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

    <38 – 난 이거 못 골라>

     

    애칭이 생겼다.

     

    “디. 이리로 와서 쿠키 좀 먹어보세요.”

    “너무 좋아요!”

     

    아카디아.

    피렌체 왕국의 공녀님은 내가 어지간히도 마음이 드는지 직접 애칭을 지어주며 매일 간식자리에 나를 초대하였다.

    쉽게 입수할 수 없는 고급과자를 신원보증인과 만나는 잠깐의 사이동안 공수해오는 재주에서 일국의 유력가문의 후계자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아카디아 언니는 왜 저를 디라고 불러요?”

     

    솔직히 조금 그렇다.

    D학점 같아서 좀 깨거든.

    고등학교보다 대학교에 가까운 아카데미 구조 탓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의 이름에 오크가 붙어있다니, 오크노디의 귀여움을 사람들이 몰라줄 것 같아서 야속하잖아요.”

    “아하.”

    “혹시 디라고 불리는 것이 싫으셨나요?”

     

    서운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쳐다보면 어떻게 싫다는 말이 나오냐.

    하, 귀여워 죽겠네 진짜.

     

    “시, 싫지는 않아요.”

    “디~! 수줍어하는 모습도 어쩜 이리 귀여울까요.”

     

    덥썩 껴안고 인형 다루듯이 볼을 비벼대는 스킨쉽과 달콤한 살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아이 참. 덥잖아요. 그만 끌어안아요.”

    “헉. 디가 저를 거절하다니…”

     

    상심하는 척하며 흑흑 하고 우는 소리를 내지만 전부 연기다.

    흘끗 흘끗 이쪽을 바라보며 기대하는 눈초리가 허둥대는 내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기대하면 들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언니 울어요? 우는 거 아니죠?”

    “디가 제 손을 거절해서 이 언니는 마음이 너무 슬프답니다… 흑흑.”

     

    이사벨이 뒤에서 꼴값 떠네,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역시 모험가인 이사벨은 눈치가 빨라서 내 여우짓을 꿰뚫어보고 있다.

     

    “아카디아씨. 오크노디가 이 틈에 쿠키를 집어먹고 있어요.”

    “아앗,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다람쥐처럼 볼이 빵빵해지도록 음식을 집어먹던 내 손등을 부채가 찰싹 때렸다.

     

    “아얏!”

    “오크노디. 티 테이블에서도 보기 흉할 정도로 음식을 볼에 우겨넣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잖아요.”

     

    희귀한 간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 좋지만 무근본의 아카디아 언니는 예절 앞에 엄격하다.

    근본 없는 취향으로 동서남북의 최신트렌드를 짬뽕마냥 다 섞어서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성향.

    근본 없는 귀족이라고 타국의 귀족들에게 천시 받지 않으려고 아카디아는 예절에는 신경을 썼다.

     

    ‘티 테이블 상대를 껴안고 볼을 부비는 것도 귀족예절에서는 허락되는 건가?’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잘 보이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이런 간식자리에 초대받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눈감아줘야지.

    입학식 전, 일주일의 대기시간.

    정오의 티 테이블에서 사회생활에 노력한 결과.

    손등의 부채자국과 맞바꾸어 도감수집과 포만감을 얻었다.

     

    [요리도감에 레어요리 <유스타치오의 설탕공예-장미>가 수집되었습니다.]

     

    ━━━

    디저트수집 30종 – <달콤한 체액>기능습득.

     

    레어요리 [유스타치오의 설탕공예-장미] 수집 – 정령계약성공률10%증가.

    ━━━

     

    [인물 <아카디아>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

    아카디아의 이해도

    무근본패션(이해도 10) – 좋은 거에 좋은 거를 더하면 더 좋지 않을?까?

    아동애호(이해도 20) – 귀여운 아이만 보면 좋아죽는다.

    열등감(이해도 30) – 자국의 문화가 없는 피렌체 왕국의 공녀는 조금이라도 치부를 감추고자 예의범절에 엄격하다.

    ━━━

     

    [인물 <아카디아>의 호감도가 20을 넘었습니다.]

    [1차 특전 <아카디아의 다과회>를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아카디아의 호감도 상승속도가 상승합니다.]

     

    [인물 <아카디아>의 이해도가 25를 넘었습니다.]

    [인연기능 <교감 – 아카디아>를 습득합니다.]

    [아카디아의 감정변화에 민감해집니다.]

     

    보아라. 사회생활의 힘을.

    괜히 고인물 체면 구겨가면서 아무 생각 없이 아양이나 부리던 것이 아니라고!

     

     

    * *

     

     

    차 한 잔을 마시며 간식을 소화할 무렵.

    이사벨이 운을 띄웠다.

     

    “아카디아씨. 오크노디를 어여삐 봐주는 건 감사하지만 서귀연의 활동에 더 신경써주시면 좋겠어요.”

    “아아. B그룹 중앙귀족 입학생들 말이죠?”

    “B그룹 기숙사에 중앙귀족들이 입주하면서 슬슬 그룹 간 갈등이 늘어나고 있어요.”

     

    입학식 전에 주어지는 일주일의 입학준비기간.

    신입생기숙사와 식당, 훈련장, 정원, 외부산책로 등의 시설에서 A그룹 변방입학생들과 B그룹 제국입학생들의 충돌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원작게임에서도 이맘때면 시작되는 대형이벤트의 전조현상이다.

     

    ‘제국은 고티어 인재들이 많지.’

     

    대신 싸가지를 밥말아먹은 애들도 많다.

    변방은 전반적으로 티어가 밀린다.

    전투력으로는 가장 주목받던 북부대공녀 아이린도 인기순위 전체티어에서는 1티어(11위~15위)를, 동방제국의 싱도 1.5티어(16위~20위)를 지키는 수준.

    0티어(1위~5위)나 0.5티어(6위~10위) 사기캐들은 대부분 B그룹 제국에 포진해있다.

    인기와 성능이 대체로 비례하는 경향이 있는 이 게임에서 인기순위는 무시할 것이 못 된다.

     

    ‘갈등이 일어나면 십중팔구 제국이 변방을 깔아뭉개지. 사건이 하나 터지기 전까지는.’

     

    문제는 그 사건이 챕터보스인 <헤스티아>의 인망을 나락으로 처박는다는 사실에 있다.

    헤스티아가 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간섭하면 제국 놈들이 너무 설치고, 방치하면 헤스티아가 챕터보스로 변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위험한 트리거를 밟는다.

     

    “안 그래도 서귀연에서 논의가 계속 되고 있어요. 저희 상급반 입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제국에 맞서면 안 되겠느냐고요.”

    “회의가 잘 풀리지 않았군요.”

    “제국 사람들은 저희가 지니지 못한 강력한 무기를 지녔으니까요.”

     

    진짜로 날붙이로 이루어진 무기는 아니다.

    살상력이 너무 높은 무기는 <소지허가>도 내려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제국 사람들이 가졌다는 무기는 날붙이가 없으면서도 그보다 더 위험하다는 점에서 변방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마나연단법과 마나연공법.”

     

    신체적으로 마나를 단련하는 마나연단법.

    정신적으로 마나를 단련하는 마나연공법.

    두 사기적인 상급기능의 힘으로 제국귀족들은 양질의 마나를 지니며 초반깡패처럼 활약한다.

    변방출신이 그 경쟁에서 버티기는 몹시 어렵다.

    대부분은 중도에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니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지.’

     

    기숙사 근처 경비초소에 숨겨진 스탯석을 주워들고 나오면서 아카디아가 잘 해주고 있을지 걱정하고 있자니, 식당 앞에 학생들이 잔뜩 모였다.

    멀리서도 들리는 고함소리에 불길한 예감이 들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졌다.

     

    “운동을 마치고 왔으면 교복으로 갈아입고 오던지, 야만스럽게 맨살이 다 드러나는 그런 천박한 차림새로 공용시설을 이용하려는 쪽이 문제 아닌가?”

    “말 심하게 하지 마! 우리도 교관님들한테 다 여쭙고 알아봤어. 교복은 입는 걸 권장할 뿐, 필수착용은 아니야. 그리고 사과해. 우린 천박하지 않아.”

    “사과~? 어깨가 숭하게 드러나는 탱크탑에 허벅지가 다 보이는 돌핀팬츠나 입고 다니는 차림새가 천박하지 않으면 뭐가 천박하다는 거죠?”

     

    운동을 마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식당을 이용하려는 A그룹 신입생들과 그 꼴이 아니꼬웠던 B그룹 신입생들 간의 말다툼!

     

    <그룹경쟁(1) 이벤트>

    허물없는 A그룹과 엄격한 B그룹.

    두 그룹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말싸움을 목격한 당신.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며 주목하는 이 자리야말로 기회입니다.

    변방의 친구들을 옹호하여 우애를 다지거나.

    제국의 귀족들을 옹호하여 호의를 사거나.

    친해지고 싶은 파벌의 손을 들어주세요!

     

    A그룹 손을 들어주면 변방 측 학생들.

    B그룹 손을 들어주면 제국 측 학생들.

    각기 다른 진영의 인물들과 호감도가 변동한다.

    한 번의 결정으로 수백 수천 명의 호감도가 변하는 기회이니만큼 그룹 이벤트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라고는 해도 보통은 B그룹의 편을 들어준다.

     

    ‘제국 측 학생들 티어가 더 높잖아.’

     

    성능과 인기가 비례하는 인기투표에 따르면 B그룹 제국을 밀어주는 플레이어가 96%.

    100명이 게임을 하면 96명은 제국을 지지한다.

    남캐였던 시절의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티어는 둘째 치고 페티쉬의 차이도 있기 때문이다.

     

    -제국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팬티스타킹을 옹호하는 겁니다.

    -돌핀팬츠 OUT! 팬티스타킹 ON!

    -저희 제국진영 플레이어 일동은 여학생들의 팬티스타킹 착용을 적극 지지합니다.

     

    피부노출에 거리낌이 없는 변방의 문화, 탱크탑이나 민소매, 나시에 돌핀팬츠나 핫팬츠를 입은 변방 여학생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4%.

    피부노출을 꺼려해서 팬티스타킹에 교복차림을 준수하거나 전신타이즈를 입은 제국 여학생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96%.

    솔직히 내가 봐도 이건 96%가 이길만했다.

    팬티스타킹과 전신타이즈 VS 돌핀팬츠나 핫팬츠.

    꼴림의 미학으로 따지면 당연히 전자가 이긴다.

    기능이 딸리면 꼴림이라도 더해야 하거늘.

    성능과 인기, 씹덕몰이 모두를 이겨버린 제국진영에 비하면 알량한 돌핀팬츠 파벌은 너무나도 힘이 없고 약해빠진 바람 불면 날아갈 한 줌 부스러기 신세.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에게 변방진영이란 제국에서 할 거 다한 다회차 플레이어들이 컨텐츠 즐기려고 지지하는 DLC컨텐츠, DLC진영 취급을 당했다.

     

    그리고 난 고인물이다.

    그것도 이미 변방컨텐츠는 전부 즐긴.

     

    ‘여학생 복장은 당연히 팬티스타킹이어야지!’

     

    가림의 미학을 아는 제국의 큰 뜻이 담긴 B그룹 제국여학생들의 엉덩이를 졸졸 쫓던 내게 한창 언성을 높이며 싸우던 여학생이 소리쳤다.

     

    “오크노디! 우리 좀 도와줘!”

    “앗.”

     

    돌핀팬츠를 입은 A그룹 여학생들이 소리쳤다.

    그 사이에는 운동을 마치고 식당에 나왔던 이사벨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아앗. 어째서 이런 큰 시련이!’

     

    돌핀팬츠 + 요리사 VS 팬티스타킹.

    인생 최대 시련과 마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변방에는 돌핀팬츠가 있는데 제국에도 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비축분 4편을 지우고 팬티스타킹을 넣었습니다.
    바이바이 내 예쁜 비축분아…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