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9

       게임 자체는 대부분 레오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그렇게 일인칭으로만 진행되어서는 보여주기 힘든 부분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종종 악역들의 작당모의나 다른 캐릭터 간의 대사를 따로 컷신 형태로 만들어 보여주곤 했다.

        

       물론 컷신이라고 해봐야 이 게임의 평소 대화 장면과 다를 것도 없긴 했지만.

        

       그리고 이번 컷신의 등장 캐릭터는, 실비아와 샤를로트였다.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샤를로트에게, 실비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실비아는 뭔가 결심한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고, 초연한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이 게임 캐릭터들의 표정이 그렇게까지 다양하지는 않았고, 실비아도 거의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느낀 것은 그냥 내 감정 뿐이기는 했지만.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이 어떻게요?]

        

       실비아의 말에 샤를로트는 조금 따지듯 물었다.

        

       전쟁 직전인 상황에서 신경이 많이 곤두선 탓이다. 전면전으로 왕국이 제국을 이기는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당신이 뭘 할 수 있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 차기 황제는 앨리스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니시지 않았던가요?]

        

       […….]

        

       […….]

        

       실비아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샤를로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미안해요. 너무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아닙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죠.]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실비아—]

        

       샤를로트가 실비아를 불렀지만, 실비아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샤를로트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장면이 전환되어 다음 날 수업 시간.

        

       [언니는?]

        

       [응? 먼저 와 있던 게 아니었어?]

        

       클레어가 앨리스에게 묻자, 앨리스는 조금 당황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언니는 본 적 없어. 이제 곧 수업 시작인데…….]

        

       […….]

        

       샤를로트는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두 사람과의 대화를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

        

       그런 샤를로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샤를로트?]

        

       앨리스가 샤를로트를 바라보고,

        

       쿵.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지만,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들렸다.

        

       [전함이……]

        

       샤를로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의 다른 아이들의 시선도 샤를로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향했다.

        

       쿵!

        

       검은 연기를 뿜고 있던 전함에서, 다시 한번 폭발이 일었다.

        

       언제나 제도의 하늘에 떠 있던 위풍당당한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공중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덜덜덜.

        

       창문이 흔들렸다. 꽤 먼 곳에서의 폭발이었지만 여기까지 그 충격의 여파가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전함이 아래로 추락했다.

        

       선수를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세운 채 떨어진 전함은, 그대로 대폭발을 일으켰다.

        

       주변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입을 손으로 막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덜덜 떠는 학생도 보였다.

        

       [저기, 사람들은……?]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비아…….]

        

       샤를로트가 작게 중얼거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검게 물들며 에피소드가 끝났다.

        

       “…….”

        

       “…….”

        

       그리고 나는 나와 함께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제가 폭발시킨 전함은 현실에서는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많이 시간을 돌리는 동안 전함을 단 한 번도 터뜨린 적이 없다고?”

        

       “여러분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은 실제로도 한 적 없다는 뜻이겠죠. 지금 이곳에는 여신의 힘이 거의 닿지 않으니까요.”

        

       [너무 몰입한 거 아니냐ㅋㅋㅋㅋㅋ]

       [진짜 캐릭터였냐고ㅋㅋㅋㅋㅋ]

       [닮긴 했는데ㅋㅋㅋㅋ]

        

       그야 우리 세 사람 다 본인들이 맞으니까.

        

       “하지만 저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언니답긴 하네.”

        

       “……당신의 머릿속에서 저는 무슨 이미지인 겁니까?”

        

       그런데 어쨌거나 전적은 있었던지라 차마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

        

       그렇게 플레이를 적당히 마치고 게임을 끈 뒤, 우리는 잘 준비를 했다.

        

       테이블을 벽 쪽으로 밀어두고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다행히 세 사람이 나란히 누우면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넓은 방을 고르길 잘했다니까. 엘리베이터는 없고 건물도 지은 지 30년은 넘은 것 같았지만, 만약 내가 요즘 지어진 좁아터진 원룸을 구했다면 우리 세 사람이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와, 언니, 이것 좀 봐!”

        

       이불을 다 깔아두고 누우려는데 클레어가 활짝 웃으며 내 얼굴 앞에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클레어가 노래 부르는 영상의 조회수가 순식간에 상승했다.

        

       게다가 댓글에는 ‘코스프레’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클레어가 브라우저의 다른 탭을 선택해 다시 보여주니, 그곳에는 우리 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는 글이 있었다.

        

       그래, 왠지 게임하는 내내 시청자 수가 계속 늘어나더라. 주로 오타쿠 커뮤니티 쪽에서 우리 이야기가 활발하게 퍼지는 중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글 중 하나에는 치마 없이 조립된 내 피규어를 앞에 둔 우리 세 사람의 스크린샷도 있었고.

        

       [엌ㅋㅋㅋㅋㅋㅋ]

       [본인이 벗는 걸 보니 노출증이 있나보다]

       [내 신부가 있네]

        

       결혼 드립치는 놈은 여기도 있네.

        

       실존 인물의 사진을 앞에 두고 저런 소리를 한다는 점이 용기는 가상하다.

        

       ……하긴, 당장은 돈도 없으니 소송전 같은 걸 할 여유는 없었다.

        

       “우리, 꽤 유명해진 거 아니야?”

        

       클레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잠깐 쓴웃음을 짓다가—

        

       어, 잠깐만.

        

       문득 뭔가 생각나서 나는 몸을 돌렸다.

        

       서랍 안에 넣어둔 지보가 생각난 것이다.

        

       이쪽 세상에서 우리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다는 연결점이 늘어날수록, 지보의 힘은 다시 돌아온다.

        

       그렇다면, 이쯤 되면 한 번쯤 사용할 정도의 힘이 축적되지 않았을까?

        

       “앗!”

        

       그리고 내가 서랍에서 꺼낸 지보는 진짜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그 지보를 보고, 앨리스와 클레어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일까?”

        

       “아마 그럴 겁니다.”

        

       나는 지보를 조심스럽게 들고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클레어와 앨리스를 보며 물었다.

        

       만약 우리가 여기 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보가 빛났다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을지 모른다. 두 사람 다 이 세상에 대해서 잘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 두 사람은 이 세상을 나름대로 편히 즐기고 있었다. 특히 앨리스는 황녀의 의무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러니, 혹시라도 이쪽에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있다면 바로 가야지. 아쉽긴 하지만, 나는 가족과 평생 만나지 못하는 건 싫거든.”

        

       “그래, 맞아. 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있으니까. 여기서 있었던 일은, 추억으로 간직해야지.”

        

       “좋습니다.”

        

       나는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챙길 물건을 챙기도록 하죠. 이 힘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을 테니까요.”

        

       내 말에 앨리스와 클레어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그리고 몇 분 뒤.

        

       우리 세 사람 모두 옷을 최대한 말끔하게 갈아입고, 짐을 잔뜩 인 채 방 한가운데 모였다.

        

       가지고 갈 물건들이 꽤 많았다.

        

       사실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이 세계에 남아있을 내 가족들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핸드폰의 사진들을 전부 인쇄하지도 못했으니까. 분명 돌아가서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그 사진들도 못쓰게 되겠지.

        

       스마트폰 화면을 띄워두고 아제르나의 카메라로 찍어 보관하려고 하면 가능하려나.

        

       ……뭐, 그건 돌아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모두 이 앞으로 모여주십시오.”

        

       내가 지보를 내밀자, 두 사람은 지보에 손을 내밀었다.

        

       “……이제 어쩌지?”

        

       앨리스가 물었다.

        

       “내가 한번, 이쪽으로 왔을 때처럼 해볼게.”

        

       그 말에 나와 앨리스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맡겨둬.”

        

       클레어는 비장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우리도 따라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

        

       잠깐의 침묵 뒤에—

        

       침묵 뒤에—

        

       ——

        

       “……그, 저기.”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실비아……?”

        

       샤를로트의 목소리였다.

        

       혹시 우리가 떠나왔던 곳을 중심으로 아직도 조사 중이었던 걸까?

        

       제일 먼저 해야 할 말은 뭘까? 다녀왔어요?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이 여전히 내 원룸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 뭔가 발아래가 그대로더라.

        

       생각해보니 신발 신는 걸 깜빡했네. 방 안에서 신발을 신을 수는 없으니까.

        

       “…….”

        

       아니, 잠깐만.

        

       그러면,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

        

       앨리스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방 한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들고 있던 지보의 빛은 확연히 약해져 있었다.

        

       클레어와 앨리스가 처음 돌아왔을 때처럼.

        

       “……저, 실비아? 클레어? 앨리스?”

        

       침착하게, 우리에게 말을 거는 샤를로트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 뒤쪽에서 떨리는 숨소리도 들렸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잔뜩 겁먹은 소리였다.

        

       “……샤를로트.”

        

       나는 일단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미아.”

        

       “화, 황녀님.”

        

       미아는 양손으로 지팡이를 꽉 쥔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

        

       나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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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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