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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9

        

       정부에 책임을 떠넘긴다.

         

       어떤 정부에?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이 의원을 향했다.

         

       “여러분. 우리가 뭐 우리 잘되자고 일을 벌였습니까? 다 이 나라를 위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의원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그들이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이 행한 욕망의 결과물을 적절하게 포장해서 ‘대의를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애국자입니다. 천황폐하에 대한 충성심. 나라에 대한 사랑! 우리는 자발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소중히 여기고 있던 사람들을 내밀었고, 우리의 사재를 털어서 무사에게 착용하게 해서 야만의 땅으로 파견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우리는 애국자(愛國者)요, 우국지사(憂國之士)가 아니겠습니까!”

         

       의원의 논리는 간단했다.

         

       여기 모인 화족은 전부 애국자이며, 천황폐하를 위하는 신민이다.

       동시에 충심으로 사재조차 털어서 제 휘하의 가신을 보낸 충신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이 어긋나 성공치 못하게 되었고, 우리가 보낸 사람들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예. 너무 안타깝게도 이 상황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성공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나, 바다 건너에 있는 저 무뢰배(無賴輩)들은 야만적이면서도 강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니 어쩌겠습니까?”

         

       하지만 운이 없어서 일이 꼬였고, 야만적인 놈들에게 무사들이 잡히고 말았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자신의 무사를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주군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무사를 위해서, 가신을 위해서 읍소를 해야 합니다. 충성심의 발로로 행한 일이 꼬였으니, 천하만민 모두에게 태양과 같은 은혜로움을 베푸시는 천황폐하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요!”

         

       그러니 천황폐하께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자.

         

       아무리 포장하고 또 포장한다고 해도 의원의 말의 본질은 ‘일은 내가 벌였지만, 책임은 정부가 졌으면 좋겠다.’라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뻔뻔한 말에 화족들은 솔깃하기라도 한 듯 귀가 쫑긋 움직였다.

         

       왜 솔깃하지 않겠는가?

       책임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게 된다는데.

         

       “하기야 그렇지요….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천황폐하께서 우리의 충성심을 갸륵하게 여기셨으면 좋겠는데….”

         

       “하하. 당연히 그렇게 여기시겠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천황폐하의 명칭이 적혀있는 물건을 가져오려고 시도한 것인데요. 발 벗고 나서실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천황폐하께서도 아예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가만히 앉아있다가 날벼락을 맞게 된 천황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이가 없겠지만, 화족들은 정말로 천황에게도 책임이 일부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사람마다 그 책임의 크기에 대해서는 다르게 여기고 있었으나, 놀랍게도 대부분의 화족들은 계획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천황이 자신들의 피해를 수습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우리를 위해서 한 일입니까? 아니잖습니까. 불령선인들이 가득 들어찬 저 야만스러운 조선 땅에 천황폐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물건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비분강개(悲憤慷慨)하며 회수할 이들을 꾸린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 어떤 로비도 없었고, 누구의 강요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으로, 신민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행한 일이지요. 물론 실패를 한 것은 면목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충성심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심이라뇨! 하하하! 우리가 한 일만 보더라도 상을 받았으면 받았지, 질책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천황폐하께서는 우리 같은 충신을 위해서 당연히 나서주셔야 하겠지요!”

         

       이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자신들은 충신이고, 천황을 위해서 행동한 것이다.

       그러니 마땅히 주군으로서 충신을 치하하고, 충신들의 실수를 수습하고 감싸주어야만 한다.

         

       지금이 수백 년 전도 아닌데다가, 수백 년 전에도 벌을 받았으면 받았지, 상을 받을 일이 아님에도 이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믿어서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자신들 대신에 정부가 나서면 소중한 능력자들을 되돌려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책임을 자신이 지지 않게 되어 기뻐하는 이도 있었다.

         

       “제가 마침 궁내청에서 일하는 분과 연이 있으니, 그분께 말을 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원은 겉으로는 무언가를 결심이라도 한 듯 진지한 얼굴로 화족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묘하게 씰룩씰룩 움직이는 것이,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에 깊이 안도하고 기뻐하고 있음이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화족 모임은 파국을 무사히 회피하였다.

         

       의원은 모임이 끝나자마자 즉시 자신이 알고 있는 궁내청의 직원에게 연락해서 고급 횟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처음에는 신변잡기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그는 편지 한 장과 가방 하나를 꺼내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부디 이 편지를 천황폐하께 전해주었으면 하네.”

         

       밀랍으로 단단하게 봉해진 편지.

       딱 봐도 뭔가 수상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직원은 괜히 이상한 일에 얽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편지를 거절하려고 했으나, 의원이 가방을 여는 순간 입이 딱 다물어졌다.

         

       가방 안에는 지폐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일본이 낳은 위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얼굴이 박혀 있는 지폐.

         

       1만 엔권 지폐였다.

         

       가방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유키치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 다발이 몇 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선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겠네. 딱 이 편지만 전해주면 되네. 천황폐하께 해가 되는 내용이 아니야. 그냥 조금 급한 상황이라서 그러네. 내가 이름을 걸고, 의원직을 걸고 장담하겠네. 천황폐하께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터이니, 이 편지를 전해줄 수 있겠는가?”

         

       수상해 보이는 편지.

       1만엔 지폐 다발들.

         

       직원은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눈을 이리 굴렸다 저리 굴리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결심한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입니다.”

         

       “그래. 고맙네, 정말 고마워.”

         

       직원은 편지를 전해주는 것을 택했다.

         

       편지가 수상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눈앞의 의원이 천황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있는 데다가, 고작 편지를 전해주는 일 아닌가?

         

       게다가 충성심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그는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해서 궁내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공무원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의 궁내청은 현재의 천황과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직원은 기꺼이 돈을 택했고,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편지를 천황에게 주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을 편지를 말이다.

         

         

         

        * * *

         

         

         

       “이, 이런 역신들이 다 있나…!”

         

       날벼락.

       날벼락이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날벼락이 떨어졌다.

         

       천황은 언제나처럼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나라의 상징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고, 그러던 중 옛 화족 출신의 의원이 편지를 보냈다기에 지루한 일상에 무언가 변화라도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편지를 읽어보았다.

         

       물론 편지 안에 좋지 않은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궁내청에 있는 이들이 먼저 검사를 마쳤고, 혹여 천황을 욕보이는 삿된 내용이 적혀있을 수도 있으니 다른 이들이 그것을 확인하고서야 편지 봉투 안의 편지지가 그의 손에 들렸다.

         

       그렇게 기나긴 확인 작업 끝에 그의 손에 들린 편지지는….

         

       다른 의미로, 변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천황의 이름이 새겨진 유물, 혹은 주물을 발견했다…. 그것을 다시 일본으로 가져오기 위해 결사대를 파견했다…?”

         

       그가 원하던 긍정적인 변화가 아닌, 부정적인 변화.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강렬한 변화였다.

         

       “결사대를 파견했으나 주술사의 거처에 잠입…하다가. 다 잡혀…?”

         

       이게 무슨 미친 내용이란 말인가.

         

       일본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그래서 결사대를 파견했다고?

         

       이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돈을 주고 사 오면 되는 것을.

       그것도 아니라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져오면 되는 것을.

       그것을 굳이 칼 든 놈들을 뽑아서 파견했다고?

         

       그래.

       하다못해 성공이라도 했으면 모른다.

         

       칼 든 놈을 보냈든, 마법을 쓰는 놈을 보냈든, 폭력을 사용했든.

       어쨌든 가져오기만 했으면 그래도 정상참작이 가능했으리라.

         

       그런데 이 무능한 작자들이 쓴 편지를 보라.

         

       실패했단다.

       주술사의 거처에 보냈다가 죄다 잡혀버렸단다.

         

       이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그 아래에 적힌 글은 더 가관이었다.

         

       “참으로 송구하오나 천황폐하께서 친히 나서…. 하!”

         

       구구절절한 말로 적혀있는 요청.

       자신들이 보낸 이들을 구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런 후안무치하고 무도한 작자들을 보았나…!”

         

       천황은 분노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편지를 그대로 구겨버렸다.

         

       부탁?

       그래.

       편지에 적힌 것은 부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알게 되는 순간부터 강제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평범한 ‘부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황이라는 존재는 모든 신민의 어버이이며, 그들을 보호하는 어머니였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고, 충실하게 자신을 따르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신민들을 위험에서 보호해야만 했다.

         

       실제로 천황이 그렇게 생각하냐 생각하지 않느냐는 상관이 없었다.

       저건 의무였으니까.

       아무리 명목상이라고 해도, 의무라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고?

         

       안 지키면 공격당하니까!

       

       “대관절 얼마나 만세일계(万世一系)의 핏줄을 우습게 보았길래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하려 하는 것이냐…!”

         

       지금 천황이라는 존재는 별다른 힘이 없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뒤 천황은 현인신에서 인간으로 격하가 되었고, 절대 황권을 가지고 있는 황제에서 단순한 상징으로 변해버렸다. 막강한 위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추종자 역시 사라져버렸다.

         

       고귀한 핏줄을 지녔던 이들은 모두 힘을 빼앗겼으며, 간신히 명맥만 이어올 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망자들, 그리고 의원들이었다.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습하면서 권력을 쥐는 존재들.

       겉으로는 천황에 충성하면서도 뒤로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불경하기 짝이 없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무도한 작자들.

         

       그들에게 있어 천황이라는 것은 그저 상징이었으며, 필요할 때 꺼내다 써서 대신 욕을 먹게 하는 토템이나 다름이 없었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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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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