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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3

       유피엘은 오늘도 로스차일드 저택을 찾았다.

       

       목표는 하나.

       

       법조계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리케와 그 가족을 설득하여, 부당하게 구속된 사람들을 풀어주기 위함이다.

       

       ‘당장 큰 기대는 안 해. 하지만 이것조차도 할 수 없으면 국회의원이 된 이유가 없어.’

       

       벌써 붉은 깃발이 코앞까지 왔다.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수도방위군과 경찰들이 막아내고는 있지만, 아슬아슬한 것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사태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면 최소한 한 사람이 감옥에서 나와야 한다. 

       

       ‘총장님.’

       

       세실 르네이.

       

       일리야드 정령마도 아카데미의 총장이자, 에테르와 더불어 레니냐의 정신적 버팀목인 사람.

       

       그녀라도 풀려날 수 있다면 염증은 조금이마 잦아들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였다. 유피엘은 로스차일드 저택 앞에서 크게 심호흡한 뒤 초인종을 누르려 했다.

       ​

       “야.”

       ​

       그때 피곤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

       “누르지 말고 들어와.”

       

       철컥.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었던 정문이 열린다.

       

       유피엘은 멍하니 서 있다가 눈앞에 선 여인의 이름을 겨우 꺼냈다.

       

       “리케.”

       

       목소리의 주인은 리케였다.

       ​

       지난 2주 동안 철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말싸움을 벌였던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동창.

       ​

       평소에는 유피엘이 하인을 시켜 그녀를 불러야 겨우 만남에 응해주곤 했는데, 오늘은 답지 않게 리케가 먼저 유피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뭘 멍하니 서 있어? 들어오라니까.”

       ​

       리케가 그리 말하며 손을 까딱였다.

       ​

       

       **

       

       

       널따란 복도.

       

       유피엘은 리케의 뒤를 따라 조심스레 걸었다.

       

       피어바인 가문의 후계인 그녀로서도 로스차일드 저택 깊숙한 곳에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얘가 왜 이러지?

       

       유피엘은 그런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리케의 태도는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붉은 눈동자는 어울리지 않게 서릿발 같았으며, 팔짱을 끼고 다니는 자세는 ‘네 따위의 말은 죽어도 듣지 않겠다’라는 듯 견고하고 오만했다.

       

       사람이 하루 사이에 변할 리 없다.

       

       유피엘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젯밤 할아버님께 연락을 드렸어. 이번 소요를 두고 너와 대화를 나눠 달라고 부탁했더니 허락해 주시더라.”

       

       리케가 방문 안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

       “이 방 안에 기다리고 계셔.”

       ​

       어쨌거나 좋은 기회인 것은 확실하다.

       ​

       리케의 할아버지는 일국의 검찰총장이다. 

       

       카우렐리아 사법권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 그런 사람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권력이란 기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라, 윗사람의 생각이 바뀌면 아랫사람은 그에 맞춰 따라갈 수밖에 없다.

       ​

       유피엘은 리케의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접객실인지라 방의 구조 자체는 단순했다.

       

       2인용 자주색 소파가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였고, 그 사이에 자그마한 식탁이 놓여있었다.

       ​

       그중에서 방문을 마주보고 있는 소파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노신사가 앉아있었다.

       ​

       ‘이 사람이, 검찰총장.’

       ​

       “안녕하세요.”

       

       유피엘은 리케를 따라 노인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노인도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가볍게 끄덕였다.

       ​

       “리케가 말했던 피어바인의 아가씨로군요.”

       

       “네, 유피엘이라고 합니다.”

       “리케의 할애비입니다.”

       ​

       리케의 할아버지가 손짓한다. 소파에 편히 앉으라는 표시였다. 유피엘은 리케와 나란히 앉았다.

       ​

       “국회의원 아가씨이니 만큼 할 일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사정이 비슷하고요. 특히 요새 그렇고 그런 일이 있지 않습니까?”

       ​

       시작되었구나.

       ​

       단도직입적이어서 오히려 좋다.

       ​

       “금안족의 대규모 시위 사태 말인가요?”

       “그렇죠. 그 일에 대해선 리케도 우려하더군요. 이러다간 나중에 일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죠.”

       

       유피엘은 리케를 흘깃 쳐다보았다. 리케는 우롱차를 호로록 마셔버리고는 눈을 피해 고개를 틀었다.

       ​

       “손녀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노인이 턱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

       “헌법에 따르면 카우렐리아에 사는 금안족 또한 카우렐리아의 국민이다. 그런데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와 집회, 그리고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정부는 사회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

       헌법의 가장 기초적인 내용들이다.

       ​

       유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 정도는 교양 차원에서 익히 알고 있었다.

       ​

       “현재 정부가 계엄을 선포한 것, 금안족의 시위를 불법 집회로 규정한 것은 카우렐리아의 헌법 정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금안족의 시위는 폭력적으로 변했고, 그 시점에서 사회 질서를 흔드는 일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껄껄.”

       ​

       역시.

       ​

       완전히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검찰총장님.”

       

       유피엘은 사리물었던 입을 뗐다.

       

       “금안족이 먼저 차별을 받았습니다. 전쟁 이후만 하더라도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정부의 여러 차별 정책에 고통받았습니다. 이는 기본권과 평등권 침해예요. 법이라는 사회 계약을 먼저 어긴 것은 정부인데, 왜 현 정권에서는 모든 책임을 금안족에게 떠넘기려는 것인가요?”

       

       준비한 논리를 바로 꺼낸다. 유피엘이 지닌 일종의 필살기였다.

       

       만약 증거를 제시하라고 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유피엘은 가지고 온 서류가방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마수.”

       

       검찰총장은 전혀 다른 곳을 찌르고 들어왔다.

       

       “금안족 중에 또다른 인간형 마수가 섞여있다면, 혹여나 그들이 마왕군을 부활시키기 위해 카우렐리아를 숙주로 삼으려 하는 것이라면, 의원 아가씨께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유피엘은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되는 논리 같아요. 모든 금안족이 마왕군인 건 아니잖아요.”

       “그중 한 마리만 섞여 있어도 치명적입니다. 인간형 마수란 그런 존재예요. 의원 아가씨는 필리우트 제국의 선례를 보지 못하셨나요?”

       “제국이요?”

       “제국이 무너지자 귀신처럼 에테리아가 건국됐죠. 그 나라는 다종족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상은 마왕군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당장 구천(九天) 한 마리가 그 나라의 집정관으로 있죠.”

       

       검찰총장은 손을 깍지끼어 턱을 괴었다.

       

       “이 늙은이의 생각엔 카우렐리아도 그런 식으로 무너지고 말 겁니다. 마왕은 사라졌어도 마왕군의 의념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죠.”

       

       확실히, 마왕군이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마왕군의 잔당이 인간과 결합하여 엘프들의 뒤통수를 친 것도 어느 면에선 사실이다.

       

       “피어바인 의원. 평등 없는 국가는 있어도, 안보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선 이 점을 알고 금안족을 제재하셨을 겁니다.”

       “권력 유지가 목적이 아니라요?”

       “아가씨는 참, 돌림 없이 말하는 걸 좋아하는군요. 네. 그렇게도 부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의 의견이 중요하다지만, 소수의 의견을 무시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저도 그걸 모르진 않습니다.”

       

       사법기관의 수장이니까 당연히 모르진 않겠지.

       

       알고 있어도 바꿀 생각을 안 하니까, 숨길 생각만 가득하니까. 그러니까 답답한 것이다.

       

       리케의 할아버지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

       “이 정도면 답이 되었으려나요?”

       ​

       유피엘은 다음에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

       이럴 땐 자신의 머리가 미웠다. 유피엘의 꿈은 본디 정치가가 아니라 마도사였다. 마법 공부만 주구장창 했으니 언변에 밝을 리가 없었다.

       ​

       “그러면 이 늙은이는 이쯤에서 실례를….”

       

       “할아버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리케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법조인이시면서, 가장 중요한 걸 생각하지 않고 계시네요.”

       “응? 무슨 말이니?”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리케가 실망스러운 기색을 띠며 찻잔을 내려놓는다.

       

       “무죄추정의 원칙.”

       

       그녀의 루비 같은 눈동자가 오연하게 빛난다.

       

       “형사법에선 무죄추정이 원칙입니다. 열 마리의 마수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는 것이 법조인의 참된 역할이죠.”

       

       비록 말단이었지만, 리케도 검사였다.

       

       동시에 그녀는 검찰총장의 손녀였다.

       

       바른말 좀 한다고 권력자의 눈밖에 나서 승진할 기회를 죄다 놓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할아버지, 실망이에요.”

       

       리케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검찰총장의 자글자글한 얼굴이 일그러진다.

       

       “높은 지위에 있으시면서 왜 이렇게 말씀이 기세요? 검찰은 정의를 쫓는 사람이라면서요.”

       “하, 할애비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

       “어릴 때 저를 무릎에 앉혀놓고 하셨잖아요. 동화책 같은 거 읽어주시면서….”

       

       – 이 할애비가 말이다, 검찰이란다. 검찰이 뭐냐면, 나쁜 사람들을 막 때려눕히는 정의의 사도 같은 건데….

       

       “그러셨잖아요. 아닌가요? 아니면 검찰이 뭐예요? 무고한 사람 구속해서 감금 조교하는 변태 집단인가요?”

       “리케야. 말이 지나치다.”

       “검찰은 머리도 좋아야 한다고 하셨죠. 설마 그때 저에게 해 주셨던 말을 기억 못 하시는 건 아니죠?”

       

       리케의 연이은 스트레이트 펀치에 검찰총장의 눈가가 좁아진다. 유피엘이 보기에, 검찰총장은 미묘하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사실 유피엘은 자세히 모르는 내막이지만, 리케의 할아버지는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장차 리케가 큰일을 할 것이라 믿으며 그녀를 애지중지 키웠다.

       

       어릴 적부터 리케가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해 줬다. 장난감을 사주든, 먹을 것을 사주든, 부동산을 사 주든.

       

       “리, 리케야. 네가 할애비한테 이러면 안 되지.”

       “왜 안 되는데요?”

       “허, 그게.”

       

       유피엘은 속으로 웃었다.

       

       당연하다.

       

       정치인이나 법조인 등 공인은 사담이라도 그 말에 무게를 지닌다. 특히 권력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현 정권의 시류대로 말하지 않으면 옷 벗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 일상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인해 카우렐리아 사법계 수장의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리케는 거기까진 잘 몰랐기에 저리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뭔가 통쾌하면서도 미안했다.

       

       그러나 리케와 리케 할아버지의 대치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우웅.

       

       “잠시만요.”

       

       ​유피엘은 무선 단말기를 꺼냈다. 정부로부터 긴급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 이런.”

       ​

       유피엘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의원님?”

       “저, 그게 말이죠.”

       ​

       유피엘이 두 사람에게 단말기를 보여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국회가 위험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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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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