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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4

    교내폭력 위원회가 열리기로 한 교무회의실.

    그곳에는 당사자인 서드의 보호자만 빼고 모든 이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전부 참석하셨습니까?”

    “네, 그 서드라는 학생측 보호자만 오면 되겠군요.”

    “그 예르나라는 사람, 왜 이렇게 안 온답니까?”

    “얼른 끝내야 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바쁜데 말이에요.”

    “듣자하니 부모도 없다던데, 대충 퇴학시키고 끝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교내폭력을 저지른 가해자측 인원이 지각을 한다니!

    말도 안되는 상황에 학부모측에서는 하나 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하하, 그게 교칙상……. 일단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한의 모습에 방금까지 어수선하던 좌중이 돌연 침묵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2미터에 가까울 듯 보이는 압도적인 키와 무슨 오우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발달한 근육들, 그리고 아무나 건드리기만 해 보라는 듯 찌푸려진 미간을 보면, 누군들 위축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공간의 안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

    “…….”

    “…….”

     

    -저벅, 저벅.

     

    조용한 회의실 안에 유일한 소음은 그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끼익, 털썩.

     

    그가 자리에 앉자, 교사로 보이는 누군가가 서류와 그의 모습을 번갈아 보다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어, 혹시? 예르나, 씨?”

    “아, 아뇨. 서드의 법적 보호자로 예르나 대신 나온 다이튼 게네퍼입니다.”

    “그, 예르나라는 분과의 관계가……?”

    “아내입니다만. 남편이 대신 오면 안 되는 겁니까?”

    “아, 아니요. 아닙니다.”

     

    그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그는 황급히 말을 끊었다.

    확인 차 건넨 질문이지만, 그는 아무래도 그 이야기가 기분나빴던 모양이다.

     

    ‘그냥 얼른 시작하고 끝내자.’

     

    그게 최선이리라.

     

    ——-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교내 폭력 위원회.

    교무회의실에 내려앉은 긴장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다이튼에게 교무실은 거의 8년만에 처음 와보는 곳이다.

    다이튼은 옛날부터 그 경직된 분위기가 정말 싫었다.

    게다가, 지금은 더 그렇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분위기마저 피곤하게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이튼은 졸음으로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부릅뜨고 또 부릅떴다.

    이런 곳에서 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안 그래도 몸집이 커서 시선을 많이 받는데, 앉은 자리가 몰래 잘 수 있을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서 숨겨지는 곳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자아, 지금부터 교내폭력 위원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교장으로 보이는 자가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곧바로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설마 어느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목소리에 수면마법을 인챈트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대놓고 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에, 다이튼은 팔짱을 끼고 어떻게든 발언권을 얻을 때까지 버텨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주최자는……. 이고……, 현 상황은…….”

     

    하지만 노력은 결국 배신당했다.

    다이튼 자신의 의지보다는 교장의 훈화가 훨씬 더 강력했던 것이다.

    원래 집중이 안 되고 있었는데, 이제는 뭐라고 말하는 지도 제대로 안 들리고 있었다.

    결국 어떻게든 졸음을 쫓으려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아카데미의 교장도, 연설만 하면 사람 졸리게 하는 데엔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졸업식 훈화를 앉아서 들었을 때에도 잠깐 눈 감았다 떠 보니 그새 졸업식이 끝나서 당황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때, 코 고는 소리 때문에 걸려서 엄청 혼났던가?

    친구들이 그걸로 놀렸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잠깐.’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이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흡!”

     

    다이튼은 고개를 번쩍 드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다.

    졸았던 것이다.

     

    “…….”

    “…….”

    “…….”

     

    다이튼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시선을 맞으며 생각했다.

    잠깐 졸았는데, 설마 그거 때문에 그렇게 눈치를 주는 건가, 싶어서.

     

    다이튼은 이내 무안한 웃음을 지으며 목을 풀었다.

     

    -두둑, 뚝.

     

    그러자 목이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이 졸음도 약간은 가시는 것 같다.

    역시, 피로에는 스트레칭인가.

     

    그 모습을 바라보던 교사 한명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그, 이, 이의가 있으십니까?”

    “네?”

    “이의가 있으셔서 고개를 끄덕이신 거, 아닌가요?”

    “아…….”

     

    다이튼은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사람들이 내가 졸아서 눈치를 준 게 아니라, 우연히 조는 타이밍이 맞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줄 알고 주목했던 거구나.

     

    “…….”

     

    다이튼은 그렇다고 ‘아뇨, 그냥 졸았는데요. 아까 무슨 말씀을 하신 거죠?’ 라고 되묻기엔 살짝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는 거 맞습니까?”

     

    대충 아는 척하고 넘어가기로.

    이건 실제로도 꽤 잘 통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예? 혹시, 말씀 제대로 들으신 것 맞나요?”

    “…….”

     

    이렇게 토를 다는 사람이 나오면 안된다.

    보통은 맞장구로 넘길 수 있는데, 아무래도 대화가 좀 안 이어지는 맞장구였던 모양이지.

    다이튼은 당황으로 잠시 잠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뭐라고 답해야 할까, 고민하던 다이튼은 이내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거 나중에 다시 하자고 해볼까.’

     

    일단 지금은 자신의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미루는 거다.

    그러고나서 나중에 합의를 해달라고 하면 합의를 해주고, 사과해달라면 사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 모여준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지금은.

     

    그렇게 결론을 내린 다이튼은 팔짱을 풀고 말을 이었다.

     

    “이 위원회 자체가, 너무 성급하게 열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고작 애들끼리 좀 치고 받고 싸운 거 가지고, 그러다가 고작 팔 하나 부러진 거 가지고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고 구는 것 아니냐, 이겁니다. 그리고 저 학교에 있을 때에는 시비걸려서 싸우다 그런거면 그런 거 쪽팔려서 어디가서 말도 못 했습니다. 아십니까?”

    “……예? 그러니까……? 네?”

     

    아, 틀렸다.

    피로감으로 사고가 정지한다.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필터링 없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뭔가 큰 말실수를 하기 전에 결론을 내야한다.

    다이튼은 마지막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눈과 주먹에 힘을 주며 말했다.

     

    “여기서 끝냅시다. 원하는 거 있으면 나중에 직접 연락하세요. 그걸 바라시면 제가 직접 찾아갈테니까. 그럼 저 갑니다.”

     

    할 말은 다 했다.

    이제는 졸음을 더 참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이 최선.

    다이튼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벌떡.

     

    “…….”

    “…….”

    “…….”

     

    그야말로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에, 일동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가 문을 열고 사라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저거, 여기서 안 끝내고 연락하면 찾아와서 죽인다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저희……, 별 일 없겠죠?”

     

    —-

     

    -쏴아아.

     

    루크는 강하게 내리쏟는 빗줄기를 창 밖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를 보면, 아마 이것이 올해의 마지막 비일 것이리라.

     

    -오늘 오후까지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니, 여러분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젖은 옷을 잘 말리시고…….

     

    루크가 집안일을 하면서 동시에 각종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틀어 두었던 TV에서는 현재 기상상황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빗줄기가 약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은 루크도 동의하는 바이다.

     

    어제 왔어야 할 폭우를 미룬 오늘,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는 결코 쉽게 멈추지 않겠지.

    자연은 인위적으로 조작을 하면 그만큼, 더 강한 반발력으로 그 힘에 대항하려 하니 말이다.

    내려야 할 비를 고작 하루 미룬다고 해서 갑자기 천재지변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리는 빗줄기조자, 아이들에게는 한낱 즐길거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뒷마당과 연결된 창 밖에서는, 우산과 방수 로브, 장화로 중무장한 파이리스와 디아나가 사납게 내리는 빗 속에서 물장구를 치고 노는 모습이 보인다.

     

     

    -찰팍! 찰팍!

     

    “파이, 우리 누가누가 더 멀리 물 튀기나 하자!”

    “물 튀기? 그거 어떻게 하면 돼?”

    “이렇게, 물을 세게 밟아서 튀기면 돼! 아, 근데 화단은 밟지 않게 조심해! 언니가 화낼거야. 알겠지?”

    “오오! 알겠어, 재밌겠다!”

     

    -첨벙, 첨벙!

     

    루크는 턱을 괴고 테이블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힘이 넘치는 아이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이 온 몸에 비를 맞으며 논다고 하면 감기를 걱정해야 하겠지만, 이 근방은 자신이 걸어 둔 각종 기후조절 인챈트 덕분에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그러니 저렇게 흠뻑 적시며 놀아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헌데, 물장구를 치는 것이 뭐가 그리도 재미있을까?

    기껏해야 물웅덩이를 강하게 밟는 것을 목적도 의미도 없이 반복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아이들의 생각은 읽기가 어렵다.

    루크는 어릴 때부터 그런 것 보다는 비 들어오지 않는 안전하고 안락한 실내에서 책과 함께 따듯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 훨씬 더 즐겁다고 느끼는 인물이었으므로.

    그나저나, 다이튼이 걱정이다.

    그렇게 피곤해 보였는데, 오는 길에 물을 밟고 미끄러져서 다치는 건 아닐지…….

    -저벅 저벅.

     

    그 순간, 빗소리와 물장구소리에 섞인 또 다른 발자국 소리에 루크의 귀가 쫑긋거렸다.

    다이튼의 발소리였다.

     

    다이튼은 들고 있던 젖은 우산을 몇번 흔들어 물기를 털어낸 뒤, 신발장 옆에 대충 세우며 말했다.

     

    “다녀왔어.”

    “수고했네.”

     

    드디어 돌아온 다이튼.

    아무래도 빗줄기가 강했기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물에 빠진 생쥐……, 아니. 곰과 같은 꼴이었다.

    바지는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고, 상의는 팔에 아침에 입고 나갔던 정장을 끼운 채로 셔츠 한장만 달랑 입은 상태였다.

    춥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이튼의 목소리는 비에 젖은 몸 만큼이나 피곤에 절어 있었다.

    다이튼이 대충 놓아둔 우산을 정리하던 루크는 피곤하다는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서 그런 일을 시킨 것이 굉장히 미안해서 우물쭈물거리며 물었다.

     

    “그……. 서드 이야기는 어떻게 됐나? 잘 됐나?”

     

    루크의 걱정스런 질문에, 다이튼은 피로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마도 잘 풀린 것 같아.”

     

    그렇겠지?

    분위기는 대충 괜찮았던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힘이 부족한 건 아닌지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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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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