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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9

        

         “이봐, 마켓 큐레이터 형씨! 우리 팀 전열 드로이드가 폭동 때 구동부가 박살 나서 수리를 좀 맡기려고 하는데… 왜 견적서가 이렇게 허접해? 어째 낡은 부품만 잔뜩이잖아! 그만큼 꽤 싸긴 해도.”

         

         “미안한데, 요즘 기계 부품 좀 괜찮은 건 들어오자마자 다 쓸어가는 큰손이 계셔서 여기서는 무리야. 가격 대비 쓸만한 무슨 매크로 돌려가며 귀신 같이 매입해서 쌓아 둘 틈도 없이 나간다고? 상부에선 누가 재고 목록을 실시간 모니터링 하는 것 같다고 하긴 했지만. 다른 지점으로 문의하든가, 그냥 외부 정품 샵을 가지?”

         

         “씨발! 그게 가능했으면 당연히 사후 관리(After Service) 기간도 훨씬 긴 기업 정비창을 갔지. 보증 기한도 모르는 노획한 녀석을 억지로 수리해서 누더기처럼 기워 쓰고 있던 건데. 어쩔 수 없군, 그럼 대신 앞세울 간이 드론이라도 한 대…..”

         

         “…소형 정찰기(UAV; Unmanned Aerial Vehicle) 재고도 마찬가지로 한 대가 없다고? 대체 뭔데 씨발?? 어디 밀수 조직끼리 한판 전쟁이라도 났나? 이런 존나 예민한 시국에??”

         

         “모르지 뭐, 우리 쪽이야 일단 그냥 물건 팔아달라는 주문대로 휙휙 넘겨주는 거니까. 덕분에 시가도 약간 달라졌고, 대규모 운송 작전 방면으로 운송 일거리가 좀 생겼으니 용돈 벌이라도 해서 다시 오던가.”

         

         

         “얌마, 너…… 저번에 같이 고른 중화기나 폭탄들도 그렇고. 혹시 평소에 꾸준히 여기서 물자 조달했었어?”

         

         – 아샤님 계정에 암시장 실적과 기록이 남는 행위이니까요. 여러 지점에 분산 주문한 다음 수령해도 상관은 없었겠으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거래 단위를 제한한 채 꾸준히 구입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역시 물량이 부족한만큼 일부 부품은 양지에서 정식으로 구매하고 있습니다만. –

         

         “아니이… 창고가 슬슬 빌 때까지 샀다는 게 뻔히 들리는데. 의심, 전혀 못 피했잖아. 당장 나라고 크게 특정되지 않은 것뿐이지…!”

         

         일부 목소리 큰 용병들의 여러 잡담에 뒤섞여 나와 무관계한 듯,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한 듯. 애매모호하며 동시에 머리 한구석을 간지럽히는 얘기가 들려오길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모른 척 제로를 슬쩍 찔러봤는데… 겁나 정확하기도 해라. 어디로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범인이 특정되었다.

         

         슬금슬금 발을 넓히는 것도 모자라 확인할 때마다 머릿수가 묘하게 증식하는 우리 제로, 어느새 지역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요놈의 소비력을 설마 이렇게 체감하게 될 줄이야.

         

         어차피 원래 도시에 흐르던 눈먼 크레딧, 내 수입에 집중되어 순환율이 좀 높아진다 한들 크게 바뀌는 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사용처가 한 분야로 확 한정되면 그건 또 다른 얘기가 되는구나. 흐음.

         

         블랙마켓의 상업 구역이란 결국엔 집하 장소. 상점도 있고,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제품도 있긴 하다지만 온갖 곳에서 흘러드는 자원과 상품을 몰라 관리하는 물자 집적소에 가까운 만큼 집중된 수요가 발생하면 일시적인 공급 공백이 일어나는 것도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노골적으로 나쁜 말을 하진 않겠지만 누구든 함부로 조사하려 들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대충은.

         

         아마 함부로 우리 뒤를 밟으려 들면 내가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보나마나 제로나 마사나리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될 테니까!

         

         무슨 실종자가 생겼다며 나중에 말씀하셔도 전 모르는 일이에요?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아무리 내 허락없이 과잉방위는 자제해달라 부탁해 놨어도 즉결 심판이 일어나고 말고라는 건 사실상 다 현장 판단에 달려있는 겁니다? 쓰읍.

         

         솔직히 제로 얘도 이제는 정말 더 미룰 게 아니라, 브로커에게 위조 신분을 하나 부탁해서 전자 데이터 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시민 속성이라도 넣어줘야 할 것 같은데.

         

         생체 안드로이드 몸체 구입을 자꾸 내 취향에 맞추겠다며 미루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직 자아에 대한 고민이 많은 모양이라 구태여 재촉하진 않았거늘 이러다간 내 행적만 점점 더 수상해지겠어 아주.

         

         “뭐든 적당히 해야 한다…? 우리가 한탕 한 다음 은퇴해야 하는 평범한 용병들도 아니고. 어? 오래오래 무사히, 있는 행운에 감사하며 세상 풍파를 헤쳐 나갈 생각을 해야지.”

         

         – 언제나 아나스타샤님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규모, 잠재적 적대 세력들로부터 수비적 지연 작전을 펼칠 능력을 고려하여 개체 수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

         

         드로이드가 무슨 양식하는 동물도 아닐진대, 이미 완성된 몸체를 굳이 폐기해서 마이너스로 돌릴 리도 없지 않나.

         

         그냥 어느 나라의 경제 증시 마냥 무조건 우상향 할 테니 안심하라는 소리 아냐 이건.

         

         “꾸준히 늘리고 있다는 말을, 겁나 어렵게 돌려 한 것처럼 들린 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지 그럼?”

         

         – ……. –

         

         하여간, 임마는 또 지 불리한 주제로 흘러간다고 조용해지네.

         

         매번 묵비권을 행사할 때마다 굳이 추궁하진 않았더니 점점 태도가 능청스러워지는 게, 다른 건 몰라도 점점 논리 이외의 인격적인 부분도 잘 학습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랄까.

         

         음, 이 기세라면 조만간 알아서 신원 데이터 작성이든 가지고 싶은 생체 바디 쇼핑이든 끝마쳐 올 거 같으니 그냥 얌전히 기다려도 될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명확한 감정과 성격을 품고 그걸 인지하는 것까지 권하는 건 몰라도.

         얘가 완전한 인공지능, 하나의 새로운 종으로서 그런 모습을 바랄지 안 바랄지 모르는데 반복적으로 고르라 말하는 건 강요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내 눈엔 마냥 덜렁이로 보이더라도 최초의 초인공지능과 비슷한 게 제로라면… 이쪽의 역할이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일일이 간섭하려 들면 쓰나.

         

         그래, 큰 줄기는 제로 자신의 자율에 맡겨두도록 하자.

         

         엄밀히 따졌을 때 조금 이질적이고 설명 불가능한 현상의 산물인 나와는 달리, 제로는 순수하게 기술 기적에 가까운 발전된 지성체가 아닌가? 심사숙고한 끝에 잘 결정할 거라 믿는다 분명. 그러니까….

         

         “…야, 피곤해서 안 되겠다. 어깨 좀 빌려줘.”

         

         나와 제로 사이의 암묵적 약속. 차마 당당하게 엎어달라고 부탁하기도 부끄럽고, 이동 수단으로 써먹겠다 말하는 것도 어색하기에 중의적으로 결정한 키워드에 따라 훌쩍 밑에 받쳐진 기계 팔을 타고 전용석에 올랐다.

         

         자, 이제 자동-실상은 완전 수동 쪽에 더 가깝겠지만 아무튼-으로 목적지까지 가지겠다. 아까 하던 암시장 얘기를 계속 해보자면… 사실 말이 좋아서 물자 집적소고 물류 센터지, 분위기만 보면 살짝 도떼기시장판에 더 가깝달까.

         

         뭐 세부적으로 따져도 ‘중고 물품’들이 훨씬 더 많으니 딱히 틀린 표현이 아니기도 하고.

         

         따라서 손님들이 자주 찾는 소모율 높은 물건들을 잘 보이는 곳으로 빼놓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직접 블랙마켓에 들린 게 꽤나 간만인만큼 총, 칼, 산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인 탄약 박스는 양반이오, 사이버웨어 분석을 쓰지 않고 대충 보는 걸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22세기 전투 가젯들을 로망과 호기심을 굳이 거부하지 않은 채 약간 휘청휘청 구경하며 지그재그로 호텔로 향하던 게 패인이었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슬프지만 체력도 유한 자원이거늘 나름 궤도에 올랐다 생각한 홈 트레이닝의 성과를 너무 고평가한 모양이네. 어휴.

         

         ……쇼핑이라면 어제 헬라나와 질리게 했을 텐데, 일부러 줄지어 선 점포 가장자리 부근을 기웃거린 진짜 이유를 숨기지 말고 실토하라고?

         

         블랙마켓이 장악한 구역이 워낙 크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가능성은 정말 낮았지만, 만약 큐볼 용병단이나 킴을 아는 관계자를 만났으면 기막힌 우연을 가장해서 시비를 그냥 끈질기게…!

         

         

         

         “크흠…! 코드네임 아이보리, 현재 해커 파워랭킹 3위 되는 분이시죠? 실장님이 실수 없게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잡다한 용무의 편의를 위해 앞까지만 동행한 후, 두 분께서 말씀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경호 팀과 함께 복도에서 기다릴 예정이므로 안심을.

         

         거기에, 원활한 상담 진행을 위해 방 내부의 모든 유무선 라인이 미리 차단되어 있기에. 룸 서비스 등을 주문하실 때도 절 통해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아하하….”

         

         “네, 네? 어… 그건 제가 맞긴 한데요. …미리 감사합니다?”

         

         “…그, 천만의 말씀을. 번거로운 짐이 없으시다면 무기나 전용 장비 등을 맡기실 필요없이 그대로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원래 본부로 찾아오셨다면 당연히 몸수색을 필수로 해야 했겠지만 감히 그래도 되는 상대가 아니란 당부만 전해 들은지라.”

         

         모난 마음을 품으면 벌을 받는다더니, 내 경우엔 영 익숙해지지 않는 극진한 접대를 반강제적으로 받아야 하는 게 그런 경우이려나.

         

         가뜩이나 시선 처리 어색하게, 이런 환대가 있을 줄 몰라 미리 제로에게서 하차하지 않은 탓에 자신보다 한참이나 여러 보이는 여자애를 목을 꺾어 올려봐야 한다는 해괴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직원 씨의 태도가 아주 극진했다.

         

         더군다나 차려 입은 복장을 보면 일개 호텔리어도 아니고 마켓에 소속된 산하 정직원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원래부터 친절한 사람일 가능성? 글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도록 활짝 웃고 있는 걸 보면 이건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발현된 예절이라 생각된다.

         

         봐라. 레오나르가 얼마나 겁을 줬는지 호텔 로비에서부터 뒤 한 번 안 힐끔거리고 경직된 상태로 엘리베이터부터 복도, 예약한 방 문 앞에 올 때까지 잡담 한마디 없는 모습을.

         

         난 처음에 우다다 인사말을 쏟아내길래 말이 많은 타입인가 했는데, 그냥 단순히 긴장으로 할 말을 까먹기 전에 다 토해내고 본 게 아니었을까.

         

         밑에 부하들을 세상 거리낌 없이 능숙하게 다루는 걸 보면 사람 부리는 솜씨가 천성 몸에 배인 상위 포식자.

         

         물론 공과 사를 칼같이 나누는 걸로도 모자라, 사지로 뛰어들 계획을 짜면서도 아랫사람에게 아쉬운 부탁 하나없이 강행하기까지 하는.

         

         워낙 독고다이 이미지에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고민하고 냉정하게 처리하는 실력자 느낌이 강해서 그렇지 본디 매드 사이언티스트나 광인이라 불린 보스치고는 휘하에 거느린 사람이 굉장히 많은 실력자였다.

         

         엑사테크 출신답게 다소 외형이 개성적이다 못해 독특할 뿐, 정작 지금은 그 원흉이나 다름없는 계기가 사라진 것 때문인지 지금은 솔직히 광기의 기역자조차 없이 이성적이고 젠틀해서 나조차 편히 의논 상대로 써먹고 있긴 한데.

         

         이런 사람이 업무상 무서워봐야 뭐 얼마나 무섭다고 그리 겁먹으신 걸까. 참나.

         

         “따로 시키실 일이 없다면, 저는 여기서 이제….”

         

         “아, 네네. 그 자잘한 심부름은 어차피 제 드로이드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까, 레오나르가 무조건 자리를 지키라 한 게 아니면 바쁘실 텐데 이만 가보셔도 되요.”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 약간 황송해하며, ‘…실장님을 그냥 이름으로 불러?’ 같은 경악한 표정을 띤 그를 우리 더 어정쩡하고 불편하게 있지 말자는 의미로 쫓아 보내고자 일단 시도하던 와중. 급격히 밝아지는 표정을 보고 다른 가설이 떠올랐다.

         

         잠깐, 레오나르를 좀 어려워할지언정 무서워한다는 추측이 전혀 틀렸나?

         

         안 그래도 블랙마켓에서 일하는 데다가, 직속 상사인 레오나르한테 쫄은 거면 굳이 어설프게 접객하는 자리까지 그걸 질질 끌고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방금 나만 들었어?

         

         그럼 설마… 저렇게 어려워하는 대상이 나라는 거야 시발? 레오나르, 대체 날 뭐라고 소개한 거야!?

         

         왜 굴지의 암흑가 거물 행차라도 본 것 마냥 기겁하면서 저렇게 굴어? 전 일개 손님이라고요!

         

         그의 인맥으로 초대받은 시점에서 일개 손님이라 설명하는 게 안 되는 거라면 물론 어쩔 수 없지만!

         

         “이거 상당히 오랜만이군, Mon cher 미스 아나스타샤. 요즘 정력적으로 소식은 자주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몇 달만이니 원.”

         

         하여간 찰칵! 문을 연 다음 손님이 들어가고 닫아주는 서비스마저 깔끔하게. 등 뒤에서 잠긴 출입구 및 실내를 제로가 재차 꼼꼼히 확인하거나 말거나, 난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우리 블랙마켓 보안 실장님….

         

         최종결정권자 자체는 엄연히 따로 존재하긴 해도, 숫제 보안 총책임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권한을 손에 쥔 사이보그 형씨를 향해. 아무 사양없이 실컷 투덜거렸다.

         

         “아니, 방금 전에도 진짜 진이 빠져서 업혀왔거든? 그리고! 소개말 자체만 계정 정보를 토대로 떠들었지 날 쳐다보는 기색이 심상치 않던데. 대관절 날 누구라고 소개한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생각보다 엄청 거물인 사람이 무려 둘이나 한 자리에!

    GC아수라 님의 관대한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다들 걱정해주신 것도 있고, 생각보다 연재에 크게 지장이 가는 것도 느껴서 상담을 좀 받았습니다.

    오고 간 상담 내용을 간단하게 줄이자면 대충….

    ‘손 바쁘게 놀리는 일 오래했으면 이해라도 가는데, 귀하는 왜 그 나이에 벌써 주어진 천연 소모품을 다 써가시나요?’ 같은, 뭔가 심각한 낭비벽이 있는 사람 취급을 받은 만큼 만성 질환이 악화되지 않도록 좀 육체와 타협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정 및 집중 치료 기간은… 이제 나중에 예의 치과랑 다 같이 한방에 몰아서 하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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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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