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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이 세상에도 곰이 있다.

        

       그런데 그 곰은 보통 지구에서 살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곰이 아니다.

        

       아, 물론, 지구의 곰도 물론 위험하다. 곰은 사람을 찢으니까. 발톱에 배빵을 맞았다가는 곧장 바닥으로 내장이 쏟아지겠지. 곰은 그걸 맛있게 먹을 것이고.

        

       비슷한 이유로 코끼리, 코뿔소 등의 대형 육상동물들이 있었고, 사자나 호랑이 같은 것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불린다. ‘곰’,‘사자’,‘코끼리’…… 게임에서의 몬스터도감에도 똑같은 이름으로 쓰여 있었지만…….

        

       글쎄, 내가 알고 있는 짐승들과 이 게임의 짐승들을 과연 같은 것으로 취급해도 좋을지 의문이다.

        

       일단 털의 색이 다르다. 지구에서도 그 털 색이 갈색이라던가, 검은색이나 흰색인 곰들이 살았지만, 이쪽 세계의 곰의 털 색은 더 다채롭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이나 갈색.

        

       그리고 발톱의 형태도. 일반적인 짐승의 발톱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딱딱한 케라틴 조직인 일반적인 발톱과는 다르게, 이 곰들의 발톱은 얼음 굳은 것처럼 생기거나, 언제나 타오르는 불이 붙어있거나, 휘두르는 것으로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불거나 땅에 박아 지진을 일으키거나…… 아무튼 일반적인 곰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솔직히 그냥 짐승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는 형태의 공격을 했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코뿔소라고 불리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에서 지구인이 알 법한 일반적인 동물은 말 정도뿐이다. 사실 그 말조차도 인간이 이용하기 편하게 교배하여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정이 붙어있어서, 야생마는 갈기가 아예 불이거나……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놀랍게도 인류는 그런 정신 나간 짐승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아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하긴 초대 황제는 맨손으로 그리폰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기에, 민간용 총기라고 절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산탄총도, 소총도, 모두 그 괴물들을 잡기 위한 총기였다. 심지어 그 괴물들을 잡아 나온 부속물을 팔아 돈을 버는 이들도 있었고.

        

       커다란 구경의 산탄총에 아예 슬러그 탄을 넣어 곰의 골통을 부숴버린다던가, 일반적인 군용소총보다 훨씬 대구경인 소총을 쓴다던가…… 마법사도 순수하게 생존을 위한 실전 마법 위주로 익혔을 테고.

        

       “……교관님!”

        

       그리고, 아무리 귀족으로 살았다고 해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는 없다. 귀족이라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니고, 벽에 장식용 박제가 안 걸려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그래도 엽총으로 저흴 겨누다뇨! 이건 모독입니다! 어떻게 짐승이나 잡는 총으로……!”

        

       놀랍게도 제작진은 이런 인식을 현실에서 따왔다는 모양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산탄총을 쓰는 미군을 보고 유럽인들이 경악했다던가. 반대로 미군은 기관단총을 쓰는 독일군을 보고 ‘마피아들이나 쓰는 총을 쓴다’고 기분 나빠했다나 뭐라나.

        

       뭐, 그래도 기분 나빠하건 말건 아무 의미 없다. 좁은 참호에서 적을 만났을 때 산탄총이나 기관단총은 매우 유용했으니까. 조준할 틈도 없을 정도로 급박한 순간에 대충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기거나, 아니면 양손으로 꽉 잡고 드르륵 갈겨버려도 상대를 침묵시킬 수 있는 총기를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평민과 귀족을 싸움 붙이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다.

        

       제니퍼는 귀족이고 평민이고 할 거 없이 상대를 쏴 죽이는 군벌들과 싸우다 왔으니까.

        

       “사람은 짐승이 아닌 것 같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평민 무리를 보고 한 귀족 학생이 손을 들며 항의하자, 제니퍼가 그 학생을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인간이건 짐승이건, 총을 맞으면 피를 흘리고 죽는다. 인간이라고 해서 산탄의 팰릿 한 발 한 발이 전부 비껴가는 게 아니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장에는 명예도, 영광도 없다. 그저 물 고인 참호 속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진흙투성이 짐승이 한 마리 있을 뿐이지.”

        

       그렇게 말한 제니퍼는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아니면, 우리 황녀님께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실비아.”

        

       아니, 왜, 난 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음, 다시 생각해보니까 나 혼자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모양이다. 귀족 반 학생들, 심지어 레오나 샤를로트, 앨리스마저 얼굴에 다소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나 혼자만 차분했으니까.

        

       따지자면 클레어도 차분한 편이긴 했지만, 얘야 뭐 인간의 밑바닥이 어떤지 대충은 기억하고 있을 테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적이 산탄총을 쓰는 것에 반발할 건가? ‘명예로운 무기’를 사용해달라고 요청이라도 할 텐가?”

        

       조금 전에 전장에는 영광이 없다고 대답한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것은,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일 거다.

        

       애초에 나는 결투도 아니고 암살로 백작을 날려버린 경력이 있었다. 마차에 폭탄을 설치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도 ‘귀족적인’ 짓은 아니다. 귀족이라면 당당하게 결투를 선언해서 상대를 무력화하거나 죽이는 것이 정정당당한 것이니까.

        

       제니퍼가 거기까지 알고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 이상한 신뢰를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제니퍼는, 아무래도 나를 ‘군인’으로 보는 모양이다.

        

       ……내가 전장으로 나갈 예정이었다는 걸 들었을까?

        

       “산탄총이나 기관단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말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권총, 소총은 전장에서 필수적인 무기로 이미 이미지가 박혔다. 그러니 그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에 태클을 걸 사람은 없다. 뒤로는 유파도 없는 평민이나 다름없다고 씹을지 몰라도, 면전에 대놓고 당당하게 ‘당신은 비겁하다’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이지.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기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니까. 싸우기 전에 무기를 고를 기회를 주도록 하마. 소총이건 권총이건, 사냥용 총이건 마음껏 고르도록.”

        

       “감사합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니퍼는 입가에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게임에 나오는 사람답게 예쁜 사람이긴 한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는 걸 보면 별로 제정신처럼은 안 보인단 말이지.

        

       하긴, 그런 전장을 보고 왔으니 그럴만도 하려나.

        

       *

        

       대련 자체는 반 대항전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귀족 반 하나가 통째로 같은 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열 다섯 명이니 하나의 분대처럼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귀족 학생 중에서는 ‘전장에서 산탄총을 쥐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이도 있었으니까.

        

       학년이 올라가면 또 인식이 바뀔 수도 있긴 하다만, 적어도 이제 막 아카데미에 들어온 애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건 ‘비겁한’ 행동인 모양이다.

        

       “…….”

        

       그리고, 내 주변에 모인 사람들도 별로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쓰고 싶지 않으시다면 굳이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를 별다른 편견 없이 대하는 앨리스라던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샤를로트조차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평소에 쓰지 않는 무기를 쓰게 된다면 오히려 실수하게 될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쓰기 쉬운 무기라고 하더라도 처음 쥐어서는 손에 익지 못하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산탄총에 산탄을 장전했다.

        

       M1889. 제니퍼가 가져다준 이 산탄총은 북부의 윈터필드 가의 사병들이 제식으로 채용한 무기라는 모양이다. 위쪽에 구멍 뚫린 방열판이 있고, 총검 장착을 위한 홈이 보이거나 바깥으로 나온 해머가 없는 등, 현실에서 ‘트렌치 건’으로 통용되는 1차 세계대전 미군이 쓰던 산탄총처럼 생겼다.

        

       아니지, 이 게임의 제작사를 생각하면 아마 그 총의 이름만 바꿔다가 넣어두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들어가는 산탄은 관형 탄창에 다섯 발, 그리고 약실에 한 발. 이렇게 총 여섯 발이다.

        

       내가 주력으로 쓰는 무기는 소총과 리볼버지만, 그렇다고 산탄총의 사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쪽도 꽤 연습했었다. 다만 사격보다는 재장전 연습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솔직히, 현대 병기 중에서는 재장전 방법이 가장 멋진 총 중 하나니까.

        

       “……일단,”

        

       산탄총 장전을 끝내고 담뱃갑처럼 생긴 에르겐센 소총용 스피드로더를 챙기는데, 앨리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용법부터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앨리스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앨리스에게로 쏠렸다.

        

       “쏘는 법만 알면 일단 사용은 가능하다는 거잖아? 확실히, 가까운 곳에서 나타나는 적을 처리하기에는 이런 총 만한 것이 없겠지.”

        

       “…….”

        

       나는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옆쪽에 있는 중절식 더블배럴 산탄총을 집었다.

        

       양쪽 총열에 산탄을 채워 넣고, 그대로 앨리스에게 넘겼다.

        

       “두 발 장전되어 있습니다. 총구 끝을 상대에게 향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시면 됩니다.”

        

       방아쇠가 두 개 달려있긴 하지만, 어차피 2연발로 쏘기 쉽도록 배치되어있다. 그냥 방아쇠만 당기는 것으로 두 발을 연속으로 쏴버릴 수 있으니, 즉각 사격을 하기에는 좋을 것이다.

        

       “두 발 쏘신 뒤에는 곧장 바닥에 총기를 버리고 검을 뽑으셔도 될 겁니다.”

        

       산탄을 두 발 다 쏠 정도라면 이미 적 근처까지 갔다는 의미일 테니까.

        

       게다가 앨리스도 검기를 다룰 줄 안다. 검기가 닿는 거리까지 접근했다면 어떻게든 붙어볼 만 하다.

        

       ……정 안된다면 시간을 다시 돌려서 처음부터 시도하며 차근차근 전술을 바꾸면 되는 일이고.

        

       “다른 분 중에서는, 필요하신 분 계십니까?”

        

       “…….”

        

       나의 물음에 주변이 잠깐 침묵에 잠겼다가,

        

       “아, 모르겠다.”

        

       레오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 아버지께는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굳이 그런 말을 하겠어?”

        

       레오의 말에 클레어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레오는 그런 클레어에게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말 한 적 많은 것 같은데?

        

       “황녀님—”

        

       “이름으로 부르십시오. 교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호칭으로 부르면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팀에 황녀가 두 명이니까. 심지어 가문 명이 겹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실비아. 나도 사용법을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지구에서는 귀족들이 오리 사냥도 하고 그런다던데, 이 세계는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들 도장에서 검이나 휘두르고 있으려나?

        

       나는 앨리스에게 건넸던 것과 같은 총을 건넸다.

        

       “설명은 아까 들으셨으니 굳이 한 번 더 들려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싸우는 중에 장전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검을 뽑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검을 뽑아 쓰시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총기 사용법을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니까요.”

        

       내 말에 레오가 다소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들……이라고는 하지만, 이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애들이다. 사격 실력이 절대 못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실전 사격을 해볼 일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던 나보다도 나을지 모른다.

        

       그러면 안 맞을 때까지 리셋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나도!”

        

       클레어가 여전히 경쾌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서, 나는 말없이 클레어한테도 산탄총을 넘겼다.

        

       기관단총도 있긴 하지만, 이쪽은 아예 주력으로 쓰지 않는 이상 불편할 테니까. 크기도 짧게 자른 더블배럴 산탄총보다 더 크고.

        

       만약 산탄총이 맞지 않으면 기관단총을 들려주도록 하자.

        

       “…….”

        

       그리고, 손에 총기 하나씩을 든 우리는 모두 샤를로트를 바라보았다.

        

       “…….”

        

       묘한 곳에서 자존심이 강한 샤를로트는 우리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가,

        

       “아, 정말!”

        

       우리가 시선을 치우지 않고 바라보고 있자 그렇게 투덜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귀엽기도 하지.

        

       실제로도 저런 갭 때문에 인기 있던 캐릭터였으니까.

        

       나도 조금 본받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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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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