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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실상, 이한은 저 대결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고?

         

       ‘해봤자 이득이 없으니까.’

         

       저 제안을 받아봤자 얻는 건 없다.

       무엇보다.

         

       ‘아직 사람도 아닌 것들을 데리고 뭐하라고?’

         

       도련님과 새싹, 병아리.

         

       그에게 있어 생도들은 한없이 허약한 소동물에 불과했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다.

         

       ‘웬만한 기사보다 나은 녀석들도 있다만.’

         

       바바리안과 검공가의 자손, 용병왕의 제자.

       그리고 우리의 회귀자까지.

         

       저것들은 레벨이 다르다.

       다만 저들만 그런 거지, 다른 놈들은 한없이 부족하다.

       조금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독수리와 생쥐만큼.

         

       ‘조교보다 약한 게 사람새낀가?’

         

       우습게도 저들 넷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건 데미안 폴렛이었다.

       이한의 3년 조교(노예).

       우습게도 다른 놈들이 생쥐라면 그 녀석은 고양이는 되리라.

         

       명문 기사 가문의 말예답게 기초가 탄탄하고, 투기법도 상당히 훌륭하다.

       현재 이한이 훈련시키는 쇠줄 넘기에서도 꾸준히 성과를 보이는 중이고.

       어처구니없지만, 앞서 언급한 네 사람의 재능이 최상위권이라면, 데미안 저놈도 상위권 정도는 될 터.

         

       인성이 모나서 문제지, 다른 건 다 잘났다는 뜻이다.

         

       어쨌든, 상황이 이러했기에 이한은 딱히 대리전 같은 놀이를 시킬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저것들을 지금 내놓아봤자 몹쓸 꼴만 볼 터인데.

         

       …한데.

         

       “교관님! 하겠습니다, 대리전.”

       “마법사 따위가 무서워 피하면 쓰겠습니까?”

       “감히 주문쟁이 따위가 덤비다니, 하! 이건 기사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제가 놈들의 목을 따오겠습니다.”

       “날 보내주쇼. 내가 놈들이 검술학부 이름만 들어도 지리게 만들어 놓을 터이니.”

         

       “……새끼들.”

         

       역시 생도라 할지언정 기사 후보생답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기사가 주문쟁이가 덤벼오는데 가만히 두면 안 되지.’

         

       뭘 좀 안다.

         

       ‘이것들, 잘 크고 있네.’

         

       이한은 간질거리는 콧등을 슥 훔치며 감동을 숨겼다.

         

       제자들의 성장에 보람을 느낀다는 스승의 심정을 알게 되는 그였다.

         

       * * *

         

       제자들의 강렬한 의지를 느꼈음일까, 이한은 저놈의 제안을 받아주는 쪽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었으나, 일단 무슨 개소리를 할지 들어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대리전의 승자는 앞으로 교직 생활 중 상대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거냐?”

       “그렇다.”

       “웃긴 놈. 뭐 이런 유치한 조건 다 있어?”

         

       역시나, 가관이다 못해 더러운 조건을 내걸었다.

         

       “하, 할 건지 말 건지나 결정해라!”

         

       자기가 생각해도 막나가는 조건인지 아나 보다.

       이따위 조잡한 조건이라니.

       이런 부분에서 어린 티가 확실히 난다.

         

       ‘생긴 거랑 말투 때문에 괜히 오해했네.’

         

       마법사란 인재가 워낙 귀하다 보니 애초에 학부의 마법사가 적은 게 현실.

       하여 저토록 어린 나이에 교수직을 달 수 있었을 터.

         

       …생김새 때문에 달았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쨌든 마법사란 요소와 28세가 아니라 82세 나이로 보이는 겉늙은 모습 이외엔 어설픈 것투성이다.

         

       생각이 짧은 것도 있지만, 불같은 성정을 억누르지 못한다.

       어느 정도 완숙한 나이가 되면 저러한 점도 나아지지….

         

       ‘아니지, 저런 놈은 반대로 음흉해지지.’

         

       젊을 지금도 저리 괄괄한데, 훗날 저것을 뒷받침하는 권력과 힘이 있는 채 놈이 늙는다?

       그런 이는 음흉해진다.

       정말 상대하기 싫은 부류.

         

       그러나 지금은 상대하기 마냥 쉽다.

         

       “거절하지. 이건 나한테 전혀 이득인 얘기가 아니야, 내가 왜 주문쟁이 따위의 명령을 들어야 하나?”

       “이익! 바, 반대로 내가 너의…!”

       “너?”

       “…당신의 명령에 따라준다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값진 기회인지 모르는 것인가!”

         

       주먹에 교육당하고 싶진 않은지 말을 급히 바꾸는 오드왈이었으나, 그는 당당했다.

       그도 그럴 게 마법사에게 명령을 내릴 기회였다.

       이것이 천금보다 값진 기회임은 자명한 바.

       나름 이놈 입장에서도 제 가치를 명확히 알기에 내놓은 조건이었고, 충분히 고심한 조건임은 맞으리라.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넌 대체 나한테 뭘 명령하고 싶어서 이런 조건을 거냐?”

       “흥, 네놈, 아, 아니 당신의 손아귀에서 일단 아이린 영애를 구해내야지.”

       “또?”

       “무릎을 꿇게 할 것이다!”

       “…또.”

       “그 다음은 당연히……. 크흠, 그밖에는 딱히 없다만.”

       “…….”

         

       …신박한 또라일세?

         

       겨우 그거 때문에 노예 계약을 자처한단 말인가?

       이러한 어이없음을 밝히자, 놈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마법사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 참.”

         

       나쁜 놈이기도 하고, 인성 파탄도 났고, 차별주의자이긴 한데 이상하게 다 어설프다.

         

       이게 마법학부 교수?

       참으로 가슴 웅장해지는 유치함이다.

         

       ‘난 또 내 뒷배라도 소개시켜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겨우 그 정도?’

         

       인체실험도 아니고, 겨우 명령 몇 가지를 내리겠다니.

         

       ‘솔직히 저따위 맹세를 해봤자, 지키지 않으면 그만인데, 참….’

         

       서로의 명예를 걸고 하는 약속이지만, 이한에겐 애초에 지켜야 할 명예는 없다.

       기사단의 이름을 거는 맹세도 마찬가지란 뜻.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과 혹시라도 빠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근육뿐.

         

       “좋다, 대신 약속을 어기지 마라.”

       “마법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그럼 난 발타르 그레이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자의 이름을 건다니, 좋다! 신뢰할 만하군.”

         

       착!

         

       그렇게 호구 마법사는 제 계획이 이미 성공한 것처럼 희희낙락거렸다.

         

       발타르의 이름을 개 사료보다 하찮게 여기는 기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며.

         

       * * *

         

       “-이미 들은 생도도 있겠지만, 제군은 앞으로 한 달 후 마법사 생도들과의 대결을 치르게 된다.”

         

       “대결의 방식은 어떻게 됩니까?”

         

       “[워 게임].”

         

       “…마법사들이 머리를 썼군요.”

       “쿤타, 그거 뭔지 모른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상 전쟁입니다.”

       “?”

       “그러니까….”

         

       워 게임(War Game).

       주사위를 굴리고, 전략을 짜서 확대된 지도 위에서 말을 움직이며 가상 전쟁을 치르는 게임을 뜻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그 의미가 좀 남달라진 상태다.

         

       귀족들이 더욱 큰 자극을 위해 ‘실제 전쟁 환경’에서 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변모하며.

       가챠, 아니….

         

       돈지랄 게임으로 변모된 것이다.

         

       숲이나 버려진 평야 하나를 구매하고, 용병이나 퇴직한 병사 등을 고용하여 그들이 알아서 전쟁을 치르도록 만들며, 이를 귀족들은 관람한다.

       전생 시절 이한도 몇 번 해봤던 자동사냥 폰 게임을, 귀족들은 돈지랄을 통해 더욱 악랄하게 구축한 것이다.

       남이 전쟁하는 것을 그저 관망하며 즐기다니.

       이만한 악질도 없다.

         

       “…사람 가지고 노는 것 같다.”

         

       쿤타의 진솔한 심정.

       아르노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만.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지요. 하지만 이 게임이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건 아닙니다.”

       “?”

       “기사나 병사, 용병 등 검을 업으로 사는 자들에겐 제법 이득이기도 하지요.”

       “어째서?”

       “실전 경험을 쌓기 용이하며, 전쟁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으니까요. 한데도 죽을 위험이 극도로 적습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왕국에서 정해놓은 규율입니다. 지키지 않는다면 왕실에게 밉보이겠다는 뜻인데, 이를 안 들을 어리석은 자들도 드물지요.”

       “아아….”

         

       드디어 납득하는 쿤타였다.

       확실히 목숨의 위험이 현저히 적은 대리전쟁을 통해 전투와 전쟁,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것이다.

       투쟁이라 하면 항상 열 중 다섯은 죽어나가는 바바리안에게 더더욱.

         

       “이 때문에 용병들 중에는 전문적으로 워 게임 임무만 전담하는 전문가도 있을 정돕니다. 안 그렇습니까, 용병?”

       “맞지. 그거 쏠쏠해. 우리 업계에서도 서로 하려고 싸움 많이 나지, 흐흐.”

         

       비록 귀족들의 유흥거리가 되는 건 싫지만, 안 그래도 일자리가 줄어들어가는 용병 업계에선 쏠쏠한 돈벌이다.

       죽거나 팔다리가 사라질 우려도 적으니, 더욱 좋고.

         

       그렇게 가란드의 공증마저 있으니, 워 게임에 대해 잘 모르던 새싹 생도들도 안심하며 숨을 내뱉었다.

         

       ……허나.

         

       “쿤타 궁금한 거 더 있다. 아까 아르노가 그랬다. 주문쟁이들, 머리 썼다고. 그거 무슨 뜻인가?”

       “아아, 그거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워 게임의 승률이 가장 높은 이들은 마법사거든요.”

       “…응?”

         

       …이어지는 그의 발언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쟁에서 중요한 건 결국 화력전입니다. 개인의 강함보단, 오히려 파괴적인 일격이 더욱 효율적이고 상대를 빠르게 제압하는 법입니다. 그런 뜻에서 워 게임에서 마법은 압도적입니다. …교관님 정도 되시는 기사라면 압도적인 화력도 소용이 없을 것 같지만.”

         

       슬쩍 이한에게 시선이 다들 돌아간다.

       확실히 저 양반이라면 공성전이라 할지언정 혼자서 성을 격파하고도 남을 터.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얘기야, 그럼?”

       “그, 그럴 수가…!”

       “괘, 괜찮은 거야, 이거?”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번져나간다.

       새싹들은 특히 더 그랬고, 병아리 아가씨들도 표정이 암울하다.

       그나마 도련님 조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으나, 그들도 설마 대결 방식이 워 게임일 줄은 몰랐다며 골치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

         

       워 게임을 어릴 적부터 관람했던 그들로선 마법사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니까.

         

       그러나 그들은 긴장할지언정 지지 않으리란 각오는 있었다.

         

       결국 전장의 주역은 기사.

         

       아무리 막대한 화력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기사의 돌파력과 기백을 당할 수는 없는 법.

         

       그리고 생도란 한들 그들은 기사를 목표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설사 불리한 워 게임이더라도 이길 자신이….

         

       “-아, 참고로 말하는 건데 이번 워 게임에서 도련님 너희들은 나서지 않을 거다. 오직 새싹이 너희들만 나설 거다.”

         

       -!!!?

         

       이번에야말로 소리 없는 경악성과 함께 생도 전원이 자신들의 교관을 보며 동일한 생각을 떠올렸다.

         

         

       ……미친놈.

         

         

         

         

       그들이 뭐라고 하건, 이한은 진심이었다.

         

       “너희가 선택한 거다.”

         

       주문쟁이와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길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너희는 그 말을 지켜야 한다.

         

       “불합리하다고? 투기법을 익히지 않았다고? 걱정 마라, 아직 한 달이란 시간이 있으니.”

         

       한 달, 적은 것 같지만 제법 긴 시간이다.

         

       어떤 이는 한 달 만에 20kg 감량을 성공하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한 달 훈련하여 42.195km 풀 마라톤을 뛰기도 한다.

         

       이처럼 한 달이란 사람이 변화, 아니 격변(激變)하기 충분한 시간일지니.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말이다.”

         

       생도들은 보지 못했지만, 이한의 뒷주머니에는 모자 하나가 덩그러니 삐져나와 당당히 존재감을 주장하는 중이었다.

         

       검은 팔각모.

         

       마냥 아무런 특색도 없는 검은 팔각모에 불과했으나, 어쩐지 불길한 분위기를 풍겼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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