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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본래 나는 10살 때부터 멘테 경으로부터 배우려고 했다.

     직접 지도 대련을 받으며, 나의 실력을 차근차근 복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 멘테 경이 모르가니아에 묶였다.

     지브롤터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나를 봐주는 것까지는 허락받았지만, 3년 중 대부분을 모르가니아의 기사로서 활동해야만 했다.

     “모르가니아에서는 이제 놓아주는 겁니까?”

     “그럴 리가? 대공이 그렇게 집착이 심한 분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어.”

     멘테 경은 응접실 옆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가볍게 손목을 움직였다.

     “내가 투자받은 만큼 성장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부끄러워서 얼굴 들고 다니지도 못했을 거야.”

     “키는 여전하신데요.”

     “죽을래?”

     

     멘테 경의 실력은 분명 늘었다.

     “너한테 맞는 무술 찾는다고 고생한 나한테 뭐가 어쩌고 저째?”

     “저주를 깨지 못하고 여전히 키가 139잖습니까.”

     “내가 마스터만 되면 바로 지금의 너보다 더 커질 수 있거든?”

     “그럼 아무쪼록 마스터가 되시길 바랍니다. 모르가니아 대공도 그걸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테니.”

     “건방진 녀석 같으니라고.”

     멘테 경이 벽에 있던 목검을 움켜쥐었다.

     평범한 연습용 목검과 달리, 칼날이 한쪽만 날카롭게 벼려진 외날검-‘도(刀)’였다.

     “내가 지금만 하더라도 신설 기사단의 단장 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 그래. 누가 나를 여러 방면으로 수련시켜 준 덕분에, 나도 모르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지.”

     부ㅡ웅!

     “검 대신 다른 걸 드니까 이렇게 강해지는걸.”

     왕국은 아무래도 검이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걸로 설마 모르가니아의 2인자 자리까지, 대공 바로 다음의 위치까지 올라갈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

     도검 이외의 것들은 전부 하찮거나 마스터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며, 심지어 칼 중에서도 제국식 도검-‘블레이드’ 같은 것도 주류로 취급하지 않는다.

     “어때? 스승님이 휘두르는 도법은.”

     “하지만 마스터는 아니시잖아요.”

     “곧이야. 그리고 마스터 되면 대공이 더 나랑 계약 연장하려고 안간힘을 쓸 텐데, 그러면 너한테 손해 아니야?”

     “어차피 지금 당장은 스승님에게 닿지도 못하는걸요.”

     나는 목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전력으로 해도.” 

     “!!”

     한 걸음.

     방심한 틈을 노려 전신에 마력을 해방하여 앞으로 내달렸으나, 내가 휘두른 검은 허공을 갈랐다.

     “위험한 녀석.”

     멘테 경은 옆으로 비스듬히 선 채 내 목에 칼끝을 겨누고 있었다.

     공격은 내가 먼저 했는데, 내 공격이 닿기 전에 그녀는 공격을 피하며 목에 칼을 겨눴다.

     “‘눈’은 쫓아오는데 몸은 그걸 쫓아오지 못한다. 흐흥, 여전히 재미있네.”

     “그러니까 저도 제 몸이 빨리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이야, 이거 미래의 영웅님과 직접 검을 맞댈 날이 기대되는걸.”

     멘테 경이 키득거리며 칼을 회수했다.

     나 또한 앞으로 휘두른 검을 내려놓은 뒤, 벽에 세워진 봉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그걸로 하려고?”

     “아뇨. 왕비님을 모셔야 하는데 땀을 계속 흘릴 수는 없죠.”

     마음 같아서는 저녁 식사 전의 누아르처럼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지금의 내 실력을 부딪치고 싶다.

     ‘평균 주 5회 2시간씩 밤마다 미래의 기술을 갈고닦았다고.’

     로버트보다 더 강한, 진정한 상급 기사를 상대로 3년의 노력을 쏟아내고 싶다.

     ‘땀 흘리면 왕비는 몰라도 뒤따르는 기사들이 싫어할 테니, 지금은 자제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카르멘 왕비가 이야기를 나누는 짬을 내서 잠시 일격만 확인했을 뿐이다.

     “저택에서 담소를 나눈 이후, 즉시 다른 곳을 시찰 나가실 거니까요.”

     “그래. 공식 일정은 관문을 직접 시찰하신 다음, 보육원에 방문하고 저녁 식사를 여기서 하는 것까지 있으니까.”

     야간에 따로 보육원 옥상에서 데이트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다.

     “저녁 이후에도 왕비님을 모십니까?”

     “응? 아니. 그때는 헥스 자작이. 나는 공식 일정까지만.”

     “식사 때까지는 계속 호위로 계시겠네요.”

     심야 데이트는 아마도 헥스 자작이 직접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그는 멘테 경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아버지와 왕비 사이의 관계를 알고 개입할 수 있으니.

     “그레이. 이거, 이야기하면서 보여줘도 되지?”

     “예.”

     멘테 경이 봉 끝에 제법 넓은 천을 휘감는다.

     “의장대 예법 중 하나, 의장예식.”

     멘테 경이 가볍게 봉을 휘두른다.

     “노스트럼의 행진. 음악이 없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 동작을 바탕으로 음악이 만들어진 거니까 상관없고.”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봉 끝에 달린 천이 화려하게 나부끼며 펄럭인다.

     “마지막은 이렇게.”

     쿵!

     봉의 끝을 바닥에 찍자, 반대쪽 끝에 달린 천이 관성에 의해 옆으로 펄럭인다.

     “다른 동작도 보여줘?”

     “아뇨. 그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역시 책으로만 봐서는 이해할 수 없어서.”

     “왕실 의장은 왜 알고 싶은 거야?”

     “멋은 있잖아요.”

     “…그건 인정.”

     멋있어서 배운다.

     라는 이유도 있지만, 회귀 전에는 배우지 못했던 예법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에서는 안 가르쳐주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노스트럼이 망했지.’

     제국 예법은 100년 전의 것도 익히고 있지만, 왕국 쪽은 문외한에 가깝다.

     이번에 좀 배워둔다면, 나중에 어딜 가더라도 써먹을 수 있겠지.

     “동작은 계속 보여줄 테니까 눈으로 익혀. 귀는 내가 하는 질문 잘 듣고, 입은 물음에 답하고.”

     “예, 스승님.”

     “너, 혹시 네 어머니를 배신하려고 하는 거야?”

     장봉으로 허공을 찌르는 동작이 마치 내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

     “저는 어머니를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만.”

     “그런데 왕비님을 여기에 들일 생각을 했어? 그것도 임신까지 했는데?”

     “어머니가 왕비님을 좀 두려워하시는 부분이 있죠.”

     과거에는 그랬다.

     “왕비님께는 지은 죄가 있으니.”

     “그건 백작이 일방적으로 그런 거잖아. 파혼.”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기로 한 이상, 어머니도 가해자입니다. 왕비로부터 아버지를 빼앗았죠.”

     “가차 없네. 너, 백작부인이 그렇게 싫어?”

     “싫은 건 아닙니다.”

     다만, 그 뒷말을 덧붙이는 건 진짜로 어머니를 배신하게 되는 셈.

     “제가 여기에서 더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저는 어머니의 편을 들어드리고 있는 겁니다.”

     “…혹시 백작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변해서 왕비님이랑 불륜이라도 저지르면 어쩌려고?”

     “푸핫!”

     

     잠깐, 웃음이 터졌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백작도 사람이라고.”

     “예. 사람이죠. 음…스승님. 잠깐, 가정에 가정을 더한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요.”

     나는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두드렸고, 멘테 경은 봉을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스승님, 귀 좀.”

     “말해봐.”

     “솔직히, 아버지가 모르가니아 공녀를 후처로 들인다고 한들, 뭐 문제 될 거 있습니까?”

     “…….”

     듣자마자 멘테 경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너….”

     “모르가니아 대공에게 어느정도 들은 바가 있을 겁니다. 없다면 제가 여기에서 말씀드리죠.”

     “아니, 들었어. 하지만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멘테 경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정말 그거, 해버릴 거야?”

     “필요하다면.”

     “…명분이 없잖아.”

     “지금까지 쌓아온 과거 행실이 명분이 되지 않겠습니까.”

     “…….”

     멘테 경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탄했다.

     “그러면 지금 저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옛 연인이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로맨스 연극의 2막이 아닙니다. 들어갈 때는 크림슨과 카르멘이었을지 몰라도.”

     응접실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는 어떤 온정도 없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정치적 대화뿐이다.

     “저곳에는 지브롤터 변경백과 모르가니아 ‘섭정’이 있을 뿐입니다.”

     * * *

     “앞으로 7년.”

     여기.

     “나리아를 왕으로 올릴 때까지 남은 시간이야, 백작님.”

     역적모의가 한창 논의되고 있다.

     “더 당길 수 없나?”

     “당겨? 어떻게? 의회를 동원해서 새 법을 만든다고 한들, 세인트가 거부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평소에는 잘만 도장을 찍는다고 하더니.”

     “왕위 세습에 관한 걸 옥새만 찍을 수는 없잖아. 피를 묻힌 지장이 필요해.”

     왕위 세습.

     왕국 법에 따르면, 어떠한 경우라도 노스트럼의 왕은 ‘성인’이어야 한다.

     “백작. 역사를 반복할 셈이야?”

     “…….”

     “급작스러운 서거든, 선양이든, 폐위든, 성년이 아닌 자가 왕위에 오르면 무조건 이 나라에는 재앙이 발생해.”

     “그건 시조로부터 내려온 왕가의 저주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그랬지? 그러면 그건 저주가 아니라 예언이야.”

     그냥 끌어내리면 안 되는가.

     불가능하다.

     “얼토당토않은 주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매번 그렇게 발생한 횟수가 10번 정도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관습법이라고.”

     “…….”

     노스트럼 왕국은 500년 가까이 여러 위기가 있었고, 그중 가장 심각한 위기는 성인인 국왕이 없었을 때 발생했다.

     “또 모르지. 드래곤과의 계약이 깨진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최소한 수만…아니, 수십만이 죽을 수도 있는 재앙을 반복하자고? 난 못해.”

     “나도 마찬가지다. 카디안 경의 때처럼 협곡을 시체의 산으로 쌓을 생각은 없으니.”

     드래곤과 시조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일까?

     “미성년자는 노스트럼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왕가의 오랜 관습이지.”

     아니면 정말 우연이 거듭하여 발생하는 사고인 걸까.

     “솔직한 말로 관습만 아니었으면 내가 진작 그 인간 끌어내렸어. 그리고 나리아 앞세우고 내가 섭정 했다고.”

     “수렴청정을? 여태까지 그렇게 했던 사람들 다 결말이 좋지 못했는데.”

     “이보세요, 변경백. 내가 누구?”

     “카르멘이지.”

     역사학자 중에는 ‘애초에 수렴청정하거나 할 상황이면 나라에 망조가 드는 게 기본’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래. 수렴청정했던 여자들, 전부 다 결말이 좋지 못했지. 근데 나만 죽으면 모를까, 그렇게 왕이 된 나리아도 죽어버리잖아.”

     “그다음 왕위 계승자, 노스트럼의 혈통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래. 적어도 나는 그런 꼴 못 봐. 아니면 내 딸이 나이 40 정도에 아이 낳게 하라고? 그럴 수는 없어.”

     그래도 그게 500년 동안 한 번도 빠짐 없이 이루어졌다면, 후대에는 그런 경우가 일어나지 않는 걸 조심해야 하는 게 맞다.

     

     특히 당대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관습은 참으로 피곤한 물건이군.”

     “법과 절차, 명분, 혁명 이후의 지배. 그 뒤까지 생각하면 이렇게 가는 게 맞아. 그냥 끌어내리려고 했으면, 내가 당장 그 인간 목을 졸라 죽여버렸지.”

     “그럴 거라면 나를 불러라. 예전부터 녀석의 목은 내가 베어버리고 싶었으니.”

     “목만 날리려고?”

     “그 더러운 손도 같이 베어주지.”

     카르멘 왕비가 피식 비웃는다.

     “그러니까, 7년만 기다리면 돼. 그동안 명분은 계속 만들면 그만이니까.”

     변경백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으나, 카르멘 왕비와 마주 보는 소파에 편히 앉아 등을 기대고 있다.

     “그럼…왜 무능왕을 7년 동안 살려둬야 하는지는 이야기가 충분히 되었으니, 그 뒤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

     “백작. 무능왕 숙청하면, 나는 혼자가 되어버리는데.”

     카르멘 왕비가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웃었다.

     “중앙의 귀족들이 나를 가만히 놔둘까?”

     “여왕의 어머니를 건드릴 인간이 있으려나.”

     “그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

     “모르가니아의 권력이 가진 힘은 혈통과 재산, 정보력이기는 하지만 근본은 무력이야.”

     카르멘 왕비가 손을 내밀었다.

     “지브롤터와 연계하지 않으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어.”

     “내가 힘이 되어달라는 건가.”

     “당연하지. 명분은 충분하잖아? 그레이 지브롤터.”

     “그레이의 이야기는….”

     “여왕 나리아의 국서. 지브롤터가 중앙에 들어오기 딱 좋은 명분이지. 아, 백작은 여기 있어도 돼. 하지만 그레이는 왕도에 있어야 해.”

     카르멘 왕비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꺾었다.

     “나랑 사돈 맺거나, 아니면 나랑 결혼하거나. 7년 뒤에 백작이 내릴 선택지는 둘 중 하나야.”

     “나는 너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 내 아들을 네 딸과 결혼시켜야 하는 건가?”

     “물론. 아, 당연히 둘 다 하면 좋지. 족보는 알 바 아니고, 어차피 피가 섞인 건 아니잖아?”

     “…섞게 될 사이가 되기야 하겠지.”

     “엇.”

     백작이 자조하듯 던진 말에, 카르멘 왕비는 그대로 자세가 굳었다.

     “…농담이 심하네. 백작, 사람이 많이 변했어? 아이가 셋이나 생기고 거기에 하나 더 생겨서 그런 건가?”

     “그런 것도 있지.”

     “…사람이 너무 많이 달라졌는데. 아내 가슴 건드렸다고 국왕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던 그 사람은 어디에 있어?”

     “여기 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라는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지만.”

     백작은 담담히 어깨를 으쓱였다.

     “지브롤터의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아들의 앞날을 기대하는 아버지 역할도 못 할 건 없지.”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백작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자세를 고쳐잡으며 입을 열었다.

     “국서 문제에 대해서는 좀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실은 며칠 전에, 그레이가 이런 말을….”

     * * *

     “….응?”

     와장창.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라?”

     “왕비님, 설마-”

     콰ㅡㅡ앙!

     문이 거칠게 열린다.

     “그레이 지브롤터ㅡㅡㅡ!!”

     카르멘 왕비가 얼굴이 시뻘게진 채 내 이름을 소리치며 응접실에서 나왔다.

     “카르멘. 진정해라. 그건-”

     “백작님은 좀 가만히 있어봐!!”

     손목을 잡으며 말리려 드는 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아버지도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손은 뿌리치지 않았다.

     “…예, 여기 있습니다.”

     “너.”

     카르멘 왕비가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버지는 머뭇거리며 끌려온다.

     “백작과 이야기하는 와중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단다.”

     고저 없는 목소리.

     이거, 위험하다.

     식민지 총독 카르멘 모르가니아가 앞에 있다.

     ‘이렇게 화난 적이 언제였더라.’

     누아르가 귀족 영애 셋을 임신시키고 모른척한 걸 나보고 처리하라고 했을 때?

     레타르가 너무 많이 죽여서 황제에게 경고장이 날아온 걸 나보고 자제시키라고 했을 때?

     아니다.

     “해명해.”

     지금이다.

     “너.”

     지금이 제일, 위험한 순간이다.

     “내 딸과 사랑하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면 결혼할 수 있다는 말, 무슨 말이냐?”

     “…….”

     아.

     “진심으로, 진정으로 한 소리더냐?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던 네가?”

     안심했다.

     “나리아를…!!”

     “그거였습니까? 저와 나리아 공주 사이의 혼인동맹 문제.”

     카르멘 왕비가 아니라 나리아 공주 어머님이 오셨구나.

     “그거였, 뭐?”

     “음. 남들 앞에서는 할 말이 아니군요.”

     난 또 무슨 큰일난 줄.

     아닌가? 나를 시험하려고 지금 일부러 화를 내는 건가?

     “아버지께 얼마 전에 말씀드린 거라, 전달이 늦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대화의 부족으로 빚어진 문제는 틀림없다.

     “왕비께는 따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아버지가 아무래도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며, 말실수를 했나보다.

     ‘딱히 문제 될 말실수는 아니긴 해.’

     아버지로서는 말할 수 있는 문제다.

     “왕비님. 저는 말입니다.”

     단지 이건 왕비가 잘 몰라서 그런 거지.

     아니면 왕비가 멋대로 착각을 했다거나.

     “왕비님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나리아 공주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건-”

     “왕비님.”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인 뒤-왕비와 아버지에게 각각 한 번씩-, 왕비의 귀에 대고 그녀만 들리게끔 작게 속삭였다.

     “이 생각은 제 생각이 아니라, 그녀의 생각일 테니까요.”

     “……뭐?”

     “반대입니다, 반대.”

     내가 아니라.

     “나리아 공주에게 한 번 물어보시겠습니까? 국가를 위해 그레이 지브롤터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결혼할 거냐고.”

     “…….”

     “그녀는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 세상에.

     “그것이 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면.”

     나만큼, 나보다 더 나리아 공주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인간은 없다.

     “사랑하지 않아도, 필요하다면 결혼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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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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