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돌아온 탕아 ( 3 )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시간을 느릿하게 살아가며 저들끼리 얽히고 섥힌 그로아나 수림은 울창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수해.
말 그대로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바다에 가까운 곳이었다.
생물 개인의 힘으로서는 바다의 형태를 바꿀 수도 없고, 바꾸지도 못하는 땅 위의 초록색 바다.
넓게 펼쳐진 지상의 바다는, 하늘이 뒤틀리고 갈라질 정도의 폭력적인 힘에 시름을 앓고 있었다.
꽈릉! 콰르르릉! 꽈앙!
무수한 벼락이 내리치며 테니아의 몸을 두들겼다. 무서울 정도의 힘을 간직한 벼락에 테니아도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끄, 흐윽… 후욱, 훅, 우욱…”
셰이드는 먹먹하게 들려오는 우렛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온몸을 갉아먹는 끔찍한 고통과 안도감.
고통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셰이드는 고통에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으윽… 갈비뼈가 나갔군…’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 소리를 앞지르는 대악마의 촉수를 얻어맞고 갈비뼈만 부서졌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었다.
불행이라면 무너진 나무가 셰이드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몇 번이고 다리를 빼내려 시도하던 셰이드는 이내 나무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나무를 치우려면 오크 수십이 몰려와야 가능할 것이다.
“젠장…”
여기서 죽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셰이드는 그제야 대악마의 존재를 떠올렸다.
‘대악마는ㅡ’
꽈릉! 콰르르릉! 꽈앙!
새파란 벼락이 무수하게 떨어지며 테니아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고 있었다. 푸른 벼락의 폭풍에 갇힌 테니아는 굵은 촉수로 몸을 보호하기 급급했다.
“아.”
셰이드는 경외했다.
저 푸르른 벼락, 틀림없는 신의 벼락이 아닌가.
그 순간 셰이드는 깨달았다. 신께서는 그에게 벼락으로 말씀하고 계셨다.
‘살아야 한다!’
신께서 이토록 말하고 계시지 않은가!
살라고!
“흐으으으읍!”
셰이드는 안간힘을 다해 나무통을 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강렬한 현기증이 셰이드를 덮쳤다.
셰이드는 자신의 존재가 어떤 거대한 존재의 초월적인 채집통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느꼈다.
땅에 누워있던 자신은 벽을 향해 걸어가다가 계단을 미끄러지고 위를 향해 굴러서 내려가다가 중심을 향해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쿵!
“으윽!”
정신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기분이었다. 신음을 흘린 셰이드가 반사적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과 아늑한 분위기의 인테리어, 조금 좁게 자리 잡은 테이블과 의자.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여관이었다.
“…여관…?”
갑자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셰이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가 부서져 참을 수 없는 통증은 안겼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 여관…! 설마, 여기는… 정말로?”
셰이드의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흥분이 깃들었다. 무수한 소문이 가득한 신의 무기,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기묘한 여관. 셰이드는 소문의 여관이 이곳이라는 걸 확신했다.
“맞아요. 생각보다 훨씬 침착하시네요.”
인기척 없이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셰이드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옅은 적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하얀 사제복을 입고 셰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황이 급해서 제가 대신 나왔어요. 하나 된 분의 밑에서 수학하고 있는 리아라고 합니다.”
“어, 크흠. 예. 저는 셰이드 윽!… 입니다.”
어정쩡하게 인사하다가 갈비뼈를 부여잡은 셰이드를 보며 리아가 걱정스레 다가왔다.
“뼈가 부러졌군요. 제가 임시로나마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아… 예…”
리아의 하얀 손이 셰이드의 가슴께를 어루만졌다. 따뜻한 기운이 빛나며 셰이드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이내 통증이 사라졌다.
“임시로 붙여두기만 했어요. 너무 격하게 움직이시면 상처가 다시 벌어질 거예요.”
“알겠… 습니다…”
리아의 당부에 셰이드는 몽롱하게 대답했다.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시선을 리아에게서 돌릴 수 없었다. 리아의 오똑한 코와 순진한 눈동자, 살짝 붉은 입술이 셰이드를 사로잡았다.
“사랑합니다.”
“예?”
“어, 으흠!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제가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서 저도 모르게 헛소리를ㅡ”
“아, 아뇨… 저는 이미 유부녀인데요. 죄송하지만 그 고백은 제가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
셰이드는 속으로 자신을 마구 때리고 짓밟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추태인가! 죽고 싶었다! 차라리 죽을 수 있다면!!
“…죄송합니다…”
“어, 아, 아뇨. 제가 왠지 더 죄송…”
단숨에 어색해진 공기.
리아가 안간힘을 쓰며 침묵을 뚫었다.
“으흠! 이건 하나 된 분께서 셰이드 씨를 위해 준비한 무기입니다. 여관도 알고 계셨으니 아마 신의 무기도 알고 계시겠죠?”
“예, 예! 물론입니다.”
셰이드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리아의 말에 호응했다. 어색한 공기를 끝내기 위함이었지만, 리아가 탁자 밑에서 꺼낸 무기를 보다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허어. 이것은… 도대체…”
“하나 된 분께서 손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당신을 위해 특별히 만드신, 당신만을 위한 무기예요.”
셰이드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그 ‘무기’를 한 손에 끼웠다.
철컥, 하고 맞물리는 단단한 고정음과 함께 이 ‘무기’의 사용법을 깨달았다. 누군가 머릿속에 써주는 것처럼.
“아마 당신도 알겠지만, 이 무기는 사용자의 재량을 많이 타요. 당신이라면… 아마 충분히 무기의 성능을 끌어낼 수 있겠죠.”
리아의 말에 셰이드는 씩 미소 지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물론입니다.”
리아는 셰이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상대하게 될 아이는…가엾고 상처가 많은 아이예요.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불쌍한 아이죠. 하나 된 분께서 그 아이를 위한 수를 준비하고 계시니, 부디 그 아이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없도록 붙잡고 있을 수 있나요?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요.”
“…해보겠습니다.”
쉽지 않은 부탁이었다. 전력으로 상대해도 부족할 대악마를 붙잡고 있으라니.
하지만 셰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고마워요.
리아가 짧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ㅡ
셰이드는 자신이 다시 익숙한 정글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꽈르르릉!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은 차라리 기둥에 가까운 것이었다. 셰이드가 우렛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팔에 끼워진 커다란 ‘무기’를 점검했다.
철컥거리는 낮은 쇳소리가 울린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인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눈부신 은색을 발한다.
끼리릭… 철컥… 철컥!
있는 힘껏 노리쇠를 당긴 셰이드는 머릿속의 설명에 따라 자세를 취했다.
스읍ㅡ 숨을 마시고, 멈춘 다음에… 가늠쇠를 조준, 발사.
투웅!!
‘무기’를 끼운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자 낮은 발사음과 함께 묵직한 화살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이내 벼락의 폭풍을 뚫고 날아간 화살이 테니아의 가슴께에 박혔다.
《키하아아아악!! 아, 아파아ㅡㅡ!! 아파, 아파아파아파!! 아파!!》
효과가 있다.
셰이드는 혀를 내두르며 자신의 팔이 끼워진, 거대한 석궁을 바라봤다. 보통의 석궁과 달리 한쪽 팔에 끼울 수 있도록 제작된 이 석궁은 한 손으로 조준하고 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외팔이를 위한, 셰이드가 딱 좋은 석궁이었다.
‘남은 화살은 거의 오백인가.’
차르르륵.
기묘한 원통을 닮은 화살집이 돌아가며 화살을 자동으로 장전했다. 셰이드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촤르르르륵! 투투퉁!
석궁이 무수한 화살의 비를 쏟아냈다. 효과가 있는 것인지, 테니아는 화살을 피하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벼락이 멈췄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셰이드는 이 순간부터, 리아라는 여인이 말했던 것이 시작됨을 깨달았다. 하나 된 분께서 준비를 마치기 전까지 자신이 버텨야 한다!
《끄, 흐, 햐아아아악!! 아, 아파아아ㅡㅡ!! 엄,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를 보고 싶, 어!!》
테니아의 괴성에 셰이드가 힘껏 구르며 연신 화살을 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 될 것이라고.
* * * * *
“리아! 셰이드한테 괜찮은 무기 전해준 거 맞지? 확실한 거지?”
– “네. 제가 생각했을 때 일반인에 가까운 그에게 가장 괜찮을 것 같은 무기로 전달했어요.”
“잘했어!”
나는 정신없이 벼락을 떨구며 리아와 대화했다.
테니아는 너무 튼튼했다. 떨어지는 벼락에 별다른 충격도 받지 않을 정도로.
다행히 잠깐씩 경직되는 효과는 있기에 테니아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나는 쉬지 않고 벼락을 퍼부어야 했다.
그래서 리아를 시켜 셰이드를 여관으로 부른 다음 무기를 전해주라고 시켰다. 케넬름을 시키지 않은 이유는… 뭔가 이런 일은 리아가 조금 더 잘할 것 같아서 그랬다.
– 《키흐르릅! 햐아아각! 아, 아파아! 아파아파아파아파!!》
벼락을 맞으며 잔뜩 웅크린 테니아의 비명에 나도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테니아를 살려서 황금 나무에게 보내야 하는데, 잠깐이라도 놔주면 금방 뛰쳐나갈 테니.
‘네가 그렇게 원하는 엄마 볼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좀 가만히 있어라 좀!’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얼마나 벼락을 떨궜을까.
– 퉁! 촤르르르르륵! 투투투퉁!
이내 화면에서 나타난 셰이드가 한 손에 멋들어진 석궁을 장착하고 나타났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화살의 폭풍!
그것은 마치 폭풍의 시와 같았다.
“오우씨. 멋진 걸로 골랐네.”
도대체 얼마나 비싼 걸로 만들었냐는 질문은 애써 삼켰다. 그건 너무 쪼잔해 보이는 질문이니까.
– “감사합니다. 하나 된 분께서 허락하셨으니 가능한 일이었지요. 평상시의 저라면 엄두도 못 냈을 기적이에요.”
내 칭찬에 리아가 겸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 투투투퉁! 촤르르륵!
– “여기다 이 악마야! 여기다! 나는 여기 있다!”
– 《아아아아아아아!! 어, 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 어딨어어딨어어딨어어딨어!》
화면 속에서는 셰이드가 미친 듯이 화살을 퍼붓고 있었다. 저 석궁에 사용되는 화살은 소모품이다. 셰이드가 아무리 노력해도 오랫동안 버티지 못할 거다.
나는 미친 듯이 스킬들을 사용했다.
속박, 환상, 저주, 광란, 정지, 혼란, 환각… 온갖 디버프와 제어 스킬이 테니아를 향해 쏟아졌다. 스킬을 사용하면 테니아의 몸이 아주 잠깐씩은 멈췄다.
하지만ㅡ
삐익! 삐익! 삐익ㅡ!
《대상이 광란 상태입니다! 효과가 사라집니다.》
“씨이… 도대체 뭔 스킬이 하나도 안 통하는 거야? 저 광란 상태가 도대체 뭐길래…”
벼락같은 직접적인 타격은 가능했다. 하지만 테니아의 정신이나 움직임에 간섭하는 모든 스킬은 통하지 않았다.
– “…아마 저 아이의 권능이 아닐까요? 광기를 다루는… 그런 종류의 권능으로 자신을 끝없이 미치게 만들고 있어서, 격을 뛰어넘는 기적에 억지로 저항하고 있는 거죠.”
리아의 추측이 그럴 듯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방법이,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손톱을 미친 듯이 깨물며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다.
케넬름은 어째서인지 나를 조금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폴짝 화면 앞으로 뛰어나왔다.
– “하, 하나 된 분이시여! 제가 테니아와 카르타할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하, 한번 들어봐 주신다면…”
평소보다 조금 다급해 보이는 케넬름이 더듬더듬, 이따금 리아를 힐끔거리며 말을 이었다. 리아는 그저 흐뭇하게 케넬름을 바라보며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 “어, 어떠신… 가요? 제 생각은…?”
“흠.”
가만히 케넬름의 계획을 점검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괜찮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이 제일 가능성이 큰 방법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
나는 결연한 태도로 화면을 옮겼다.
케넬름의 계획에는 엄청난 스킬이 하나 필요했다. 아주 뛰어나고,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스킬이.
그리고 기적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희생을 강요했다.
부우웅ㅡ!
[WEB 발신] 카드 58,500원 일시불 승인.
나는 기꺼이 그 희생을 짊어지는 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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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드의 무기 참고 이미지임니다
영화 반 헬싱임니다
셋.
후…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극한의 삼연참 쑈… 모든 힘을 삼연참이 쏟아부은 랄까는 거짓말처럼 주말 동안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오 감사합니다..!! 허억…11 시간이면 저의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수술이었군요… 무사히 수술이 끝나서 정말정말 다행입니다…!! 부디 푹 쉬셔서 금방 나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 많이 드시고, 밥 꼬박꼬박 드세욧…!!@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