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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5

        

         …사각.

         

         잠깐 머릿속 기억과 사이버웨어 상의 데이터를 떠올리며 어휘를 조심스레 고르는 듯.

         

         숱이 무성한 입가를, 세심한 손재주와는 달리 오랜 야전 생활로 다져진 거칠고 투박한 남자의 손가락이 쓰다듬자 특유의 귀 간지러운 소리가 났다.

         

         덥수룩하기보단 날렵하단 인상과 소감이 강하게 먼저 떠오르는, 잘 관리된 멋들어진 슈나이더 씨의 콧수염과 턱수염.

         

         한때는 나도 저런 서구적인 턱수염이나 콧수염을 선망했던 적도 분명 있는데 말이지… 어느새 정신 차리고 보니 무성한 체모와는 굉장히 거리가 먼 체질이 되어버렸네. 쩝, 이상하기도 하지.

         

         “큐볼네 킴이라, 아무래도 근래 진짜 괴물 신인들이 잔뜩 나타나서 그리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 탓에 소문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뭐, 주변인들에게서 한두 마디 나오는 말 자체야 그럭저럭 무난했던 것 같군.”

         

         “흐응…. 그래요?”

         

         흥미라기 보단 사적인 원한…이 깊다고 변명까지 마쳤거늘,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감아 올리며 고개를 까딱이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하여간 서론 자체는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지만, 솔직히 이것만 가지고 함부로 속단하는 건 절대 금물.

         

         저게 아무리 슈나이더 씨가 보고 들은 객관적 사실이라 한들 킴이란 녀석이 계획형 범죄자가 아니란 완전무결한 보증이 되어 주기는 역시 어렵다.

         

         자잘하고 엄밀하게 따지자면 과연 현대인 중에 정신병 환자가 아닌 사람이 있겠냐마는… 단적으로 말해서 놈이 진짜 못돼처먹은 사이코패스일지 누가 아는가!

         

         주도면밀하게. 의도적으로 밑바닥 용병 생활을 지긋이 감내하며 틈을 보다가,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했을 정당한 인물이었던 진짜 익명의 주인공 씨를 뒤에서 푹! 찌르고 그 기회를 독차지한 독종이라면?

         

         평상시의 이미지를 꾸며내고 무해해 보이는 거죽을 뒤집어쓰는 것쯤은 교활한 인간에게 분명 귀찮지만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으리라.

         

         그래, 그게 시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만약 나와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고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다면 킴도 네오 헤이븐에 관해서는 정말 지긋지긋하게 알고 있으리라는 점.

         

         각종 이벤트와 스토리 라인에 대한 정보를 훤히 꿰고 있어 칼같이 치고 빠질 수 있다는 게, 당장 제로 한 기로도 충분히 제압 가능한 뉴페이스 용병의 영향력으로도 상당히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는 것이 거슬린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사고를 쳤어? 에이, 그 정도라면 나름 꽤 귀엽네 뭘~’ 하고 넘어갈 수준의 행동일지언정, 넓고 길게 보는 관점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 일련의 선택들이 될 테니까.

         

         게다가 공허 광물을 몸에 품게 된 만큼 성장 포텐셜과 기반 능력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올라왔을 거고.

         

         결국 신물질의 다양한 연구 가능성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기업들이 자기들끼리 정해진 물량을 뺐고 빼앗다가 지치면… 이번 경우처럼 우연히 민간으로 새게 된 표본들을 더듬어 나가며 필연적으로 그 소유주의 거취에 따라 어떤 액션을 취하게 되는 게 네오 헤이븐의 흐름이었으니.

         

         미래에 대한 모종의 확신이란, 내 이점 하나가 흐트러진다는 짜증보다도. 깨끗한 물에 돌연 떨어진 먹물 한방울이 풀려나가는 걸 묶인 채로 지켜보는 듯한 미묘한 불쾌함이 정말 거슬렸다.

         

         당장에야 ‘일개 용병’의 치기어린 행동이지만, 경력과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온갖 단체들의 의중을 역이용하여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갈 발판 삼는 과정이 될 게 뻔하기도 했고 말이다.

         

         나만해도 안면을 너무 빨리 터버린 죄로 뭐만 좀 했다 치면, 출근길에만 수백 명은 우습게 달라붙어서 경호를 담당하는 아론이나 쇼우 같은 고위 인사가 튀어나오게 되지 않았나?

         

         아직은 거목이 되지 못한 싹에 불과하다며 흔히들 비교하는 경우가 잦아도, 언제까지고 무시해도 괜찮을 리가 없다. 식물과는 다르게 사람은 하루 아침에도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 넘치는 존재이니까.

         

         ……모종의 관계 형성에 성공한 걸로도 모자라, 거래 비슷한 행동까지 끝마쳐서 만나면 시답잖은 사담을 나누게 되는 내 사례랑은 그래도 좀 결이 다르지 않냐고?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어디까지나 비유가!

         

         “궂은일을 주로 담당하는 스틸볼 애들이 강약약강 스타일이 약간 평소 태도에도 깔려 있다면, 그래도 킴 녀석은 꽤 상대에게 예의가 바르고 공손한 편이지. 어쩌면 아샤 양 말마따나 동양적인 교육이 확실한 집안에서 자랐을지도 모르겠군.”

         

         “아, 저도 인종에 대한 확신만 가진 거니까. 너무 그걸 바탕으로 확대해석하실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런 선입견이 남아있어요…? 그거 이젠 진짜 엄청 오래된 편견 같은 거 아닌가.”

         

         “쌓인 데이터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 법이라네. 뭐, 나쁘게 말하면 자기주장이 약해서 같이 움직이기 쉽다고도 할 수 있어서 얼핏 무시당하기 십상처럼 들리지만. ‘전기톱 살인마’ 같은 별명으로 가끔 불리는 걸 보면 아예 강단이나 깡다구가 없는 건 또 아니고.”

         

         “으응… 일단 적어도, 용병 평균 깎아먹는데 일조하느라 바쁜 무뢰배는 아니라는 거네요. 그게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의미에서든.”

         

         이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여전히 확정된 건 없으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그래도 착한 좀도둑이었네~’하고 들뜨려는 마음을 다독여야 하나.

         

         사실 그냥 무지성으로 모든 긍정적인 데이터, 부정적인 시료 가릴 것없이 다 신뢰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며 보류할 거라면 뭐하러 물어봤냐는 소리를 들어도 존나 싸겠지만.

         

         무려 최초 증언을 정성스레 취합하는 와중이니까. 음.

         

         차후 인물상을 교차 검증하는데 써먹을 자료가 차곡차곡 축적되는 거라 생각하면 금방 눈에 띄는 소득이 미미할 뿐 대상에 대한 경험치가 누적되는 건 틀림없지.

         

         거기에 상황과 여건이 심란해서 그렇지, 오랜만에 또 몰입해서 학습할 대상이 생긴 기분은 썩 나쁜 건 아니었대도?

         

         역으로 본인 모르게 양파 껍질 비스무리한 걸 한 겹 한 겹 벗겨 나가며 그 감춘 비밀을 파헤치는 느낌이 꽤나….

         

         …아니, 그나저나. 텍사스 출신은 때려죽여도 절대 아닐 인간이 전기톱 살인마는 뭐야 대체?

         

         역시 그냥 복잡하게 따질 필요없이 어디 나사 하나 잘못돼서 빠진 미친놈 아니야 이거?

         

         나름 괜찮고 싹싹한 녀석이라는 감상 뒤에 가장 먼저 곧바로 나오는 게 저런 무시무시한 단어라니. 아니면 아직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낯간지러운 닉네임 붙이는 걸 좋아하는 용병 감수성이 부족한 건가 난?

         

         왜 이러세요 저한테.

         

         “자네도 익히 겪어 본 도시 바깥의 무법자나 스캐빈저들에 비하면 메트로폴리스는 건달 나부랭이라 해도 지키는 양식미가 있으니까.

         

         대신 뒤에서 깨작거리는 게 하나같이 음습하지. 어디, 이것 말고도 더 깊게 말해줄 부분은… 사실 좀 애매한데. 내 사견이 어느 정도 섞여 들어가도 개의치 않겠다고 했던가?”

         

         편견, 선입견. 얘기 도중에 나온 단어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는지 슈나이더 씨가 괜한 걱정을 하셨지만. 그건 외려 내가 추궁을 모면하느라 한 변명 때문에 깊이 심어진 악인상이 있지 않나 염려해야 할 판이고.

         

         “의견 제시는 오히려 지금 대환영이네요. 아무래도 다양한 소문을 한데 뭉쳐서 본질을 탐구해보려고 하는 형편인지라.”

         

         “…아가씨가 그리 말한다면야.”

         

         

         앞서 헛되이 낭비한 시간만큼 벌충 겸 수고를 덜어주겠다는 듯, 슈나이더 씨는 최선을 다해 알고 있는, 혹은 사실이라 판명된 목격담 내에서 별도의 검증없이 내가 선뜻 믿어도 될만한 정보의 편린들을 계속 말씀해 주셨다.

         

         물론 내가 직접 마주친 게 상당히 최근인 점도 그렇고, 도시 DB를 헤집고 다녀도 먼지 한 톨 안 나오는 것도 그렇고. 킴의 외부 활동한 기간이 짧은 만큼 엄청 획기적인 내용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저울의 균형은 아주 작은 무게 추의 존재로도 흐트러지는 법. 분명 내가 애타게 찾던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어떻게, 음식물에 박힌 성분표 함유량으로 따지자면 못해도 대충 10%? 20% 정도??

         

         에이~ 모 유명한 바나나 우유 상품에도 사실 바나나와 우유 둘 다 안 들어갔는데 맛은 좋았으니까. 성과가 있다는 게 더 중요하지 효율이 별로였다는 게 큰 문제야?

         

         일부러 슈나이더 씨의 시간도 빼앗느라 중간에 뭐 좋은 건수 없나 찾으러 온 용병 몇몇을 눈빛으로 내쫓아 버리기까지 하셨는데.

         

         내가 주머니에 찔러주었던 1억 자체는 아무래도 낭비없이 유효하게 정착지원금으로 잘 활용하여 업계에 무사히 녹아 든 정황이라든가.

         쓸데없이 과하게 나대는 성정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하면 싸우는데 일부 공구류(?)를 거리낌없이 쓸 정도로 굉장히 손속이 매섭다든가.

         가령…… 어느 날 킴이 선뜻 먼저 이곳 술집에, 정확히 큐볼에게 찾아와서 되도 않는 흠모의 칭찬과 함께 입단 얘기를 꺼낸 이래로 스틸볼 용병단 소속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든가.

         

         “와아~ 진짜요?”

         “묘하게 비꼬는듯한 말투구만? 하긴 아가씨도 알아서 해결할 방법을 강구했으면 했지, 그리 아부하는 타입이 아니기는 하지.”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예.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나 아주.

         

         킴 이 자식 다 알고 처음부터 잡을 동아줄을 확실히 정해놓고 움직였거나, 아니면 엄청난 우연을 통해 기가 막히게 정석에 가까운 루트로 뒷배경을 완성했던가. 애매한 확신범이 따로 없을 노릇이다.

         

         오케이, 너 이 새끼. 다른 자잘한 건 다 모르는 일이라 치더라도 가볍게 최소 마이너스 2점.

         

         우선 모종의 스케줄 따라 행동했다는 데에서 그것 자체만으로도 마이너스 2지만, 나름 착실히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인상은 받았으니 플러스 1만큼 상쇄.

         

         대신 꽤 열정적으로 살았다지만, 내가 교차 정보를 남기지 않고 지웠을지언정 해커 커뮤니티 명함을 제외하면 양지와 음지의 신분을 완전히 숨기고 사는 것도 아닌 만큼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연락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외면했다는 의심스러운 기색에 다시 마이너스 1점.

         

         주상복합단지 거주자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던, 블랙마켓 하이엔드 해커 용병 아이보리던.

         

         하다못해 광고 모델 A양으로라도 어떻게든 컨택을 시도하거나 감사의 메모를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여태 은근히 고개 돌리고 모른체하던 게 생생히 느껴져서 신경 쓰이잖아.

         

         생색내려는 게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신세라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려고 기껏 준비했는데, 무슨 악마라도 잘못 마주친 것처럼 도망친 게 괘씸하다고!

         

         그것도 어차피 이렇게나 화려하기 그지없게 돌아올 거였으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단서 1, 미스터 슈나이더의 증언을 획득하였다!

    킴에 대한 제로의 평가는 안타깝게도 ‘아나스타샤를 며칠이나 밤새게 만든 죄 및 컨디션 불량을 유발한 책임’으로 마이너스 만 점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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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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