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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8

        

       땅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기어 올라온 매미가 기지개를 켜듯이.

       흙에 뒤덮인 매미가 살짝 고개를 들고 내리쬐는 햇살을 맛보며 날개를 비춰 보이듯.

       매미가 힘차게 날아오르는 광경을 본 연못이 사랑에 빠져 날개를 제 몸에 비추듯.

         

       그렇게 연꽃은 천천히 피어났다.

         

       아주 얇은 얼음을 겹겹이 둘러 만들어진 것처럼 투명하고 덧없어 보이는 싹을 틔워내었으며, 싹은 점차 커지고 커져 봉오리를 이루었다. 그 봉오리는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나 너무나도 투명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일순간 스쳐 지나가는 환상처럼 보이는 것이요, 허공에 아주 연한 연필로 가볍게 선을 그은 것 같은 미미한 존재감을 발하는 것이었다.

         

       바람은커녕 그저 공기가 흐를 뿐인 지하임에도 차마 몸을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렸으며, 너무 투명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 갈 정도로 맑은 물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물에 빠져버릴 듯 아찔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저것을 만진다면 선녀의 날개옷을 만지는 황홀경을 느끼게 될 것이요, 비단으로 짜낸 신선의 보물을 쓰다듬는 느낌을 맞이할 터인데.

         

       추운 북방의 하늘에 오색찬란한 빛을 퍼뜨리며 펄럭이는 발키리의 치마가 색이 빠지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익선청련은 그 자체로 너무나 덧없게 보여 소유욕을 자극하였으며, 저것이 사라지기 전에 확보해야 한다는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귀물이었다. 이는 귀물(貴物)이었으며, 귀물(鬼物)이었다.

         

       그렇게 꽃은 점차 피어났다.

         

       무인을 잡아먹고, 무인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무인의 내공을 한껏 들이키면서.

         

       그렇게 피어나고 또 피어난다.

         

       하지만 무언가가 튀어나오면 무언가는 들어가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익선청련이 피어나면 피어날수록 무인의 몸은 점차 쇠약해졌으며, 단전에 한껏 들어차 있던 내공은 서서히 고갈되었다. 물론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요양을 잘하고 수련을 열심히 한다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한들 사람을 양분으로 피어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리라.

         

       다만 다행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니.

         

       그들은 자신을 빨아먹으며 자라나는 연꽃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오직 진성의 안배로 인해 정신 속을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정신 속에서 그들은 자각몽에서처럼 전능한 힘을 휘두를 수도 있었고, 자신이 살아가며 후회했던 일들을 보기도 하였으며, 해마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강렬한 기억을 망각 속에서 끄집어내어 살펴보고 있기도 하였다.

       기억의 끝에 생각이 이어지고, 그 생각은 곧 참오로 이어지고, 그 참오는 곧 그들의 정신세계를 확대하고 그들에게 깨달음으로 향한 길을 만드는 선업이 되었다.

         

       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무인들은 자발적으로는 평생 몇 번 체험해보지도 못할 귀중한 경험이며,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익숙하기는 하되 그 익숙함을 한계를 넘어서 경험하는 것이니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무인에게는 일종의 기연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성취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요, 강제적인 명상을 했음에도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은 손에 쥐는 것이 없을 터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정신을 직시하고 이해하려 하는 이들은 눈에 띄는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이것을 기연이라 하지 않으면 무어라 하겠는가.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진성은 꽃을 피울 수 있고.

       무인은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공생이었다.

         

         

         

        * * *

         

         

         

       쌍방의 생물이 모두 이득을 얻는 것을 상리공생(Mutualism).

       한쪽은 이익을 얻고 한쪽은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을 편리공생(Commensalism).

       한쪽은 피해를 보고 한쪽은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을 편해공생(Amensalism).

         

       그리고, 한쪽은 이득을 얻고 한쪽은 피해를 보는 것을 기생(Parasitism)이라 하였다.

         

       진성과 무인은 이 중에서 상리공생에 속해있었다.

       둘 모두가 이득을 보고 있으니, 이것을 공생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할 것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성은 회귀 전 공생술사라 불리지 아니하였다.

         

       그가 회귀 전 불렸던 명칭은 기생술사.

         

       이는 기생물을 주력으로 삼고 그것을 잘 다뤘기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이름에는 진성을 향한 멸시와 공포, 꺼림칙함이 분명히 섞여 있었다.

         

         

         

        * * *

         

         

         

         

       일본에서 무인들의 전과와 전공을 듣는 것을 기다리던 이들을 발광하게 하는 데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이면 충분했다.

         

       [ 작전 중 모두 실종되었습니다. ]

         

       작전 중 실종.

       통칭, MIA(Missing In Action)라 불리는 것.

         

       이 보고는 최후의 생존자, 와타나베에게서 온 보고였다.

       와타나베는 자세한 보고를 할 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무력이 약한 자신이 숙소에 남기를 자청하였고, 박진성 주술사의 빌딩으로 침투했던 모든 무인이 복귀하지 않자 보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여러 번 연락을 시도하였으나 전부 실패하였고, 그들이 사살당하거나 붙잡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여 말하기도 하였다.

       상식적인 보고.

       상식적인 판단.

         

       적어도 나이를 헛먹은 것이 아니라는 듯 와타나베의 보고는 나쁘지는 않았다.

       형식도 딱딱 맞았고, 매뉴얼에 어긋나는 것도 없었고, 윗사람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한 배려가 곳곳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도장 대신에 찍은 지장은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표현하기 위함인 듯 45도 각도로 찍혀 있었으며,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성향에 맞춰주기 위해서인지 간단하게 메일을 보내는 대신에 직접 프린트한 종이를 보내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 종이에도 역시 공경을 표하기 위해 스테이플러가 45도 각도로 찍혀 있었고, 글자의 크기와 글꼴도 완벽했다.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 중에서 수(秀)를 받아도 이견이 없을 훌륭한 보고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완벽한 형식과는 달리, 그 내용은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으니….

         

       작전이 실패했다?

       전부 실종됐다?

       잡혔거나 죽은 것으로 추정?

         

       끔찍한 소리였고, 끔찍한 생각들이었다.

         

       “이, 이, 이 빌어먹을!”

         

       “내 무사가-!”

         

       “이건 거짓말이야, 거짓말! 바다 건너에 있다고 허위 보고를 올리는 게야!”

         

       화족들은 발광했다.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능력자들이 손쉬워 보이는 일에 죄다 실패하고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 울부짖었고, 당장 대책을 짜내라며 멱살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서로가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터뜨렸고, 평소에 보여주던 귀족다운 우아함은 어디에다가 갖다 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시정잡배처럼 날뛰었다.

         

       돌려내라.

         

       나의 무인을 돌려내라.

         

       나의 충직한 무사를 다시 내 앞에다가 데려다 놔라-!

         

       그렇게 모임 장소는 아수라장이 되어갔고, 물건들은 파괴되었으며, 서로의 주먹이 오갔다.

         

       그렇게 모임은 점차 파국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아니, 분명히 파국이 되었으리라.

         

       이 아수라장을 정리하기 위해 나선 한 사람만 아니면 말이다.

         

       “여러분! 잠시 진정하십시오!”

         

       정치인.

       한국에 능력자들을 보내서 천황 폐하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빼앗아 오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

       그리고 지금 상황을 반드시 정리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방법이!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에야 분노 때문에 머리가 마비되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날뛰는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 이 분노가 가라앉게 된다면 화살은 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사회가 아닌가?

         

       하물며 강력하게 주장했고, 사람들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었기까지 했다면 그 책임소재는 명확하다.

         

       지금 정치인은 이 상황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말이다.

         

       이러한 정치인의 필사적임을 눈치챈 것일까?

         

       아수라장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고성은 줄어들어 침묵이 감돌았으며, 멱살을 잡고 있던 사람은 자세를 유지한 채 고개를 돌려 정치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치인은 식탁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마치 자신이 밟고 있는 것이 식탁이 아니라 단상이고, 지금 아래에 있는 것은 자신의 지지자와 지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된다는 듯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정치인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죄송함을 느낀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으나,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묘책이 있다는 듯, 이것은 쏟아진 물이 아니고 얼마든지 도로 담을 수 있다는 듯.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여러분. 휘하에 두고 있던 가신의 생사와 행방이 묘연하여 분노하시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군이 되어서 어찌 아끼는 아랫사람의 고난에 평온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은 화족들에게 잘 먹히는 어투로 말했다.

       화족들이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문어체에 가까운 어휘들을 넣었고,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고어나 고풍스러운 표현 역시 집어넣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들이 선호하는 말을 사용해 친근감을 형성하는 효과도 있었고, 어려운 말을 사용해 그들이 말을 받아들일 때 최소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한 뒤 받아들이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정치인은 능수능란하게 그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집중시켰고, 그들의 귀를 자기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을 때.

         

       그는 폭탄 같은 말을 터뜨렸다.

         

       “정부에 책임을 떠넘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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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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