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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7

       그렇게 프랑스가 망해버린 뒤,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르던 프랑스 국민의 의욕 역시 꺾여버리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방식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죄다 죽어 나간 것이었으니, 프랑스 국민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왕정복고를 외치는 미친놈들이 쳐들어와서 대통령과 공무원들 모가지를 다 썰어버렸다?

       그러면 차라리 그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나라를 재건하기라도 하던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는 무인한테 토막이 나서 다 죽어버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게다가 이렇게 황당하게 사회지도층이 다 죽어버린 것도 죽어버린 것이었는데,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빈자리가 생겼으니 어떻게든 재건을 해야 했는데, 그게 불가능했다.

         

       최악의 암살자가 프랑스에 그대로 남아버린 것이다.

         

       자신이 다음 대의 왕이 되겠다고 올라온 왕자를 썰었다.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 썰렸다.

       자신이 장관이 되겠다고 한 사람도 썰렸다.

         

       썰리고, 썰리고, 썰리고.

         

       프랑스에 눌러앉은 무인은 자신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나서겠다고 한 사람을 모조리 썰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썰었고, 궁전에 들어가는 사람을 썰었고, 대책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을 썰었다.

         

       무인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최소 수백 미터의 거리에서 사람을 써는 암살자를 무슨 수로 막겠는가?

       심지어 저격수처럼 탁 트인 장소에서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미친 암살자는 중간에 어떤 장애물이 있던 아무 상관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사정거리 안에만 들어온다면 사람을 토막 낼 힘이 있었다. 땅을 파서 지하에서 검을 휘둘러서 목을 벴고, 허공답보를 이용해 공중을 밟고 다니면서 검을 허공에 휘둘러 사람을 잘랐다.

         

       이 무자비한 칼날에 권력자는 죽어 나갔고, 채워져야 할 빈자리는 계속해서 비워질 수밖에 없었다.

         

       앉으면 죽는다.

       나서면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선망의 시선이요,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할 빈자리는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되어버렸으며, 마치 사형을 선고하는 의자나 다름없는 처형기구가 되어버렸다.

         

       결국 프랑스는 정부를 이루는 것을 포기했다.

         

       이루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나서기만 하면 죽는데 어쩌란 말인가.

         

       하다못해 검을 막아낼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의 무인은 죄다 전쟁 중에 죽어버렸다.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아티팩트?

       배상하라고 소리치며 돈 될 만한 것을 다 뜯어간 나라들이 이 귀중한 아티팩트들을 그냥 둘 리가 있겠는가.

       죄다 빼앗겨버렸다.

         

       새로 사는 것도 불가능했다.

         

       돈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공간을 자르는 무인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면 아예 부르는 게 값이나 다름이 없었다.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하는, 정말 보물이나 다름이 없는 물건이라는 소리다.

         

       물론 사람은 어떻게든 답을 내는 생물인 법.

       아티팩트를 어찌어찌 구할뻔하기는 했다.

       다른 나라에 직접 달려가서 프랑스가 이렇게 무법지대가 되면 유럽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이 갈 거라는 반협박과 함께, 여러 이권을 대가로 아티팩트를 대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아티팩트를 구하나 싶었으나….

         

       이때 무인이 다시 나섰다.

         

       이번엔 다른 나라 공무원들의 모가지를 썰기 시작한 것이다.

         

       단상에 선 정치인의 목을 썰었고, 의회로 가는 의원의 목을 썰었다.

         

       무인의 공격을 눈치채고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프랑스에서처럼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죽이는 동시에 무인은 검으로 벽을 긁어서 메시지를 보냈다.

         

       프랑스에 아티팩트를 제공하지 말라고.

         

       당연히 다른 나라는 길길이 날뛰었다.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고 외치며 무인을 잡기 위해 사람을 풀었고, 목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현상금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정신병자 무인은 종횡무진 누비면서 고위직의 모가지를 계속해서 썰고 다녔고, 군인과 능력자들이 아무리 애를 쓰고 난리를 쳐봐도 유유히 빠져나가면서 그들을 조롱했다.

         

       그렇게 얼마나 썰렸을까?

       각 정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미치광이 암살자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결국 프랑스에 아티팩트를 대여하는 것을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취소해버렸고, 협상하러 온 사람을 그대로 프랑스로 귀국시켜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귀국한 사람은…오자마자 썰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신이 낫으로 수확이라도 한 것처럼 목에 실선이 생기더니 목이 그대로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굴러버린 것이다.

         

       그렇게 결국 마지막 희망마저 꺾여버렸고, 프랑스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프랑스 국민은 기껏해야 마을 단위로 집단을 이루면서 살아갔으며, 도시를 만드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도시 정도로 지역이 발전되기만 하면 미친놈이 튀어나와서 시장 모가지를 썰고 사라져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작은 단위로 뭉치고 그들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갔고, 이기적이기는 했지만 유쾌했던 프랑스 사람들은 이제는 악에 받쳐 목숨줄만을 부지한 채 이 무법지대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싸움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프랑스는 망했다.

         

       그리고 누구도 망한 국가에 있고 싶지는 않은 법.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유럽 곳곳에 퍼져나갔으며, 그중에는 프랑스가 재건하기 위한 핵심이라 여겼던 귀한 재배법을 알고 있는 농부들도 다수 있었다.

         

       진성은 난민이 되어버린 농부들에게 접근해 거액을 제시하며 재배법을 알려달라 하였고, 농부들은 이곳저곳 여행하는 주술사가 거액을 주면서 재배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흔쾌히 방법을 알려주었다.

       농부나 장사치가 돈을 벌기 위해 팔라고 한 것이었으면 고민했으리라.

       팔게 된다면 자신의 지식의 가치가 사라져버리고, 농작물을 재배해도 큰돈을 벌기는커녕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갈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런데 딱 봐도 그냥 호기심만 많아 보이는 주술사가 팔라고 한다?

       이건 안 파는 게 바보였다.

       주술사가 어디 땅 파먹고 사는 족속들인가.

       하물며 비단옷을 입고 있는 주술사도 아니고, 거적때기를 몸에 두른 채 여행하는 것 같은 주술사임에야.

         

       그렇게 진성은 손쉽게 영약을 재배하는 방법을 얻어낼 수 있었다.

         

       ‘질 좋은 생기와 내공. 적당한 양의 혈액과 양기, 증류수….’

         

       익선청련(翼蟬淸蓮)은 양기를 북돋아 주는 효과를 지닌 영초였다.

       그 생태와 이파리의 모양새는 연꽃을 닮았고, 줄기는 연꽃의 뿌리를 닮았다. 튜브라도 되는 것처럼 공기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형태는 부레옥잠을 닮았고, 뿌리를 움직여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행태는 거머리와 뱀을 닮아 있었다.

       뿌리의 속은 텅 비어있었는데 이는 피를 빨아들이기 위한 통로이기에 그러한 것이며, 그 통로의 바깥쪽에는 마치 튜브처럼 공기를 넣으면 부풀고 공기가 빠지면 쪼그라들 수 있게 공간이 있었다.

       익선청련은 이 공간을 통해 뿌리의 통로를 좁혔다가 넓혔다가를 반복할 수 있으며, 피를 빨아서 본체에 공급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레옥잠의 것처럼 보이는 공기주머니는 일정 주기로 쪼그라들었다가 부풀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물 위에 떠다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펌프처럼 뿌리로 빨아들이는 피를 끌어오기 위한 용도였다.

         

       ‘흡혈 식물.’

         

       익선청련은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자라는, 흡혈 식물이었다.

         

       광합성으로 양분을 얻는 대신 동물의 몸에서 양분을 직접적으로 빼앗아 먹는 것을 선호했으며, 빗물을 마시는 것보다는 핏물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거름은 일반적인 썩은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의 몸에서 뽑아내는 기를 선호했으며, 한 번 몸으로 들어간 뿌리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하려고 쐐기 형태의 가시를 세우고 뿌리를 부풀려 딱 달라붙게 만드는 철두철미함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익선청련은 생명을 빨아먹으며 자라난다.

       잎이 커지고, 뿌리가 질겨지고, 줄기가 부푼다.

       그리고 그렇게 한껏 영양소를 빨아들였을 때, 꽃을 피운다.

         

       그 꽃은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투명했으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속이 훤히 비쳐 보여 깨끗하다는 감상마저 불러일으킨다. 선녀의 날개옷으로 재주를 부려 연꽃 모양을 만들었을 때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며, 그 감촉은 얇은 거미줄을 쓰다듬기라도 한 것처럼 부드럽고 간지럽다.

         

       익선(翼蟬).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투명한.

       청련(淸蓮).

       맑고 깨끗한 모습의 연꽃.

         

       ‘양기와 생명력과 관련된 영약이니, 필히 쓸모가 있으리라.’

         

       진성은 머릿속으로 이아린을 떠올렸다.

         

       짐승을 흉내 내는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생명력이 강해지고 양기가 늘어난다면 성취를 이루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터.

       게다가 이아린이 익히고 있는 무공은 좀 특이한 면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쉽게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영약이 꽤 도움이 되리라.

         

       양기라는 것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으며, 그 양이 과하다면 사람을 짐승처럼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야성과 본능을 사용하는 무공이니만큼 양기와 궁합이 잘 맞을 것이요, 그것을 잘 소화하게 된다면 벽을 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리라.

         

       물론 그 그릇이 연약하다면 문제가 일어나기는 하겠지만….

       생명력을 늘려주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영약이나 식품은 한껏 먹고 자란 것이 이아린이다. 그릇의 크기는 충분했다.

         

       진성은 잘 자라는 익선청련과 피를 빨리는 무인을 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투명하고, 맑았다.

         

       곧 피어날 연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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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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