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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79

    <379 – 헥토르가신단2>

     

    상인은 인간계의 보물고블린이다.

    값나가는 물건은 바리바리 싸들고 있는데 전투력은 툭 치면 억하고 죽는다.

    이런 맛 좋은 먹잇감을 두고 산적질을 하지 않는다면 떠나보낸 보물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는 사내들이 이 땅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이 애비가 백방으로 자금을 풀어 마련한 해결책이 이것이란다.”

    “아티펙트? 용병을 구하면 되는데 굳이 이런 값비싼 것이 필요해요?”

    “기억 하거라, 유이. 상황이 여의치 않거든 고용주를 버리고 달아날 수 있는 것이 용병이며, 마지막에 자신을 지킬 것은 스스로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하의 배신.

    동업자의 배신.

    호송을 맡은 용병대의 배신.

     

    수많은 배신을 당하며 고생했던 부친을 보아오며 자랐던 유이는 세상 그 어떤 상인들보다도 힘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래서 그녀는 수많은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었다.

    발이 지치지 않는 행군의 신발.

    먼 곳을 내다보는 매의 표식.

    괴력을 선사하는 오우거건틀렛.

    입학시험에서는 미처 사용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입학 직전의 치열한 시험에서는 자신보다 더한 강자들이 넘쳐나고, 아티펙트를 노리고 그녀를 죽이고 빼앗으려 드는 약탈자들이 넘쳐났으니까.

    1학기에도 아티펙트를 사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티펙트를 ‘소지’하고 다녀도 되는 소지허가권한에도 포인트가 필요하고, ‘사용’하고 다녀도 되는 사용허가권한에도 포인트가 필요했다.

    장사밑천이 필요한 시점에서 포인트를 그렇게 허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학기가 된 지금.

    헥토르가신단이라는 조직에 스며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맞이한 지금만큼은.

    유이도 자신이 지닌 대량의 아티펙트에 대한 ‘소지허가권한’과 ‘사용허가권한’을 습득한지 오래였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자신의 아티펙트를 소지할 수 있는 소지허가권한.

    시험이나 과제 등의 학업과 연관된 일에 아티펙트를 사용할 수 있는 사용허가권한.

     

    이 둘을 모두 얻은 지금, 유이는 삼대금림 중 하나까지 상단을 이끌고 진출할 원동력이 되었던 강력한 힘을 되찾았다.

     

    “이것은 보물의 힘이 아닌가!”

    “대체 저 많은 보물이 어디서 났지?”

    “보물들은 사람을 가린다는 말도 있던데 그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면서도 다룰 정도라니!”

     

    보물은 +5강 이상 강화된 아이템.

    제국의 금기로 인해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강화로 인해 생겨난 부작용은 알고 있다.

    고강 아이템이 요구하는 막대한 마나소모량.

    이를 벌충하기 위해 각 아이템에는 마나소모량을 줄이거나 없애는 대신, 제약을 추가하기도 한다.

     

    착용해제가 불가능한 제약.

    한번 뽑으면 생명 하나를 죽여야만 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제약.

    이성에게 혐오스럽게 보이는 제약.

     

    진귀한 물건일수록 없애야하는 마나소모량도 많기에 동반되는 제약도 크다.

    그러니 아티펙트 수집가도 실착용을 위해 모은다면 가급적 동일한 제약이나 감당할 수 있는 제약이 걸린 아티펙트만을 거르고 걸러 엄선한다.

    특정제약을 지닌 아티펙트의 소유주와 소재지를 파악하고 고객에게 소개하는 일을 전문으로 맡는 아티펙트 추적자를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을 정도!

     

    누구나 티토소가처럼 엄청난 마나를 지니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기에 대량의 아티펙트를 장비한 사람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제약을 이겨낼 정도로 수련을 정말 열심히 한 사람이거나 동종의 제약으로 페널티를 최대한 우회할 수 있도록 엄선된 아티펙트를 구할 정도의 재력을 지녔다는 반증이니까.

     

    유이는 후자에 속한 자.

    숨겨둔 아티펙트를 전부 장착한 그녀가 직접 나서서 힘을 쓰니 거대한 뿌리가 미처 그녀를 깔아뭉개지 못하고 밀려났다.

     

    구구구궁!

     

    “헉! 옆이다. 옆에서 땅이 밀려온다!”

    “한쪽은 내가 막아보겠다!”

     

    성이 난 애완나무가 다른 뿌리로 땅을 밀어 토사를 밀었다.

    헥토르가 검격에 마법을 실어 범위를 확장하고 위력을 증대하니 토사가 검격을 넘어서지 못하고 방파제에 막힌 파도처럼 밀려났다.

     

    “이쪽은 저희가 막아보겠습니다!”

     

    데이포보스와 아직 몸을 건사할 수 있는 소수의 학생들이 마나방벽에 다 함께 손을 얹어 후방에서 밀려드는 토사를 저지했다.

     

    “다들 움직이지 말아요!”

     

    유이의 손에 찬 반지 세 개가 동시에 빛을 뿜었다.

     

    <마력증강의 반지>

    <위상전환의 반지>

    <출력강화의 반지>

     

    부족한 마나를 보충하고, 밀려드는 토사의 위치를 바꾸며, 출력을 올려 효과범위를 증가시킨다.

    공간과 공간이 전환되며 일어나는 부차적인 효과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총탄과 대포처럼 날아드는 모래와 바위가 서로 충돌했다.

     

    <투사체 속도보정의 팔찌>

    <자동조준의 장갑>

    <마창구슬>×25개

     

    한 손 가득 주머니에서 꺼낸 구슬이 마창이 되어 날아가며 애완나무 포피의 후속공격 가지찌르기마저 대등하게 받아친다.

    격노한 포피가 숲의 바닥에 깔아두었던 가장 깊은 뿌리마저 들어 올리며 지면 아래 숨겨진 거구를 보이려 시작했다.

    잠깐이지만 대등한 결전을 겨루던 유이조차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거 이러면 대형종급 체급인데…?”

     

    중형괴수 수준이었던 나무가 더욱 거대해지려는 징조에 못미더운 3학년 선배에게 피를 내어주는 수밖에 없나 모두가 절망했다.

    테트라포스는 싱글벙글 웃었다.

    우연히 아카데미 내에 혈석이 풀리고 잔악혈조술의 연마에 커다란 진척을 거둔 뒤.

    방학을 거쳐 더욱 실력을 상승시킨 그가 다른 학생들의 피마저 탐하기 시작하자 학생회의 집요한 개입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제 세상마냥 날뛰는 학생회를 피해 한숨 돌리던 곳에 제 발로 나타난 1학년들.

    그의 눈에는 골라먹는 뷔페가 따로 없었다.

    물론 고학년은 1학년을 먼저 건드릴 수 없다.

    건드리더라도 허용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본인들이 스스로 도움을 원한다면, 정당한 대가로서 피를 지불하겠다고 간접적으로나마 의사를 표현한다면.

    학생회가 현장에 없는 곳에서라면 충분히 이들의 피를 뽑아낼 수 있다.

     

    ‘더 날뛰어봐라, 나무야. 이 숲의 가장 윤택한 자는 내가 될 지어니. 너의 비료들은 나의 핏주머니가 되어주리라!’

     

    유이라는 학생의 뜻밖의 활약만 아니라면 미라가 되기 직전까지도 피를 약탈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고작 빈혈이 오는 정도에 그치겠지.

    그래도 충분하다.

    한계까지 1학년들을 몰아붙이면 피를 뽑아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다가오는 2차전.

    강자들의 유린을 향한 희열이 판치는 순간.

     

    “!?”

     

    애완나무 포피가 어딘가를 돌아보며 모든 움직임을 정지했다.

    마치 감당할 수 없는 포식자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방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테트라포스는 금방 깨달았다.

     

    ‘저곳은 이 지름길과 마찬가지로 차원문이 이어진 시련의 관문…?’

     

    차이가 있다면 애완나무 포피와의 거리가 멀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무사히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먹잇감의 숫자는 저쪽이 월등히 많을 것이다.

    소수의 인원으로 시간만 많이 드는 저런 큰 길을 이용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도 나무괴물은 경계하고 있다.

    엄청난 강자가 저곳에 있다는 증거였다.

    적어도 테트라포스 자신이 본색을 드러낼 때의 수준에 준하는 강함.

    그가 알기로 그만한 상대는 3학년 내에서도 학생회의 임원급은 되어야했다.

    서부귀족연합을 통솔하는 확고부동한 1인자.

    강함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마치 고고한 보석과도 같은 분위기의 소유자, 여귀족 벨벳처럼.

     

    ‘칫. 운이 좋았군.’

     

    테트라포스는 여흥을 즐기는 대신, 정신 못 차리는 1학년들을 재촉했다.

     

    “괴물의 관심이 다른 곳에 팔렸군. 지나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헥토르가신단은 그제야 안도하며 관문을 탈출할 수 있었다.

    관문을 나온 이들은 휴식을 위해 진군을 정지했다.

    테트라포스는 마음이 급해졌다.

    언제 벨벳의 구두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아무리 빠르게 달아나도, 교묘하게 숨어도 또각또각 자신을 향해 쫓아오는 구두소리가 멀어지지 않는 경험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켕기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운이 따르긴 했지만 설마 3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줄이야. 다들 수련을 열심히 했구나?”

    “선배 눈에는 이게 무사한 걸로 보여…?”

     

    유이의 말대로 몸이 성한 1학년은 아무도 없었다.

    헥토르조차도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긴 머리카락이 볼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여기까지야. 다음 관문이 이것보다 강하다면 그땐 정말 누군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솔직히 지금도 거의 그럴 뻔했고.”

     

    적어도 유이의 실력으로는 희생 없이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삼대금림 중 하나인 괴수림을 돌파해낸 것도 이들보다 훨씬 강력한 상단직속부대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보다 못한 이들로 가파르게 난이도가 오르는 관문을 통과할 자신은 없다.

    물론 테트라포스는 그리 간단히 후배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돌아간다고? 하하, 후배들. 방금 지나온 길이 어딘지 잊었어?”

     

    3관문을 가리키는 말에 유이가 코웃음을 치며 모두가 의식적으로 무시했던 교관이 지키는 경로를 가리켰다.

     

    “교관한테 가서 기숙사까지 보내달라고 하면 돼.”

    “흠. 그런가. 그 방법이 있었군.”

     

    테트라포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숨에 손을 뻗어 비좁은 샛길의 천장을 무너뜨렸다.

     

    “이젠 없지만.”

    “…”

    “자, 어서 서두르자고. 뭐,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네 번째 관문의 가장 빠른 지름길도 착실히 알려줄 테니까. 하하하!”

     

    유이와 헥토르는 반쯤 테트라포스를 노려보다시피 하면서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의 해맑은 피크닉과는 천지차이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유이가 주머니에 넣은 손톱으로 쪽지에 글씨를 새겼다.

    쪽지는 몇몇 가신들의 손을 거쳐서 헥토르에게도 전해졌다.

     

    ━━━

    오크노디 조직에게 이 선배를 끌고 갈래.

    동의하면 고개를 끄덕여

    ━━━

     

    적의 힘으로 적을 친다.

    헥토르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악질3학년 vs 악질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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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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