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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4

   두 번째 회귀.

   그녀는 제국과 차라리 깊게 연관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제국은 못 써먹을 이들이 너무 많았다.

   시그린부터 시작해 메리까지.

   어정쩡한 재능을 갖춘 이들이 오히려 제국은 끊임없이 좀 먹어갔다.

     

   게다가 황제의 죽음은 어찌 해결할 방도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처음부터 황가의 소속이거나 혹은 세계적인 가문의 자식이었다면 모를까.

   황제를 알현하는 것조차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여러 기연을 다 잡아 먹고, 성장 속도를 최대로 끌어 올려도.’

     

   시골 변방의 이름만 남은 귀족 소녀로 시작하니 방도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시점인 라헬른 아카데미의 입학을 미룰 수가 없으니.

   중간에 기연을 잡아 먹는 것도 한계점이 있었다.

     

   그러니 아서는 차라리 방법을 바꿨다.

     

   제국에서는 손을 떼고, 다른 4왕국과 같은 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4왕국에는 재능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은 라헬른 아카데미를 넘어 창공의 세대에서도 빛을 발하는 이들이다.

   그러니 그녀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연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창 시절 당시 학년이 달라 마주친 적 없던 크라슈와 마주했다.

     

   「뭐야, 넌? 저리 안 꺼져.」

     

   여전히 입이 험한 사내였다.

   게다가 몸 여기저기에 매일같이 상처가 있었다.

     

   보아하니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매일같이 걸면서 다녔다고 한다.

     

   발하임 가의 망나니.

   낙제생, 반푼이.

     

   그에게 붙는 멸칭은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전회차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했기 때문일까.

   아서는 그 남자가 싫지 않았다.

     

   「나는 아서 그라말테, 너는?」

     

   아서가 그의 욕지거리에도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청명한 눈과 마주한 크라슈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다시 욕을 내뱉지는 않았다.

   눈치가 빠른 크라슈답게 그녀가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깔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은 덕이다.

     

   「……크라슈 발하임.」

     

   아서는 그렇게 크라슈와 친해졌다.

   크라슈는 입이 거칠고, 행동이 험했다.

     

   그러나 그 속에 깃든 독종과 한 번 믿은 사람을 굳건하게 믿음 주는 그 모습은.

   아서가 지금껏 회귀를 겪으며 만나본 이들 중 가장 등을 맡길 수 있는 이였다.

     

   게다가 그 회차에서 신기하게도 우연히 시그린과 메리에게 각자 연인이 생기며 두 사람은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제국이 혼란스럽기는 했으나 예전과 같이 아예 무너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간신히 최흉에 맞설 수준은 되었던 것이다.

     

   아서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 회차에서는 정말로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익시온도 창공의 세대 일원과 함께 일찍이 방해하며 최흉을 최대한 축소 시켰다.

     

   된다.

   이거라면 된다.

     

   그녀가 확신한 그 순간.

     

   붉은 마녀.

   아벨라가 세계를 자신의 마법적 성취를 위해 거래하고 말았다.

     

   세계의 멸망은 순식간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아서가 살아가던 행성 자체가 반파되어 박살이 났다.

     

   아서는 멍한 얼굴로 세 번째 회귀를 맞이했다.

   붉은 마녀, 아벨라.

     

   같은 창공의 세대긴 하나 늘 혼자서 독단적인 행동을 했던 종잡을 수 없는 인물.

   그래도 실력은 출중하기에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아서도 아벨라와 나름대로 연을 쌓고자 노력했었다.

   아벨라의 화력은 마법사들 중 제일이라 일컬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대뜸 세계를 멸망시켰다.

   아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세계를 멸망에서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그 시점에서 아서의 정신 상태는 서서히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이 세계는 멸망할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전부 무의미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점차 그녀를 좀먹어 가기 시작했다.

     

   세 번의 회귀에서 그녀는 제 손으로 누군가를 수없이 죽이고, 수많은 배신을 겪었으며 실패와 마주했다.

     

   아서는 서서히 지쳐갔다.

   그녀의 정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계가 멸망하는 시점은 늘 아서가 서른 직전에 왔을 때였다.

   그녀가 회귀하는 시점은 14살, 라헬른 아카데미 설립을 2년 앞둔 시점이다.

     

   즉, 그녀는 같은 15년을 세 번.

   총 45년을 반복했다.

     

   아서의 정신 나이가 대략 59살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신 나이가 59살이 된 시점.

   그녀가 이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결국 이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것뿐.

     

   「하, 하하.」

     

   그녀는 방 안에 그렇게 틀어박혔다.

   이번 회차는 그냥 마을 소녀로서 조용히 지냈다.

   검을 익히지도 않았고,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세상은 멸망했다.

     

   또다시 눈을 뜬 시점.

   아서는 자신이 다시금 14살의 소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네 번째 회귀였다.

     

   회귀 기억 60년.

     

   세 번째 회귀를 그냥 보내버렸기 때문일까.

   그녀는 일어나 다시금 검을 잡았다.

     

   평생 누워 있어봤자 무의미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괜찮아. 어차피 실패하면 돌아오면 돼.」

     

   그리고 그녀는 무덤덤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멸망을 막는 걸 실패해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렇다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먹자.

     

   그리 판단한 그녀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 회귀를 반복한다.

   그저, 자신이 짜가던 루트가 망했다는 이유로 했던 회귀였다.

     

   그렇게 일곱 번째 회귀.

     

   「아서, 너 정말 괜찮은 거 맞냐.」

     

   그녀는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는 크라슈와 마주했다.

   그는 몇 번이고 회귀를 거듭해도 한결같았다.

     

   회귀를 반복하고, 아서의 접근 방식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그 사실이 아서에게는 퍽 외롭게 다가왔다.

   결국 자신이 쌓은 관계라는 건 회귀를 하면 전부 사라지는 무의미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크라슈는 달랐다.

   그는 아서가 어떻게 행동하든 아서에게 향하는 행동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아서가 세계 멸망에 맞서려고 했던 그 마음만큼은 늘 인정하고, 지지했던 게 크라슈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 아서는 점차 크라슈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기댄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사내였다.

     

   어느 날은 갑자기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하는 방법을 알아 와서는 이제는 정말로 뒤를 맡길 만큼 빠르게 강해져 갔다.

     

   문제는 그만큼 저 스스로 자신을 좀 먹어가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그의 강함은 결국 아서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증거로 크라슈가 아서를 목숨 바쳐 구한 그 날.

   아서는 중증인 그를 부여잡고 울고 있는 자신을 보고, 깨달았다.

     

   아, 나는 이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아서와 크라슈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회차를 반복하며 어긋나 버린 아서의 정신은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실패하면 회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다.

   삐끗해 버린 실수로 인해 결국 최흉이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돌아가야 한다.

   아서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게 그날 아서는 제 손으로 크라슈를 죽이게 된다.

     

   아서의 정신이 현재로 돌아왔다.

   무수히 많이 지나간 그 기억은 모조리 현재의 아서에게로 강제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아서의 눈에 다시금 크라슈가 비췄다.

     

   「크, 라슈.」

     

   아서의 머릿속에 자신이 내뱉던 사과가 떠올랐다.

     

   「내, 가.」

     

   힘이 거의 다 빠져버린 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맞잡아 준 이는 누구였는가.

     

   크라슈였다.

   그는 제 손으로 죽인 크라슈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아서는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미, 안해.」

     

   내뱉었던 말과 함께 아서의 눈동자 위에 천천히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그렇구나.

   크라슈, 넌 마지막까지 내가 외롭지 않게 함께 있어 줬구나.

     

   내가 증오하는 만큼 그대가 나를 증오하기를.

   .를기하랑사 를나 가대그 큼만 는하랑사 가내

     

   아서가 마지막까지 그에게 바랐던 것.

     

   그리고 이때가 자신이 그에게 회귀를 건네줄 유일한 방법을 깨달았을 때다.

   이 남자는 절대로 자신이 회귀를 준다고 해서 가져갈 남자가 아니란 건 누구보다 아서가 가장 잘 알았으니까.

     

   반푼이, 낙제생, 발하임 가의 망나니.

     

   온갖 말들로 점철되어 자존감이 모두 무너진 크라슈는 말할 것이다.

     

   「회귀는 내가 아니라 너한테 필요한 거야. 멍청아.」

     

   아서가 결국 회귀를 택하려 했던 그 순간에도.

   이 남자는 자신의 회귀를 빼앗지 않고, 빼앗는 척만을 했으니까.

     

   ‘아니, 크라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몇 번의 실패를 겪었기에 아서는 알고 있다.

     

   자신은 이 세계의 멸망을 막지 못한다.

   시작하는 시점과 신분, 여러 요인에 의해 자신은 수많은 사건에 개입하기 위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여러 요인을 자꾸만 놓치고, 결국 그 요인들은 굴러온 눈덩이처럼 커져 아서의 앞길을 번번이 막았다.

     

   아서는 변방의 시골 처녀다.

   그렇기에 세계를 움직이는 귀족들에게 다가설 신분도 없고, 하물며 육체까지 다시 단련시켜야 하는 그녀는 가장 중요한 초반 시점에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아서는 깨달은 것이다.

   자신은 세계를 구하는 이가 아니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온전하지 못하다.

   어떤 것을 보아도 아서는 선입견을 품고, 그 선입견으로 인해 나아가지 못한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라는 건 아서와 같이 가면을 쓴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정신과 감정적 결함.

   이 세계는 혼자서 막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회귀로 인해 닳아 버린 자신은 더 이상 창공의 세대의 선두에 설 수 없다.

   자신이 선다고 한들 창공의 세대는 온전히 따라와 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크라슈는 다르다.

   그는 반푼이라 불리지만 신분이 발하임이다.

     

   더불어 이 세계는 발하임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게다가 사람을 꿰뚫어 보는 샬롯이라 아서는 그녀와 친분을 쌓는 게 불가능했지만, 크라슈는 이미 그녀와 남매로서 친분이 쌓여 있다.

     

   하물며 스타론과 제국의 전쟁의 시발점인 비앙카 또한 그의 약혼자다.

   그녀를 가장 망가뜨리는 저주를 크라슈는 가져갈 수 있다.

     

   더불어 앞으로 그가 이어질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인연들에게 있을 문제를 크라슈는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창공의 세대와 세계의 주역이 되는 이들이었다.

     

   더불어 데마리스의 비기를 빨리 얻어서는 안 된다.

   데마리스의 극혈침독(劇血浸毒)의 세계 침식의 힘은 결국 크라슈의 목을 조여 그를 마지막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죽게 만든다.

     

   그의 곁에는 벨로킨 발하임, 그가 지닌 이그니스가 있다.

   그게 있다면 크라슈도 극혈침독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라면.

   타인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

     

   회귀로 닳아버린 자신조차도 그를 사랑했을 정도니까.

   그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다.

     

   ‘나는 크라슈, 네 곁의 연인 같은 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식으로 붕괴하고, 네가 네 두 눈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멸망의 중심점인 세 명의 연인의 역할을 하여 그들을 다음 회차까지 이어 섣부른 폭주를 막게 하기 위해서라도.

     

   크라슈, 네가 결국 회귀를 빼앗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나는 끝까지, 마지막까지 계속 이 세계를 나아갈게.

     

   내가 증오하는 만큼 그대가 나를 증오하기를.

     

   뒷말을 지우고, 오직 이 하나만을 위해.

   크라슈를 멸망의 직전까지 데려가 그가 회귀를 뺏을 만큼 나를 증오하게 할 거다.

     

   그것이 설령 앞으로 몇 번의 회귀를 반복하게 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기필코.

     

   그 기억이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아서에게 모두 이어졌다.

     

   숨이 차올랐다.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뛰는 가슴이 말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를 배신했으며 누구를 위해 살고 싶었는지.

     

   그리고 누가 진짜 자기 적인지 또한.

     

   아서의 황금빛 눈동자가 선명히 빛났다.

     

     

   * * *

     

     

   아서가 모든 기억을 되찾은 시점, 크라슈는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아서가 기억의 주입으로 인해 비명을 지른 탓이다.

     

   그 순간 아벨라의 지팡이에 붉은빛이 맺혔다.

   아서를 보느라 한 발 늦게 반응한 크라슈가 몸을 뒤로 당겼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에 스쳐 간 붉은 빛은 기어코, 하늘을 꿰뚫어 버리며 구름을 일제히 소거했다.

   별다르게 영창과 마법진도 없이 간단히 실행시킨 마법이 저 정도 위력이었다.

     

   크라슈는 새삼, 아벨라가 마법의 세계의 정점에 섰던 붉은 마녀임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서였다.

     

   “아서, 너, 무슨 일이야?”

     

   아서의 곁에까지 크게 물러선 크라슈는 서둘러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아서는 여전히 자기 머리카락을 한껏 손으로 모은 채 서 있었다.

     

   그러다가 크라슈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젖어든 그녀의 눈이 보였다.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크라슈가 아서에게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서?”

     

   그녀가 왜 이러는지를 몰라 크라슈가 다시금 부른 순간 아서는 손을 폈다가 꽉 쥐었다.

   차마 이 손을 더 펴서는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대신, 아서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자신의 옷깃을 꽉 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선홍빛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어깨가 애처롭게 떨렸다.

     

   대신, 그녀의 입에는 눈물 젖은 웃음이 안타깝게 그려져 있었다.

     

   “……바보야. 누가 크라드야.”

   

   

   

   

     

   곧이어 다음 말을 들은 순간 이번에는 크라슈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크라슈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크라드.

   이는 크라슈가 종종 사용하고는 했던 가명이자.

     

   ‘마곡’, 세계의 틈에서 아서를 만났을 때 사용했던 가명이었다.

     

   크라슈는 커진 눈 그대로 굳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곡에서 있었던 일이 지금 아서의 기억을 통해 전해졌다.

     

   동시에 크라슈는 아서가 기억을 되찾은 시점이 언제인지 눈치챘다.

     

   크라슈가 백염을 사용한 직후.

   아서는 크라슈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설마 아우라에 마곡에서의 일이 그대로 담겨 있던 건가?’

     

   그리고 그게 아서를 만나게 되자 기억의 파편을 채워주게 된 것이고?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상황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크라슈, 나…….”

     

   기억을 되찾은 아서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화르르르르륵!

     

   크라슈와 아서의 머리 위에서 엄청난 광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벨라는 하늘 높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수백 개의 마법진이 서로를 보좌하며 쳐져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하늘 위 터무니없는 크기의 운석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서에게 정신 팔린 틈을 타 아벨라가 수를 꺼낸 것이었다.

     

   “저 미친년이.”

     

   이 섬과 함께 통째로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작정인 걸까.

   크라슈는 이미 상공을 진입한 운석과 이를 불러들인 아벨라를 보았다.

     

   아벨라가 수를 썼지만 이제 저 정도는 크라슈도 벨 수 있다.

   그렇기에 크라슈가 검을 당기자 아벨라는 지팡이를 가볍게 털어내었다.

   그러고는 크라슈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전 세계에 지금 내가 뿌려놓은 분신들이 지금 나와 같은 마법을 썼어.”

     

   하지만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는 눈을 부릅떴다.

   지금 머리 위에 보여준 운석은 크라슈에게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인식시켜 주기 위해 꺼낸 것뿐이었다.

     

   진짜는 다른 곳이다.

     

   “주로 금역의 방어선 쪽이야. 진실은 네 동료인 불사자를 통해 확인해 봐.”

   “이, 개년이!”

     

   입 끝까지 올라온 욕설을 내뱉은 크라슈가 달리려 했다.

   그러나 아벨라는 들어보라는 듯이 그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아벨라는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 부탁을 들어 준다면 분신들의 마법을 해제해줄 수 있어. 이건 내가 약속할게.”

   “개소리 마!”

     

   들어줄 가치도 없는 부탁을 할 게 뻔하다.

   그러니 크라슈가 소리치자 그녀는 자신의 볼을 감싼 채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괜찮아? 이대로 전부 떨어트려 버려도?”

     

   금역 방어선은 어디까지나 금역과 맞서기 위해 형성된 방어선이다.

   당연히 대규모 마법에는 대비가 안 되어 있다.

     

   [ ……저 여자, 진짜로 준비했다. ]

     

   크림슨가든 또한 확인을 마치고, 크라슈에게 전해줬다.

     

   이를 떠올리지 못한 크라슈는 패착임을 짐작하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

     

   금역의 방어선을 인질로 잡을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래는 간단해. 아서를 넘겨.”

   “뭐?”

     

   하지만 다음 말은 크라슈가 생각한 것과 한참 먼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아서를 넘기라니?

     

   크라슈의 얼굴에 의문이 서린 순간 아서가 이미 물 위를 걷고 있었다.

     

   “아서!”

     

   크라슈가 서둘러 그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아서는 크라슈가 잡은 어깨 위에 손을 잠시 대고는 이내 천천히 밀어냈다.

     

   “크라슈, 금역 방어선이 무너지면 금역은 그대로 일반 사람이 있는 곳을 덮칠 거야.”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가 멈칫하였다.

   아서는 진심인 표정으로 크라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서, 아벨라는 널 이용할 생각뿐이다. 이대로 가면 좋은 꼴 못 볼 거 너도 알고 있잖아. 게다가 저 여자는 네가 알던 아벨라가 아니야.”

     

   아서도 아벨라의 진실함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곡에서의 기억을 얻은 아서는 고개를 저어 말했다.

     

   “네가 지키고 싶은 건 내가 아니라 세계잖아.”

     

   다음 말은 크라슈의 말을 턱 하니 막히게 했다.

     

   “걱정 마. 나도 수가 없지는 않으니까. 무엇보다.”

     

   아서는 크라슈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얼굴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회귀는 없어.”

     

   그 말을 듣고, 크라슈의 눈이 커졌다.

   아벨라가 노리는 건 아서가 아니라 회귀다.

     

   생각해 보면 그건 지금의 아서를 자기 손안에 넣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지 않고, 그동안 줄곧 세계 침식의 신으로 아서를 창조하려 했던 건.

   지금의 아서에게 회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서가 회귀를 얻게 되는 시점은 그녀가 20대일 때다.

   그러나 크라슈가 회귀를 빼앗고 도달한 시기는 아서가 14살인 시점이다.

     

   즉, 이 세계선에서는 아서가 회귀를 얻은 시점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아서가 회귀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으려면 회귀를 처음 얻었던 회차가 존재해야만 성립됐다.

     

   바로 이 점이 그녀의 회귀를 지워 버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아서의 현재 나이는 19살.

   그녀는 내년에는 스무 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크라슈는 왜 아벨라가 다시금 아서를 잡아들였는지 눈치챘다.

   아서에게 회귀가 다시금 생길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더불어 아벨라는 크라슈라면 회차의 기억이 이어진 아서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벨라의 노림수에 당했음을 깨달은 크라슈가 부릅뜬 눈으로 가만히 서 있자 아서는 그대로 뚜벅뚜벅 아벨라에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차마 섣부르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금역에 아벨라의 마법이 쏟아지면 끝이다.

     

   다음은 반드시 대비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대비할 방법이 없다.

     

   “아벨라, 마법을 전부 지워.”

     

   아서가 아벨라의 옆에 섰다.

   아벨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지팡이를 휙 휘저었다.

     

   [ ……사라졌다. ]

     

   그러자 크림슨가든의 대답이 돌아왔다.

   확인을 마친 크라슈가 아벨라를 조용히 노려보자 그녀는 아서를 툭 건드렸다.

     

   아서의 몸에 순식간에 주박의 사슬 마법이 나타나 휘어 감아졌다.

     

   그러고는 이내 아벨라가 크라슈를 직시했다.

   크라슈의 눈에는 분노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아벨라를 죽일 것이다.

   그 굳은 다짐이 여실히 느껴졌다.

     

   “크라슈.”

     

   아벨라는 크라슈를 짧게 부르곤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그러자 그녀의 발아래 공간 마법의 모습이 형성됐다.

     

   “네가 금역을 먼저 다 정리하고, 나에게 도달할지. 아서의 회귀가 먼저 생길지.”

     

   그 말을 마치고, 아벨라는 크라슈에게 섬찟한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않아?”

     

   훅!

     

   그 말을 끝으로 아서와 아벨라가 사라졌다.

   동시에 그녀가 쳐두었던 공간 마법도 그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머리 위에 떨어지고 있는 운석은 사라지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궁!

     

   섬을 소멸시키려는 운석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본 크라슈의 이마에는 이미 뿔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벨라아!”

     

   크라슈가 그 이름을 부르짖으며 두 눈에 담긴 분노를 토해냈다.

   그리고 내질러진 크라슈의 검에서 쏟아진 불길이 하늘을 갈랐다.

     

   콰가가가강!

     

   섬에 떨어지려던 거대한 운석을 통째로 갈라 버린 크라슈가 백염 속에서 분노를 태웠다.

     

   아벨라가 아서를 납치해갔다.

   그것도 크라슈를 통해 마곡에서의 기억을 이은 아서를 말이다.

     

   크라슈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궁금하냐고?’

     

   좆까라 그래라.

     

   금역을 전부 정리한 그 날.

   그날이 아벨라의 제삿날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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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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