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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4

       “혹시…!”

       

       유피엘은 서둘러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니나 다를까. 국회의사당이 있는 방향으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피엘의 황망한 시선이 리케와 리케의 할아버지를 향한다.

       

       어떻게 좀 해 보라는 무언의 성토였다.

       

       “언제 수도까지 들어온 거지?”

       

       리케가 중얼거렸다.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여유는 없었다.

       

       입법부가 위험하다.

       

       국회를 빼앗기면 법을 제정할 수도, 나라의 대소사를 논의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 최고 의결기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국가 멸망을 시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리케의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 뭐 하시게요?”

       

       리케가 물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군. 어쩔 수 없다. 할애비가 힘을 써 보마.”

       

       리케의 할아버지는 검찰총장.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제아무리 안 된다고 핑계를 댔어도, 시위대가 국회를 점거하려 하자 유피엘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다른 건 필요 없어요. 르네이 총장님이라도 좋으니 그분의 구속을 풀어주세요.”

       “의원 아가씨도 같이 갑시다.”

       “아뇨, 시간이 부족할 거예요. 르네이 총장님을 세계수 앞으로 데려와 주세요. 그동안 저는 국회로 가서 시위대를 설득하고 있을게요.”

       

       유피엘은 그리 말하고는 로스차일드 저택을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한시가 급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이동속도 증진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마나 고갈증인 유피엘에게 그만한 마력은 없었다.

       

       결국 믿을 건 튼튼한 두 다리뿐이었다.

       

       그러나 유피엘이 도착했을 때, 국회로 향하는 다리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도대체 누가…….”

       

       유피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리 너머로 매서운 연기가 보인다.

       

       그 연기 사이로는 낫과 망치, 그리고 스태프가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유피엘의 고개가 뻣뻣하게 올라간다.

       

       같은 깃발이 국회 건물의 옥상에 십수 개씩 걸려있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다리 근처로 전투의 흔적이 역력하다. 다리는 그을렸고, 의사당 안뜰로는 부서진 골렘이 여러 채 있었다.

       

       “아….”

       

       풀썩.

       

       유피엘의 다리에 힘이 풀린다.

       

       늦었다.

       

       늦어도 한참이고 늦어버린 것이다.

       

       분명히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러진 않았다. 유피엘은 시위대가 이렇게 빨리 밀고 들어올 줄 몰랐다.

       

       ‘그만큼 민중의 분노가 컸던 거야.’

       

       이 정도의 거사를 소수민족 혼자서 이룰 수 있을 리 없다.

       

       필시 국민들의 묵과와 동의가 있었을 터.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세금을 뜯어가는 정부보단 먹을 것을 나눠주는 반란군에게 더 호감이 있었겠지.

       

       노동 문제. 실업 문제. 징세 문제.

       

       따지고 보면 오랫동안 카우렐리아를 곪게 하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가 터져 나온 결과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민심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건 아니잖아.”

       

       분쟁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마왕군과 싸웠던 시절만 하더라도 그렇게나 끔찍했는데, 아직도 이런 걸 겪어야 한다니.

       

       “이런 건 말도 안 되잖아….”

       

       적어도 말로 해결할 문제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에는 양측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여신님, 선생님, 총장님.”

       

       유피엘은 머리를 싸매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제… 전 어떻게 해야 하죠?”

       

       

       **

       

       

       나는 레니냐의 동향을 주시하는 한편, 로테의 논문지도를 해 주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보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카우렐리아의 수도는 개판이 났고, 로테와 나는 첫 번째 실험 목표를 정했다.

       

       “우선은 화력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어.”

       

       핵융합 발전의 첫 단계는 토카막을 만드는 것도, 플레어를 개량하는 것도 아니었다.

       

       흑주.

       

       흑주의 위력을 발전 가능한 수준으로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에서 중성자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감속재를 사용하는 것과 살짝 다르면서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이걸 위해선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한 몇 번 정도의 실험이 필요했다.

       

       그냥 실험도 아니고 대규모 폭발 실험.

       

       로테는 이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안전하게 실험할 만한 장소가 있을까? 저번에 위력을 봤는데, 아렌스 대륙에서 직접 하는 건 안 될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대양 건너 어디 무인도에서 해야지.”

       

       심지어 원격으로 해야 한다.

       

       감마선 폭풍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한다. 내가 만든 핵폭탄에 두 번이나 피폭되고 싶지는 않아.

       

       “좋은 곳이 있어?”

       “앨리스 언니한테 부탁해서 무인도 몇 곳을 찾아 놓았어. 대학원생 로테 양은 걱정하지 말고 논문 쓸 준비나 하시라구요.”

       

       로테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진다.

       

       “와아, 교수님 최고!”

       

       로테의 칭찬을 듣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신체적으로 우쭐해질 나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내 외형은 아직 10살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프레이보다 살짝 작은 키였다.

       

       “그때 만들었던 스크롤 도안은 너한테 줄게. 이 다음은 너 스스로 연구해 봐. 마석을 추가해도 좋고, 마나 회로를 변경해도 좋아. 중간중간 보고서 쓰는 거 잊지 말고.”

       

       나는 로테에게 몇 가지 연구 팁과 주의할 점을 알려줌으로써 이번 주 논문 지도를 끝마쳤다.

       

       어느새 로테는 랩실에 콕 박혀 밤낮없이 연구에 매달리게 되었다.

       

       정말로 숨도 안 쉬고 연구한다.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아무튼.

       

       나도 할 일이 따로 있다. 언제까지고 로테만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정령계를 경유하여 로즈마리가 있는 집무실로 돌아왔다.

       

       에테리아 3대 집정관인 로즈마리는 밤낮없이 일한다.

       

       오늘도 의자에 앉아 끙끙거리고 있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언니, 큰일 났어요.”

       

       끼익.

       

       로즈마리가 뒤를 돌아보며 수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왜?”

       “국회가 따먹혔대요.”

       

       뭐?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무, 뭐, 뭐가 따먹혀?”

       “카우렐리아 국회의사당이 시위대 손에 따먹혔다고요.”

       

       아, 난 또. 뭐라고.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속이 후련하겠어?”

       “이쪽이 어감이 좋잖아요. 자, 보세요.”

       

       로즈마리는 붉은 깃발이 올라간 카우렐리아의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여주며 한숨을 쉬었다.

       

       왜 로즈마리가 선정적인 표현을 썼는지 알 것 같다.

       

       “어때요?”

       “말 그대로 따였네.”

       

       단순히 ‘점령했다’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기둥 몇 개는 박살 나서 주저앉았고, 건물 외벽은 본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훼손됐다.

       

       완전한 파괴.

       

       금안족과 그 뜻에 동조하는 엘프들의 분노를 사진 너머로도 알 것만 같았다.

       

       로즈마리는 스코프를 켠 채로 브리핑을 이어갔다.

       

       “국회의사당이 점령당하기 전 현장에 남아있던 의원들은 전부 브릴뤼움 섬으로 탈출했다고 해요.”

       “그 양반들, 도주하는 건 빠르군.”

       “네. 사법부는 마비됐고, 행정부도 상황은 좋지 않아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대법원이 떨어졌네요.”

       

       뭐야. 뭐가 이렇게 빨라.

       

       “레니냐, 저 아이가 민심을 잘 이용하고 있어요.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노동자나 실업자를 일일이 설득하면서 밥도 주고 잠잘 곳도 제공해 주고 있어요. 평소 정부에 불만이 많던 엘프들은 그 뜻에 찬동하기 시작했고요.”

       “그게 그렇게 간단히 선동될 일이야?”

       “경제가 안 좋으니까요. 빵 사 먹을 돈도 없는데 세금 걷으라고 하면 저 같아도 혁명하겠….”

       “또 왜?”

       “수도방위사령부가 떨어졌어요.”

       “군대가 털렸다고? 시위대한테?”

       

       로즈마리는 쓰게 웃으며 스코프를 뒤틀었다. 화면이 빙글빙글 돌더니,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스코프는 암적색 머리카락을 한 어느 금안족 소녀를 비추고 있었다.

       

       레니냐.

       

       그녀는 낫과 망치로 이루어진 스태프를 휘두르며 카우렐리아 정예병력을 줄줄이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미친. 저게 대체 무슨 무력이야.”

       “하는 짓이 언니랑 판박인데요?”

       “나는 저렇게 마구잡이로 쥐어패고 다니진 않았어. 나름 신사적이었다고.”

       

       괜히 여신이 레니냐 보고 마왕으로 변절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수줍어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카우렐리아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서 로즈마리가 우려했던 일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구천지대계 급은 되겠어.”

       “그러게요.”

       

       나와 로즈마리는 도망치는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망치로 두들기는 레니냐를 심각한 눈으로 관찰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게임 매드무비를 보는 것 같군.

       

       자세히 보니 레니냐가 쓰러뜨리는 엘프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높으신 분만 때려잡고 있잖아.”

       “그러게요. 저기, 방금 결박한 저 사람도 하이엘프예요.”

       

       레니냐의 능력은 소위 ‘높으신 분’일수록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녀가 지닌 스태프의 보정 때문이었다.

       

       아무렴. 구천지대계 상위권인 로즈마리도 공격 한 번에 나가떨어졌는데, 저 사람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어떡하죠 언니? 이대로 가면 카우렐리아가 공산화되고 말 거예요.”

       

       로즈마리는 공산주의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카우렐리아가 공산화되면, 우리 에테리아도 곧….”

       “기다려 봐. 이쪽은 시위대를 도와준 적이 있었잖아? 당장 나쁘게 대하진 않을 거야.”

       

       무엇보다 레니냐가 내 제자다. 유피엘이라면 몰라도, 같은 금안족인 내 말은 들으려 할 것이다.

       

       “정 안 되면 여신님이 나보고 일을 잘 끝맺어 달라고 부탁했어.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진 않게 할 거야.”

       “저, 정말인가요?”

       “그럼.”

       

       두 제자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걸 보고만 있을 만큼 못난 선생도 아니고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현역곤용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10일날 후원해주셨는데 확인을 이제야 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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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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