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

   

    사흑련 소속 무인인 장산홍은 수하 둘이 일검에 두 동강이 나자마자 소리쳤다.

   

    “전원 진형을 갖춰라! 얕볼 놈이 아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상대를 살폈다.

   

    상대는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사내 하나, 꼬맹이 하나.

   

    꼬맹이 쪽은 신경 쓸 필요 없다 해도 사내놈이 예상외로 강하다.

   

    스슥- 

   

    장산홍은 간단한 수신호를 보내 수하들에게 명을 하달했다.

   

    일전의 검기로 소모한 내공이 많을 터. 이대로 소모전으로 끌고 간다면 무리하지 않고 승리를 점할 수 있다.

   

    검기를 쏘아내는 것으로 보아 추정 경지는 절정 언저리. 이쪽에도 자신을 포함해 절정경의 무인이 셋이니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손실 없이 이길 수도 있었다.

   

    “쳐라!”

   

    장산홍이 진형의 선두에 서 앞으로 나아갔다.

   

    서준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쿠웅-!

   

    발을 내리찍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땅이 얼어붙는다.

   

    사흑련의 무인들이 눈치 빠르게 발에 내공을 둘러 스미는 음기를 차단했다.

   

    서준은 싱겁게 혀를 차며 적들을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눈을 빛내며 검을 내지른다.

   

    “하압…!”

   

    오른쪽 가슴을 노리는 검. 황운신검의 운류청천으로 흘려냈다.

   

    그 틈에 주변을 둘러싼 다른 무인들이 서준의 사방을 노린다. 서준은 반격을 포기하고 몸을 웅크렸다 순간적으로 펼쳤다.

   

    파악-!

   

    서준의 몸이 오른쪽으로 쏘아지며 무인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크윽…!”

   

    검을 휘둘렀다. 

   

    카앙-! 

   

    무인이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정면을 제외한 방위에서 나머지 인원들이 검을 내지른다.

   

    ‘이게 진형인가.’

   

    검수들로 이루어졌으니 검진이라 할 수 있다. 청하문에서 눈으로만 봤던 진형에 직접 당해보니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조금만 버텨!”

   

    춘봉이 외치며 검을 뽑아들고 달려온다.

   

    가오 상하게 동생 도움을 받아 위기를 탈출할 수는 없는 법.

   

    서준은 다가오는 검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검들을 무시한 채 눈앞의 무인에게 다시금 검을 내질렀다.

   

    “이서준…!”

   

    춘봉이 경악해 소리쳤다.

   

    카가강-!

   

    검이 서준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이번에는 사흑련의 무인들이 경악해 입을 쩍 벌렸다.

   

    “도검불침!?”

   

    아니다. 아무리 서준이라도 평소에 칼로 쑤시면 뚫린다.

   

    갑주귀가 사용하는 호신공을 연구한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심지어 인간과 마물이라는 차이 때문인지 그 효율도 굉장히 별로였다. 자주 써먹을 무공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알 도리가 없는 사흑련의 무인들은 굉장히 당황했다.

   

    당장 눈앞의 무인 역시 당황한 나머지 서준의 일검을 허용했다.

   

    촤악-!

   

    사내의 어깻죽지에 기다란 상처가 생겼다.

   

    “크윽…!”

   

    파앙-! 서준은 발바닥에 내공을 집중해 폭발시키듯 앞으로 쏘아졌다.

   

    사내의 신형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준이 씩 웃으며 발을 휘둘렀다.

   

    퍼억-!

   

    명치를 얻어맞은 사내가 날아간다.

   

    사흑련의 무인들은 동료를 받아주는 대신 서준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다지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발에 얻어맞은 사내의 명치. 그곳에 새겨진 음기.

   

    서준이 엄지로 중지를 붙잡았다.

   

    혼원일월지混元日月指

   

    양기의 탄환이 날아가 사내의 명치에 자리 잡은 음기와 어설픈 태극을 이루고,

   

   

    ────────────!!!!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흐….”

   

    서준이 비죽 웃었다.

   

    손끝에서부터 올라온 짜릿함이 척추를 쓸고 지나간다.

   

    사흑련이라 했나? 역시 제대로 된 놈들은 조금 다르다.

   

    청하문주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놈들과 싸우는 건 거의 처음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그 손맛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준이 실실 웃는 사이 춘봉이 도착했다.

   

    “야! 괜찮아!?”

   

    달려온 춘봉이 서준의 몸을 살폈다. 

   

    옷이 찢겨나가고 검에 베인 자리가 조금 붉게 부어오르긴 했지만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안도한 춘봉이 백금빛 검기를 뽑아내며 혼원일월지가 터진 자리를 경계했다.

   

    “이서준.”

    “왜?”

    “너한테 다 맡길 생각 없으니까, 등 뒤는 나한테 맡겨.”

   

    픽-, 서준이 웃었다.

   

    “믿음직스럽네.”

   

    거의 동시에 바람이 불며 흙먼지가 걷혔다.

   

    혼원일월지가 명치에서 터진 사내는 흔적도 알아볼 수 없이 흩어졌고, 나머지 인원들도 대부분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전투가 가능해보이는 인원은 셋.

   

    모두 절정경으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멍해보이는 이들을 우두머리가 다그쳤다.

   

    “정신 차려! 넋 놓고 있으면 다 죽는다!”

    “땡.”

   

    정답은 정신 차려도 다 죽는다였습니다!

   

    서준이 우두머리에게 달려들었다. 그 뒤로 춘봉이 따라붙었다.

   

    서준의 심상 속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친다. 불어난 강물이 세차게 흐르며 끝내 일대를 뒤덮었다.

   

    백하귀양百河歸洋

   

    청류검을 본딴 검술이 서준의 손에서 펼쳐졌다.

   

    콰르륵-!

   

    검이 거칠게 떨어져내린다.

   

    우두머리, 장산홍이 있는 힘을 다해 검을 올려쳤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주변으로 바람이 터져나간다. 

   

    혼원. 탁하게 물든 서준의 검기에서 뾰족한 가시가 솟았다.

   

    급히 고개를 기울여 피한 장산홍이 소리쳤다.

   

    “무공을 몇 개나 익히고 있는 거냐…!”

    “너 같으면 알려주겠냐?”

   

    혼원은 혼원신공의 근본.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하나의 기氣라 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 검에 깃든 내공을 양기로 치환한 서준이 검을 넓게 휘둘렀다.

   

    황금빛 화염이 궤적을 따라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윽…!”

   

    장산홍이 뒤로 물러섰다.

   

    서준은 빠르게 춘봉 쪽을 곁눈질했다. 놀랍게도 절정 무인 둘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쟤는 나한테 재능으로 뭐라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툴툴대며 검을 당겼다.

   

    전투 도중에도 혼원신공으로 회복한 내공이 고스란히 검에 담겼다.

   

    하늘. 땅. 사람.

   

    삼재 중 인人을 담아내어 선인지로仙人之路.

   

    선인이 나아가는 길은 구불구불 휘어있으나, 결국 그 끝에 놓인 것은 나아가고자 했던 종착점이라.

   

    검술이 부족하다면 기공술로 대체한다.

   

    서준이 당긴 검을 폭발적으로 내찔렀다. 동시에 검기에서 갈라져 나온 무수한 검기의 줄기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이런…!”

   

    장산홍이 빠르게 검을 휘둘러 대부분을 쳐냈으나, 쳐내지 못한 가지가 세 개 남았다.

   

    “이게 환검이지.”

   

    삼재검법의 선인지로와는 상당히 달라졌지만 칼을 박는다는 결과는 같다. 

   

    세 줄기 가지가 구불구불 휘어지며 장산홍의 가슴을 찔렀다.

   

    “커억…!”

   

    어느새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은 서준이 입꼬리를 찢어올렸다.

   

    “잘 가라.”

   

    푸화악-!

   

    검을 뽑자 피가 뿜어져나온다.

   

    서준은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비리다. 침과 함께 뱉어내며 남은 두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빠 왔다 춘봉아!”

   

    두 사내를 정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전투가 끝난 뒤, 서준은 개운한 숨을 내쉬었다.

   

    “흐아…. 살겠다.”

    “미친놈.”

   

    춘봉이 혀를 차며 납검했다.

   

    이서준 저 놈이 너무 무턱대고 달려들어 검부터 휘두른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사실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사기를 풀풀 날리는 사파의 정예가 섬서까지 들어와 조직 행동을 하고 있으면 원래 칼부터 날려도 된다.

   

    적대관계인 타국에 몰래 들어와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애초에 당당히 들어왔으면 이런 데서 저러고 다니진 않는다.

   

    ‘근데 저놈은….’

   

    그걸 알고 검을 휘두른 걸까? 솔직히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자신이 미숙하게 내비친 살기를 읽고 무작정 달려든 거겠지.

   

    그것에 춘봉은 경각심을 느꼈다.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너무 거리낌이 없다.

   

    자신이 잘 말려야 한다. 아무리 봐도 이 새끼 양심은 탈부착형이니까.

   

    그리고 그 탈부착 양심의 소유자, 서준은 낄낄 웃으며 죽어 널브러진 사파의 무인들을 주욱 둘러보고 있었다.

   

    ‘사기邪氣라….’

   

    사실 처음에는 이놈들의 심법을 베껴보려 했다. 눈앞에서 따라 써주면 좋아 죽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취향에 안 맞네.’

   

    영 애매하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듯한 느낌. 묘하게 찝찝하고 더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따라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춘봉이의 가문을 몰살했다는 놈들의 무공을 따라하기는 싫었다.

   

    ‘아닌가?’

   

    따라 써서 농락하면 오히려 좋아하려나?

   

    이건 나중에 물어봐야지.

   

    일단 그전에 잠깐 쉬어야겠다.

   

    “아이고….”

   

    속이 쓰라리다. 매운 걸 먹어서 쓰린 느낌이 아니라, 칼로 긁어낸 것처럼 쓰라린 느낌이다.

   

    “뭐야. 너 왜 그래!”

   

    서준이 제자리에 주저앉아 끙끙 앓고 있자, 놀란 춘봉이가 급하게 서준의 몸을 더듬었다.

   

    자그마한 손이 그의 몸 이곳저곳을 매만지다 무언가 깨달은 듯 그녀가 인상을 팍 구겼다.

   

    “아잇! 이 화상아!”

   

    챱챱-

   

    등을 후려갈기는 손길이 시원하다.

   

    “어어, 좀 더 아래쪽.”

    “여기?”

    “응. 아이고 좋다.”

    “아니! 이게 아니잖아! 너 씨발 그거 썼지! 거령신공!”

   

    어떻게 알았지? 놀라서 춘봉이를 바라보자 그녀가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으익…! 진짜 돌아버리겠네! 자꾸 이상한 무공 만들어서 쓰지 말라고! 너 그러다 진짜 골로 간다!?”

    “아잉. 우리 춘봉이가 잘 보살펴주겠지.”

    “언제는 나 먹여살려주겠다면서!”

    “아유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지.”

    “으기야아악…!!”

   

    춘봉이가 폭발했다.

   

    물론 달래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

   

   

    *

   

   

    “아무래도 화산까지 조금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춘봉이가 무인들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서두를 필요 있나? 비무 대회까지는 꽤 남았다는데.”

    “비무 대회가 문제가 아니야. 이 새끼들 사흑련 놈들이 맞았어.”

    “뭐 문제 되나?”

    “되지.”

   

    퉤, 무인들의 시체 위에 침을 뱉은 춘봉이가 손을 탁탁 털었다.

   

    저 새끼 저거. 죽어서 포상을 받네. 호상이구만.

   

    “너 사흑련이 뭔지는 아냐?”

    “모르는데?”

    “그럴 줄 알았다.”

   

    춘봉이의 눈짓에 서준이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춘봉이의 걸음이 빠르다. 

    

    이럴 거면 내가 안고 뛰는 게 낫지.

   

    곧바로 춘봉이를 목마 태운 채 산을 우다다 달렸다.

   

    “야호!”

   

    챱챱-! 춘봉이의 손이 머리를 두드린다.

   

    “야! 야! 얘기는 듣고 뛰어!”

    “넹.”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춘봉이가 설명을 시작했다.

   

    “무림맹은 알아?”

    “대충? 정파 모임 같은 거 아닌가?”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네. 사흑련도 비슷해. 사파 놈들 모임이지.”

    “아하. 그래서?”

    “근데 얘네는 무림맹과 달리 실권이 아주 강해. 사흑련 자체를 아예 하나의 거대한 문파로 봐도 될 정도로.”

   

    데굴, 눈을 굴리며 계산하던 서준이 ‘오.’ 감탄사를 토했다.

   

    “엄청 큰 문파겠네 그러면.”

    “크지. 강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흑련 소속 무인들은 내공에 깃든 사기邪氣가 짙어.”

    “아하?”

   

    아까 느꼈던 그 찝찝한 기운이 사기인가 보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얘네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문제인 거야.”

    “화산파 영역이니까? 삐끗하면 전쟁이라도 나려나?”

    “어쩌면 진행 중일지도 모르지. 전면전이 아닐 뿐이고.”

   

    그건 좀 문제긴 하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춘봉이를 어깨 위에서 내렸다.

   

    “앗.”

   

    춘봉이가 아쉬운 듯한 소리를 냈지만, 빠르게 뛰기에는 목마를 태우는 것보다 안는 게 낫다.

   

    “오….”

   

    품에 쏙 안긴 춘봉이를 단단히 끌어안은 서준이 발바닥의 용천혈에 내공을 집중했다.

   

    “꽉 잡아.”

    “…응.”

   

    투웅-!

   

    활 시위를 놓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준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아무래도 낭인 놀이는 나중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

   

   

    두 달 하고도 한 달의 절반이 또다시 지나간 어느 날.

   

    “존나 머네 진짜. 미친 거 아니냐? 무슨 나라 횡단도 아니고, 섬서 안에서만 움직이는데 뭔 놈의 시간이 이렇게 걸려?”

   

    드디어 화산에 도착했다.

    

   

   

   

   

   

   

   

   

   

   

다음화 보기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