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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

        

        

        절멸부대식 암습 대응 훈련은 여러가지 교육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가령, 살기에 반응하는 방식이라거나.

        

        또는, 사선 감지에 성공한 후 최적의 대응법이라거나.

        

        지형의 파악, 적의 수와 무장을 분석. 기타 다양한 야전 교리들이 수많은 무훈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반이 이자벨을 위해 준비한 교육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원론적인 것.

        

        

        [대응할 때까지 암습하기]

        

        

        그러므로, 이반은 지금 나무 위에 앉아 조용히 총구를 들어 올렸다.

        

        가늠좌 너머로 이자벨의 모습이 보인다. 여전히 은폐를 할 생각 따윈 없어 보이는 당당한 모습이.

        

        

       -철컥.

        

        

        조준선을 정렬하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사격점을 흘린다.

        

        

       -타앙!

        

        

        사선 감지가 이제 막 개화했을 때 문제라면, 아직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선 감지란 결국 육감에 가까운 감각. 시각과 청각에 휘둘리면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 없다.

        

        

        “꺄악!”

        “…틀렸다.”

        

        

        이반은 저 멀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이자벨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선이 명백히 빗겨갔음에도 이자벨은 회피를 시도했다. 그 탓에 균형이 어그러져 빈틈이 노출된다.

        

        

       -철컥, 타앙—!!

        

        

        그 틈을 노려 이번엔 미간에 정조준, 격발.

        

        가까스로 피하는 데 성공한 이자벨은 나무에 박힌 탄흔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실탄을! 머리에 대고 쏴요! 진짜?!”

        

        

        곧 그녀가 눈을 떴다. 새파랗게 타오르는 안광은 정확히 이반이 숨어 있는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점점 나아지는군.’

        

        

        상식적인 훈련 교관답게, 이반은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재빨리 은폐 지점을 이탈했다.

        

        

       *

        

        

        “하하, 아하하. 진짜 죽일 거야.”

        

        

        이자벨은 칼자루를 꽉 움켜쥔 채 덜덜 떨며 걸었다.

        

        미간에 실탄을…?

        

        

        “내가 미쳤지. 내가 바보야. 내가 잘못했네, 응. 내 잘못이지 뭐.”

        

        

        ‘그 사건’이 있던 숲에서 훈련을 하겠다기에 살짝 설렜던 것?

        

        갑자기 부탁했는데도 선뜻 만사 제치고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기분 좋았던 것?

        

        그래, 다 내 잘못이지 뭐.

        

        가볍게 칼 몇 번 휘두르고, 기분 좋게 웃으면서 피드백도 좀 받고….

        

        그날 있었던 얘기들 이젠 추억으로 좀 떠들고.

        

        그럴 때 같이 나눠 먹으려고 샌드위치를 좀 준비하고, 기껏 제일 좋아하는 옷까지 걸치고 나와서, 괜히 궁정에서도 잘 하지 않던 화장까지 해봤는데.

        

        응.

        

        내가 아주 바보 멍청이지.

        

        

       -철컥.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 걸음은 한 발자국 더 내딛어서 앞으로.

        

        

       -스릉.

        

        

        그대로 검을 뽑아 올리며 서슬 퍼런 칼날을 일별하고, 고요히. 그러나 단단하게 쥐어서.

        

        

       -타앙—!

       -챙!

        

        

        사선을 정확히 갈라 탄환을 튕겨냈다.

        

        

        “진짜… 진짜… 죽었어! 당신!!”

        

        

        용사의 정의로운 분노가 불타올랐다. 그녀는 날아드는 총알을 모조리 쳐내며 사선이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올곧게 질주했다.

        

        탄환을 발사하는 방향엔 사수가 있는 법이니까.

        

        총알은 맞지 않으면 그만이니, 진짜. 진짜 딱 한 번만.

        

        딱 한 대만 때리자. 그렇게 생각하며.

        

        

       *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반은 조용히 철수하며, 달려드는 이자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숲의 그림자 속에서 완벽히 은폐한 요원을 찾아내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사선 감지가 있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사선 끝엔 사수가 있는 법이므로, 사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여겨야 한다.

        

        

        “두 번째 교훈을 주마.”

        

        

        이반은 훌륭한 교관이었으므로 배려심 넘치는 가르침을 내릴 준비를 끝냈다.

        

        분노에 떨며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고 돌진하는 것은, 물론 기세는 훌륭했지만 결코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

        

        특히 ‘암습’ 상황에서 선택하기엔 최악이란 것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콰아아아앙!!

        

        

        이반은 이자벨이 부비트랩을 밟고 폭발에 휘말린 것을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

        

        

        “좋았어.”

        

        

        이자벨은 가까스로 폭발을 피하고는, 머리 위로 곧장 쏟아진 흙더미를 툭툭 털며 웃었다.

        

        

        “진짜 죽이자.”

        

        

        한 대만 때려? 그런 어설픈 생각이 이 상황을 만들고 만 것이다.

        

        저 미치광이를 상대할 땐 진심을 다 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이자벨은 날아드는 총알을 보지도 않고 튕겨냈다.

        

        

        “왜 숲이 더 어렵다고 했는지 알겠나?”

        

        

        그녀의 귓가에 아주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뿌득,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하수로나 토굴은 선형 미로의 형태를 띤다. 인공 구조물은 그 특유의 패턴이 있지. 함정을 심거나 암습을 가할 포인트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가르침이 이어진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녀에겐 큰 도움이 될 소중한 조언들이다.

        

        

        “그러나 숲은 여러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 은폐와 엄폐가 용이하고 함정을 심을 곳도 많아 사전에 눈치채기 극히 어렵다. 난상형 미로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표적의 이동 경로를 유도하는 것도 수월하지.”

        

        

        소수로 다수를 포위하는 교범은 이와 같다.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포위란 전술적 층위에서 정보를 제한하는 행위다. 실제로 포위망이 조밀하거나 공세가 치열할 필요 따윈 없다.

        

        적절한 순간에 가해지는 몇 번의 공방이면 충분하다. 정보 우위를 가진 채로 상대에게 오판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포위의 기본이다.

        

        

       -저 숲 너머에 수많은 적들이 숨어 있다.

       -저 숲 너머에 다가가면 공세에 휘말린다.

       -저 숲 너머에는 아군이 없다.

        

        

        이와 같은 오판들이 쌓여 야전사령관의 지휘력에 금이 가는 순간 소수에 의한 포위망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반은 조용히 말을 이어가다가 문득 멈췄다.

        

        이자벨이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고 있었다.

        

        

        “아저씨.”

        “음?”

        “후우…. 고마워요.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어.”

        “…음?”

        

        

        이자벨은 활기차게 웃는 얼굴로 그가 있을 자리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과 사선이 감지되었던 방향을 고려한다면, 이쪽이겠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칼자루를 들어 올렸다.

        

        

       -검을 들라.

        

       -그대의 힘이 아닌, 그대의 선을 위해 검을 들라.

        

       -약자의 눈으로 우리와 같은 이들을 바라보라.

        

        

        “예, 그리하겠습니다.”

        

        

        이자벨은 홀린 듯 칼자루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새파란 마력이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며 반짝반짝, 어두운 숲을 밝혔다.

        

        청량한 바람이 늦봄의 숲 사이로 질주했다.

        

        

        “움직이지 마요!!”

        “오.”

        

        

        이반은 눈을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력의 구조도, 순환 방식도 다르지만… 어쩐지 막시밀리앙을 떠올리게 하는 기세.

        

        그는 생각 이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육자란 학생의 성취에 따라 자질이 정해지는 법이다.)

        

        이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총구를 내렸다.

        

        이미 이자벨의 감각은 완전히 개화했다. 이 수준이면 더 이상 사선 감지를 속이는 이중 사격이 통하지 않을 경지까진 되었다.

        

        마력으로 신경을 가속시켜 육체 전체의 반응속도를 극한까지 갈고 닦아내는 경지. 이른바 ‘초인들의 전장’. 그 경계선을 밟을 정도까진 되었으니.

        

        이 시점에 도달한 이들에겐 더 이상 투사 병기가 통하지 않는다. 사선 감지가 거의 예지의 수준까지 발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스릉….

        

        

        도끼를 들어 올렸다.

        

        

       *

        

        

        “진짜… 주길… 거야아….”

        

        

        프리첸카야로 돌아가는 열차. 이반은 잠든 이자벨을 내려보며 웃었다.

        

        흙먼지와 자잘한 상처, 너덜너덜해진 옷가지로 추레해진 몰골이었음에도 그녀는 오히려 고결해 보였다. 차창 밖에서 내려 앉는 달빛 아래에서 밀밭처럼 펼쳐진 금발이 반짝였다.

        

        쌔액, 쌕. 가냘픈 숨소리를 내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든 이자벨은 제 나이대의 작은 꼬마로만 보였다.

        

        

        “막시밀리앙.”

        

        

        열차가 선로를 달리며 덜컹일 때마다, 이반은 흔들리는 이자벨의 머리를 슬며시 고정시켜주며 속삭였다.

        

        

        “훌륭한 딸을 뒀구나.”

        

        

       *

        

        

       -훌륭한 딸을 뒀구나.

        

        

        이자벨은 소매 안에 내린 손을 꼬옥 쥐고, 저도 모르게 풀리려는 입술에 애써 힘을 주면서.

        

        이 넓은 어깨에 티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뺨을 묻었다.

        

        덜컹, 덜컹. 열차가 선로를 달린다.

        

        따듯한 차량 내 공기가 부드럽게 흘렀다. 슬그머니 뜬 눈엔 어둑한 실내가 희미하게 보였다.

        

        차창 너머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훈련을 받았던 숲이 저 멀리 펼쳐져 있었다.

        

        낭만이고 상식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에, 기껏 봐줄 만한 얼굴을 다 수염으로 덮어버린 미치광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감안해줄 만하다. 아무렴,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아닌가. 딱 그 정도만. 섣부른 호감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딱 그 정도만.

        

        상식은 가르쳐주면 되고, 수염은 언젠가 다듬어주면 되니까.

        

        그래. 응.

        

        사람 하나 만든다는 느낌으로. 내가 아니면 이 불쌍한 인간을 누가 거둬 주겠어. 이건 그러니까… 용사다운 ‘봉사’ 정신. 그런 거니까.

        

        

       *

        

        

        제 5용장 휘하 3대대 12중대 7공병소대. 라고 불렸던 찬란한 과거를 지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부대가 있다.

        

        이들은 채찍을 휘둘러 노예들을 독려하고는 조용히 망원경을 들었다.

        

        

        “대체 왜 싸운 거지?”

        “의견 다툼이 아니겠습니까, 동지!”

        “동무는 의견을 다툴 때 폭약을 터트리고 탄환을 쏘아 대나?”

        “아닙니다, 동지!”

        

        

        타겟의 이유 모를 깜짝 방문과 격전 탓에 매복 거점 셋이 지반 째로 붕괴되었다. 아, 위대한 5용장 각하께서 살아 계실 적엔 이런 부실 공사가 없었는데! 소대장은 실망했다.

        

        대부분 x대장이 실망할 경우, 그들은 문제를 부대 내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그 시도는 언제나 적절한 효과를 가져온다. 전세계 모든 군대에 공평하게 녹아 있는 아름다운 문화, ‘내리사랑’은 마족에게도, 심지어 드워프에게도 있는 탓이다.

        

        

        “그림자칼의 소꿉놀이가 일주일 남았다. 동무들. 무너진 거점을 재건하고 준비에 만전을 기해라!”

        “예, 동지!!”

        

        

        잿빛 수염을 지닌 드워프 하나가 척, 하고 군례를 올리고선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드워프는 토목 공사의 달인이다. 토목 공사엔 지하 터널 굴착이 포함된다. 그리고 삼단 논법에 의거하면 다음 명제는 참이다.

        

        땅이 있는 모든 곳엔 드워프가 숨어들 수 있다.

        

        이것이, 이반이 이들을 쥐새끼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엔리케의 시험이 일주일 남은 시점의 프리첸카야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제야 제 소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군요…!

    그동안 너무 과한 관심과 너무 과한 기대에 부담스러웠는데,

    좀 어깨에 짐을 내려 놓은 기분입니다! 하하, 원래부터 장려상이 목표였거든요!!

    참고로 저는 요즘 [나만 유령이 안보임]이란 소설을 읽습니다. 진짜 개재밌어요. 심지어 오늘까진 무료임ㄷㄷㄷ…이래도 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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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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