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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8

       아무래도 실시간 방송 중에 언박싱을하고 물건을 꺼내 보는 것이라, 전문 리뷰어들만큼 영상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았다.

        

       하긴, 그런 리뷰어들은 카메라도 우리가 쓰는 웹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을 쓸 거고, 렌즈도 카메라 못지 않게 좋은 것으로 영상을 만들 테니까.

        

       하지만 뭐랄까, 오히려 이런 분위기라서 더 어울리는 것도 있었다.

        

       “상자에는…… 제품이 제대로 그려져 있네. 일러스트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한 것은 보여.”

        

       일러스트와 똑같이 나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2D와 3D의 차이였다. 아제르나 전기 패키지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게임 내의 3D 모델링과 차이가 나듯, 피규어도 마찬가지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피규어 가격이 가격이다 보니 인 게임 3D 모델링보다는 훨씬 퀄리티가 좋긴 했다. 아직 상자만 보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종종 상자 앞이 뚫려있고 그 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되어 내용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 피규어는 그렇지는 않았다. 상자는 두꺼운 마분지 위에 피규어 사진과 그 내용물을 소개하는 글씨 정도만 쓰여 있었다.

        

       “여기, 뒷면에는 안에 어떤 내용물이 들어있는지— 앗.”

        

       피규어 상자를 돌려서 보여주던 앨리스는 흠칫 몸을 떨더니 바로 상자를 돌렸다.

        

       “…….”

        

       그리고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 피규어가 그런 복장이니 어쩔 수 없지, 응.”

        

       옆에 앉아있던 클레어가 위로를 건넸다.

        

       ……그렇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흰색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녀님ㅋㅋㅋㅋㅋㅋㅋㅋ]

        

       그곳에는 안에 있는 피규어의 속옷 색도 적나라하게 나와 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쪽’이 메인인 피규어가 아니라면, 혹은 안에 수영복 같은 것을 입고 있다거나 특정한 색의 속옷을 입는다는 설정이 아니라면, 피규어의 치마 아래 속옷은 보통 흰색이다.

        

       조형의 경우도 저가형 피규어는 그냥 ‘이런 색이다’ 정도만 표현되는 반면 고급 피규어는 그 형태가 확실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실비아 피규어는 다소 미미하기는 하지만 팬티 주름이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속바지를 입혀도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뭐, 이해는 한다.

        

       애초에 그런 쪽이 판매 포인트니까.

        

       오히려 괜히 속바지 같은 것을 입혔다가는 검열이니 뭐니 하면서 시끄러울 거다.

        

       아마 나도 시끄럽게 구는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고. 물론 그것도 내가 저 피규어의 당사자가 되기 전의 이야기지만.

        

       “크흠”

        

       앨리스는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그럼, 내용물을 꺼내 볼까.”

        

       [ㅔㅔ]

       [오]

       [드디어]

        

       옆에 꺼내두었던 커터로 상자를 봉인한 테이프를 뜯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아, 이런 식으로 들어있구나.”

        

       [그런데 나도 상자는 처음봄]

       [십만원 넘는 피규어 사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ㅋㅋㅋ]

       [나는 피규어를 안사봄]

        

       그렇겠지.

        

       보통은 프라모델은 몰라도 피규어는 잘 못 사지. 집에서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독립한 다음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규어는 레고와도 같아서, 막상 독립한 뒤에도 사다 모으려고 하면 생활비가 아깝고, 피규어 가격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게다가 무엇보다,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오타쿠의 최종적인 목표는 넓은 집이라고 하지 않던가. 생활의 쾌적함이 문제가 아니라 구매한 각종 굿즈와 서적, 패키지를 보관하기 위한 넓은 집.

        

       끼익, 하며 기분 나쁜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상자의 얇은 플라스틱 내장재가 긁히는 소리였다.

        

       상자 크기의 플라스틱 내장재는 피규어를 양쪽에서 압박하듯 감싸고 있었다. 좌우로 분리할 수는 있지만, 서로 단단하게 맞물려서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내용물이 10만 원이 넘는 플라스틱 덩어리이니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뽁.

        

       뭐, 앨리스 정도 되는 힘 앞에서는 약하디 약한 결합이었지만.

        

       “신체가 분리되어있네.”

        

       옆에서 보던 클레어가 물었다.

        

       피규어 부품끼리 긁히며 이염되지 않도록,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누어져 있었다. 아마 허리 자체가 부러지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서일 거다.

        

       그리고 그 분리된 허리 사이에는 얇은 비닐이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조립해야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앨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앨리스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건을 꺼냈다.

        

       ……그 모습이 조금 오타쿠스러웠지만, 나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말해봐야 그냥 그러냐고 넘길 테니까.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방송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거고.

        

       피규어를 꺼내 들어, 일단 하반신을 투명한 받침 위에다가 끼웠다. 나름대로 비싼 피규어라 그런지 지지대 없이도 설 수 있는 모양이다. 역동적인 자세는 아니었으니 다리 부분에 크게 무리가 가지는 않겠지.

        

       다만 그런 것치고는 지지대 부품이 하나 들어가 있기는 했다.

        

       그리고—

        

       “아, 어!?”

        

       앨리스가 허리 위쪽의 비닐을 들어내는 순간.

        

       뚝, 하고 치마가 떨어졌다.

        

       딱히 부러지거나 망가진 것은 아니다.

        

       이염 방지용으로 부품이 분리되어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연히 치마와 하반신도 분리가 되어있었을 뿐이다.

        

       치마는 부품이 플라스틱 모델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반신과 하반신 사이에 끼듯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실비아 피규어는 하반신만으로 서 있는 형태가 되었다.

        

       하얀 팬티를 다 드러내고서.

        

       [엌ㅋㅋㅋㅋㅋㅋㅋ]

       [너무야해]

       [정지각이다 ㅋㅋㅋㅋㅋㅋㅋ]

        

       “…….”

        

       나는 조용히 떨어졌던 치마를 다시 들어 하반신 위에 살포시—

        

       딩동.

        

       [치마 없이 피규어 완성]

        

       —얹으려다가, 1만 원짜리 미션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돈미새]

       [자본주의가 만든 괴물]

        

       “저는 아제르나 제국 출신입니다.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곳에서 왔으니 당연한 말 아닙니까?”

        

       내 말에 채팅창은 곧장 수긍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괜찮겠어?”

        

       “제가 직접 벗은 것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언니, 얼굴이 빨간데.”

        

       “……제가 직접 벗는 것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클레어의 말에 나는 다시 한번 말했다.

        

       정작 앨리스는 오히려 그 사태 때문인지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좋아, 그럼.”

        

       그 뒤로는 조금 더 빠르게 움직여서, 안에 있던 상반신과 머리를 꺼내 조립하고, 허리 위에 올려두었다.

        

       등 뒤에는 코트도 걸쳤다. 아까 피규어가 혼자 설 수 있는데 왜 지지대가 있나 싶었는데, 이 지지대는 사실 코트를 받치기 위해서였다.

        

       캐릭터는 그렇게 역동적인 자세는 아니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듯 다리를 교차하고 있었고, 소총은 지향 자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코트가 굉장히 역동적으로 휘날리는 형태였다. 어깨에 걸치려면 어깨 깊숙이 부품을 결합하기 위한 홈을 파야 했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이렇게 따로 지지하도록 만들고 코트를 걸칠지 걸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쪽이 더 낫기는 했다.

        

       “음…… 완성.”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 피규어를 카메라 앞으로 살짝 밀어놓았다.

        

       위풍당당하게 서서, 당장이라도 소총을 들어 적을 쏠 것 같은 자세였다. 코트가 역동적으로 휘날리고 있었고, 머리카락도 다시 보니 조금 휘날리는 형태라서 생각보다 모습이 심심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치마는 깜빡함?]

       [오히려 좋아]

       [그런데 실비아 성격 보면 조금 어울리는듯?]

       [덜렁이다 치마도 빼먹음ㅋㅋㅋ]

        

       “……제가 아무리 그래도 치마를 잊어버리고 안 입는 성격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진짜 변태 같은 복장이긴 했다.

        

       짧은 바지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레오타드 형태도 아니고, 말 그대로 다른 옷은 입지 않았는데 팬티만 입은 거잖아.

        

       게다가 표정과 자세가 진지해서 더 변태 같았다. 마치 그게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것 같은 모습.

        

       [실비아 최면 에디션]

        

       “…….”

        

       차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언박싱이 끝난 후, 피규어는 다시 치마를 입혀주었다.

        

       부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계속 그렇게 두고 방송하면 정지각이 설까 무서웠다.

        

       이 사이트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은 나름대로 자체 심의는 지키는 편이 안전할 테니까.

        

       “그럼 오늘은 다시 아제르나 전기를 플레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길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아까 클레어 이야기를 한 것과 피규어 언박싱을 한 것 때문에 시간을 꽤 잡아먹어서, 평소와 같은 시간에 방송을 끈다면 이제 얼마 남지는 않았다.

        

       지금부터 해서 컷신 하나만 볼 수 있으면 다행일까?

        

       지난번 세이브에 이어서, 스토리는 이제 절반은 확실하게 넘어간 것 같았다.

        

       주인공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제국군이 벨부르 국경으로 전진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부분.

        

       전작에서는 이쯤부터 분위기가 확 바뀌게 된다.

        

       “샬럿…….”

        

       게임 속의 샤를로트를 보고, 앨리스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샤를로트는 그 이후로 굉장히 생각이 많은 듯,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평소와는 다르게 자꾸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샤를로트가 이걸 보면 어떤 반응을 했을까?”

        

       그러게.

        

       어떤 반응을 했을까.

        

       나도 조금 궁금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샤를로트…… 데리고 와도 될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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