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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오!

       

       역시 사람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야 하는 법이다.

       어떤 인연이 보배가 되어줄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리고 별똥별이 내릴 때, 소원을 비는 건 역시 어느 세계에서나 정론인 법이다.

       

       ‘식도락 여행 계획이 부디 순풍을 타길 비나이다.’

       

       라는 소원을 빈지 하루도 되지 않아 그토록 찾아 해맸던 몬스터 요리 전국 지도가 수록된 책이 내 손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무려.

       무기한 대여다.

       사실상 ‘이 책은 이제 제겁니다.’ 라고 떠들어도 무방한 노릇.

       영상매체가 없는 중세시대엔 책보다 좋은 지식의 보고는 없는 법이다.

       우연히 재회한 롤빵머리 영애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

       

       하여 물었다.

       

       “넌 뭐 받고 싶은 거 없어? 너무 받기만 하는 거 같아서.”

       

       쇠퇴한 백작가라 할지라도 무일푼 상거지는 아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렌들러에게 얘기해 기필코 공수해 주리라.

       그리 다짐하며 물었는데, 의외의 답이 들려왔다.

       

       히죽.

       

       “나? 난 그냥 주는 게 기뻐서 그런 것뿐이야.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책을 추천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쁜걸.”

       

       순박히 눈웃음을 지은 아리엘이 그리 답한 것이다.

       마더 테레사의 재림인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강림인가.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아리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은혜를 꼭 갚아주리라, 그리 생각하며 [몬스터 요리 전국 탐방기]를 펼친 채, 식사를 이어갔다.

       

       이 훌륭한 책의 저자가 누구신진 모르겠으나, 완벽한 지식의 보고였다.

       주요 요리 명소가 기록된 전국 지도부터, 세분화된 지역별 추천 요리에 이어 취향별 우선 순위와 더불어 추천 여행 경로까지.

       또한 맛집 지도에 빠질 수 없는 후기와 별점까지.

       게다가 자그마치 ‘숨은 맛집’까지…!

       식도락 여행객을 위한 성경과 같은 책이었고, 아리엘 말대로 이거 하나면 모든 준비가 끝일 정도로 완벽한 가이드였다.

       

       “오…, 랑그렌 공작령의 호리스 마을에 레드 드래곤 요리가 유명하다고?”

       

       판타지물의 마스터피스에 버금가는 드래곤을 식재료로 한 요리라….

       게다가 질길 거란 예상과 달리, 야들야들하면서도 부드러운 등심살이 일품이라고?

       쫀득하면서도 촉촉한 육질의 꼬리 끝살 꼬치구이가 특미라고?

       깨끗하게 손질한 내장과 잘게 부순 뼈를 이틀간 구수하게 끓여낸 사골내장탕이 별미라고?

       

       이건 못 참지.

       그레이트 홀에서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군침이 도는 몬스터 요리다.

       위치도 윈터펠 북부령에서 서쪽으로 10km 거리다.

       탈주에 성공한다면, 첫 행선지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리 혼잣말을 했는데, 아리엘이 말을 걸어왔다.

       

       “랑그렌 공작령으로 가려고? 거기도 큰 도서관이 있다고 하던데.”

       

       오.

       

       “그럼 같이 갈까?”

       

       물론 농담 삼아 물은 것이었다.

       쇠퇴한 백작가의 공자이자, 부모를 여읜 독자이자, 가주로 승격 예정인 세습자라 자유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거니까.

       렌들러 영감에게도 저택의 식솔들에게 합당한 퇴직금을 지불한 후,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정리하라 일러둔 터였다.

       

       비록 후계 구도에서 자유로운 셋째 딸, 아리엘이라 하더라도 나와 같은 자유분방한 삶을 살 수는 없을 터이기에, 예의상 가벼이 물은 것뿐이었다.

       그곳에도 ‘큰’ 도서관이 있다는 말에 여운을 남기는 것으로 보아, 동행의 여지를 비추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한데.

       

       “저, 정말?”

       

       아리엘이 반색하며 그리 되물어왔다.

       나로서도 달가워 할 일이었다.

       아리엘 엘론드 영애는 이세계에 빙의한 이래, 처음 사귄 친구이자, 지대한 은혜를 받고 있는 귀인이니까.

       

       다만.

       

       내가 떠날 식도락 여행은 평범치 않은, 최고의 신선도를 자랑할 산지직송 여행이었다.

       그것을 위해 레이첼에게 특훈을 받고 있는 것이었고.

       그러면 [몬스터 요리 전국 탐방기]라는 책이 필요없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제아무리 강행군을 펼친다 하더라도 허구한 날 몬스터만 잡으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도랑 여행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힐링]인 법.

       그것을 헤칠 정도로 강행군을 펼칠 생각은 없었기에, 맛집 리뷰가 담긴 가이드북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다.

       

       어쨌든.

       

       언뜻 보아도 귀하게 자랐을 영애에겐 어울리지 않는 여행길이었다.

       

       “나야 상관없는데, 몬스터를 직접 사냥하기도 할 거라서 위험하지 않을까?”

       

       검이라곤 쥐어본 적도, 주먹은 응원할 때만 써봤을 아리엘이라 그리 물었는데.

       

       참으로 해맑고 순수한 답이 들려왔다.

       

       “괜찮아. 내가 잡을 거 아니잖아? 그리고 나도 호위기사는 있어!”

       “….”

       

       뭐….

       

       그건 그렇다만, 아무래도 선뜻 승낙하긴 힘들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영애님을 무턱대고 산지직송 식도락 여행 파티에 끼웠다간, 엘론드 백작가에 괜한 소리를 들을지 모를 일이니까.

       

       “그렇긴 한데, 우선 부모님 허락부터 받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실 텐데.”

       

       한데, 또 다시 해맑디 맑은 순박한 답이 들려왔다.

       

       “그것도 괜찮아!”

       “…응?”

       “아빠엄마가 하고 싶은 거 하며 내 마음대로 살라고 하셨거든!”

       

       ….

       

       …….

       

       어쩐지, 백작가 영애께서 혹한의 땅 북부령까지 홀로 독서 여행을 오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우리 롤빵머리 독서광 영애님….

       

       아카데미에서도 주구장창 소설만 읽더니….

       

       “책에서만 봤던 몬스터 사냥이라, 엄청 기대되는걸!”

       

       집안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웠구나…?

       

       

       

       **

       

       

       

       후웅!

       

       탁!

       

       점심 식사에 이어, 아리엘 영애와 함께 저녁 식사까지 마친 레이첼이 야외훈련장에서 엘든을 교육 중이었다.

       오늘은 [직검 훈련]이었고, 챙겨온 훈련용 목도를 이용해 기본 파지법과 자세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렇게 쥐시면 손목 나갑니다. 조금 더 세워서 잡는 것이 좋습니다.”

       

       “자세를 낮춘다 해 다리 간격을 너무 벌리면 검을 휘두를 때 힘이 약해집니다.”

       

       모두 실전 경험에서 우러나온 훈수.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었기에, 무작정 다치고 깨지며 터득해온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었고, 당연하게도 전달력이 그리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잡아보는 직검임에도 금세 제 것처럼 휘두른다.

       

       ‘역시, 이 정도면 천부적인 재능이야.’

       

       훈련을 거듭할수록 짙어지는 확신.

       전문적인 교육을 해주지 못 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엘든 라펠리온의 재능은 뛰어났다.

       어설픈 교육임에도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쳤고, 하나를 습득하면 열에 응용을 한다.

       타인을 가르쳐본 적이 없어 기준을 삼을 것이 없지만, 이대로라면 몬스터 사냥꾼으로 거듭나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마법만 빠르게 깨우친다면 드래곤 같은 중급 몬스터 정도는 사냥할 수 있지 않을까.’

       

       내일, 대면식이 끝나면 마나 운용법에 대해 가르쳐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 레이첼.

       제자라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던, 교육이란 것을 귀찮아하던 그녀가 어느새 내일의 훈련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교육법을 몰라 무작정 대련만 했던 그녀가 교육을 위한 순서를 정립하고 있다.

       타인의 성장에 대해 묘한 욕심이 이는 것은, 타인이 자신의 가르침을 곧잘 받아들이는 것이 기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스승으로써 느끼는 감정임을 아직은 알 수 없는 그녀였다.

       

       어쨌든.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세번째 훈련이 끝이 났다.

       어느새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교육에 심취해버린 레이첼이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레이첼이 엘든에게서 훈련용 목도를 받았다.

       

       “후우, 역시 검술 훈련이 훨씬 재밌군.”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이제 별채로 가지.”

       

       자고로 흘린 땀은 식기 전에 씻어주어야 더 개운한 법.

       엘든이 앞장서 걸음을 옮겼는데, 레이첼이 묵묵부답이었다.

       

       “…?”

       

       그에 의아한 듯 쳐다보자, 레이첼이 복화술을 하듯 나직히 말을 전했다.

       

       “먼저 가십시오. 확인할 게 있습니다.”

       “확인? 무엇이길래?”

       “확인된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

       

       왜 갑자기 속삭이듯 얘기하는 걸까.

       의문스러웠지만, 레이첼이 허투루 말과 행동을 해내는 이가 아님을 알기에, 엘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가지.”

       

       게다가.

       

       “목도를 반납하고 가겠습니다.”

       

       속삭이듯 얘기하던 앞과 달리, 마지막 말은 크게 얘기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확인한다는 레이첼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엘든이 걸음을 옮긴다.

       그와 반대로 몸을 돌린 레이첼이 곧장 대여소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저벅저벅.

       

       대여소로 향하던 레이첼이 방향을 틀었다.

       

       ‘…역시.’

       

       그제부터 느껴지던 묘연한 기척.

       처음엔 착각이리라 여겼지만, 오늘로써 착각이 아닌 확신을 하는 레이첼이었다.

       피와 비명이 튀기는, 온갖 병장기 소리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살아남은 데엔 남다른 감각이 큰 몫을 했었다.

       예민함.

       그것이 목숨을 수십 번이고 구제해 주었던 것이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창과 화살, 등 뒤에서 제 목을 노리는 적군, 먹을 것 하나 때문에 배신을 택한 아군, 여체를 탐닉하고자 기습을 시도하던 남성들에게서 번번히 살아남아 [자색의 여기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예민한 감각이 큰 몫을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감각에.

       며칠 전부터 수상쩍은 것이 걸리고 있었다.

       

       악의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적의를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제 고용주를 향할 뿐이었고 딱히 위험한 낌새를 보이진 않았다.

       하여 대여소에 반납을 하겠다며 그와 거리를 벌린 후, 현재 먼발치서 이동 중이었다.

       

       ‘투명하군.’

       

       그것에 가까워졌음에도 식별이 불가했다.

       자신의 예민한 감각이 아니었다면 알아채는 것이 불가할 정도로 작은 기척이다.

       호흡을 가둬 제 기척을 지웠다.

       그리고 곧, 그것과 가까워졌을 때.

       훈련장에서부터 쥐고 온 모래를 허공에 흩뿌리는 레이첼.

       

       타닥.

       

       아무것도 없는 허공임에도, 마치 무언가에 부딪힌 듯 모래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고, 레이첼이 재빠르게 목도로 그것을 겨누었다.

       허공을 날고 있는 작고 투명한 무언가였다.

       

       “움직이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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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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