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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5

       한번 끓어오른 분노는 쉽게 삭일 수 없다.

       

       그동안 받았던 차별이 울분으로 변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공산군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이건 숙명이다.

       

       역사의 흐름이었으며, 카우렐리아가 맞이해야 할 다음 단계였다.

       

       공공복리를 위한 일이었다. 레니냐는 낫을 휘두르며 신념을 덧칠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헤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몇 번이고 전투를 치르자 더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스릉.

       

       “삼촌이랑 총장님을 풀어 줘.”

       

       레니냐는 미처 도망치지 못한 검사에게 스태프를 겨누며 차디찬 목소리로 말했다.

       

       “으, 으으….”

       “내 말 못 들었어? 삼촌이랑 총장님 풀어 달라고. 검사면 구속영장 취하도 가능할 거 아니야?”

       

       협박은 쉬이 통하지 않았다. 검사가 긴장한 나머지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또 허탕이다.

       

       비교적 온건한 대화 창구는 모두 막혔으니, 이젠 더욱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목표를 성취할 수밖에.

       

       “다음 목적지는 어디가 좋을까요?”

       

       블랑카가 다가와 물었다. 그 태도가 이전보다 훨씬 더 겸손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러 차례의 전투를 통해 레니냐는 네임드가 되었다. 언제나 선두에 서서 군과 경을 마구잡이로 휘젓고 다녔다.

       

       이길 수 없는 병력차를 단숨에 뒤집었다.

       

       1천년 전, 마왕 파르켈수스가 그러했듯이.

       

       블랑카를 비롯한 시위대의 모두가, 그런 레니냐의 모습에서 영웅의 편린을 보았다.

       

       심지어 레니냐는 알게 모르게 민심을 얻어내는 것에도 능통했다.

       

       남부 플로반스부터 수도 메르헤름까지.

       

       두 지역 사이에 자리한 도시를 하나둘씩 제압해 오면서 시민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는 법이 없었다.

       

       약탈을 하기는커녕 나누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줬다.

       

       노숙자에겐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했다.

       

       정부가 공약으로만 내걸고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일을 레니냐와 금안족의 시위대가 대신 해 주고 있었다.

       

       “레니냐 동무는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을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반란군… 아니, 혁명군의 진격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배고프고 절박한 사람에겐 세금을 뜯어가는 엘프국 정부보다 빵 한 조각이라도 주는 혁명군에게 호의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혁명 성공까지 앞으로 두세 걸음.

       

       이제는 정말로 시간문제였다.

       

       “중앙교도소를 점거하라.”

       

       와아아아!

       

       무장한 시위대가 교도소 안뜰로 들이닥친다. 그들의 머리 위로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마수놈들이 들어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곳을 사수하라!”

       

       수도방위군을 맡은 만토버 장군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수도 정예부대의 마지막 남은 장군이었다.

       

       “죽기 싫으면 비켜.”

       

       레니냐가 낫을 치켜들었다.

       

       매서운 살기였다. 겁부터 집어먹은 병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얼 물러서느냐.”

       

       만토버 장군이 호통을 쳤다.

       

       “지금부터 도망치려는 자는 탈영으로 간주하고 군법에 따라 즉결 처형하겠다. 겁먹지 말고 모두 힘을 모아라. 제아무리 강력한 적이라도 화력을 집중하면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병사들을 독려하긴 했지만, 사실 만토버 장군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병력만으로는 저 레니냐인가 뭔가 하는 여인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전투에 변곡점이 필요한 때였다.

       

       “그 병기를 가져와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골렘 한 채가 병사들 앞으로 투두두두 굴러왔다.

       

       정갈하고도 정교하게 움직이는 무한궤도.

       

       전신은 단단한 강철로 중무장했으며, 머리 부분에는 쇠파이프처럼 길게 뻗은 포신이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골렘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자, 장군님. 이건…?”

       

       “탱크라는 것이다. 마왕군 잔당에게 노획한 것을 개량했지. 저놈들 상대로도 유효할 것이다.”

       

       골렘의 머리통이 드드득 돌아갔다. 이어서 레니냐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포신의 고각을 조절한다.

       

       “블랑카.”

       

       탱크와 마주친 레니냐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 실력을 보여줘.”

       “그러죠.”

       

       블랑카는 수상쩍어 보이는 스태프를 들고 나타났다.

       

       봉처럼 기다란 모양에, 끝부분에는 원추형의 폭탄이 달린 무기였다.

       

       블랑카는 그 무기로 탱크를 겨냥하며 씩 웃었다.

       

       만토버 장군의 온몸에 순간적인 소름이 돋았다.

       

       “발포! 발포하라! 지금, 당장! 발포해!”

       

       그러나.

       

       늦었다.

       

       혁명군의 진영에서 먼저 불꽃이 뿜어졌다.

       

       콰아아앙─!!

       

       골렘의 앞으로 맹렬한 화염이 피어오른다.

       

       전열을 구성하는 병사들이 충격파에 날아가며 이곳저곳을 뒹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크윽!”

       

       만토버 장군도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대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자, 장군 각하!”

       “컥, 커헉! 뭐냐!”

       “놈들이 우리 골렘을 파괴했습니다!”

       

       알 수 없는 마법에 맞은 골렘은 그 머리통이 이미 달아난 뒤였다. 궤도는 군데군데 끊어졌으며, 전면장갑에선 자그마한 연기가 수 갈래로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블랑카는 다 쓴 스태프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철컥.

       

       또 다른 스태프를 꺼내 장전했다.

       

       “반동 새끼들. 한 발 더 간다.”

       

       그녀의 입매가 기괴하게 뒤틀린다.

       

       “이것들아, 당장 정신 차려라.”

       

       만토버 장군은 정신을 잃은 병사들을 직접 때려가며 깨웠다. 달아나려는 병사 몇 명은 그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 사살했다.

       

       남은 이들을 겨우 수습해 대열을 유지하도록 했으나 마도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만토버 장군은 로열 계층이었지만, 그가 지휘하는 병사들은 본래 평범한 국민인 자들이다.

       

       죄 없는 병사들이 구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레니냐가 최후의 교섭을 시도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삼촌이랑 총장님을 풀어 줘.”

       “이, 이 빌어먹을 마왕군 새끼들이….”

       “그래. 결국 끝까지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교섭은 즉각적으로 결렬.

       

       더는 할 이야기도 없었다.

       

       이들 상대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레니냐는 십수 번의 전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이상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레니냐가 교도소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격.”

       

       

       **

       

       

       같은 시각.

       

       금안족의 시위를 방관하거나 묵인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고 있던 세실 르네이 총장은 검찰총장의 권한으로 구속에서 풀려났다.

       

       경찰의 인도를 받아 간만에 햇빛을 본 세실은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괜찮으십니까?”

       

       그녀는 자신을 부축하던 경찰의 손길을 툭 쳐내며 입술을 꽉물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총장님을 찾고 계십니다.”

       “알고 있어요.”

       

       세실은 어둑하게 내려앉은 하늘을 보며 한탄했다.

       

       사대정령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그녀였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에도 정령과 교감함으로써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세실이 내린 결론이란 암담했다.

       

       “카우렐리아도 이제 끝이야.”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지점이 수도 없이 있었다.

       

       최소한 대전쟁 이후 금안족 차별 정책을 펼치지만 않았더라도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모든 기회를 날려먹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세실은 이 나라를 사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세실은 세계수가 자리한 브릴뤼움 섬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얼마 전 성목이 된 세계수 아래로 피난을 온 고관대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르네이 총장!”

       

       여당 의원 하나가 그녀를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잘 오셨소. 우리 잠깐 얘기 좀 나눕시다.”

       

       세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의원님께서 왜 이런 곳에 계십니까?”

       

       그러자 의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한다.

       

       “모르시오? 반란군 놈들이 국회를 습격했소. 그 때문에 이리로 피난을 온 것이오.”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뭐란 말이오?”

       “그 자리에서 시위대를 맞아 해명할 건 해명하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빌었어야죠.”

       

       세실은 의원을 지나쳐 세계수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면식이 있는 야당 의원이 다가왔다.

       

       “총장님, 화 좀 푸십시오.”

       “저는 화 안 났습니다. 화가 난 건 지금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죠.”

       “이번 일에 대해선 저희도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은 어느 상황에서든 정당화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세실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 권력 앞에선 여당과 야당이 똑같구나….”

       

       마지막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 각처의 장관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총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얼 하면 되나요?”

       

       대통령이 세계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선 신목을 통해 여신님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여쭈어볼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는 제정분리 국가라면서요?”

       “이럴 땐 뭐라도 잡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이젠 대통령은 넉살 좋은 웃음을 피웠다.

       

       세실의 눈이 한때 푸르게 변했다. 그러다가 다시 붉은색을 띠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잠잠한 묵빛으로 돌아왔다.

       

       “알았어요. 해 볼게요.”

       

       세실은 세계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 앞에는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어느 여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총장님.”

       

       유피엘 피어바인이었다.

       

       어떻게든 세실을 꺼내는 데 성공한 유피엘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꽃피었고,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세실은 유피엘에게만 느긋하게 웃어주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고생했어. 잠깐 쉬고 있으렴.”

       

       세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피엘은 정신을 잃었다. 오늘 하루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체력이 다한 그녀였다. 버틸 힘이 남아나질 않았다.

       

       “후우.”

       

       심호흡 한 번.

       

       국가수장을 비롯한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세실은 세계수와 마력을 링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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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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