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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6

       “와, 노래 정말 잘 부르시네요. 어디서 배운 노래인가요?”

        

       클레어가 노래를 한 곡 끝낸 뒤, 원래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물었다.

        

       뭐, 대답해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이쪽 세계에는 없는 노래—

        

       “인터넷이요!”

        

       —였구나, 응.

        

       다시 생각해보니 이 둘이 이쪽 세상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으니까.

        

       인터넷으로 노래를 배울 시간은 충분히 있었으리라.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 재즈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 때문에 생긴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르였다. 아제르나에도 비슷한 장르가 있긴 하지만, 아마 음악적으로 따져보면 이쪽 세상의 재즈와는 다르겠지.

        

       나는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함께 온 자매분들도……?”

        

       남자가 목소리에 은근히 기대감을 담으며 우리 쪽으로 시선을 보내길래, 나는 얼른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앨리스도 격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 조금 아쉽네요. 노래 잘 들었습니다. 혹시 이름이라도 말씀해주시겠어요?”

        

       “클레어입니다!”

        

       주변이 조금 웅성거렸다.

        

       그야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한 애가 갑자기 외국식 이름을 밝혔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이상하게만 생각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 중 나 같은 오타쿠가 있었다면 클레어를 보고 ‘클레어 팬그리폰’ 혹은 ‘클레어 그레이스’를 떠올렸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외국에서 귀화한 한국인이라고 알아서 생각해줄 테니까.

        

       “네, 그럼, 좋은 노래 들려주신 클레어 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조금 상기된 얼굴의 클레어는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즐거웠습니까?”

        

       “응!”

        

       나도 이쪽 세상으로 돌아온 뒤 나름대로 이 생활을 즐기고 있고, 앨리스도 마음 편하게 있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 세계를 가장 확실하게 즐기는 사람은 클레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래 주어서 나는 정말 고마웠다.

        

       “노래 부르는 것, 좋아했습니까?”

        

       캐릭터 송은 있었지만, 게임에서 클레어가 직접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특정 캐릭터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한 번쯤 나올 만도 했는데.

        

       “아제르나에서는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가진 의문을 앨리스가 대신 물어봐 주었다.

        

       “아, 그게, 아무래도 귀족으로서의 체면이 있었으니까.”

        

       ……그런가.

        

       한국에서야 특정한 예술계 직업이 천대받던 시기가 있었지만, 아제르나에서는 정확히 어떤지 잘 모르겠다.

        

       서양에서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혹은 유명 지휘자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태양왕 루이 14세가 젊었던 시절 발레를 했었다는 이야기 같은 걸 생각하면 마냥 천대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하긴, 서양이 배경이라고 하더라도 아제르나는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다르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귀족이 어디서 노래를 부르려고 해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하기는 했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목청껏 고래고래 소리 지르듯 부르는 경우는 없겠지. 그건 확실히 체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노래, 원 없이 불러보시겠습니까?”

        

       “어?”

        

       “근처에 노래방이 있습니다. 마침 저녁 시간까지는 시간도 꽤 남아있으니, 거기서 시간을 조금 보내는 것은 어떠시겠습니까?”

        

       “오, 정말?”

        

       클레어의 얼굴이 밝아졌다. 더 밝아질 수도 있는 거구나.

        

       혹시 몰라 앨리스 쪽을 보았더니,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쪽도 노래 부르는 걸 별로 즐기는 성격은 아니란 말이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친구들이 노래방 가자는 것도 죄다 거절할 만큼 노래 부르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딱히 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시끄러운 것도 싫어하고, 무엇보다 그 ‘인싸 같은’ 분위기가 나와 심히 맞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카페 같은 곳에 죽치고 앉아 이야기나 하거나, 술집 들어가서 노가리나 뜯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뭐.

        

       이렇게 부르고 싶다는데.

        

       한 번쯤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도 되지 않을까.

        

       *

        

       “언니, 빨리, 빨리.”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에 하나가 빨리 빨리라는데, 아마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손에 마이크를 들게 된 이유는, 먼저 몇 곡 정도 부른 클레어가 억지로 쥐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음…….

        

       만약 이곳이 회사 회식 자리였다면 나는 진짜로 정색했겠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은 나의 상사가 아니라 자매들이었다.

        

       어쩌다가 결국 친구들한테 끌려갔을 때도, 분위기 맞추느라 한두 곡 정도는 부르곤 했으니, 뭐.

        

       다만—

        

       “미리 말하는데, 저는 노래는 잘 못 부릅니다.”

        

       “괜찮아. 모든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아니잖아.”

        

       “어차피 즐기려고 모인 자리이니 그냥 마음껏 불러.”

        

       클레어는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노래 한 곡 부르지 않고 손뼉만 치고 있는 앨리스가 저렇게 말하니 몹시 얄미웠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앨리스는 시선을 슬쩍 돌렸다.

        

       좋아.

        

       내가 먼저 부른 다음에는 앨리스한테 억지로 마이크를 넘기든가 해야지.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내가 가장 많이 들어봤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아제르나 전기 전작의 오프닝 곡이었다.

        

       스트리밍 사이트 음원으로 열심히 듣고 다녔는데.

        

       가사는 못 외웠지만, 노래방 기계에 가사가 나오니까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곡조가 귀에 익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대충 한 곡만 부를 생각으로 노래를 고르고 실행하자, 클레어와 앨리스의 얼굴에 이해의 빛이 번졌다.

        

       음.

        

       오타쿠 친구들이랑 노래방 왔을 때의 기분을 이 둘한테서 느낄 줄은 몰랐는데.

        

       뭔가 동족을 늘린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괜찮을까? 남작가의 영애와 한 나라의 황녀를, 그것도 차기 황제가 될 사람을 오타쿠로 만들어도?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도?

        

       …….

        

       이미 늦었으니 어쩔 수 없나.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첫 소절을 불렀다—

        

       —어?

        

       “뭐야, 언니, 잘하잖아!”

        

       “부끄러워할 정도는 아닌데?”

        

       클레어와 앨리스 두 사람이 그렇게 반응했다.

        

       확실히 그랬다.

        

       내가 부르면서도, 꽤 높은 음의 음정을 틀리지 않고 시원하게 부르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럴 수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아.

        

       그렇구나.

        

       이런 게임에서는 성우들을 고를 때 어느 정도 노래 잘하는 성우를 고르는 경우도 있다. 캐릭터 송 같은 것을 뽑아 팔려고 말이다.

        

       물론 아예 노래를 못 부르는 것을 아이덴티티로 하거나, 정 안 된다면 기계로 만지거나, 아니면 노래 자체를 음정보다는 나레이션이나 박자감에 집중해서 만든다.

        

       하지만, 아무래도 실비아의 성우를 맡은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르는 쪽이었던 모양이었다.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클레어와 앨리스는 열심히 응원해주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노래 한 곡을 완벽하게 부를 수 있었다.

        

       “…….”

        

       “언니?”

        

       “왜 그래?”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도 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자, 클레어와 앨리스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물어왔다.

        

       “앨리스.”

        

       “응?”

        

       “노래 한 곡만 해 보십시오.”

        

       “어어?”

        

       내가 다짜고짜 마이크를 넘기자, 앨리스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쪽에 와서 들어본 노래가 있습니까?”

        

       “어, 응, 있긴 하지만…… 갑자기 왜?”

        

       “한가지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 ‘생각난 것’이 있었다.

        

       “……응?”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내가 있는 힘껏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자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앨리스가 부른 노래는, 아마 요즘 유행하는 최신곡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잘 불렀다.

        

       캐릭터 송이 나왔던 인물답게.

        

       그렇구나.

        

       그러니까, 우리 세 명은 이론적으로 ‘앨범을 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부를 수는 있다는 소리였다.

        

       이건 써먹을 수 있겠는데.

        

       물론 그걸 바로 써먹을 생각은 아니다.

        

       녹음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특히 방송 중에 적당히 부르는 것이나, 영상을 따로 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마이크로는 조금 어렵다고 할까. 음질이라던가, 녹음환경이라던가.

        

       게다가 노래를 녹음한 뒤 올릴 영상도 꽤 그럴싸해야 했고.

        

       무엇보다 노래에는 저작권이 있어서, 커버 곡으로는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한몫한다. 홍보가 되고 화제가 될 수는 있지만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길래 그렇게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어?”

        

       노래를 끝낸 앨리스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완벽하게 무표정이었는데?

        

       물론 앨리스라서 읽을 수 있었던 거겠지만.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네가 우리한테서 뭔가를 끝까지 숨기기만 한 적은 없었으니까.”

        

       언젠간 말하기는 할 거다. 다만 괜히 기대만 시키고 실행하지 않게 될까 봐 말을 아끼고 있었을 뿐.

        

       방송이라는 게, 막상 해 보니 꽤 재미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계속 생겨났고.

        

       “그럼, 슬슬 저녁 먹으러 갈까요. 함박스테이크는 어떻습니까?”

        

       내 말에 싱글벙글 웃는 클레어와 그런 클레어를 보며 쓰게 웃는 앨리스를 데리고 그대로 식사하러 나갔다.

        

       식사는 맛있었다. 돌아오는 전철에서도 우리는 즐거웠다. 오늘 하루가 무척 알찼으니까.

        

       그리고—

        

       “……결국엔 진짜로 하는 겁니까?”

        

       “방송에서 써먹지 않으면 너무 아쉽잖아? 상품 포장을 뜯는 건 처음밖에 기회가 없다고?”

        

       “…….”

        

       어째 피규어 상자를 들고 웃는 것이 여러모로 참 오타쿠 같았지만, 말한다고 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인적으로 함박 스테이크는 좋아합니다만, 먹을 때마다 양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지난번에는 동네에서 함박 스테이크를 먹고 배가 차지 않아 갈비탕을 한그릇 더 사먹고 빵까지 두 개 사 먹었다니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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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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