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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싼다.

       

       “와아아아!”

       “임혜성! 임혜성! 임혜성!”

       “보여줘! D등급의 끝이 어딘지!”

       

       동시에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함성과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두터운 인기가 실감됐다. 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대 가득한 눈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 드디어,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

       

       [ 사실 웃긴 일이죠. D등급으로 치부받던 사람이 본선에서 랭커와 맞붙는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등급 평가 체계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

       

       [ 어찌 되었건, 확실한 사실은 존재합니다. <현상거절> 임혜성. 그가 저희의 기대대로 쉽게 패배하지 않을 거란 사실 말이죠. ]

       

       두 해설의 열띤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스타디움의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사각 결투장의 끝에 한 남자가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간왜곡>김인만. 원작에서의 별명은 ‘아싸’.

       

       경기 시작 전에 방송됐던 인터뷰가 거짓말처럼 녀석은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기권을 선언하지 않았군!”

       

       껄끄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김인만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설마하니 내가 기권할 줄 알았던 건지, 잔뜩 황당한 말과 함께 녀석이 팔다리를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하던데?”

       

       어깨를 으쓱인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애당초 승천전에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부딪히기로 마음먹은 나다. 고작 32강에서 ‘랭커’가 두려워 기권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용기는 인정해주마. D등급인데도 가진 능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도.”

       “…….”

       “허나 네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나는 ‘랭커’다. 이미 결투 중계를 보아서 알 수도 있겠는데, 나는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사람이다.”

       

       우두둑! 우둑!

       

       그리 뇌까린 김인만은 팔다리에 이어서 목까지 풀고 있었다.

       

       아니, 저놈은 육체계 능력자도 아닌데 왜 이리 폼을 잡고 있는 거야?

       

       [ 스읍-! ]

       

       스타디움 내부에 걸린 커다란 전광판에 카운트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두 진행자가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가 고스란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5.

       4.

       3.

       

       2.

       

       ……1.

       

       0.

       

       [ 승천전의 32강, <현상거절>과 <공간왜곡>, <공간왜곡>과 <현상거절>의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

       

       카운트가 0이 되자마자.

       

       해설자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현상거절.”

       

       능력을 개방한다.

       

       <현상거절>과 <공간왜곡>. 두 능력 중에서 어느 것이 서로의 법칙을 뭉개고 힘을 발휘할지 알 수 없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속전속결.

       

       64강의 양하나가 그리했던 것처럼, 나도 이번엔 제대로 전략을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야 상대가 평범한 A급, S급 능력자도 아닌 Z급의 랭커니까.

       

       그런데.

       

       팟!

       

       [ 아, 아아! <공간왜곡>이 결투장에서 사라졌습니다! ]

       

       놈또한 전격 같은 속도전을 의식한 모양이다. 짧디 짧은 시동어를 내뱉는 순간, 내 맞은편에 있던 김인만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

       

       예상과 다른 전술의 출현에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김인만, 녀석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전투 스타일은 제법 우직한 정공법을 고수한다. 그렇기에 곧장 정면을 치고 들어올 줄 알고 있었는데…….

       

       [ 승천전의 룰에 따르면 10분간 결투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현상거절>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

       

       랭커라는 자부심을 울부짖던 때는 언제고 이리 쉽게 사라지다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10초, 30초, 1분.

       

       그리고 전광판의 경기 진행 시간이 2분을 가리킬 때.

       

       우우웅-!

       

       [ 뭐…… 뭐죠?! ]

       

       별안간 하늘에서 그림자가 드리운다.

       

       스타디움의 절반에 해당하는 공간이 미지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이 위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것이 나타난 것이다.

       

       “젠장!”

       

       그리고 그건 <공간왜곡>이 능력을 사용한 증명이었다. 당장 내 눈엔 ‘육지’에 있어선 안될 것이 보였으니까!

       

       [ 하, 하, 항공모함입니다! 맙소사! <공간왜곡>이 항공모함을 소환했습니다! ]

       

       우우웅!

       

       대기를 가르며 거대한 항공모함이 지상으로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미친놈. 도대체 저 물건을 어디서 구해온 건데?

       

       팟!

       

       “그거 아나?”

       

       일순간 아무도 존재하지 않던 내 옆에서 <공간왜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저 서쪽의 큰나라는 괴수의 출몰로 멸망했지. 재미있는 사실은, 멸망한 큰 나라의 군항엔 아직도 수도 없이 많은 군함들이 정박해 있다는 거야.”

       “……!”

       “이건 네게 주는 특별 선물이다. 옆나라 군항에도 하나밖에 없거든.”

       

       그러고보니, 그런 설정이 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서쪽에 자리한 큰 나라. 그들이 언젠가부터 출몰하기 시작한 괴수의 침공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설정이.

       

       ‘그런 군함들이 녀석의 공격 수단 중 하나였어.’

       

       일전에 있었던 김인만의 64강 클립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녀석은 거대한 선박을 하늘에서 떨어트렸다. 그 공격을 고스란히 맞이한 상대는 방어계 능력자의 도움 덕분에 겨우 목숨만 부지했고.

       

       [ 현상거절, 스타디움 내에서 텔레포트 능력의 사용을 거절한다. ]

       

       팟!

       

       이 새끼가?

       

       진언을 읊는 와중, <공간왜곡>이 내 옆에서 사라졌다.

       

       놈도 아는 것이다. 내 힘이 제대로 된 힘을 내기 위해선 진언, 그러니까 말을 해야 한다는 걸.

       

       “관중석에 실드 전개!”

       “방어력 최대로!”

       

       대기 중이던 방어계 능력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하기야, 축구장 크기만한 항공모함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다면 누구나 비슷한 반응을 보이겠지.

       

       하지만.

       

       “현상거절.”

       

       능력을 사용하는 주체인 김인만의 탈출을 막아서지 못했을 뿐, 내 능력이 봉인된 것이 아니다.

       

       능력을 다시 개방한 나는 진언을 읊었다.

       

       [ 스타디움 내에 추락하는 물체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

       

       그리고.

       

       “현상거절.”

       

       [ 물체가 대기 중에서 추락하는 것을 거절한다. 대상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

       

       쉬이이익!

       

       “어, 어어어!”

       “사라진다! 사라져!”

       

       내 특기인 <현상거절>이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논리의 오류는 알아서 제어하는 힘을 가진 초능력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을 잉태하는 기적의 산물이다.

       

       그 기적이 드리운 항공모함의 모습이 점차 흐려지는가 싶더니, 결국엔.

       

       [ 사, 사라졌다! 방금까지 <현상거절>을 위기로 몰아넣던 거대한 선박이 모습을 감췄다! ]

       

       [ 미쳤군요. 미쳤습니다! 정녕 이게 D등급의 능력자가 보일 수 있는 능력인가! ]

       

       [ 히어로 협회와 아카데미! 당신들 뭐하는 새끼들이야! ]

       

       흥분한 해설자 둘이 반말과 욕설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씨익.

       

       그리고, 어마어마한 함성과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선 나는 만족스레 웃었다.

       

       ‘고맙다. <공간왜곡>.’

       

       내가 바라던 연출을 스스로 보여주니, 얼마나 고마운 녀석인가.

       

       팟!

       

       “뭐, 뭐야?”

       

       다시 모습을 드러낸 김인만이 멍한 얼굴로 소리쳤다.

       

       겁도 없는 놈이다. 

       

       내가 대뜸 칼 들고 협박할 수도 있는데, 능력을 믿은 건지 또다시 내 옆에 스윽 나타난 것이다.

       

       “인만아.”

       “뭐, 뭐냐고! 도대체 어떻게 ‘그걸’ 사라지게 만든 거냐!”

       “너 좆됐어.”

       

       퍼어억!

       

       녀석에게 다가간 나는 시원스레 놈의 면상에다 주먹을 꽂았다.

       

       “쿠어억!”

       

       설마하니 ‘현실조작계열’ 능력자인 내가 주먹을 쓸 줄은 몰랐던 걸까?

       

       쿠당탕!

       

       한심한 비명과 함께 김인만의 몸이 결투장 바닥을 나뒹굴었다.

       

       [ 아, 아아! <공간왜곡>이 결국 기습을 허용했습니다! ]

       

       [ 소위 말하는 죽빵이죠. 조금만 더 세게 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

       

       경기장 전체에 위협을 가했다는 사실 덕분인지, 날 선 진행자의 편파해설도 함께였다.

       

       “제, 젠장!”

       

       팟!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난 김인만이 다시금 모습을 감췄다.

       

       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멍청한 놈.

       

       나였으면…… 결투 상대방인 나를 미지의 세계로 전송했을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신속>에 이은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다. 말만 랭커지, 하는 꼴은 D등급 능력자와 별 다를 게 없었으니까.

       

       그래도…… 보험은 들어야겠지?

       

       [ 현상거절. 내 신체 내부로 향하는 모든 물체의 텔레포트를 거절한다. ]

       

        텔레포터 능력자의 가장 악랄한 수법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전이’시키는 그들은 타인의 신체 내부로 ‘물체’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쉽게 말하자면…… 평범한 사람의 심장깨에 ‘단검’을 전이시켰다고 가정해보자.

       

       그 다음은? 죽음이다. 저항할 수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허무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뭐, 설마하니 그 <공간왜곡>김인만이 승천전 도중에 거기까지 하진 않겠지만.

       

       챙그랑!

       

       “……?”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가 내 발 앞에 힘 없이 떨어졌다.

       

       단검이다.

       

       내 가슴팍을 노리고 있던 건지. 어디선가 나타난 과도 한 자루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 어? 어어? ]

       

       [ 여러분. 보셨습니까! <공간왜곡>이 텔레포터의 장기, ‘암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보기좋게 실패했지만요! ]

       

       <공간왜곡> 이 새끼. 너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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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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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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