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돌아온 탕아 ( 2 )
꽈릉! 콰르르릉! 꽈앙! 쾅!
무수한 벼락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귀를 터뜨릴 지경에 가까운 우렛소리에 테니아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정작 당사자인 카르타할은 황홀하기 그지없는 표정이었지만.
“흐, 흐하하하! 하나 된 분이시여! 당신의 종복이 이토록 완벽한 몸을 갖췄나이다! 흐하하하하!”
재가 되었다가 되살아나고 다시 벼락에 맞고 한 줌의 재로 변한다.
이 과정만을 반복하는 고장된 테이프를 보는 것 같았다.
한참이나 내리치던 벼락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멈췄다. 맑은 하늘을 찢어발기던 벼락이 사라지자 곧 어색할 정도의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갑작스레 찾아온 평화에 테니아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끄르륿, 크아악! 너, 너너너너ㅡ!! 감히, 감히 나를! 우리 어, 엄마를ㅡㅡㅡ!!》
촤작! 꾸웅!
촉수가 공기를 터뜨리며 쏘아진다. 카르타할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의 촉수에 처맞고 머리가 날아갔다. 이내 꾸물거리며 고깃덩어리들이 모여 다시금 머리의 형상을 갖췄다.
“끄응. 당신은 참 골치 아프네요. 우리 서로 원하는 것은 얻었으니 좋게 좋게 마무리하고 서로 갈 길 가도록 하죠. 거래는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중요한 법ㅡ”
콰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날아온 쌍검 두 자루가 카르타할의 가슴을 꿰뚫었다. 폐가 뚫려 힘없이 공기 흐르는 소리를 내던 카르타할은 자기 몸에서 자라난 쌍검을 눈치챘다.
카르타할은 태연하게 쌍검의 날을 거꾸로 붙잡아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손바닥이 반으로 잘려 대롱대롱 흔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이런. 이건 또 뭐죠?”
얇은 실눈을 반달에 가깝도록 휘게 만든 카르타할이 갑작스레 난입한 이를 향해 물었다.
저 멀리 무성한 수풀이 바스락거리더니 발리안이 우렁찬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흐하하하하! 어떠냐 이 더럽고 사악한 놈아! 내 쌍검에 맞았으니 이제 곧 힘이 빠질 것이다!”
“흠. 그 쌍검이 혹시 이거 말하는 건가요?”
카르타할이 태연하게 쌍검 두 자루를 달랑거리며 물었다. 틀림없이 카르타할의 가슴에 쌍검이 꽂히는 것을 확인했던 발리안이 몹시 당황했다.
“어, 어떻게? 내가 분명 가슴에 쌍검을 던졌는데.”
꾸물꾸물.
뻥 뚫려있던 카르타할의 가슴은 살점이 부풀어오르며 텅 비어있는 상처를 절로 메워나갔다.
초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한 발리안이 입을 떡 벌렸다. 최대한 빨리 달려왔건만 카르타할은 이미 불로불사를 손에 넣은 것이다.
“당신…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사냥개로 부린 탐험대 중 하나군요. 도대체 여기는 어떻게 알고, 아니 왜 온 거죠?”
“묻는 것 자체가 우습구나! 나는 너의 사악하고 끔찍한 계획을 이 쌍검으로 막아내고 쌍검의 위대함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왔다! 탄탈로스에 가서 무적의 쌍검사 발리안 님이 보냈다고 일러라!”
“후후. 탄탈로스? 저에게는 탄탈로스도 구원의 일종인 것을. 탄탈로스 또한 신의 손길이 닿은 곳. 저는 그분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면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답니다.”
위풍당당하게 자세를 취한 발리안은 상식을 뛰어넘는 카르타할의 대답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세상 어느 누가 탄탈로스마저 기쁘게 들어간단 말인가?
눈앞의 광인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주, 죽어ㅡㅡ!! 너도, 너도 죽어! 엄마의, 워, 원수!!》
갑작스러운 발리안의 난입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던 테니아가 곧장 촉수를 휘둘렀다.
파앙! 촤르르륵!
음속에 가까운 촉수에 얻어맞은 카르타할의 신체가 사라졌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라졌다는 표현밖에 쓸 수 없었다. 지우개로 목 밑을 지운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
카르타할의 머리만 남아 툭 바닥에 떨어지자 이번에는 발리안이 당황할 차례였다.
“으, 으음? 아, 이, 이건 설마! 이, 이런 맙소사!”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움직임이라니! 크게 놀란 발리안은 서둘러 뒤로 달려 나갔다.
큰일이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발리안은 얼른 뛰어가 흙바닥에 떨어진 쌍검을 털어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상처는 안 생겼구나.”
카르타할이 놓치며 한참이나 날아간 쌍검은 무사했다. 쌍검을 확인한 발리안은 쌍검을 교차로 쥐며 테니아를 경계했다.
“너. 사악한 악마 녀석! 덤벼라! 내가 너의 사악한 심장에 쌍검을 박아주마!”
《크, 크르륿…! 너, 너너너너도 나, 나를 바, 방해하는 거야? 어, 오, 옴, 엄마를 도, 도, 돌려줘!》
테니아의 촉수 중 하나가 움찔거렸다ㅡ싶은 순간 발리안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채챙! 투쾅!
촉수가 먼저 도달하고,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엉겁결에 쌍검을 교차해 막아낸 발리안의 몸이 뒤로 길게 밀려났다.
‘누,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어떻게 막았는지 본인도 모를 수준이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방어였다. 손에 화끈한 열감이 올라오는 걸로 봐서는 두어 번 더 막으면 뼈가 부서질 것이다.
“…하, 하하! 그래. 이 정도는 해야 상대할 가치가 있지!”
되려 발리안은 호탕하게 웃으며 땅을 박찼다. 역수로 잡은 쌍검을 교차로 잡은 채 힘차게 내달렸다.
직선으로 달려오는 발리안을 항해 소리를 앞지르는 촉수가 쏘아나갔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있던 발리안은 찰나의 순간 직감했다.
ㅡ피할 수 없다.
공격이, 촉수의 궤도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의 방어는 요행에 가까운, 터무니없는 행운이 만들어낸 기적일 뿐. 자신으로서는 악마의 촉수가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가 쌍검 발리안의 끝인가.’
쌍검을 추구하다가 죽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죽음일 터. 미련은 없었다. 세상에 쌍검을 더 알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내 무덤에 쌍검을 넣어주면 좋을 텐데.’
죽음의 순간 한없이 각성한 의식은 세상을 느리게 흘러가도록 만들었고. 그 속에서 발리안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곧 있으면 저 촉수가 날아와 자신의 머리를 터뜨리겠지.
허나, 테니아의 촉수가 발리안의 머리를 터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투웅!
낮은 울림과 함께 수풀 언저리가 가볍게 들썩였다. 낮고 빠르게 튀어나온 화살 하나가 교묘하게 날아들어 테니아의 어깻죽지에 강하게 틀어박혔다.
《키힉!》
날아온 화살은 차라리 말뚝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굴러다니는 나무를 대충 다듬고 뾰족하게 깎아낸 거대한 말뚝.
거의 팔뚝만한 크기의 화살이 도대체 어떻게 날아왔단 말인가?
투웅! 투웅! 투웅!
연달아 수풀이 흔들리며 그림자가 땅을 스쳤다. 익숙하지 않은 고통에 몸부림치던 테니아의 몸에 말뚝이 날아와 깊게 박혔다.
“젠장. 역시 급조한 거라서 네 번 정도가 한계군.”
수풀 속에서 급조한 활을 쏘아낸 셰이드가 투덜거렸다.
그가 쏘고 있던 것은 오는 길에 근처의 나무와 마수의 힘줄로 급조한 석궁… 아니, 거의 발리스타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저 멍청한 녀석. 정말 죽으려고 작정한 건가?”
아주 건방진 녀석이다.
단장인 자신이 두 눈 퍼렇게 뜨고 있는데 막내가 먼저 죽을 생각을 하다니?
커다란 발리스타를 한 손으로 쐈더니 덕분에 손이 시큰거렸다.
발리안은 손을 주무르며 침착하게 뒤로 물러날 준비를 했다.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낸 악마의 눈이 셰이드를 향하고 있었다.
“발리안! 내가 악마를 유인하겠다! 그 사이에 어서 도망쳐라!”
“단장님?! 도대체 여기에는 어떻게ㅡ”
“잔말 말고 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셰이드는 오는 길에 설치한 함정의 위치를 떠올렸다.
밟으면 가시가 올라오는 함정, 발목을 꿰뚫는 가시침, 포박하여 공중으로 올라가는 밧줄과 사각에서 날아오는 통나무까지.
그가 만든 함정들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이었으나, 지금만큼 그 함정들이 너무나 못 미더웠다.
《끼르르르릅…!! 아아아아아아! 주, 주, 죽일 거야! 죽이고, 죽이고 죽여서! 어, 엄마를 돌려받을 거야!!》
발광하는 테니아가 눈을 시뻘겋게 만든 채 수풀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테니아와 셰이드 사이의 경로에 있는 거추장스러운 나무와 바위 따위는 가볍게 부수면서 말이다.
일단 시선을 돌린다는 목적은 달성한건가ㅡ 셰이드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빠르게 몸을 던졌다.
그 사이에, 제발 제발 제발.
저 머저리 녀석이 도망치기를 바라면서.
* * * * *
– 투웅! 퉁! 투웅!
퀘스트를 읽는 사이로 들려오는 낮은 줄 소리에 서둘러 화면을 바라봤다. 어느새 황금 나무에 도착한 발리안과 셰이드가 테니아, 카르타할과 대치하고 있었다.
– “크읏!”
– 우지끈! 콰앙!
테니아를 유인한 발리안이 미친 듯이 정글을 누빈다. 이리저리 내빼는 솜씨가 상당했다.
뒤따라오는 테니아는 가시에 찔리고 덩굴에 얽히고, 통나무에 얻어맞으며 무수한 함정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우직하고 정직하게 그 모든 함정을 몸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으, 아니 미친. 이러다가 단장 죽겠네!”
급한 대로 스킬창을 열어 쓸만한 스킬을 찾았다. 테니아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도 스쳤지만… 색안경으로 본 테니아의 모습과 황금 나무의 퀘스트가 마음에 걸렸다.
‘일단 최대한 살려서 성지에 보내는 쪽으로 해보자.’
내가 선택한 것은 1인 지정으로 대상을 속박하는 ‘진실의 올가미’.
《‘진실의 올가미’를 시전합니다. 대상을 잠시 속박합니다.》
– 촤르르르륵!
하얀빛을 흘리는 쇠사슬이 나타나 테니아의 몸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결박당한 테니아의 모습에 잠시 한숨을 돌렸다.
“후. 잠깐 속박해놨으니까 이제 좀 상황 정리를ㅡ”
– “하나 된 분이시여! 위험합니다!”
케넬름의 새된 경과와 함께 파캉! 들려오는 맑은 쇳소리. 하얗게 빛나는 쇠사슬이 산산이 부서져 허공을 흩날렸다.
삐익!
《속박 실패! 광란 상태입니다!》
– 《키햐아아아아아아악!! 주, 죽어! 죽어! 엄, 엄마를 위, 위해서! 죽으라고!!》
사슬을 부순 테니아가 소름 끼치는 포효를 내질렀다. 차마 내가 무어라 반응할 틈도 없이 휘둘러진 촉수가 셰이드를 강하게 후려쳤다.
– “ㅡ커흐으으읍!!”
“이런 씹 진짜!!”
가만히 있으면 내가 너네 엄마 만나게 해준다고!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