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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EP.38

     

   “내가 그때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어, 그래그래 그렇겠지.”

     

   나는 놈의 손에 들린 철검을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날이 바짝 서 있는 반응이다. 물론 나와의 첫 만남이 압도적인 패배였으니 칼을 갈고 있었을 만도 했다.

     

   그때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듯한 분위기.

   정말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녀석이 검을 들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저히 질 것 같지는 않네.’

     

   계속해서 화영만 상대했던 나로서는 처음으로 상대하는 해남파의 검술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혁의 자세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빈틈을 찾기보다는 빈틈이 없는 구석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타앗! 남해삼십육검을 받아라!”

     

   입으로 힘차게 기합을 넣으며 달려드는 종혁.

   그리고 이 비무를 지켜보는 몇몇 심판들이 한껏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표정을 짓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오… 저게 해남파의 남해삼십육검인가”

   “역시 구파일방의 제자. 실망시키지 않는군.”

     

   그들의 말에 종혁의 얼굴이 한껏 자신감으로 차오른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기술 이름을 외치며 검을 치켜드는 녀석을 보니 무림인들은 생각보다 겉멋을 신경 쓰는구나 싶다.

     

   카아앙!

     

   나는 종혁의 검을 가볍게 받아 냈다.

   충분히 피하거나 흘릴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나름 구파일방이라는 거대 문파 제자의 힘을 한 번 가늠해 보고 싶었다.

     

   카앙! 카앙! 카앙!

     

   검이 맞닿을 때마다 크고 작은 불똥이 튄다.

     

   힘과 힘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비무.

   하지만 나는 싸움이 지속될수록 실망만 커질 뿐이었다.

     

   ‘해남의 검은 힘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

     

   화영과 수련을 하며 그녀는 나에게 본선으로 가면 구파일방의 검술을 상대하게 될 테니 그 특징을 자세히 익혀두라 했었다.

     

   그리고 그때 들은 해남파의 무공은 ‘연계로부터 오는 혼란’과 ‘순간 폭발하는 힘’을 중시하는 무공이었다.

   그래서 해남의 검을 상대하기 시작하면 작은 조각배 하나에 의지한 채, 거센 파도 위에서 무공을 펼치는 압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거센 파도도, 작은 조각배도 전혀 연상할 수 없는 그저 평범한 검이었다.

     

   ‘아니, 어지럽다는 느낌은 조금 있네.’

     

   어질어질하다는 느낌.

   기대했던 상대가 너무 낮은 수준을 들고 등장했기에 머리가 띵했다.

     

   ‘이건 배울 것도 없겠군.’

     

   나는 녀석이 준비하는 마지막 초식을 가만히 기다려 줬다.

   화영이 설명했던 검의 마지막에 폭발하는 거센 파도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 녀석은 자신의 검을 앞세워 나를 향해 해남삼십육검을 들이밀었다.

     

   해남삼십육검 제일식

   격랑수검 激浪水劍

     

   “받아라!”

     

   종혁의 검을 구경하고 있던 심판들이 해남의 검술에 고개를 끄덕인다.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는 검이었다. 내력을 발출한 것인지 넘실거리는 파도가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그뿐.

     

   탑에 오르기 시작하며 초인적인 힘을 얻고 튜토리얼에서 사선을 넘으며 갖은 무쌍을 찍었던 나로서는 저 기의 파도가 그저 어린아이의 물장구로 보일 뿐이었다.

     

   스윽.

     

   나는 검을 늘어뜨렸다.

   죽어라 연마했던 천월신공은 보여 줄 가치가 없는 상대다.

     

   그저 약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쾌락을 느끼고 구파일방이라는 뒷배로 떵떵거리던 애송이의 콧대를 꺾기에는.

     

   그저 일 검이면 충분했다.

     

   “죽…!”

     

   종혁의 검이 나의 심장을 노리며 달려든다. 그 살초를 보게 된 심판들이 당황하며 비무장으로 뛰어올라오고 있는 게 보인다.

     

   하지만 이곳의 그 무엇보다 나의 검이 월등히 빨랐다.

     

   쐐애액!

   쨍그랑-!

     

   놈의 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비산한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은 그저 가벼운 올려치기를 한 나의 검이 보일 뿐.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의 검을 깨뜨렸을 뿐,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이지는 않았으니까.

     

   “이, 이런…!”

     

   망연자실하게 깨진 자신의 검을 바라보는 녀석. 하지만 관성의 법칙에 의거해 녀석의 몸은 아직도 나에게로 날아드는 중이었다.

     

   스윽

     

   나는 비어 있던 왼손을 천천히 들어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날아드는 녀석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쩌어어억!!!

     

   “아, 따귀로 때릴 걸.”

     

   검이 날아드니 생각하지 못했던 한 가지.

   내 주먹을 맞은 종혁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비무장 밖으로 튕겨졌다.

     

   ***

     

   비무대회의 예선전은 공평하게 이루어졌다.

     

   1승을 거둔 사람은 다른 1승을 거둔 사람과 만나 비무를 치른다.

   만약 거기에서도 승리해 2승을 거두게 되었다면 다음에는 2승을 거둔 사람을 만나 비무를 치른다.

     

   그렇게 총 5회의 비무를 치르게 되면 예선전은 끝나고 가장 승리 수가 많은 두 사람이 본선으로 진출하게 되는 구조였다.

     

   ‘뭐, 운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약한 상대를 만나 연전연승을 거뒀다면 그것도 나름 실력이고 무예의 실력은 고강하나 재수가 없어서 패배를 한다면 그것도 실력인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리를 떠났다.

     

   “너 같은 무명소졸이 해남파의 종혁을 이겼다고? 나는 내가 직접 겪은 것만 인정한다! 나는 형산파의 장건이다! 비파검법을 보여 주지!”

     

   퍼버벅!

     

   기절.

     

   “후후… 해남파의 종혁과 형산파의 장건을 이겼다지? 나는 모용세가의 모용진이다! 내가 친히 너에게 가르침을……”

   파바박!

     

   기절.

     

   “자네가 해남파의 종혁과 형산파의 장건과 모용세가의 모용진을 이겼다고? 나는 종남파의…”

   “임마! 똑같은 레퍼토리 지겨우니까 멘트 좀 바꿔와!”

     

   빠각!

     

   구파일방이고 나발이고 상대가 너무 약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문파와 새로운 무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이 펼치는 무공을 보는 순간 나의 기대는 실망이 되었고 나는 종혁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원한 죽빵 한 방으로 그들에게 현실의 쓴맛을 보여줬다.

     

   “후우…”

     

   앞으로 남은 비무는 단 한 번.

   지금까지 4연승을 한 것으로 보아 본선 진출은 안정권이었지만 이참에 전승으로 화영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번 김시인!

   “네.”

   심판이 익숙하게 나의 이름을 불렀다.

   첫 비무에서 나는 소위 말하는 ‘듣보잡’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엑스트라 무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4연승.

   적당히 놈들의 기술은 다 받아 준 탓에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나의 승리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웅성웅성-

     

   “저 친구가 일권검一拳劍인가? 모든 상대를 주먹으로 처리했다는?”

   “일권‘검’이라니, 저 친구 별호는 파면권破面拳일세. 저 친구랑 상대했던 무인들 면상이 터져 나간 걸 보면 모르나?”

     

   이미 3패 이상을 올려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한 참가자들이 나를 보며 속닥거리고 있다. 근데 내 허리에 검 안 보이나? 별호에 ‘권’이 왜 들어가?

     

   “그래도 검을 쓰는 무인의 별호인데 ‘검’이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모든 비무 마무리가 주먹이었는데 검은 무슨……”

   “아무렴 무슨 상관인가. 그냥 자네들은 저 치를 만나지 않은 것에 감사나 하게.”

     

   그들의 말에 나는 신경을 끊으며 슬금슬금 비무장으로 올라오는 나의 상대를 봤다.

     

   ‘…소림사인가?’

     

   무림에서 면도기로 밀었나 싶을 정도로 깔끔한 민머리.

   황색과 적색이 조화롭게 이뤄진 승려는 다른 무인들과는 달리 그 어떤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1번 진휘!

   “아미타불.”

     

   심판의 호출에 승려는 대답 대신 자연스레 염불하며 들고 있던 염주를 만지작거렸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그 수수한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 승려는 진짜군.’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들과는 격이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화영을 마주하는 것과 흡사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고 종혁이나 다른 쭉정이들과는 달리 비무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도 빈틈이 잘 보이지 않는 태세를 지니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인 시주.”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

   그 말마따나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비무를 지켜볼 때도 정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입을 나불거리지 않았다.

     

   “저도 한 수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심판의 안내에 맞춰 세 보 뒤로 물러섰다.

   묘한 긴장과 함께 알 수 없는 뜨거움이 가슴에 남아 심장을 박동시킨다.

     

   심판이 진휘라는 승려와 나를 번갈아본다.

   올려지는 심판의 손. 그리고 그것이 떨어질 때, 나는 나를 울리는 이 박동이 설렘의 박동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비무 시작!

     

   타앙!

     

   비무가 시작됨과 동시에 염주를 손에 말아 쥔 승려가 나를 향해 도약했다.

     

   선수 필승이다. 비무든 스포츠든 게임이든. 먼저 상황의 흐름을 거머쥐는 자가 승리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타앙!

     

   나는 물러서지 않고 승려에게 도약하며 발검했다.

   상대에게 노림수가 있다면 상대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후발 선제의 길.

     

   그리고 승려는 내가 검을 들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낯빛에 순간 당황이 스쳐지나갔다.

     

   파앙!

     

   내가 휘두른 검이 승려의 염주와 충돌하며 맑은 공명음을 만들어냈다.

     

   “하앗!”

     

   자연스럽게 검로가 막힌 상황. 승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의 명치를 노려 발길질을 날렸다.

     

   빠아악!

     

   복부에 승려 진휘의 일격이 시원하게 작렬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진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의 공격을 막은 손의 얼얼함을 무시하며 그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근력 Lv. 25]

   [민첩 Lv. 27]

   [체력 Lv. 26]

     

   “응……? 으으응???”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을 날린 진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체술 하나라면 그 어떤 문파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소림의 무승.

     

   화영과 수련을 하며 더 성장한 나의 신체는 육탄전이라면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큼 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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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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