물몬스터는 왜 키우고 있는 거야?”

    “강의재료겠지.”

    “1학년용으로 쓰려는 건 아니겠지…?”

    “아마도?”

     

    오크노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연구실 플레이트에는 F4L3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1학년부터 2학년이 드나들어도 되는 저위험도 실험체를 다루는 실험실이니까 1학년용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참고로 묻겠는데. 우리가 들어온 이 나무의 위험도는 어느 정도야?”

    “B1U5.”

    “풀어서 말하면?”

    “1학년이 혼자서 들어올 수는 있지만 초임교수 다섯 명급 전력이 필요한 위험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위험시설이야!”

    “…살짝 맛이 간 선배가 있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아졌어. 빨리 도비만 찾고 돌아가자.”

     

    밥 먹기 싫다고 반찬투정하면서 넝쿨로 사람을 패는 식물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 무엇이든 즈앙은 그것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도비는 1학년인데 넝쿨 달린 식물한테 얻어맞던 선배들보다는 덜 위험한 일을 하겠지?”

    “응! 정령한테 맞는 게 저거보단 덜 아플 거야!”

     

    즈앙의 기준으로는 던전으로 분류되어도 충분한 위어드 교수님의 연구실 던전에서 가장 낮은 난이도를 지닌 B1 태그가 붙은 방을 찾아 복도만 돌아다니니 금방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방 한복판에서 성난 정령 십여 마리에게 둘러싸여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쭈그려 앉아 마구 얻어맞고 있는 도비를.

     

    “…누가 덜 아프다고?”

    “…딜은 더 약할 거야! 막지를 못해서 그렇지.”

    “저 정령, 공격해도 되는 걸까?”

    “음… 내 생각에는 안 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마음 내키면 뭐든지 저지르고 보는 행동파 오크노디가 발을 빼는 모습에 즈앙은 소매에서 꺼낸 수리검을 얌전히 집어넣었다.

     

    “정령님들. 그만하면 많이 맞은 것 같은데 그 친구는 이제 우리가 데려가도 될까?”

     

    잔뜩 화가 난 정령들이 아우성을 쳤다.

     

    “어림도 없는 소릴!”

    “잠 깨울 때 주기로 한 공물도 가져오지 않았어.”

    “잘잤어요 공주님 인사도 해주지 않았고!”

    “동화책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저런 못된 놈은 맞아도 싸!”

     

    화가 난 이유가 너무 애기들 같은데!?

     

    “그렇게 때린다고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어.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거든. 차라리 도비보고 나중에 동화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약속해.”

    “거짓말! 인간은 항상 정령을 속여. 믿음을 사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해!”

    “안 가져오면 도비의 목을 따러 찾아가. 그게 암살자가 약속하는 방식이야.”

     

    정령들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목숨을…?”

    “그래. 차라리 죽이면 속이 시원하겠어.”

    “거짓말쟁이들에게 죽음을!”

     

    눈에 멍이 든 도비가 애처롭게 떨었다.

     

    “꼭 그런 약속을 해야 해…?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한 것도 내가 아닌데…”

    “안 해도 돼.”

    “정말?”

     

    기대하는 눈의 도비에게 즈앙은 매정하게 말했다.

     

    “계속 맞고 있으면 되지. 가는 길에 문 닫아줄까?”

    “아, 아니… 그냥 할게…”

    “억지로 안 해도 돼. 원래 약속은 진정성이 있어야 상대도 믿어주는 거야.”

    “한다고… 흑흑.”

     

    정령들과의 굿모닝 동화책 선물협약을 통해 도비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애초에 여긴 왜 온 거야? 교수님의 연구실이 야생의 던전보다 위험한 건 상식이잖아.”

    “나도 오고 싶지 않았어… 근데 위어드 교수님이 교장님한테 전해야 할 문서를 대신 건네주겠다면서 보더니 보기보다 조사도 잘하고 똘똘하다면서 납치해버렸는걸… 흑흑흑.”

    “아…”

    “그래도 교수님은 나쁘지 않아… 정령들만 깨우면 돌아가도 된다고 했어. 무려 1000포인트나 주셨어. 안 아프게 맞는 법을 몰랐던 내가 나빴던 거야.”

     

    애가 잠깐 사이에 맛이 가버렸네.

    즈앙은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포인트에 눈이 먼 이 바보가 제 발로 연구실을 다시 찾아간다는데 티토소가의 조명대도 걸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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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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