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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4

       구금된 와중에도 강렬한 위엄을 뿌리며 상석에 앉은 여인.

         

       그 여인의 우측에 앉아 있던, 얼굴에 칼자국이 길게 난 사내가 날렵한 눈으로 이쪽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

         

       “네놈 말대로 우리는 팔혈귀다. 허나,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네 손에 죽은 어중이떠중이들과는 격이 다르니까.”

         

       변명 아닌 변명에 웃음이 나온다.

         

       “내가 지금까지 잡은 놈들은 너희 중에 최약체였다…, 뭐 그런 거구나?”

         

       대답은 여인의 왼편에 앉아 있는 야시시한 옷차림의 요염한 여인에게서 나왔다.

         

       “변명 같겠지만, 어쩌겠어? 그게 사실인걸.”

       “아, 그러냐.”

         

       백우진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가 조금씩 일그러진다.

         

       이런 걸 보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다고 하는 걸까.

         

       그들이 혈교주의 명에 따라 움직이는 이상, 자신이 현경에 다다랐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저렇게 모가지 뻣뻣하게 세우고 변명 아닌 변명을 입에 담고 있는 게 퍽 우스웠다.

         

       ‘아니면 저리 뻗댈 수 있을 만큼 준비된 수가 있는 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언제나 방심.

         

       특히 새로운 경지에 올라 자존심이 충천해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에, 백우진은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그들의 여유로운 태도를 감상했다.

         

       “성주를 구하러 온 거겠지?”

         

       칼자국이 길게 난 사내, 이혈귀의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사내가 물었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소도를 이용하여 제 손톱이나 손질하는 모습에 발끈한 백우진.

         

       “맞긴 한데….”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사라지는 그의 신형.

         

       이윽고 나타난 곳은 거만한 태도로 손톱이나 손질하고 있던 오혈귀의 등 뒤였다.

         

       “오제, 당장…!”

         

       순간 시야에서 놓친 그를 발견한 이혈귀가 오혈귀에게 경고하던 순간.

         

       어느새 뻗은 백우진의 손이 놈의 뒤통수를 꽉 붙잡은 채 그대로 탁자 위로 냅다 던져버렸다.

         

       콰직!

         

       들이 박아버린 얼굴에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는 탁자.

         

       동시에 백우진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오혈귀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헉…!”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힘없이 쓰러지는 녀석의 뒤통수에다 대고, 백우진이 경고했다.

         

       “사람과 대화할 때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본 상태에서 정중하게 하는 거야, 이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녀석아.”

         

       멋들어진 경고까지 남긴 뒤에야, 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어라, 이러면 경고를 못 듣잖아.”

         

       기절해버린 녀석은 제 경고를 귀담아들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던 백우진.

         

       “나중에 깨어나면 다시 말해주지, 뭐.”

         

       그때는 꼭 말을 먼저 하고서 때려눕혀야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그들에게 붙잡혀 있던 성주로 추측되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

         

       “고리타분한 정파 놈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화끈하네, 당신.”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야릇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 사혈귀가 혀로 입술을 달싹이며 제 가슴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를 유혹했다.

         

       “어때? 나와 함께 절대 잊지 못할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는 건.”

         

       코끝을 간질이는 향긋한 분내.

         

       눈이 요사스럽게 빛나는 것을 보아하니 색공(色功)이라도 익힌 모양.

         

       뭇 사내들의 가슴을 뒤흔들 만한 외모와 색기였으나, 백우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는 비단 경지에서 오는 차이만이 아니었다.

         

       “흐응…, 어쩌지? 내 남편은 비싼데.”

         

       바로 옆에, 색공을 익힌 사혈귀를 훌쩍 뛰어넘는 색기와 미모로 무장한 상위호환의 아내가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기 때문.

         

       한 걸음 앞으로 나선 그녀가 제 가슴을 앞으로 자랑스럽게 내밀며 말을 잇는다.

         

       “너 같은 여자와 동침하면…, 글쎄. 너는 절대 잊지 못할 밤이 될지는 몰라도, 우리 남편에게는 악몽으로 평생 기억될 것 같은데.”

         

       그리 말한 당선영이 백우진의 어깨 위에 팔을 올리며 묻는다.

         

       “어때, 당신?”

         

       어…, 사실 그 정도는 아닐 것 같긴 하지만.

         

       “당신 말이 맞지, 응.”

         

       지금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평생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그녀의 적나라한 도발은 아주 제대로 먹혀들었다.

         

       증거로 상처받은 사혈귀가 눈에서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지 않나.

         

       “이 가슴만 무식하게 큰 년이…!”

         

       표독스러운 외침에 당선영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우리 남편이 그러던데? 가슴은 거거익선이라고.”

       “어, 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긁적이는 백우진.

         

       실제로 그런 말을 하기는 했다.

         

       가슴이 너무 커도 별로 아니냐는 그녀의 걱정 섞인 물음에 남자는 크면 클수록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설마 여기서 써먹을 줄이야.’

         

       새삼 그녀의 말발에 감탄하는 사이.

         

       “이이…, 더러운 년이!”

         

       사혈귀가 날카로운 손톱에 기운을 가득 밀어 넣으며 달려들려던 찰나.

         

       “멈춰라.”

         

       조금 전부터 들끓는 분노를 삭이고 있던 이혈귀의 나지막한 음성이 그녀를 막아섰다.

         

       이에 자신을 말리는 사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그녀가 항의했으나.

         

       “하지만, 사형…! 저년이 나를!”

       “그만하라고 했다. 허망하게 당한 오제의 뒤를 따르고 싶은 것이냐.”

         

       재차 들려오는 경고에 사혈귀는 결국 출수한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혈귀는 팔혈귀 중 가장 냉정한 사람이다.

         

       꼬박꼬박 사제라 부르며 사제들을 존중하는 듯하면서도 내키지 않으면 곧장 검을 뽑아 목을 베어버릴 만큼.

         

       속으로 들끓는 감정과는 달리, 차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혈귀.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상석에 앉아 있는 여인, 성주의 목을 움켜쥐는 것이었다.

         

       “큭…!”

         

       움켜쥔 목으로부터 토해지는 거친 신음.

         

       백우진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분노했다고 한들, 제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인질을 죽이진 못할 거라는 확신이.

         

       실제로 이혈귀는 목을 거칠게 움켜쥐기만 했을 뿐, 그 이상의 위해는 가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그저 백우진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제 말을 따르지 않으면 곧장 성주의 목을 꺾어버리겠다는.

         

       “이곳은 너무 좁은 듯하니, 자리를 옮기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혈귀들이 몸을 일으켜 하나둘씩 집무실을 나선다.

         

       “팔제(八弟).”

       “…예, 사형.”

       “오제를 데리고 가라. 덜떨어진 녀석이라도 쓰임새가 생길지 모르니.”

       “알겠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집무실을 나서려던 거한이 묵묵히 걸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오혈귀를 어깨에 얹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남은 것은 인질로 잡힌 성주와 이혈귀, 그리고 백우진과 조원들뿐.

         

       뒤편에 서 있던 장삼이 그에게 속삭인다.

         

       “철저히 준비된 함정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이대로 따를 셈이오?”

         

       그의 말대로다.

         

       함정의 냄새가 짙게 난다.

         

       이러한 사실을 이혈귀 또한 모르지는 않을 터.

         

       이리도 당당하게 함정으로 걸어가라고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

         

       “어서 밖으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성주의 목을 분질러 버리겠다.”

         

       목을 붙잡힌 채 인상을 와락 구기고 있던 성주가 한쪽 입꼬리를 비죽거리며 말아 올리며 백우진을 향해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흥…, 본 성주의 목숨 따위는 관여치 않아도 좋다. 감히 내가 다스리는 성을 점령한 이 무뢰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길동무로 삼아줄 수만 있다면.”

         

       백우진은 실로 감탄했다.

         

       기세, 말투, 한 치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진심까지.

         

       그야말로 여장부다운 말투 아닌가.

         

       여인의 몸으로 한 성의 성주에 오른 이유를 고작 말 한마디로 몸소 보여주는 듯했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혈귀가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닥쳐라, 건방진 계집.”

       “큭…!”

         

       숨통이 조여오는 상황에도 성주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이 건방진 녀석은 가장 잔인하게 죽여주면 좋겠구나.”

         

       제 목을 쥔 이를 도리어 내려다보는 듯한 위엄 넘치는 시선.

         

       이를 치욕이라고 느낀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마 죽일 수는 없었기에 주먹으로 그녀의 얼굴을 내리치려던 그때.

         

       “워워, 그 팔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백우진이 나서서 그의 분노를 진정시켰다.

         

       아니.

         

       “그 팔 그대로 잘려 나가고 싶지 않으면.”

         

       강제로 진정시켰다.

         

       이혈귀가 숨을 깊게 내쉬며 팔을 내리자, 백우진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조금도 버둥거리지 않고 독기를 품은 눈으로 이혈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성주를 향해 정중히 말했다.

         

       “송구합니다, 성주님. 이곳을 점령한 혈교도들을 전부 길동무로 삼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제가 구해야 할 이가 성주님 말고도 제법 많아서요.”

         

       백우진에게 향한 성주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하…, 화통한 사내인 줄만 알았더니 정파 무인으로서의 기질도 충만하군.”

       “과찬이십니다.”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백우진의 시선이 이혈귀에게로 향했다.

         

       “안내해. 너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함정이 있는 곳으로.”

       “…….”

       “이제 슬슬 궁금해진다, 야.”

         

       대체 얼마나 대단한 함정이기에 현경의 고수 앞에서 저리도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는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라.”

         

       백우진과 조원들이 이혈귀의 말을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이후에도 그가 뒤에서 지시하는 방향대로 걸음을 옮기자, 도착한 곳은 병사들이 수련하는 성주궁 지하의 연무장이었다.

         

       그곳에는 미리 걸음을 옮긴 혈귀들이 각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제법 빠르게 정신을 차린 오혈귀가 이쪽을 향해 분노를 토해낸다.

         

       그러나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거세게 당함으로써 남은 공포의 잔재가 여전히 고통으로 머물러 있었기에.

         

       세 혈귀가 사각형의 연무장에 존재하는 네 개의 꼭짓점 중 세 곳에 서 있다.

         

       자연스럽게 남은 꼭짓점 중 한 곳을 채운 그가 턱짓했다.

         

       “너희 모두 가운데에 서라.”

         

       당당하게 가운데에 서는 백우진과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뒤따르는 조원들.

         

       그때 이혈귀가 차갑게 웃으며 사제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추향환상진을 발동한다.”

         

       동시에 그들의 발밑에 숨겨져 있던 어지러운 문양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묘한 기시감이 그의 등골을 스친다.

         

       ‘진법?’

         

       이것은 분명 진법이 발동되면서 기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변할 때 느끼는 감각이었다.

         

       정확히 무슨 진법인지는 몰라도 이에 대비하기 위해 기운을 잔뜩 끌어올렸을 때.

         

       세상이 온통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쏟아지는 빛에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이봐, 이제 출발할 시간이야. 이제 슬슬 잠에서 깰 때도 되지 않았나?”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근 작품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이 작품도 그렇고, 다른 작품도 그렇고 길게 쓰다 보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도리어 더 머리를 싸매게 되네요.

    최대한 빨리 추슬러서 속도 최대한 높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소제목은 여기서 끝이고, 다음 소제목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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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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