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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어두운 나뭇가지 위를 비춰주는 건 작은 달빛.

         

        몽롱한 기분이 든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또 왜 왔는지.

         

        아무것도 기억 나지 않는다.

         

        주변에 보이는 건 수많은 사체들.

         

        그 참혹한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내 몸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커다란 손이 내 어깨를 잡은 기분.

         

        아니, 어깨뿐만이 아니었다.

         

        여덟 개의 손이 내 몸을 잡았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력감이 몸에 엄습한다.

         

        뚝.

         

        내 등 위에 떨어지는 차가운 액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놈의 손이 내 꼬리를 살며시 잡는다.

         

        도망가야 한다.

         

        어떻게든 도망가야 한다.

         

        그래, 놈의 손이 꼬리를 향해 있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이대로 꼬리를 자르고 탈출한다면….

         

        …꼬리가 잘리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놈을 향해 끌려갔다.

         

        뒤를 돌아봤다.

         

        내 눈에 보인 건….

         

        “키엥!”

         

        투스 푸스가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꿈이었구나.

         

        요즘 몸이 허한가? 악몽을 꾼 거 같다.

         

        내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되게 끔찍했던 거 같다.

         

        내가 땀을 흘릴 수 있다면 한 바가지 흘렸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꼬리를 살짝 움직여봤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꼬리 덕을 참 많이 봤지.

         

        꼬리를 휘두르는 것도 쏠쏠했고 두 발로 설 때 균형을 잡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되고.

         

        게다가 꼬리 자르기 덕분에 목숨을 구한 지가 몇 번인지.

         

        기다란 꼬리를 쓰다듬었다.

         

        이 꼬리도 정말 많이 잘랐지.

         

        네필라 쥐라시카한테도 몇 개 있을 거고.

         

        …네필라 쥐라시카.

         

        잘 지내려나.

         

        꼬리랑 투스 푸스를 보니까 갑자기 생각나네.

         

        이제 어느 정도 여유도 좀 생겼는데, 한 번 얼굴이나 보러 갈까?

         

        투스 푸스랑 같이 다니다 보니 거미에 대한 면역력이 꽤 높아졌다.

         

        네필라 쥐라시카도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매력 있는 거미다.

         

        투스 푸스가 순둥순둥하고 귀엽다면, 네필라는 약간 센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다리도 길쭉길쭉하고, 얼굴도 약간 무섭고.

         

        누님 계열이라는 말이 맞겠지.

         

        생긴 것도 호랑거미처럼 생겨서, 금발에 적안을 가진 센 누님. 거기에 옷도 화려한 호피로….

         

        어휴.

         

        내가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러다가 심마가 또 찾아올라.

         

        아니, 이미 심마에 잠식당한 게 아닐까?

         

        거미의 외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니.

         

        잊자, 잊어.

         

        네필라는 연이 되면 만나겠지.

         

        지금 만나면 이상한 칭호가 하나 더 생길 거 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머릿속에서 나가!

         

        “키에엥?”

         

        투스 푸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아무 생각도 안 했어.

         

        그래도 너희가 수컷이라서 다행이구나.

         

        “케에엥….”

         

        …수컷 맞지?

         

        은근슬쩍 엉덩이를 갖다 대는 푸스와 내 꼬리를 살짝 깨물고 있는 투스를 뒤로 한 채, 시선을 당소영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미줄에 몸이 칭칭 묶인 상태였다.

         

        푸스를 곁눈질로 쳐다보니 뿌듯하다는 듯이 다리를 흐느적거렸다.

         

        “케엥!”

         

        그래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밤 중에 또 뭐 이상한 걸 했나 보다.

         

        내 독이라도 빼려고 한 건가?

         

        안 그래도 아침에 조금 뽑아서 주려고 했는데 왜 어려운 길로 갈까.

         

        저 거미줄은 어떻게든 되겠지.

         

        셋이서 알아서 합의 보렴.

         

        …그런데 왜 반응이 없지?

         

        히에엑, 흐에에엑, 풀어주세요오오 같은 말을 하면서 엉엉거려야 할 텐데.

         

        죽은 건 아니지?

         

        슬쩍 보니 작은 흉부가 오르락 내리락거린다.

         

        숨은 쉬고 있구나.

         

        잠을 자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뭐 알아서 일어나겠지.

         

        당소영.

         

        참 이상한 여자다.

         

        당가라는 말에 혹해 주웠는데, 솔직히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끄럽고, 이 여자랑 같이 있으면 투스 푸스가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애들 정서 발달에 안 좋다.

         

        하지만 나름대로 소득이 있긴 했다.

         

        일단 당소영은 나를 도마뱀 이상의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꼬박꼬박 말을 걸고 내 행동으로 어떤 대답을 했는지 유추해 낸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긴 한다는 거다.

         

        나를 고모도인지 뭔지로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겁을 먹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날 보고 도망간 그 남자들의 반응이 정상일 거다.

         

        오히려 칼을 들고 내게 덤빌 수도 있을 거다.

         

        그런 면에 있어서 당소영의 머리가 살짝 이상한 건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서 좋은 점이라고 하면, 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게 정보였다.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은 거의 다 확보했으니까.

         

        늪지대 상부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었다.

         

        먹고살 만했으니 자연스레 이곳이 대체 어떤 곳인지가 궁금했다.

         

        공룡들이 넘쳐나는 무협 세계.

         

        그런데 나 말고 다른 짐승들도 무공 비슷한 걸 쓴다.

         

        정보가 없다면, 지나가던 파키케팔로사우루스한테 여래신장을 맞고 뻗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런 면에 있어서 당소영은 확실히 도움을 줬다.

         

        일단 마교의 교주가 이곳을 어슬렁거린다는 정보.

         

        이걸 듣지 못하고 인간이 있다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가, 그대로 도마뱀 꼬치구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마교의 교주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마주치자마자 도망가야지.

         

        그 외에도 달로포라고 주장하는 딜로포사우르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룡이 있다는 거? 알고 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본 생명체가 바로 오비랍토르니까.

         

        그런데 그 공룡을 조련하는 인간이 있다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공룡이 얼마나 똑똑하다고 말을 듣겠냐마는, 실제로 당소영이 관리하던 녀석도 탈출하긴 했지만 인간과 공룡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다.

         

        나를 공룡으로 착각하고 누가 잡으러 올 수도 있다는 거 아니던가.

         

        …가만, 백연영이 나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것도 이거 때문 아닐까?

         

        날 키운 후에 데리고 다니려고.

         

        미안하지만, 난 누군가에게 속박되는 도마뱀이 아니기에 정중히 거절해야겠다.

         

        사실 백연영이 목줄을 채우고 끌고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긴 하지만, 겍겍거리면서 내 의지를 보여주겠노라.

         

        잡생각은 이제 됐다.

         

        아침도 밝았겠다, 보금자리에 있는 녀석들도 모두 멀쩡하겠다, 안심하고 사냥이나 다녀와야겠다.

         

        입도 하나 늘었으니 오늘은 큰 놈으로 잡아야지.

         

         

        *

         

         

        이상한 일이다.

         

        문득 드는 생각인데,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원한을 살 일도 안 저질렀는데, 암살자라도 붙은 걸까?

         

        하지만 날 바라보기만 할 뿐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진 않았다.

         

        위기 감지도 반응하지 않으니, 위험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조금 신경 쓰인다.

         

        당장 위협은 안 되니 신경 꺼야지.

         

        날 보고 겁에 질린 제2의 투스 푸스일 수도 있으니까.

         

        【악어왕도마뱀 LV13】

        HP: 422/422

        MP: 111/111

        【칭호】

        「거미에게 사랑받는 자」

        「은룡굴의 주인」

        「늪지대(하부)의 주인」

         

        카이만을 쓰러트렸을 때 11레벨이 되었고 지난 일주일 동안 추가로 2레벨을 올린 상황이다. 늪지대에 있는 놈들만 사냥하다 보니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가 더뎠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낫지.

         

        사냥감을 물색해 보자.

         

        이왕이면 좀 강한 녀석으로.

         

        하늘을 나는 피라냐를 잡고 싶긴 한데, 얜 너무 빨라서 패스다.

         

        두꺼비나 거북이의 우두머리를 한 번 잡아볼까?

         

        진짜 영물이면 레벨이 단숨에 오를 텐데.

         

        그렇게 늪지대를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끼긱…. 끽.”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기운이 없긴 하지만,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울음소리였다.

         

        데이노니쿠스.

         

        그 녀석이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데이노니쿠스】

         

        몸길이는 3m이며 무게는 60~100kg까지 나가는 소형 육식 공룡입니다.

        지능이 매우 높은 사냥꾼이며 무리를 이루어 커다란 공룡을 사냥합니다.

        뒷다리에 달린 두 번째 발톱이 매우 날카로우며, 먹잇감의 배에 구멍을 뚫은 후 과다 출혈을 유발하는 사냥 방식을 선호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기척을 숨긴 채,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원래라면 놈을 상대하지 않았을 거다.

        데이노니쿠스는 무리를 이루는 사냥꾼이니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하나라면 모를까, 둘 이상이면 내가 어떻게 당해낼 도리가 없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리 봐도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혼자서 물을 마시러 온 건지, 동료의 모습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절호의 기회다.

         

        지금이 아니라면 평생 데이노니쿠스의 고기 맛도 모를 터.

         

        스르륵.

         

        조용히 물속에 잠수했다.

         

        악어가 헤엄을 치듯 아주 조용하게 헤엄쳤다.

         

        스르르륵.

         

        내가 가까이 다가감과 동시에 데이노니쿠스도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다.

         

        놈은 뭍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쩐지 얼굴이 좀 피곤해 보인다.

         

        목이 마르겠지.

         

        얼마나 목이 마르면 동료를 내팽개치고 혼자서 물을 마시러 왔겠어.

         

        비척거리면서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왔다.

         

        퐁.

         

        놈의 주둥이가 수면에 닿았다.

         

        꿀꺽.

         

        그래.

         

        바로 지금!

         

        쿠콰아아아아!

         

        엄청난 양의 물보라와 함께 뭍으로 튀어 나갔다.

         

        내가 노린 건 데이노니쿠스의 목이었다.

         

        “끼이이익!”

         

        갑작스러운 습격에 몹시 놀란 울음소리를 냈지만, 이미 늦었다.

         

        놈의 목은 이미 내 이빨 사이에 들어왔다.

         

        콰직!

         

        단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카이만의 성명절기.

         

        데스롤.

         

        쿠과가가가각!

         

        우득!

         

        【데이노니쿠스 LV7】

        【상태】

        「맹독」「빈사」

         

        우드드드득!

         

        데이노니쿠스가 데이, 노니쿠스로 분리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제아무리 데이노니쿠스라고 해도 기습을 당하면 뭘 어쩌겠어.

         

        가만, 아까 본 상태창에 이상한 게 붙어 있었는데?

         

        그래.

         

        분명 맹독이 붙어 있었지.

         

        두꺼비라도 먹은 건가?

         

        몸이 굼뜨더니 독에 당했었구나.

         

        독이 없었어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을 테니 아쉬워하지 마.

         

        놈의 동료들이 오기 전에 빨리 물고 가자.

         

        드디어 데이노니쿠스 고기를 먹어보는구나.

         

        …….

         

        또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

         

        몸이 저릿거리는 이 기운은 대체 뭐지?

         

        살기와는 거리가 있는 거 같은데.

         

        누군진 모르겠지만 얼굴이나 한번 보자.

         

        데이노니쿠스의 사체를 잠시 내버려둔 채로, 두 발로 일어섰다.

         

        촤자자작!

         

        물살을 가르며 시선이 느껴진 곳으로 단박에 뛰어갔다.

         

        우거진 풀숲이 보인다.

         

        찰나지만, 붉은색의 눈동자 역시 보였다.

         

        그래.

         

        네가 날 지켜보던 녀석이구나.

         

        촤악!

         

        발톱으로 풀숲을 벤 그 순간이었다.

         

        놈의 기척이 사라졌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 장소에 없었다는 듯이.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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