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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5

       “만화책이구나!”

        

       클레어는 서점에 들어가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만화책 전문 서점이니 당연했다. 뭐, 예전에 이 지역에 있던 서점에 비하면 규모가 축소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문 서점’이라는 말이 아까운 수준은 아니다.

        

       클레어와 앨리스는 이제 한글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아직도 완벽하게 배웠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습득 속도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것에 비해 빠르다고는 하지만, 원래 한 나라의 언어라는 것은 쓰여온 시간만큼 배워도 배워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글자를 읽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편법을 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냥 글자로만 봐서는 모르는 단어가 있다면, 그걸 소리 내 읽으면 귀에는 번역되어 들린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여러모로 이상한 감각이긴 했다. 분명 다른 언어를 쓰는데 귀에는 번역되어 들리고, 집중하여 들으면 또 그게 다른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반대로 내가 아제르나에서 쓰던 언어를 사용하면 내 귀에는 한국어로 들리고.

        

       물론 글자 그대로 읽어도 발음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지만, 오차 범위 안이라면 그럭저럭 괜찮다.

        

       그리고 그런 특성 때문에, 클레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읽기 쉬우니까.

        

       내 방에 있는 것도 거의 다 읽은 모양이고. 생각해보니 만화책 산 것도 한참 되었다. 이쪽 기준으로는 1년 정도 지났지만, 내 개인적인 시간으로는 몇 년이나 흘렀으니까.

        

       “집에 있는 만화책의 후속권이라면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네. 사고 싶은 것으로 골라 보십시오.”

        

       클레어는 눈을 반짝이면서 바로 책장 사이로 들어갔다.

        

       “너무 그러면 버릇 나빠지지 않을까?”

        

       “클레어는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앨리스가 걱정하길래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얼핏 보면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속이 깊다.

        

       약속한 것은 꼭 지키고, 너무 사적인 실수는 하지 않는다.

        

       ‘착한 아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형상화해놓은 것 같은 사람이 바로 클레어였으니까.

        

       “……그런가?”

        

       앨리스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뭐.

        

       ……앨리스 말은 안 들어도 내 말은 듣는 애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니 그 단어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그사이에 내가 모르는 책이 한 두 권 섞여 있다고 해도 비용적으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그보다는……”

        

       내가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앨리스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흘끗거리네. 오전이랑 같아.”

        

       “그렇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돌아다녔던 곳은 특정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닌, 그냥 평범한 공원 아니면 관광지였다.

        

       우리 외모를 보도 ‘외국인’ 혹은 ‘염색한 외국인’ 정도로 생각하지, 만화 캐릭터를 코스프레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말 우연히 우리가 등장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한.

        

       하지만 이곳은…… 서브컬쳐 만화책이나 라이트노벨을 파는 곳이다. 우리를 알아보는 빈도는 일상적으로 다니는 곳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저기……”

        

       그리고,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우리한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안경을 쓴 것만 빼면 꽤 말쑥한 차림의 보통 사람이었다. 나이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려나.

        

       너무 마른 것만 빼면, 그래도 너무 튀는 외모는 아닌 남자였다.

        

       “혹시 코스프레—”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양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코스프레한 사람한테 사진 찍어도 되냐고 부탁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포즈였기 때문이었다.

        

       “예? 아, 네,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 단호한 대답에 그 남자는 얼른 대답하고 허둥지둥 몸을 돌렸다.

        

       가는 곳을 보니 친구들 몇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일행에게 합류하자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그 남자를 놀리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조금 불쌍하다.”

        

       앨리스도 쓰게 웃으며 그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너무 차갑게 잘랐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제대로 거부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명이고 말을 걸 테니까요. 여기 있는 사람 중 우리를 알아볼 사람은 저 사람뿐이 아닐 겁니다.”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앨리스는 굳이 나를 탓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직접 게임을 하고 방송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언니.”

        

       그렇게 앨리스와 함께 기다리고 있으려니, 클레어가 와서 말을 걸었다.

        

       “찾았어. 우리 관련된 책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없는 모양이야…….”

        

       “사실 유명하긴 해도, 구매력이 대단하다고 할 정도의 작품은 아니니까요.”

        

       딱 본편이 수입될 정도의 인기랄까. 만화책이나 설정집을 일본에서 직구해서 읽고 번역했었는데, 아직도 그런 물건들까지 번역, 수입될 만큼 유명해지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런데, 책은 왜 두 묶음으로 나누어 들고 있습니까?”

        

       클레어가 고른 책이 많지는 않았다. 다 해서 일곱 권.

        

       그중에서 다섯 권은 오른손에, 나머지 두 권은 왼손에 들고 있었다. 둘을 붙여 들고 있었기에 양손으로 든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만약 한 번에 들고자 했다면 그렇게 나누어 들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쪽은 언니가 가진 책의 후속권.”

        

       클레어가 오른손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쪽은 내가 보고 궁금해서 고른 쪽이야. 내가 살 거.”

        

       “…….”

        

       나는 말없이 앨리스 쪽을 보았다.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내 말에는 동의하는 것 같았다.

        

       은근슬쩍 섞어서 들고 올 수도 있었는데, 역시 착하다니까.

        

       “전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도 돼?”

        

       “어차피 저도 볼 테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돈이…….”

        

       “책 두 권 더 샀다고 돈이 궁해질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클레어의 손에서 책을 받아들었다.

        

       *

        

       “어땠습니까, 그곳의 분위기는?”

        

       책을 봉투에 담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잠시 걸었다. 기왕 홍대 입구까지 왔으니 주변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오는 거였고.

        

       “꽤 재미있던데? 자기가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는 건 좋은 거잖아. 오히려 그런 특정한 것만 모아서 파는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아제르나에서 ‘취미 용품 판매’ 같은 곳은 찾기 어려우니까.”

        

       하긴 일부 귀족을 위한 장소가 아니면 얼마 없긴 했다.

        

       그리고 보통 그런 장소는 분위기가 너무 무겁기도 했고.

        

       “그렇습니까?”

        

       “응.”

        

       내가 자꾸 물어보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려서, 나는 그냥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녀라는 사람이 미소녀 피규어를 사는 건 좀…… 이라는 마음은 아직 존재했지만, 그걸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그쪽 세상에서는 이런 취미도 아직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로 할까.

        

       이런 시장이 생기려면 어차피 앞으로 50년은 기다려야 할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마음 한구석으로 오늘의 목표를 포기하는 찰나에,

        

       “오!”

        

       클레어가 갑자기 그렇게 외치더니 저 앞으로 가볍게 달렸다.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정확히 내 예상대로였으니까.

        

       이 세계는 아직 가을이었다. 낮에는 비교적 따뜻하고 밤에는 조금 쌀쌀했으니 초가을이라고 해도 될 날씨였다.

        

       바꿔 말하자면, 하늘은 맑고 청명하고, 밖을 돌아다니기는 좋은 날씨라는 소리다. 물론 그렇다고 한여름에 거리공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클레어가 종종걸음으로 걷는 것을, 나와 앨리스는 조금 거리를 둔 채 따라갔다.

        

       “저기는?”

        

       “길거리 공연하는 곳입니다.”

        

       실제로도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사실, 나는 길거리에서 굳이 그런 것을 보는 걸 즐기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뭐 나름대로 좋아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굳이 축제가 열린 곳에 가지 않아도 축제 비슷한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이니까.

        

       그리고 가끔은 정말로 아이돌이 나와서 거리공연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고.

        

       그래도 밖에서 꽤 긴 시간을 서 있어야 하니, 나와는 취향이 맞지 않았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클레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어째 가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통기타를 두드리며 유명하지만 조금은 오래된 가요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노래가 거의 막바지에 다달아 있었고.

        

       남자가 노래를 끝마치자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필이면 정확하게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클레어가 너무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하필이면 우리는 외모도 엄청나게 튀었으니까.

        

       그래도 설마 우리한테 말이라도 걸겠어,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 파란 머리 여자분!”

        

       “네?”

        

       아.

        

       바로 말을 걸어버리네.

        

       “혹시 외국 분이세요?”

        

       클레어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당혹스럽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보는 것이 꽤 기뻐 보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찮겠어?”

        

       옆에서 앨리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클레어나 앨리스, 그리고 내 목소리도, 게임에서 나오는 성우들과 목소리가 같았다.

        

       그리고, 이쪽으로 수입되지 않은 아제르나 전기 굿즈 중에는 ‘캐릭터 송’도 있었고.

        

       보통 이런 류의 게임들은 음치라는 설정이 따로 붙지 않는 이상 캐릭터들은 모두 노래를 잘 부르는 법이다.

        

       클레어 음반도 당연히 있었고.

        

       “한국인입니다!”

        

       클레어가 그렇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마이크를 받고 말하는 중이었다.

        

       클레어의 대답에 주변에서 여러모로 놀라움을 표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저분들도?”

        

       “네!”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으로 시선이 꽂히는 것을 억지로 무시했다.

        

       “그럼, 기왕 이렇게 나오신 김에 노래 한 곡 하시겠어요?”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것도 없죠.”

        

       밝은 클레어의 모습에, 사람들 사이에서도 조금 웃음소리가 들렸다.

        

       “노래는 그냥 제가 아는 것으로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죠. 기타로 적당히 따라 쳐보도록 할게요.”

        

       남자의 말에,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쪽을 한 번 보더니,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괜찮다고 했죠?”

        

       “……그러네.”

        

       물론 클레어가 이쪽 세상의 가요를 부른 것은 아니다.

        

       부른 것은, 따지자면 재즈.

        

       ……미국이라는 나라도 없는데 어째서 재즈가 존재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아제르나에도 있는 장르의 노래였다.

        

       즐겁고 흥겨운 박자가, 클레어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클레어의 노랫소리를 따라, 사람들이 박자 맞춰 박수를 치고, 기타 코드가 따라붙었다.

        

       그리고 노래를 듣던 나나 앨리스도, 어느 사이에 발로 그 박자를 따라 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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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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