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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5

   아벨라가 아서를 데려갔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봐야 했던 크라슈는 분한 얼굴이었다.

     

   ‘차라리 거기서 아벨라를 쓰러트려야 했을까.’

     

   모르겠다.

   아벨라의 마법이 금역 방어선에 떨어졌다면 그건 그거대로 끝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떠나던 아서의 얼굴이 크라슈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치, 자신은 괜찮으니 네가 할 것을 하라는 표정이었다.

     

   “찍찍!”

     

   그 순간 시체쥐가 크라슈를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크라슈는 숨을 내쉬며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크림슨가든, 아벨라의 위치 계속 쫓을 수 있겠어?”

     

   크라슈가 묻자 크림슨가든의 까마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래, 아카샤식 문자의 틈을 역이용해서 녀석이 다루던 세계 침식 구슬에 추적 마법을 걸어놨다.”

     

   더불어 이쪽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아벨라가 들고 있던 그 구슬.

   크라슈는 그 구슬이 무엇을 뜻하는지 뒤늦게 눈치챘다.

     

   예전에 익시온이 짜놓은 계획서를 크라슈도 살핀 적 있었던 덕분이다.

   그건 결국 끝끝내 완성되지 못했지만, 녀석들이 적어둔 명칭만큼은 기억이 난다.

     

   ‘세계 침식의 신을 부활시킬 성배, 초월석.’

     

   그동안 모아온 수많은 재료와 비술의 집약체다.

     

   ‘익시온은 본디 초월석에 최흉의 씨앗으로 폭주한 세계 침식의 힘을 모을 생각이었을 거다.’

     

   하지만 크라슈의 방해로 인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렇지만 아벨라는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어.’

     

   그건 아벨라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크라슈도 아벨라와 지낸 시간이 있다.

   눈치 빠른 크라슈답게 아벨라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을 크라슈 또한 알아챘다.

     

   크라슈는 바다 위를 천천히 걸으며 차분히 조합된 정보를 모아 나갔다.

     

   아벨라는 초월석을 이용해 세계 침식의 힘을 딱히 모으려 들지 않았다.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고, 아서를 회귀 꼭두각시로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적일 터.

     

   ‘그런데도 세계 침식의 힘에 관심 없이 굴었던 건.’

     

   크라슈는 천천히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있었던 모든 단서가 이 순간 크라슈에게 이어지며 진실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미친년이.”

     

   크라슈가 모든 것을 깨닫고 자기 입을 감쌌다.

     

   아벨라는 그동안 크라슈가 무수히 일을 방해했음에도 크라슈를 막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힘과 능력이 갖춰져 있었음에도 말이다.

     

   크라슈는 이를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과 자신이 예상외로 너무 빠르게 강해진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맞부딪쳐 보니 알겠다.

   아벨라는 분명히 예전이었다 하더라도 크라슈를 손쉽게 잡아 죽일 수 있었다.

     

   더불어 크라슈의 곁에 있는 인물들도 능히 건드릴 수 있었다.

     

   회귀 전과 달리 지금의 크라슈에게는 여러 약점이 존재한다.

   인연으로 이어진 이들이 무수히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벨라는 크라슈도 그의 주위 인물들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나를 방해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벨라는 세계를 넓게 볼 줄 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마법사답게 그녀의 행동 방식은 늘 예상을 깼다.

     

   그리고 지금 아벨라는 또 예상을 깨는 짓을 했다.

     

   ‘내가 세계 침식의 힘을 담는 성배다.’

     

   크라슈는 지금까지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해왔다.

   세이블에 쌓인 세계 침식은 엄청난 양이다.

     

   앞으로 크라슈가 모든 금역을 흡수한다면.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할 만큼 모일 거다.’

     

   크라슈가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나서.

   아벨라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크라슈를 내버려 둔 것이다.

     

   변수가 많은 익시온들로 인해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보다.

   익시온을 무너뜨리고, 크라슈에게 모든 세계 침식의 힘을 집중시켜 놓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썅.”

   “무언가 눈치챈 것이라도 있느냐?”

     

   크림슨가든이 크라슈를 보며 의문스레 물었다.

   크림슨가든은 아벨라의 의도를 읽지 못했다.

     

   이는 순전히 크라슈의 타고난 눈치와 아벨라와 함께 해왔던 과거의 경험이 겹친 끝에 도출할 수 있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훨씬 골치 아프게 됐어.”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에게 알게 된 것을 전해줬다.

   그러자 크림슨가든의 까마귀도 황당하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였다.

     

   “미친 여자로군.”

     

   딱 그 말대로다.

   어쨌든 상황이 굉장히 복잡하게 됐다.

     

   ‘금역은 어찌하지?’

     

   아벨라는 크라슈가 모든 금역을 흡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만 모든 힘이 모이니까.

     

   이를 위해서라도 크라슈는 금역 흡수를 멈춰야 할 테지만.

     

   ‘금역의 흡수를 멈추면.’

     

   결국 최흉이 피어나 묵시록의 기사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이 나타나면 세상은 정말로 끝장이다.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럼 지금 당장 아벨라를 친다?’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쫓아봤자 아벨라는 이번에도 금역의 전선을 노리려 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손과 발이 전부 묶인다.

   최소한 이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고 난 뒤에 움직여야만 한다.

     

   ‘하물며.’

     

   크라슈는 자기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크라슈는 아벨라와 마주한 순간 깨달았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아벨라를 꺾을 수 없음을 말이다.

     

   크라슈는 아벨라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금역을 더 흡수해야 한다.

     

   크라슈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이래도 저래도 아벨라의 뜻대로 상황이 굴러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젠장.’

     

   크라슈가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마곡의 기억이 이어진 아서가 기꺼이 희생했다.

   그것을 눈앞에서 봤는데도 크라슈는 이 일을 해결할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분노만 해서는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

     

   크라슈는 감정을 다스렸다.

   그리고 차분히 그동안 있었던 일을 되새겨 가기 시작했다.

     

   ‘어딘가 이번 일을 해결할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세세하게 기억하는 건 크라슈의 특기다.

   그러니 크라슈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되새겨 나갔다.

     

   그 고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하늘이 저물고 밤하늘에 별이 박혔다.

     

   금역으로 급한 상황임을 알지만.

   무턱대고 금역을 지워봤자 아벨라의 뜻대로 될 뿐이다.

     

   그러는 순간.

   크라슈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서와 마곡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생각난 게 있었던 덕분이다.

   크라슈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가능하다.

   하물며 아벨라의 계획을 어그러뜨리고,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대한 수다.

     

   하지만.

   이 일을 마치게 된다면 크라슈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힘이 소멸할 것이다.

     

   목숨이 간신히 붙어 있는 게 고작이겠지.

     

   ‘그렇구나.’

     

   크라슈는 자기 손을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에서 피어오른 백염이 선명하게 타올랐다.

     

   ‘마곡은 이 사실을 눈치채고, 내게 그날을 보여준 거였어.’

     

   아서가 회귀하듯 세계 또한 수많은 세계선의 기억을 품고 있다.

   그리고 세계 또한 멸망에 맞서기 위해 무수히 많은 세계선을 반복하고 있었다.

     

   세계가 세계 침식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아우라.

   이러한 아우라는 크라슈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세계를 지켜야 할 때 네가 마지막에 해야만 하는 선택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크라슈는 이 순간 세계가 마곡에서 아서와 마주하게 해준 이유를 깨달았다.

     

   크라슈가 천천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별이 제각기 다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중 하나의 별, 천추성.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이다.

     

   그 별을 잠깐 보던 크라슈는 짧게 웃었다.

     

   “그래도 가장 환하게 빛나긴 하네.”

     

   크라슈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평생을 멸망을 막기 위해 쌓아온 힘이다.

   그 힘을 멸망을 막는 것에 쓰겠다는데 무슨 아쉬움이 남으리.

     

   회귀와 여러 인연을 통해 얻은 자리에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자신의 별빛이 사라질지언정 그 별빛의 잔적을 품은 무수히 많은 별이 누구보다 선명하게 빛나줄 테니까.

     

   크라슈는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창공의 세대는 반드시 날아오른다.

   이제 그 앞에 자신이 없더라도 그들은 날아오를 수 있다.

     

   ‘처음부터 유리 대포였으니.’

     

   마지막까지 유리 대포답게 해봐야지.

     

   “크림슨가든.”

     

   크라슈는 밤하늘을 보던 얼굴을 천천히 내렸다.

     

   “남은 금역을 처리한 후, 널 만나러 가야겠다.”

     

   크라슈가 크림슨가든을 넘어설 수 있는 시점은 앞으로 그때밖에 없을 테니까.

   크림슨가든이 까마귀의 눈으로 크라슈를 잠깐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날개를 퍼득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마음대로 하거라.”

     

   그녀는 더 이상 크라슈의 앞길에 관여하지 않았다.

   자기 제자가 선택한 일을 존중해줄 뿐이다.

     

   무수히 많은 밤하늘 아래.

   크라슈는 그렇게 또다시 금역을 향해 나아간다.

     

   그 끝에 설령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였다.

     

     

   * * *

     

     

   이카루스와 함께 크라슈의 금역 공략은 계속됐다.

     

   크라슈와 이카루스가 금역을 클리어하는 만큼.

   세계는 더더욱 다른 금역에 인원을 보다 배치할 수 있었다.

     

   남은 금역의 폭주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가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일까.

     

   각 국가에 존재하던 외교 문제와 정권 다툼 등.

   그런 것들이 일체 사라졌다.

     

   그저, 다들 금역을 막는 데 모든 힘을 총동원한 것이다.

     

   그만큼 국가 위기 사태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국가들은 당분간 국경 개념을 풀었다.

     

   한 국가가 금역에 밀리면 즉시, 다른 인근 국가에서 지원을 보내거나 난민을 받아줬다.

   이는 역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계가 한마음으로 모이고 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

   한 번 그렇게 되고 나니 세계는 정말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크라슈가 있었다.

     

   전 국가에서 반기는 인물인 크라슈가 주도하여 움직인 만큼.

   다른 국가들도 평민들의 반발 없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나갈 수 있었다.

     

   전국가가 온전히 금역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

   이는 역사 속에 유일한 세계의 합일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속.

   크라슈는 꿋꿋하게 금역을 나아가고 있었다.

     

   최흉의 씨앗이 피어오른 금역은 나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카루스에서도 꾸준히 부상자가 나오고, 간혹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크라슈가 깊게 연을 닿은 이들은 무사했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생각이겠지.’

     

   하지만 크라슈는 이를 딱히 나무라지 않았다.

     

   이미 멸망하는 세계를 두 눈앞에서 보며 모든 걸 잃어 보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의 손안에 쥔 것은 더는 잃고 싶지 않았다.

     

   크라슈는 끊임없이 금역을 나아갔다.

   최흉의 씨앗을 블랙 후드로 훔치고, 빼앗고, 나아가고.

   이것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덧 또다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크라슈가 벌써 19살이 되는 해였다.

   그만큼 세계는 무척이나 치열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세계였기에 창공의 세대는 더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수없이 쌓을 수 있는 실전 기회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꽤 많은 이들이 회귀 전에 불렸던 별호로 불려가기 시작했다.

     

   “크라슈.”

     

   크라슈가 부름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자신을 따라오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본 크라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거의 다 끝났다.”

     

   남은 금역은 단 두 개.

     

   하나는 거인의 숲.

   다른 하나는 크라슈가 과거에 쓰러트린 아가레스가 있던 마경이다.

     

   최흉이 폭주하고 있는 두 곳.

   이 두 곳을 닫기 위한 크라슈가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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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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