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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이 시대에 남은 몇 없는 준공무원직 중 하나인 전투경찰의 아침은 빠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차피 메트로폴리스의 빛은 24시간 꺼지지 않고 시민들도 각자의 직업이나 일에 맞춰서 마음대로 살기 때문에.

         또한 외부 황무지나 다른 도시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친절하게 방문을 미리 통보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에 맞춰 경찰들도 2교대, 3교대 근무체제를 유지하느라 필연적으로 고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반대로 켕기는 게 있는 방문자들은 최대한 경찰이 자비롭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시간. 개개인을 특정할 수는 없어도 조금 더 융통성 있는 인물이 근무하는 순간을 선호하게 된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쿠구궁……!

         

         “이크…!”

         

         내부 인원교대를 위해 잠시 닫혀 있던 관문 정면벽이 거친 소음을 내며 상승하자 순서를 기다리던 남자는 만지작거리던 담배를 황급히 내려놓았다.

         

         안 보는 곳에서야 집 지키는 개니 뭐니 하며 폄훼하지만, 기업의 힘으로 유지되는 문명사회에서 그 기업들을 뒷배로 업은 공권력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특히나 도시 안에 있는 경찰서만큼이나 상시 주둔중인 병력이 많은 관문에서는 더더욱 그랬으니 책잡힐 행동은 삼가는 게 신상에 훨씬 좋으리라.

         

         – 다음 차량, 안쪽으로 진입하셔도 됩니다. –

         

         차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통신에, 남자는 바닥에 표시된 지시선까지 타고 온 화물 트레일러를 천천히 전진시켰다.

         이윽고 지정된 위치에 도착하자, 뻗어 나온 잠금 장치가 차바퀴를 붙들었다.

         

         자, 퇴로는 막혔고 이젠 도망치기엔 늦었다. 웃돈 주고 사들인 정보가 맞기를 바라며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그는 노력해봤지만… 백미러에 비친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는 그냥 안면근육을 굳혀버렸다.

         어딘가 모자란 범죄자 티를 내느니, 차라리 검문에 긴장한 일반 시민인 척하는게 낫겠다는 소박한 믿음의 발로였다.

         

         어느새 다가온 경찰이 차에서 하차하라는 제스쳐와 함께 의례적인 행동수칙을 읊었고… 그걸 들은 남자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시민증 및 화물검사 진행하겠습니다. 지시에 따라 충분히 협조해주신다면 따로 발생할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씨이이발! 존나 다행이다……!!’

         

         정말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게 분명한 딱딱한 말투와 정중한 태도가 뭐가 그렇게 기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태까지 남자가 만나본 전투경찰 평균이 ‘똑똑, 빨리 신분증 제시 안 하면 진압봉으로 대가리를 깨버리겠다. 3… 2… 1… 빠각!’ 이라면 어떨까…?

         

         하베스트 플래닛에 들어가는데 이상한 걸로 트집 잡히기 싫다면 사막 쪽에 있는 관문으로 아침 해가 뜰 때 가라는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한시름 덜었다.

         

         “…그린 등급 시민권자 아르노 크루거 맞으십니까?”

         

         “예예… 맞습니다….”

         

         어떻게 경찰의 변조된 기계음이 단골 식당의 로봇이 내뱉던 안내음보다도 더 부드럽게 들리는지 모르겠다는 감동과 함께 아르노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협조적이라고 표현할 레벨은 진작 지나쳐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으나 그의 비밀스럽고 작은 부업을 고려하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꽤나 약삭빠른 대처였다.

         

         “트레일러에 실린 건… 납품용 디스플레이와 기판, 그리고 대용량 저장 장치 및 신품 메모리 카드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행여나 데이터 유통법에 저촉되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장치안에 들어있는 자료가 있다면 필히 검열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유… 저 같은 중간상은 주는 대로 받아오는지라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음… 그렇습니까…?”

         

         관문에 설치된 대형 스캐너가 차량 전체를 훑었음에도, 전자파 차단물질로 이루어진 비밀 공간 같은 게 있는지 조사하느라 바쁜 경찰들을 아르노가 흘끔거렸다.

         

         진압봉으로 트레일러 밑부분이나 벽면을 두들겨서 확인하고 붙잡힌 바퀴는 쿡쿡 찔러보는 그들도 납품용 딱지가 붙은 화물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구매하지도 않은 상품의 고의적 훼손은 곧 기업에 대한 도전. 크레딧 손실분만큼의 배상이 강제되는 건 설령 경찰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비슷할지 모르나 크레딧 만능주의가 각별한 파라다이스가 자리잡은 이곳이라면 더 조심스러워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검사도 무사히 통과하겠다. 이제 트레일러의 문이나 닫고 도시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겠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아르노에게… 청천벽력 같은 절차가 갑자기 추가되었다.

         

         “그러면… 다행히 근무중인 우수한 사이버 엔지니어가 둘이나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약식으로 확인하고 마치겠습니다.”

         

         “……예? …아니, 예! 당연히 그러셔야죠. 네…!”

         

         ‘……시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보를 넘겨준 인간도 괜한 트집을 잡지 않는다고만 했지 검문을 대충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그는 자기자신을 다독였다. 엔지니어나 해커 한 부대가 달라붙어도 적재한 물건들을 일일이 전부 살피려면 오늘 여기 검문소는 아무도 못 지나간다.

         

         해봐야 샘플 몇 개만 점검하겠지….

         

         여태 아르노와 대화하던 담당자의 지시를 받은 경찰 하나가 관문 안쪽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가자, 그와 교대하듯이 사이버 엔지니어로 추정되는 두 명이 밖으로 나왔다.

         

         “…….”

         

         …똑같이 생겨 먹은 전투경찰을 그나마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 중에 말투나 행실 말고도 다른 게 있다면 바로 체형인데… 유별나게 작고 아담해서 위압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 경찰이 하나 껴 있었다.

         

         혹시 소년병은 월급을 더 적게 주고 부려도 되나… 하는 합리적인 추론을 떠올리며 그는 두 엔지니어와 같이 화물칸으로 들어가 검사를 참관했다.

         

         딸깍….

         

         상대적으로 큰 편인 엔지니어가 차례차례, 저장장치에 단자를 연결하고 지참한 패드가 읽어 들이는 데이터를 살핀다. 하지만 그 결과는 깨끗한 순백, 대놓고 장난질을 할 정도로 그는 담이 크지 않았다.

         

         조금 얄팍하고… 하찮은 방식이라면 모를까.

         

         “이게 메모리 카드가 들은 상자인가요?”

         

         “…예, 맞습니다만…?!”

         

         부우우욱!!

         

         사실 그럴 권리도 없긴 했지만, 아르노가 어떻게 제지해보기도 전에 상자를 닫아 둔 테이프가 작은 경찰에 의해 시원하게 잡아 뜯겨졌다.

         그리고 장갑을 벗자 드러난 하얗고 앙증맞은 손을 메모리 카드가 산더미처럼 들어찬 상자속으로 쑥 집어넣더니 휘적휘적 헤집기 시작했다.

         

         “그… 저기… 저게 무슨…?”

         

         “약식 검사인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손장난 치는 것도 검사의 일부냐는 의미로 꺼낸 말이었지만… 그는 고개를 털어 정신차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주 오래된 구세대의 지식과 기억을 지닌 사람이 봤다면 볼 풀장에서 노는 어린애를 떠올릴 흐뭇한 광경이 얼마나 계속됐을까?

         열심히 움직이던 몸이 돌연 멈추고 작은 경찰의 입으로부터 외마디 비명이 새나왔다.

         

         “읏…?!”

         

         ““……?””

         

         변조된 기계음으로도 미처 다 감추지 못한 당혹감이 주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헌데 소리를 낸 본인이 더 당황한듯 잠시간의 머뭇거림 후, 어깨까지 깊숙이 잠겨 있던 팔이 뽑아 내지니 그 끝에는 메모리 카드 한 장이 잡혀 있었다.

         

         “…어?”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에 아르노의 턱이 주저앉았다.

         아니아니아니… 저 상자안에만 족히 천개는 넘는 빈 메모리 카드가 들어있는데, 무작위로 고른 게 하필이면 소소한 용돈벌이를 책임지던 녀석일리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나?

         

         격한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지거나 말거나, 꺼내진 저장장치는 다른 쪽 엔지니어에게 건네졌다. 이윽고 문제의 상품이 패드에 삽입되자… 다양한 데이터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 자유민주주의 그 깊은 이념에 관하여. ]

         [ 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

         [ 거대 기업 이전에는 국가의 시대가 존재했다. ]

         …….

         

         다큐멘터리, 전자책, 논문.

         

         이것들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이해한 사람은 이 자리에 한 명뿐.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도 명확히 상식으로 아는 게 있다면 이건 검열을 절대 통과하지 못하는 자료라는 것과 방금 막 데이터 유통법 위반자를 잡았다는 것이다.

         

         “……아르노 크루거 씨, 데이터 밀수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벌금을 내실 크레딧이 충분하시다면 별도의 구류나 재판없이 전과기록만 남기실 수 있으며….”

         

         “……씨발.”

         

         그는 힘없이 자신의 바코드를 내밀었고, 즉각 사살 같은 처벌이 이루어질까 가슴 졸였던 엔지니어는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흐아아…….”

         

         화장실을 핑계로 불편한 현장을 빠져나온 그녀는 바이저를 벗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은 최근 깨달았다. 언제 닥쳐올지도 모르는 위협이나 사건으로부터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상상이상으로 버겁고 고된 일이라는 걸.

         

         비유를 찾자면… 꼭 열사를 고발한 밀고자가 된 기분이라 할 만했다.

         

         “…이러면 해결된 건가…? 아니… 겨우 이런 일로…? 그러면 대체 뭐가…!”

         

         …위장 취업 한 달 차, 첫 급여가 들어오기 불과 하루전의 고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착지점을 모르는 마라톤의 공포…!

    batch 님의 쿨하신 25코인 후원!
    미분당한적분상수 님의 응원의 10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왜 제 글 쓰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는 걸까요….
    20분 지각…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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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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