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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8

       수평선 너머로 빛이 반짝였다.

       

       광구의 크기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유의 불길한 모양은 선연했다.

       

       레니냐는 손동작을 멈추고 바다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빛이 터져나온 장소로부터 용렬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저건….”

       

       쿠르르릉─!

       

       뒤이은 지진이 섬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레니냐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마치 용이 되려는 이무기처럼 하늘 위로 올라가려는 연기가 혁명군과 정부군의 넋을 쏙 빼놓았다.

       

       “…천벌이다.”

       

       누군가가 그리 얘기했다.

       

       “천벌? 웃기시네. 그냥 자연현상이잖아.”

       

       블랑카가 정신을 다잡고는 이죽거렸다.

       

       그러나.

       

       쿠릉, 쿠르르릉─!!

       

       

       같은 폭음이 다른 곳에서, 여러 차례 들려왔다.

       

       폭발의 규모는 지점마다 조금씩 달랐다. 어떤 것은 장대했고, 어떤 것은 미묘했다.

       

       모든 연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승천했다. 푸르렀던 하늘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연기 무리는 태양까지 덮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천벌인가?’

       

       레니냐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레니냐 동무.”

       

       블랑카가 다가와 레니냐의 옷소매를 붙잡는다. 처음 폭발할 때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했던 그녀의 안색은 어느덧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도, 동무는 저게 무슨 마법인지 아십니까?”

       

       “나도 몰라….”

       “평범한 기술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낱 개인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라기에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지진은 십수 초 간격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일어나려고 하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려고 하면 또 무너진다. 도무지 두 발 딛고 서 있을 수가 없다.

       

       쿠쿠쿵.

       

       졸지에 혁명군도 정부 인사들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 와중에도 폭음은 계속 들려오는 중이다. 이렇다 할 도리가 없었다.

       

       “여신님께서 진노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가발이 벗겨진 행정부장관이 덜덜 떨며 말했다.

       

       “신이시여, 노여움을 푸소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부덕한 정책을 펼치지 않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아이고. 아이고.”

       

       엘프들이 레니냐 앞으로 자꾸만 머리를 조아렸다. 이쯤 되니 레니냐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저 폭발의 형태, 흑주와도 같았다.

       

       규모만 보자면 그렇다는 소리다. 어떤 폭발이든 규모가 커지면 버섯구름의 형태를 지닌다. 레니냐는 틸레트에서 저런 폭발을 계산하는 법을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다는 ‘누가’가 중요했다.

       

       저런 폭발을, 정말로 여신이 낸 것일까. 혹시 이곳 정부 인사들이 자기들 목숨줄을 위해 연기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레니냐는 의심병이 이미 머리끝까지 달한 상태였다.

       

       “여신님, 제발, 노여움을 푸소서. 노여움을 푸소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싹싹 빌었다. 하물며 일국의 수장이 이러다니.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쯤 되니 작당모의 한 건 아닌 듯했다.

       

       레니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여신이 세계수를 통해 뭐라 말했다고?”

       “네…! 여신님께선 자유와 평등을 중요시하고, 또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어느 종족이든 평화를 헤친다면 천벌을 내릴 것이라고….”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레니냐는 수평선 너머를 지긋이 바라봤다. 펑펑 터지는 저 하늘이 자신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너도 까딱하면 마왕처럼 변절할 수 있다고. 그러니 폭력적인 수단은 지양하라고.

       

       언젠가 에테르 선생님께 들은 적이 있었다.

       

       마왕군은 본래 금안족의 권리 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세상을 정복하고 다른 종족을 박해하는 쪽으로 변질하였다.

       

       제국인이 박해했던 금안족의 수보다 더 많은 제국인을 죽였고, 엘프들이 몰수했던 금안족의 재산보다 더 많은 경제적 피해를 엘프국에게 안겨주었다.

       

       – 그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배우는 거다, 얘들아.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건 좋지만 그 생각이 언제든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살거라.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 말이야.

       

       레니냐는 완연히 검게 변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만약, 여기서 정부 인사들을 모두 죽이게 된다면. 그래서 카우렐리아를 혁명군의 손에 넣게 된다면.

       

       분명히 기분 좋을 것이다. 다른 종족은 몰라도, 금안족만큼은 태평성세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는 장담할 수 없다. 자신이 마왕처럼 흉포해질 수 있다. 또 그녀가 아니더라도 그녀의 후계 중에 마왕과 같은 악인이 탄생할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틸레트에서 교육받은 레니냐는 그 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지금 순수한 마음을 지닌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타락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레니냐는 지금도 펑펑 터지고 있는 수평선 너머를 계속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천벌, 인가.”

       

       레니냐의 고개가 아래를 향한다. 이번에는 정부 인사가 아닌 국민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들의 표정도 매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두려워하고 있다.

       

       ‘엘프 국민은 잘못이 없지. 그들도 선동의 피해자일 뿐이야. 심지어 이들 중 상당수는 정령 신앙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있어. 대통령의 말이 거짓인 건 아닌 것 같아.’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레니냐는 스태프를 내려놓았다. 그냥 내려놓는 것도 아니고, 아공간 속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레니냐 동무?”

       “모두, 무장 해제해.”

       

       혁명군의 실질적 리더인 레니냐가 그리 명령하자 블랑카는 탐탁지 않아하면서도 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무렵, 수평선 너머의 폭발도 멈췄다.

       

       이후 유피엘은 서둘러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말이 협상 테이블이지, 실제로는 현 정부가 혁명군에게 패배하였음을 시인하는 문서의 작성이었다.

       

       [0. 카우렐리아는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 국민에게로 돌아간다. 국민이란 카우렐리아 영토 내 영주권을 획득한 모든 자를 지칭한다. 앞으로 이 규율을 모든 정책 결정의 제1원칙으로 한다.]

       

       [1. 현 카우렐리아 행정부는 국민의 존엄한 뜻과 혁명군의 공통된 의사를 받아들여 총사퇴할 것이다. 이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대선을 실시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입법부는 의회해산권을 발동하고 석 달 이내에 총선거를 실시한다.]

       

       [2. 사법부의 기능은 일시 정지한다. 이 기간에 종족차별 및 부정부패 판례를 저지른 법조인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이는 하이엘프 출신이라 할지라도 예외사항을 두지 않도록 한다.] 

       

       [3. 카우렐리아 민주공화국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수호하며, 국내외 평화를 최우선으로 한다. 카우렐리아의 어느 국민이라도 적법한 과정 없이 자유의 제약을 받을 수 없으며, 평등을 제한할 수 있는 법률은 제정할 수 없다.]

       

       [4. 마왕군과의 대전쟁 이후의 기간 동안 부당하게 차별받은 금안족 등은 총사퇴 이전의 행정부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손해를 배상한다. 모든 배상 과정은 2년분에 한하여 소급 적용한다.]

       

       조약 내용은 이 정도로 간단했다. 그러나 강력했다. 무조건적인 사퇴와 처벌이 명시됐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부당하게 권력을 휘두른 엘프들을 사회적으로 말려버리겠다는 뜻이었다.

       

       “협상 내용은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의의 있는 사람 있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내젓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이가 서명에 참여했다. 행정부의 각처 장관, 6백 명이 넘어가는 국회의원들, 사법부의 수장, 각 하이엘프 가문의 수장들까지.

       

       민주주의라지만 반대할 수가 없었다. 자유와 평등, 평화를 철칙으로 하는 조약이었기 때문이다.

       

       불평등? 주신께서 보고 계시는데 불평등이라니. 당치도 않다. 조약에 시답잖은 조항을 넣으면 여신님께서 진노하시어 카우렐리아를 멸망시키실 것이 분명했다.

       

       “…유피엘. 네가 마지막이니.”

       “응.”

       

       딸깍.

       

       유피엘이 펜을 내려놓았다.

       

       이것으로 모든 서명이 끝났다. 동시에 이 조약의 내용은 카우렐리아 전역에 유효하게 되었다.

       

       “레니냐 동무. 저는 아직도 동무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블랑카가 투덜거리며 다가왔다.

       

       “우리는 타협을 위해 봉기를 일으킨 게 아닙니다. 완전한 해방, 즉 이 나라를 우리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혁명군에서 영웅이라고 추앙받는 동무가 이러시면….”

       “블랑카.”

       “왜 그러십니까?”

       

       레니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뗐다.

       

       “…이거면 된 거야.”

       

       그래.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금안족이 거꾸로 엘프를 박해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손을 잡고 동등하게 나아가는 것만이라면 이 정도 조약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까, 분노의 고리는 여기서 끊어내자.

       

       앞만 보고 달리자.

       

       유피엘이 말한 대로, 전쟁은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레니냐, 고마워.”

       “뭐가?”

       “내 말 들어줘서.”

       

       유피엘이 레니냐의 손을 꼭 잡았다. 오래전 함께했던 친구의 온기였다.

       

       오늘, 레니냐는 하이엘프 중에도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

       

       

       로테의 첫 실험은 별 탈 없이 끝났다.

       

       “카운트는 20번. 이 정도면 화력 조절 문제는 없겠어. 이젠 이걸 어떻게 발전에 이용하느냐겠지.”

       

       나는 로테에게 열심히 하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날 로테는 날밤을 새웠다.

       

       연구가 어지간히도 재미있나 보네.

       

       혼자 연구하는데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몰래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거면 되겠지.”

       

       정령계를 경유해서 로즈마리 곁으로 이동했다. 로즈마리는 여느 때와 같이 집무실에 있었다. 심각한 얼굴로 스코프를 보고 있는 건 이젠 익숙하다.

       

       한동안 석고처럼 굳어있었던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언니, 언니가 한 거 맞죠?”

       “응? 뭐가?”

       “카우렐리아의 건 말이에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기웃거릴 뿐이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시치미 떼지 마세요.”

       “글쎄.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걸.”

       “언니가 여신의 분노랍시고 흑주를 터뜨려 준 덕분에 시위대와 행정부가 극적으로 화해한 거잖아요. 무조건적 혁명을 외쳤던 시위대는 당으로서 국회에 들어가는 쪽으로 온건하게 바뀌었어요. 이 정도라면 저도 안심할 수 있다구요.”

       

       로즈마리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고마워요, 언니. 덕분에 근심거리를 하나 덜었어요. 도미노 이론은 폐기해야겠네요.”

       

       로즈마리의 칭찬에 나는 킥 웃고 말았다.

       

       “감사를 표하려면 나중에 레니냐한테 해. 결정을 내린 건 어디까지나 그 아이니까.”

       

       내가 한 건 별다른 게 아니다.

       

       유피엘에게서 로테를 보았고, 레니냐에게선 과거의 나를 보았으니까.

       

       단지 두 사람의 모습이 익숙했기 때문에 등만 떠밀어주는 식으로 얘기해 준 것일 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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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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