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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침묵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조금씩 움직였다.

       침묵 속에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여고생.

       

       검고 긴 흑발, 거기에 대비되는 하얀 피부.

       처음에는 으레, 외모만 믿고 오디션을 보러 온 아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지? 경험자 같은데?’

       ‘지금 뭐하는 거지? 연기인가?’

       

       얼굴에 깔린 고요한 베이스 표정.

       거기에 선연히 드러나는 감정이 느껴졌다.

       

       흔히, 발연기라는 것을 부를 때 표정 변화가 없는 로봇 같은 연기를 말한다.

       하지만 무표정 속에서 미세한 변화로 로봇은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포장된다.

       한 끗 차이가 보여주는 변화.

       

       당연히, 이건 베테랑 배우들이 보일 법한 모습이었기에, 여고생이 보여주기엔 무척이나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분명 경험자야, 저 애.’

       

       아직 고등학생이라면, 어디선가 활동했던 아역 출신인지도 모른다.

       작은 드라마와 같은 곳에 출연했다면 모를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모인 배우들은 여고생을 경계하면서도, 내심 안도한 부분이 있었다.

       저 연기는 연극의 연기와는 다른 것이었으니까.

       

       덜컹.

       

       그때, 닫혀있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움직였다.

       차분히 연기를 준비하던 서연의 시선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움직였다.

       

       배우들이 모인 대기실의 입구.

       그곳에 한 여성이 가쁜 숨을 내쉬며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 축 처진 눈매.

       신장은 그리 크지 않으며 마른 몸매를 지닌 여성이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이 조금 넘었을까.

       가장 눈에 띄는 건 퀭한 안색이었다.

       

       배우라기엔, 묘하게 인상적인 외모다.

       

       ‘누구지?’

       ‘지원, 자인가?’

       

       복장도 교복인 서연처럼 특이했다.

       패션테러리스트가 저러할까.

       

       아무렇게나 주워입은 청바지에, 체크무니 난방.

       마치 공대 남성들이 입을 법한 패션이었다.

       

       오늘 배역에 어울리냐, 어울리지 않느냐를 떠나.

       묘한 불쾌감이 올라오는 복장.

       

       ‘저 사람이구나.’

       

       서연은 비척비척 들어오는 여성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타인의 시선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적당히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손에는 대본도 없다.

       그냥 맨몸.

       누가 본다면 자리를 잘못 찾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저기, 여기 오디션 장이에요.”

       

       한 배우가 혹시나 싶어 그녀에게 말을 걸자, 그녀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희번뜩, 그런 말이 어울리는 눈동자의 움직임이었다.

       말을 한 배우가 순간 움찔했을 정도.

       

       평범함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알아요.”

       

       딱딱한 말이었다.

       거기에 추가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더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러네. 맞아.’

       

       뉴스에서 본 것과 같다.

       서연이 본 이번 연극의 ‘배역’은 저 여성의 것이다.

       

       그리고, 그 연극을 통해 영화에 캐스팅되어.

       여러 가지 의미로 큰 화제를 모았던 인물.

       

       ‘표지우.’

       

       어쩌면 스타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를 여자.

       최악의 재능을 지닌 사생팬.

       

       그녀가, 이번에 꺾어야 하는 적이었다.

       

       ***

       

       “어때요? 좀 관심가는 사람있어요?”

       

       극의 연출을 맡은 조도율이 다른 심사위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심사위원에는 연출 조도율을 비롯해, 조연출, 무대감독 제작진들과, 이번 극에 참여하는 배우 둘이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이민희 극작가님 각본이라 그런지, 인기가 많네요.”

       “그렇죠. 이미 검증된 각본이잖아요?”

       

       ‘눈을 감고’는 이미 대학로에서 한번 크게 3년 전 히트한 연극이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진과 배우를 꾸려 진행할 정도로, 그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었다.

       

       “이번에 뽑는 ‘홍정희’ 역은 중요하죠.”

       “그럼요.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인물인데.”

       

       극은 기본적으로 남주인공인 아이돌 배성학. 그리고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여성, 송민서와의 이야기를 그린다. 기본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다루는 내용이기에 위기라고 부를 만한 일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자잘한 사태는 일어나긴 하지만,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인물은 바로 이 홍정희다.

       

       “홍정희 역을 잘못 뽑으면 완전 무대가 망가지니까요.”

       “그쵸. 하지만 이게 또 악역 연기라는 게 쉽지 않아서…….”

       “그 음습함이 잘 드러나야 되는데. 이게 또 어색하면 너무 어색해지거든요? 하지만 잘하면 그만큼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배역이죠.”

       

       그래서 배우들에겐 인기가 많은 배역이다.

       분량은 많지 않으나, 극 중 대단한 존재감을 지닌 배역이니까.

       

       그래서 그 지원자는 무려 500명.

       그중 10분의 1만을 추리고 추려 이번 2차 심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눈에 띄는 인물이라면, 배영현 배우?”

       “아, 괜찮은 배우죠. 연기력도 검증됐고. 부지런한 분이네요. 무대에 내려온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아는데.”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배우들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 이질적인 배우를 말한 이가 있었다.

       

       “주서연. ……프로필 보셨죠?”

       “아.”

       

       누군가의 말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봤다.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난 격이었으니까.

       

       “10년 전, 큰 히트를 쳤던 드라마의 아역.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전 직접 시청한 드라마거든요. 그때 와, 진짜 애가 연기 진짜 잘한다 싶어서 박수를 쳤었죠.”

       “……그런가요? 저는 태숨달은 안 봐서.”

       “아이고, 그때 태숨달 안 보고 뭐봤어요?”

       “액션왕…….”

       “이야, 진귀한 분이네. 귀한 액션왕 시청자를 여기서 볼 줄이야.”

       “너무하네요, 진짜.”

       

       주서연의 프로필을 확인한 이들이 저마다 그런 말을 내뱉었다.

       태숨달의 ‘연화공주’ 당시 아역으로서 보일 수 있는 연기의 정점.

       거기에 그 해 청소년연기자상의 수상자이기도 했다.

       

       아역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의 커리어를 단 1년만에 달성.

       이후 돌연 10년을 잠적해버린 인물이 바로, 주서연이다.

       

       “왜 연극을?”

       “보통 연극으로 복귀하는 배우 많잖아요. 다시 영화판이나, 드라마판으로 돌아가기엔 재활로 삼는 분들도 있고…….”

       

       그런 말을 내뱉지만, 다들 표정이 애매했다.

       주서연.

       그 화제성만 보자면 그야말로 대어다.

       

       “극에 어울리냐면 글쎄요.”

       “외모도 외모고, 흠. 결국 경력은 드라마 1회 촬영이 전부. 연극 경력은 전무할 텐데.”

       “극과 드라마의 연기가 다르다는 걸 몰랐을까요?”

       “나이도 좀 어리고 말이죠. 고등학생 정도면, 분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긴 합니다만.”

       

       이건 서연이 여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십 대 중후반 시점에 대부분 성장이 끝나니까.

       그렇기에 성인 여배우와 큰 차이가 없다.

       

       “참 계륵이네요.”

       “놓치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잡기엔 뭔가 안 맞을 것 같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10년 만에 갑자기 복귀한 아역출신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할까 싶기는 했다. 10년 전, 연화공주의 연기는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그건 아역의 연기.

       

       이제는 성인 배우들과 비교할 때다.

       경험도 부족하고, 10년 만의 첫 연기가 과연 과거 ‘연화공주’ 수준이나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분명 자유연기 영상에서 보여준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러니 1차 시험도,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무대의 연기와, 영상으로 보는 연기는 다를 수 있는 법이다.

       

       “저는 사실 주서연 배우보다 눈에 띄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아, 저 누군지 알 것 같은데.”

       

       저마다 시선을 마주친 이들이, 누구라고 할 것없이 그 이름을 내뱉었다.

       

       “표지우 배우, 맞죠?”

       

       1차 심사에서 확인한 자유연기 영상.

       그곳에서 보여준 연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날 것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홍정희’ 역에 걸맞은 연기.

       

       “저는 내심 이 배우가, 이번 홍정희 역을 맡았으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민서호 배우님.”

       “예?”

       “아무래도 이번 ‘눈을 감고’에서 가장 송민서 역과는 다른 의미로 진하게 얽힐 역이지 않습니까?”

       “아아, 그렇죠.”

       

       민서호는 그렇게 말하며, 핸드폰을 보았다.

       물론 다른 짓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 이름을 들은 김에, 재차 1차 오디션에 제출된 표지우의 자유연기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상하다.’

       

       그것을 본 민서호는 눈을 찡그렸다.

       

       ‘어디선가 본 느낌인데.’

       

       혹시 클럽에서 만난 사람인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조금 안 맞을 것 같은 분이네요. 우선 봐야 알겠지만요.”

       “그래요? 흠, 하긴 우선 직접 보는 게 맞겠죠.”

       

       그렇게 말한 조도율은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오디션 시간이었다.

       

       극의 흥행을 책임질 악역, ‘홍정희’ 역의 오디션을.

       

       ***

       

       저녁 일곱 시.

       늦은 저녁에 본격적으로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서연은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긴장된 공기는, 아역 때와는 비교조차 안 됐다.

       아역이었을 때는 부모들 간의 기 싸움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이들은 전부 진심.

       전업으로 이 일을 하고자, 업계에서 살아남고자 온 이들이다.

       당연히 기백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전에 보았던 오디션들과는 역시 느낌이 달라.’

       

       서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분히 눈을 감았다.

       오디션은 한 번에 다섯 명씩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 연기를 펼쳤다.

       

       즉,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연기를 펼친다.

       만약 태숨달의 오디션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황했을 일이다.

       

       그렇다해도 10년 전 일이긴 했지만.

       

       ‘차분하네.’

       ‘역시 익숙한 느낌이야.’

       

       배우들은 그런 서연을 힐끔거리며 보았다.

       오디션을 자주 본 배우들에겐 익숙한 상황이다.

       

       하지만, 서연은 아직 고등학생이 아닌가?

       저렇게 떨지 않는다는 건 경험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혹은 천성적으로 심장이 강하다는 증거이거나.

       

       어느 쪽이나, 배우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대체 누굴까?’

       

       모두가 그렇게 서연에 대한 궁금증을 품던 가운데.

       

       “다음, 하시은 배우님. 황영희 배우님, 그리고…….”

       

       이어 다음으로 오디션을 볼 배우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주서연 배우님.”

       

       천천히, 그 이름에 서연의 눈에 띄었다.

       주서연.

       그 이름이 들린 순간, 몇몇 배우들이 반응했다.

       

       “주서연? 내가 아는 그 아역 배우는 아니지?”

       “에이, 설마.”

       “근데 외모나 나이만 보면…….”

       

       태숨달은 한 해를 풍미했던 드라마다.

       특히 아역으로선 다시 없을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찍은 배우가 주서연이다.

       

       배우들은 태숨달이 방영당시에는 대부분 어린 나이였으나,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날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였다.

       

       “그리고, 표지우 배우님.”

       

       서연 다음으로 오디션장에 들어온 표지우도 함께 호명되었다.

       그녀는 정말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들린 서연의 이름 때문인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적었다.

       

       “반갑습니다. 심사위원을 맡은 이번 ‘눈을 감고’의 연출, 조도율이라고 합니다.”

       

       오디션장으로 들어가자 여덟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있었다.

       서연은 그중, 남주인공 ‘배성학’ 역의 배우 민서호를 보았다.

       

       ‘저 사람이네.’

       

       여러모로 문제가 된 인물.

       아마 곧 배성학의 심정을 누구보다 알게 될 남자.

       

       ‘그리고.’

       

       서연은 시선을 옆으로 움직였다.

       자신과 함께 오디션장에 들어온 여성.

       표지우를.

       

       “자, 그럼 누구부터 해볼까…….”

       

       심사위원들은 시선이 움직였다.

       그 시선은 크게 두 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서연, 그리고 표지우.

       

       “주서연 배우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가장 첫 순서.

       무엇이든 가장 처음이 부담되는 법이다.

       그것은 비단, 오디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년 전 천재 아역.’

       

       그 빛나는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과연, 그 연기실력을 과거와 같이 보여줄수 있을까.

       

       심사위원들은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아침에 일이 있어서 한 시간 늦었습니다…!!!

    혹시 늦는다 싶으면 공지의 ‘늦잠 알림벨’을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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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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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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