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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에덴 데카르트는 인상을 구긴 채 거센 발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공작님이 하신 말씀은 들었다. 사업을 하겠다고?”

         

       언제 트집 잡나 했다. 올 것이 왔군.

         

       “이미 시작했습니다.”

       “…네가 사업을 할 돈이 있었다고?”

       “공작가에서 배정된 활동비를 오랫동안 모았습니다.”

         

       시선을 피하는 프란체. 나는 저 의미를 알 것 같다. 지금까지 써온 돈은 오랫동안 모은다고 해서 쌓이는 금액이 아니다.

         

       나를 구매하는 데만 5억.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만 10억. 자잘한 것까지 하면 16억 정도 된다. 중간에서 몰래 빼돌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지.

         

       ‘그나저나, 어떻게 빼돌린 건지.’

         

       대단한 공녀님이시다. 이렇게 핍박받는 집안에서 돈을 빼돌릴 생각을 용케도 하셨어.

         

       에덴은 한동안 프란체를 노려보더니 묵직한 음성을 내뱉었다.

         

       “돈을 얼마나 사용했지?”

       “모은 돈 대부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얼마냐고 묻는 거다.”

         

       힐끔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대충 둘러대라는 뜻이었다.

         

       “1억 5천입니다…….”

         

       음. 줄여도 겁나게 줄여서 말했군. 에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1억 5천…? 의복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만, 고작 그 정도의 금액으로 의복 사업이 된다고?”

         

       이윽고 하, 거리며 터져 나오는 비웃음. 에덴은 프란체를 굽어보며 말을 이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사업이 어디 어린 애들 소꿉장난이라고 생각하나?”

         

       꾸욱. 프란체의 주먹이 굳게 쥐어졌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내린 채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가져온 혼처 명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시간을 벌 생각이군. 시답잖은 발버둥을…….”

         

       프란체는 억울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에덴을 올려다봤다.

         

       “아닙니다! 정말 제가 사업을 해보고 싶어서 공작님께 부탁드린 겁니다! 공작님도 허락하셨으니 된 거 아니에요?”

         

       그래. 공작이 허락했는데 네가 뭐 어쩔 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공작님이 허락하셨다 하더라도 내가 허락 안 했다.”

       “그런…!”

       “지금까지 너의 모든 일을 관리했던 사람은 나였다. 불만을 가져도 소용없다.”

         

       저거 완전 미친놈일세. 나는 조용히 프란체를 바라봤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속은 지금쯤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을 거다.

         

       “얼마 가지 않을 소꿉장난은 그만두고. 내가 보여준 명단에서 혼처를 정해라. 시간은 오늘 내로. 그 이상은 기다리지 않겠다.”

         

       에덴의 차가운 목소리. 그렇게 할 말만 하고 문밖을 나섰다. 쾅! 어지간히도 화가 났는지, 문까지 세게 닫았다. 프란체가 나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공작님께…….”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부딪혀봅시다.”

       “뭐?”

       “명단에서 제일 약한 사람을 고르세요.”

       “대체 이번엔 어떻게 하려고?”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참에 아예 혼처를 끊어버리자는 겁니다.”

         

       가면을 쓰는 데 익숙한 프란체. 사교계에서 악녀로 소문이 자자한 프란체. 이 두 개를 조합한다면 혼처를 끊어버리고도 남을 거다.

         

       아무리 명성이 높은 소 공작 에덴 데카르트라고 해도 상대방 측에서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 프란체가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일단 혼처를 정하시고 상대방과 혼담을 주선하세요.”

       “그리고?”

       “여태 사교계에서 가면을 쓰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쓰시는 겁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프란체.

         

       “아, 뭔지 알 것 같구나.”

         

       프란체는 턱에 손을 짚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완전히 미친년을 연기하라는 거잖아?”

       “맞습니다.”

       “그럼 악명이 널리 퍼져서 혼처가 끊길 테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프란체는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좁힌 채 말없이 테이블을 바라봤다. 시뮬레이션이라도 돌리고 있는 건가.

         

       “그리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뺨을 갈겨버리면 됩니다.”

         

       프란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톡. 톡. 프란체가 입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모욕이야.”

         

       모욕이라, 때로는 그게 통하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권력에 미쳐 어떻게든 혼인을 이어가고 싶은 놈이 있지. 그렇게 된다면 에덴의 주도하에 혼인을 피해갈 수 없을 거다.

         

       “공녀님. 모욕을 사용하는 방법도 좋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릅니다. 그 명단에 있는 귀족들이 데카르트 공작가와 인연을 맺으면 압도적인 권력을 얻게 됩니다.”

         

       나는 그리고, 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압도적인 권력이 눈앞에 있는데 그까짓 모욕 정도야 못 참을까요? 저라면 참습니다. 어차피 혼인이 진행되면 사라질 문제니까요.”

         

       아, 하고 프란체가 입술을 달싹였다.

         

       “차라리 정말 참을 수 없는 굴욕을 줘서 자존심을 상하게 하자는 말입니다. 그게 나중에 어떤 형태로 돌아오든, 그 어떤 선택지보다 나을 겁니다.”

         

       가문의 문제로 번져도 상관없다. 프란체가 그로 인해 어떤 피해를 받더라도 죽는 게 아닌 이상, 내가 세운 계획만 완성된다면 사라질 문제다.

         

       논란과 문제가 있어도 압도적인 실력과 결과만 있으면 오점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걸 빌미로 삼아 모욕을 일삼고 평판을 깎아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프란체가 우려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정 걱정되신다면 상대의 반응을 살핍시다.”

       “반응?”

       “예. 독설로 하다가 안 되면 뺨따귀를 휘갈기는 거로. 최후의 방법으로 아껴두자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란체의 침대 옆에 놓인 명단을 들고 왔다.

         

       “여기서 제일 약한 가문은 누굽니까?”

       “어… 이 사람이네.”

         

       프란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을 확인했다. 이름은 아르몸 도게자. 순간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름부터 이상하다. 제작진에서 노리고 만든 엑스트라인 게 분명했다.

         

       ‘어떻게 가문 이름이 도게자야? 이름은 또 아르몸이고?’

         

       왠지 얼굴을 보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쭈굴거릴 것 같은 가문이다.

         

       “이 사람으로 하죠. 아르몸 도게자.”

       “그래, 도게자 백작가라면 큰 문제로 번지진 않을 거야.”

         

       백작가였어? 진짜 도게자 백작가 하니까 없어 보이네.

         

       “이 사람의 정보는 있습니까?”

       “음. 대규모 상단을 운영하는 백작가야.”

       “돈이 겁나게 많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래서 이 명단에 포함되어있는 거고.”

         

       돈이 많다, 라. 그러면 나중에 이용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데. 고민이군.

         

       “이 사람이 무슨 상단을 운영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으음. 내가 알기론 인력을 이용한 상단이야. 건설, 재료 수급, 호위. 가리지 않고 다 해.”

         

       흠. 그러면 안 되겠는데. 나중에 협력사업을 할 수도 있어.

         

       “이 사람은 안 되겠네요.”

       “왜?”

       “나중에 사업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있어요.”

       “으음. 그러면…….”

         

       프란체가 눈알을 굴리며 명단을 빠르게 확인했다.

         

       “이 사람.”

         

       이번에 가리킨 귀족의 이름은…….

         

       ‘얘가 여기서 왜 나와?’

         

       아실 프라이덴. 내가 세이렐 백작을 암살할 때 이용했던 놈이자 ‘로판소’의 서브 남주. 얘가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아실 프라이덴.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까 말했던 도게자 백작가보단 힘이 강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급은 아니야.”

         

       그럼 아실 프라이덴으로 확정이군.

         

       “아실 프라이덴으로 합시다.”

       “그래, 그럼 이 사람으로 결정할게.”

         

       프란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엿을 어떻게 먹일 거냐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봐야겠는데.

         

       “공녀님. 독설하시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 꼭 설명을 해줘야 하니?”

       “예. 타격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요. 저에게도 한 번 해주시죠.”

         

       입술을 머금고 고민에 잠긴 프란체. 나에게 독설을 해야 한다는 게 망설여지나 보다.

         

       “염려치 마시고 하셔도 됩니다. 저는 웬만해서 상처받지 않으니.”

       “정 그렇다면…….”

         

       프란체가 크흠, 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에 사교계에서 하던 독설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자존심을 긁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스읍, 이거 좀 약한데. 그것도 많이. 내 뮤튜브에 악플이 많이 달려 봐서 그런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내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자 프란체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땠니?”

       “음.”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아니요. 그냥 좀 자극이 안 돼서요.”

         

       이 사람은 겨우 이 정도로 악녀를 연기해왔던 건가? 이 세계 사람들도 참 순진하군.

         

       “흐음. 사교계에서 독설가로 꼽자면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자신이 있었는데.”

         

       뭣? 그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라고? 차라리 카서스가 했던 말이 훨씬 강했던 거 같은데.

         

       “제가 남자를 화나게 하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남자를 화나게 하는 법?”

         

       남자를 화나게 만드는 법 세 가지. 현대에서는 네 좆 존나 작아, 너 게임 개못하잖아, 부모욕. 이 시대라고 해서 다를 건 없겠지.

         

       “음…….”

         

       이 세 가지면 충분할 거다. 다소 천박하고 품위가 없어 보이지만, 독설을 하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상대의 관심을 완벽하게 떨어트리는 게 목적이니까. 그래도 부모욕은 좀 그러니 가문 욕으로 바꿀까.

         

       “공녀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남자를 화나게 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존재합니다.”

         

       프란체가 갸웃거렸다.

         

       “뭔데?”

       “가문 욕, 남자 구실, 실력 비하.”

         

       나는 어떤 욕을 사용할 지 구체적으로 프란체에게 설명했다. 너무 품위가 떨어져 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명예를 확실하게 실추하고 역린을 건드리는 욕.

       

       마지막으로 이 세계의 금기와 같은 가문 욕까지.

         

       내가 속사포처럼 내뱉은 말에 프란체는 충격을 받은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가 한 말에 이 세 가지 요소가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실력, 인신, 가문. 어떤 실력을 폄하할 지는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실 프라이덴은 내정에 특화된 놈이라 무력이 한없이 약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남들과 비교를 자주 당했다. 아실 프라이덴의 가장 큰 열등감은 무력. 그걸 자극하면 될 거다.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입장에서 그에겐 조금 미안하게 됐지만, 애초에 설정상 우리는 악역이며 소미레의 역하렘 맴버들은 선역이다. 적한테 엿 좀 먹여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사실 그냥 자기합리화일 뿐이지만.

         

       “아무튼. 이 정도로 합의 봅시다. 더 하면 아실 프라이덴이 테이블을 엎어버릴 수도 있어요.”

         

       프란체가 말을 더듬었다.

         

       “어, 어, 정말 그래도 되는 거니? 그래도 가문 욕까지는 너무 간 거 같은데…….”

       “이 정도는 해야 독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래도 화를 내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뺨따귀를 갈겨버리죠.”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아실 프라이덴과 만났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소 공작님께 가셔서 말씀드리시죠. 아실 프라이덴과 혼인을 하겠다고.”

         

       다소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일어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방도는 마련해뒀다.

       

       생각이 있으니 행동부터 시작하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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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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