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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4

       “…….”

        

       아니, 그래서 이거 어쩔 건데.

        

       일단 피규어를 산 건 좋다만.

        

       설마 이거 정말로 나 약 올리려고 산 거야?

        

       나도 한때 피규어를 모으던—정확히는, 모으려고 시도했던—사람으로서 피규어 구매를 말리는 건 아니지만, 원래 피규어라는 게 장난감으로 분류되긴 해도 ‘가지고 놀 수 있는’ 물건은 절대로 아니다.

        

       특히 미소녀 피규어의 경우, 액션 피규어 계열로 나오더라도 진짜 아동용 완구처럼 관절이 부드럽고 튼튼하지는 못하다. 어디까지나 ‘특정 자세를 잡아두고’ 구경하는 수준의 물건이라는 소리다.

        

       물론 가지고 놀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앨리스가 이걸 가지고 놀고자 하는 생각으로 산 건 아니었지만.

        

       게다가 이 피규어는 그런 식으로 관절이 있는 물건도 아니었고.

        

       “……방, 방송 때 사용하려고 산 거야!”

        

       내 미적지근한 시선을 받고 앨리스가 그렇게 항변했다.

        

       차마 큼직한 피규어 상자를 들고 지하철과 홍대 한복판을 헤매고 다닐 수는 없어서, 일단 집으로 돌아온 참이다. 점심은 집에 와서 먹었다.

        

       그걸로 앨리스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언박싱이라도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지난번에는 클레어가 공포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더니, 이번에는 앨리스가 언박싱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 건가.

        

       물론 앨리스가 생각한 컨텐츠는 길어야 10분 정도의 컨텐츠이긴 할 거다. PC나 콘솔 게임기, 혹은 다른 전자제품이라면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런저런 리뷰를 할 건더기라도 있겠지만, 피규어는 정말로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물건이니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야 하는 물건이기도 했다.

        

       지르고, 집에 오는 걸 기다리고, 포장을 뜯는 과정까지가 가장 재미있고, 그다음에는 집 안 어딘가에 보관해두는 것이 전부인 물건이라, 만약 정말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 ‘내가 이런 걸 왜 샀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물건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내가 아직 아제르나 전기에 대해서 알지 못하던 시절에 막 오타쿠가 되었을 때, 나는 당시 1만 원에서 2만 원 정도 하는 트레이딩 피규어를 이것저것 많이 구매했었다.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당연히 대부분 퀄리티는 별로 좋지 못한 물건들이었고, 군대 가기 전쯤에 정말 강하게 현자 타임이 와 전부 정리해버린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비싸고 퀄리티 좋은 것이 아니면 사지 않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앨리스 피규어 하나 사두고는 돈이 부족해서 다른 것은 사지 못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샀는데, 안 될까?”

        

       앨리스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언박싱을 하며 날 놀려먹으려고 산 모양이었다.

        

       그러면 자기 피규어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앨리스 피규어를 먼저 사서 본의 아니게 도발하게 되었으니, 거기 복수하려고 샀다고 하면 스토리가 그럴싸해진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십니까?”

        

       “후회라니?”

        

       “아까 구매할 때 보니 피규어 가격이 마냥 싸지는 않았으니까요. 원래 이런 장식품은 사고 나면 금방 질리기 마련이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돌아갈 때도 가지고 갈 생각인데?”

        

       너무나 맑은 눈으로 앨리스가 그렇게 대답해서,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황실에도 복도에 이것저것 있잖아.”

        

       “…….”

        

       어.

        

       아니, 잠깐.

        

       설마 복도 중간중간에 놓인 역대 제국 황제들의 흉상을 두고 하는 말인가?

        

       “흉상뿐만이 아니라 전신을 전부 표현한 것들도 있었고.”

        

       물론 있다.

        

       있기야 했다.

        

       “하지만 그건 실존 인물들을 묘사한 것일 뿐일 텐데요. 복도에 걸려있는 초상화 같은 것과 비슷하게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세계에도 그런 거 있었잖아. 포스터라고.”

        

       아니, 물론 있긴 했다.

        

       있기야 했는데!

        

       심지어 발매한 지 6개월은 된 최신작 포스터가 아직도 게임 판매점에 떡하니 붙어있긴 했는데!

        

       거기 앞을 지나가는데 게임 사려고 온 사람들이 자꾸 나와 포스터를 번갈아 보기는 했는데!

        

       그거랑 그거는 다르지!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아무튼, 황궁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아니, 신화 속 사람도 있잖아. 그리고 명백하게 지역 민담 같은데 나오는 영웅들의 조각도 마을 같은데 있기도 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걸 가져가서 방 안에 장식이라도 해두겠다는 뜻입니까?”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이 물건 사는데 왜 14만 원을 썼을까?”

        

       …….

        

       어.

        

       그것도 그래.

        

       그렇긴 한데, 이런 젠장.

        

       아직 오타쿠라는 개념이 없는 곳에서, 특히 비슷한 개념이 있기는 해도 아직 그런 물건들의 대량생산이 거의 불가능한 세상에서 넘어온 이를 상대로 오타쿠라는 개념이 이쪽에서 얼마나 특이하게 보이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런 것이, 제국에서 동방에서 넘어온 도자기를 모으거나, 와인을 모으거나, 아니면 조각상을 모으는 행위는 고상한 귀족의 취미 취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이쪽 세상에서 피부로 느껴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거겠지.

        

       그리고 그런 감각을 피부로 느끼는 것은 관련된 장소를 한두 번 방문하는 것으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좋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방송 시작까지는 거의 6시간도 넘게 남아있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애니●이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국전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는 훨씬 적게 걸린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감성으로 공감하게 만들 수밖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함께 어디 다녀오실 생각 있으십니까?”

        

       “어디를?”

        

       “……오늘 구입한 그 피규어와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원서도 팔고 있으니 잘하면 아제르나 전기 관련 서적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내가 말한 ‘인연’은 단순히 게임 프랜차이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타쿠 문화 전반을 말한 것이다.

        

       “어디인데?”

        

       옆에서 듣고 있던 클레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물었다.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나간다는 게 그렇게 좋을까?

        

       이쪽으로 오고 거의 며칠 동안은 집 안에서만 지냈는데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서점 비슷한 곳이지만…… 특정한 장르의 소설과 만화만 모여있는 곳입니다. 오늘 갔던 곳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할까요.”

        

       앨리스는 어느 정도 어떤 곳인지 떠올릴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직 정확하게 어디를 말하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며칠 찾아본 정도로는 국전이나 용산이라는 ‘지역’이나 ‘건물’ 정도만 알 수 있고, 그보다 세세한 판매점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실제로 오타쿠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곳이 한국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좋아!”

        

       클레어가 그렇게 말했다.

        

       “뭐, 나야 나쁘지는 않은데. 그럼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앨리스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밖에서 먹을까요? 아마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에 클레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앨리스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아직 두 사람 다 돈이 부족한 건 아닐 테니까.

        

       부족해져도 내가 채워줄 생각이기도 했고.

        

       만약 앨리스가 피규어를 더 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

        

       그리고 내 계획은 처절하게 실패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홍대는 단순히 오타쿠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타쿠가 차지하는 지분은 극히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그냥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는 동네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았고, 클레어가 그 광경을 보면 곧장 관심을 빼앗길 거라는 걸 알아서, 나는 지하철 통로를 통해 곧장 목표로 한 곳으로 왔다.

        

       만화책과 피규어, 각종 캐릭터 상품을 파는 매장.

        

       그곳에 도착한 나는 나머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라니?”

        

       나의 질문에 앨리스는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나의 말에, 앨리스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자기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들? 얼굴이 밝은 걸 보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앨리스는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대답했다.

        

       “응. 모두 즐거워 보여!”

        

       그러게.

        

       즐거워 보이네.

        

       이 두 사람과 너무 오래 붙어 지낸 나머지 나는 이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엄청나게 정의롭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정의롭다는 말은, 사람을 볼 때 편견을 가지고 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곳은 이들이 원래 살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

        

       편견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는 곳이었다. 애초에 개념 자체가 다른 것들이 워낙 많았으니.

        

       그리고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스테레오 타입의 오타쿠는 의외로 흔치 않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옷은 깨끗하게 입고 있었고—

        

       게다가 무슨 행사라도 있는 건지 여자들이 엄청 많았다.

        

       그중 ‘아, 이 사람 오타쿠다’라고 티가 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음.

        

       뭐.

        

       모르겠다.

        

       그냥 될 대로 되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저는 오타쿠가 겉으로는 잘 티가 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때까지야 옷을 워낙 대충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티가 나도 어쩔 수 없지만…

    직장 다니고 30대쯤 되면 다들 배는 나오고 옷은 대충 편하게 집어 입고 다니게 되니 진짜 차려입을 때가 아니면 겉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해지더라고요.

    제가 진짜로 만화에서나 묘사되는 오타쿠의 모습을 본 건 2019년쯤 일본 아키하바라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도 그냥 지하철에서 마주쳤으면 ‘아, 이 사람 오타쿠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죠, 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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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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