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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6

       파아아앗!

       

       세계수가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 주위로 아스라한 빛 알갱이가 흘러나오며 여신의 기척이 감돌았다.

       

       “연결됐어요.”

       

       세실은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죄를 고하는 사람처럼 두 손을 모아 신앙을 표출한다. 비록 세실에게 이렇다 할 신실함은 없었지만, 현재 조국을 구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만큼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이윽고.

       

       [어린 양들아.]

       

       성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신이시여.”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수반과 국회의원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절대자 앞에서 정치적인 권위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실 르네이는 고개를 들라.]

       

       모두가 엎드린 가운데, 여신은 세실을 콕 집어 말했다.

       

       세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신목을 올려다봤다.

       

       [무슨 일이 있어 나를 깨웠느냐?]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살짝 짜증이 섞여 있는 듯한 어조였다.

       

       정령과 교감할 수 있는 세실은 그 미묘한 목소리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러고는 최대한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의 잘못으로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에 죄를 고하고자 여신님께 연락을 드렸나이다.”

       

       세실은 알고 있었다.

       

       여신은 전지전능한 존재.

       

       때문에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물어본다면 필시 화를 낼 것이다.

       

       그러니 책임을 진다는 말로서 주신을 달래야만 한다.

       

       [감내하라.]

       

       여신은 차분한 어조로 그리 대답했다.

       

       [2년 전, 분명히 얘기했다.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내 친히 천벌을 내리겠다고.]

       

       “…….”

       

       [마왕이 죽은 이후 전계정령을 다시 빚어냈다. 그들은 이제 너희처럼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알량한 권력에 눈이 멀어 차별을 계속하는구나. 공공의 적을 만들어서 표를 얻는 것이 그리도 달콤하더냐?]

       

       콰르릉.

       

       하늘 사이로 우렛소리가 들려온다.

       

       “아닙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정치인들은 머리를 땅에 처박으며 덜덜 떨었다.

       

       이래서야 2년 전 겪었던 신탁이 되풀이되는 꼴이었다.

       

       [표가 그리 달콤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하거라. 이 나라가 당뇨에 물들 때까지 계속해 보란 말이다.]

       

       “아닙니다. 국민을 기만하지 않겠습니다.”

       

       [본래 자유의지를 지닌 너희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구나. 쓴소리를 해야겠다.]

       

       여신이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자유와 평등은 곧 주신의 뜻임을 기억하라. 또한 평화는 주신이 원하는 세상의 모습임을 기억하라.]

       

       “예, 반드시 잊지 않겠습니다.”

       

       [이것을 어기고 평화에 반하는 일을 벌일 시, 어느 종족에게든 재앙이 있음을 명심하라.]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내 마지막으로 믿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신님, 정말 감사합니다….”

       

       [세 번의 기회는 없다.]

       

       그 말이 끝이었다.

       

       툭, 하고.

       

       통신은 끊겼다. 동시에 세계수를 감싸던 입자들도 거품으로 화해 사라졌다.

       

       “하아….”

       

       세실은 기운이 쫙 빠져버리고 말았다. 연결에 너무 많은 마력을 소모한 탓이다.

       

       ‘여신님의 타박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어.’

       

       세실은 물론이고, 이곳의 모든 엘프가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여신과 정령은 그동안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정령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항상성 유지와 마나의 생성이었고, 여신은 그런 정령들을 관리할 뿐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권력자의 횡행을 막지 않았기에, 높으신 분들에게는 권력 유지의 좋은 수단이 되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권력자들에게 ‘내 이름에 먹칠하지 마’라고 대놓고 경고한 셈이었으니.

       

       정부와 함께 피난을 온 국민들은 멍청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앗.”

       

       정신을 잃었던 유피엘이 깨어난 건 이 무렵이었다.

       

       “으음, 총장님… 어떻게 되었나요?”

       “여신님께서 신탁을 내리셨어. 앞으로 한 번 기회를 더 준다고 하시는구나.”

       “세상에. 여신님께서 세상의 일에 직접 개입하시다니….”

       “그만큼 진노하셨다는 거겠지.”

       

       세실은 피곤에 찌든 유피엘을 부축하며 뒤를 돌았다.

       

       권력에 눈이 멀어 있던 승냥이 떼와, 그런 승냥이들에게 마구잡이로 유린당했던 순진한 양떼가 보인다.

       

       이들은 세실의 입이 열리기만을 멀뚱히 기다리고 있었다.

       

       세실은 한숨을 쉰 뒤 고함을 질렀다.

       

       “뭐 하고들 있어요? 빨리 협상 테이블 꺼낼 준비나 하세요!”

       

       

       **

       

       

       정령계에서 마력을 공급하고 난 뒤 틸레트 연구실로 돌아왔다.

       

       로테는 내 기척을 알아채자마자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 다녀왔어?”

       “일하고 왔어.”

       “그렇구나.”

       

       로테는 내 일에 대해선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연구 진행 상황을 보여주며 논문 관련하여 이것저것 질문했다.

       

       이중 상당수는 나도 대답하기 곤란한 내용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나도 잘 모르는 내용투성이였다.

       

       이는 로테가 좋은 연구주제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대학원 교육은 기본적으로 방목 교육이다. 웬만해선 로테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심산이다.

       

       “여기 계산한 게 맞나 확인하고 싶어.”

       “그건 직접 실험을 해 봐야겠는데.”

       “언제 가능할까요 교수님?”

       

       로테의 능글맞은 웃음에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

       

       “실험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지요.”

       “지금 해도 되나요?”

       “그럼요.”

       

       실험하는 건 늘 신난다. 물론 원하는 데이터가 안 나오면 씨발소리가 절로 나오겠지만, 준비하는 과정만큼은 확실하게 재미있다.

       

       다만 원하는 실험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돈이 부족해서, 장비가 없어서, 시간이 후달려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하고 싶은 실험을 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아예 할 수 없기도 하다.

       

       로테에겐 그런 기다림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구에서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뭐 같았기 때문에.

       

       “실험 준비됐나요?”

       “실험 준비됐어요!”

       

       로테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로테가 개량한 흑주 스크롤과 몇몇 장비를 챙겼다.

       

       우리는 대규모 순간이동진이 그려진 연구실로 향했다.

       

       미리 그려둔 순간이동 마법진에 이것들을 올려놓은 뒤, 지정된 좌표로 보내주기만 하면 준비는 끝난다.

       

       나와 로테는 놀이동산에 온 어린아이처럼 꺄르르 웃으며 실험해야 할 데이터 목록을 점검했다.

       

       “광구 반경, 수율, 폭심지의 최고 온도. 우선 이 세 가지를 알고 싶어.”

       “각각의 요소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어?”

       “광구 반경은 사진을 찍어서 계산할 거야. 이걸 알면 폭발력과 수율도 알 수 있을 테지. 최고 온도는 흑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사 에너지를 측정해서 역으로 계산하려고.”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다.

       

       로테는 준비한 흑주 스크롤을 마법진에 올려놓고 마력을 흘렸다.

       

       파앗!

       

       순식간에 사라진 스크롤들.

       

       어디로 갔는지는 걱정할 필요 없다. 마법진에 좌표가 기억되어 있으니까.

       

       해당 좌표를 스코프에 입력하면 제아무리 먼 거리라도 실험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스코프를 사용하는 부분은 내가 도와준다. 로테는 사용할 줄 몰랐으니까.

       

       “여기가 어디야?”

       

       로테가 스코프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카우렐리아 남쪽 바다로 빠지면 나오는 대양 있잖아. 거기 어딘가에 있는 환초야.”

       

       내가 그리 말하자, 로테가 걱정스러워하며 되물었다.

       

       “잘못 터뜨렸다가 엘프들이 놀라지 않을까? 미리 알리는 게…….”

       “영해법 적용 안 되는 곳에 있어서 괜찮아. 만약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까 대학원생 아가씨는 실험에나 집중하시라구요.”

       

       실험 장소와 카우렐리아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흑주를 터뜨리면 지진 정도야 느끼겠지. 하지만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여러 이유를 들어 로테를 겨우 안심시켰다.

       

       음, 연구자로서 윤리 의식도 있구나. 장래에 로테는 훌륭한 학자가 될 것이다.

       

       이번 실험에서는 기본적인 화력 조절을 목표로 한다, 라고 로테가 말했다. 때문에 실패해도 된다. 폭탄을 몇 번이고 터뜨려도 된다. 물론 이 행성이 버틸 수 있다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시작할까?”

       “해도 돼.”

       “하, 한다?”

       

       촤악!

       

       로테가 컨트롤러에 마력을 흘려넣었다.

       

       

       **

       

       

       세계수가 위치한 브릴뤼움 섬.

       

       혁명군은 이 섬을 중심으로 모든 다리를 포위했다. 그리고 서서히 간격을 좁혀 들어왔다.

       

       공산혁명이 성공하기까지 앞으로 한 걸음이었다.

       

       레니냐는 오묘한 기분이었다.

       

       ‘한 달 만에 여기까지 오다니.’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은 일개 학생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덧 수십만 명의 민중을 이끄는 영웅이 되고 말았으니.

       

       어깨가 무거웠다.

       

       “이걸로 수도 대부분은 우리 손에 떨어졌다. 레니냐, 이게 다 네 덕분이다.”

       

       교도소를 해방한 뒤 풀려난 막시 삼촌이 레니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엥켈톤 아저씨도 입이 마를 정도로 그녀를 칭찬했다. 어른에게 인정을 받으니 옳은 길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건 세계수가 있는 섬뿐이로구나.”

       

       막시 삼촌이 브릴뤼움 섬 너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기 대통령이 있다. 레니냐, 한 번만 더 힘을 써줄 수 있니?”

       “물론이에요.”

       

       레니냐는 스태프를 꺼냈다.

       

       “카우렐리아의 대통령을 사로잡고 세계수를 불태우기만 하면 되는 거죠?”

       “잠깐만. 세계수는 왜 불태우려고?”

       

       레니냐가 세계수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

       

       “저 나무가 모든 일의 원흉이니까요.”

       

       여기까지 오면서 레니냐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금안족 문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안족 차별 문제는 여신과 정령으로부터 나온다.

       

       당장 에테르 선생님만 하더라도 정령이 되기 전에는 수많은 차별과 핍박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세계수를 불태우면 모든 게 해결될 거예요. 세상은 한층 평등해지겠죠.”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아뇨.”

       

       레니냐는 막시 삼촌의 말을 뚝 잘라냈다.

       

       “할 수 있을 때 확실히 뿌리를 뽑아 두어야 해요.”

       

       레니냐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과거의 의념에 사로잡혀 앞을 보지 못한다면 역사는 반복되고 말 것이다.

       

       강화는 없다.

       

       협상도 없다.

       

       카우렐리아는 여기서 세계수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블랑카, 가자.”

       

       권세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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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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