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

       “페로야, 잘 들어⋯⋯. 너는 사실 통 속의 뇌야.”

       

       “통 속의 뇌가 뭔데요?”

       

       “앗차, 이세계인들은 모르지⋯⋯?”

       

       자색 마탑주 유나에게 새로 생긴 나쁜 습관이었다. 그와 어울려서 얻은 지식을, 무심코 다른 사람에게 써버리고 마는 것.

       

       하지만 통 속의 뇌만큼 딱 들어맞는 비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단 네 글자로 심오한 모든 고민에 대해서 설명을 마칠 수 있었다. 클리셰란 이토록 함축적인 정보 전달 수단이었다.

       

       그럼 매트릭스부터 설명해야 하나.

       

       유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만들어진 존재의 딜레마, 영혼의 구조, 태어난 지성의 의무, 인공적인 영혼의 가치는 얼마나 되느냐 등⋯⋯ 토론으로 들어가자면 1년간 떠들어도 답이 나오지 않을 수많은 문제를 설명하는 대신.

       

       일단은, 종교적인 맹목성으로 대충 뭉개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신이야.”

       

       “신이시군요?!”

       

       “나는 너희를 창조한 신의⋯⋯ 친구 겸 동업자인데. 접속 권한도 수정 권한도 있으니까, 음, 나도 신이라고 봐도 될 거야.”

       

       “저, 그렇다면요, 신님⋯⋯. 세상은 어째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나요?”

       

       “⋯⋯⋯⋯.”

       

       칼같이 날아온 반격기에 대마법사는 휘청거렸다. 아마도 그는 ‘고통이 있어야 해피엔딩이 빛난다니까.’ 라고 대답했을 터.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일 때에나 통용되는 말이지, 실제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화가 날 것이다.

       

       ‘나중에 있을 행복을 달게 곱씹게 하기 위해서, 너희에게 고통을 주기로 했도다!’

       

       신이라는 작자가 대뜸 이렇게 말하거든, 유나는 그 얼굴에 최대 출력의 유나데스빔을 갈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할 말이 궁해져서 어물거릴 수밖에.

       

       다행히도, 페로는 뇌 내 기생충이거나,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하는 기생충이거나, 정말로 신인 머릿속 목소리를 배려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어려운 문제네요⋯⋯!”

       

       “으, 응.”

       

       “우리 같이 알아봐요!”

       

       “⋯⋯그, 그래.”

       

       ===============================================================

       

       대충은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 기생충이라는 음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페로는 자신과 비견될 정도로 만만찮게 짧은 모습에 동질감을 품은 것 같았다.

       

       손짓 한 번으로 30년치 식량을 만들어내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신적인 힘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낙원은 식량이 한가득이었다. 시설도 좋고, 비상전력도 빵빵하고, 환풍구 등의 시설도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남녀가 짝을 지어 들어가서 축구팀을 하나 만들어도 커버가 될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페로가 한 명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혼자만 있어서는 외롭다. 타인과 소통과 교류를 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어쩌면 마음에 병이 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유나는 몇 가지 방법을 써 봤다.

       

       “⋯⋯이게 뭐에요?”

       

       “그, 1황녀님 등신대⋯⋯? AI는 입력을 못 했는데, 그래도 껴안는 베개로 쓰면 좀 덜 외로울까 싶어서⋯⋯.”

       

       “⋯⋯⋯⋯.”

       

       “미, 미안⋯⋯.”

       

       그 선량한 페로가 쓰레기를 바라보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자, 유나는 후다닥 1황녀 모델링을 지웠다. 딱히 정신 피해를 주려던 것이 아니라, 순수한 선의였다.

       

       그 왜, 그가 살아가던 곳에서는 껴안는 길쭉한 베개에 여자 그림도 그려놓지 않던가!

       

       하지만 실패는 실패. 선물이란 것은 받는 사람이 기뻐야만 의미가 있는 법이다. 

       

       다음에는 배구공에 그림을 그려서 줘 봤다. 

       

       “이건 윌슨이야.”

       

       “⋯⋯공이죠?”

       

       “아니, 윌슨이야.”

       

       “신님⋯⋯ 혹시 외로우신 거라면, 제가 말상대가 되어드릴 수 있어요.”

       

       “⋯⋯친구가 요즘 이사 준비로 바빠서, 쪼끔 외롭긴 해⋯⋯.”

       

       오히려 위로받았다. 

       

       그는 2황자로부터 ‘아카데미 교수로 취임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공중제비를 돌다가 넘어질 정도로 기뻐했다. 아카데미로 가서 하루종일 티알피지만 해야지 하고, 시뮬레이션 룸 2호기를 만들 준비로 바빴다.

       

       유나는 매미처럼 등짝에 달라붙어 보기도 하고, 관심을 안 주는 게 약 올라서──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그의 귀에 에렐렐렐레 공격을 해보기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저, 그런데⋯⋯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려는 거예요?”

       

       “⋯⋯응?”

       

       “레아로도 있고⋯⋯.”

       

       “그, 그게, 선택받은 사람만 나를 볼 수 있다고나 할까⋯⋯, 어라.”

       

       유나가 직접 마력을 공급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레아로 또한 황무지 어딘가를 떠돌고는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미접속 상태이니 절전 모드로.

       

       아마 단순한 연산 처리만을 계속하고 있으리라. 생존 굴림, 성공, 실패.

       

       그러니 레아로를 부른들 의미는 없었다. 그에게는 자의식이 피어나지 않은 것이다. 자동 응답기 비슷한 존재에게 줄 관심은 없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를 할 때, 문득 떠올렸다.

       

       1황녀로부터의 피드백이 페로를 움직이게 했다면, 1황녀보다 족히 열 배는 과몰입했던 2황자의 경우는⋯⋯?

       

       뒤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유나는, 황자와 꽃과 레지스탕스를 불러와 접속했다. 예상대로, 자의식이 깨어난 센트라가 도시를 활보하는 중이었다⋯⋯.

       

       ===============================================================

       

       센트라는 언젠가의 재회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 이곳저곳의 잡동사니를 모아가며. 2황자 이리드의 동상(어디를 어떻게 봐도 이리드와 닮지 않은)을 만들거나, 다시 만나서 축하합니다 팻말을 꾸미거나 했다. 재회에는 이벤트가 필요했으니까.

       

       기다림의 시간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만큼 선명하게 뛰는 자기 심장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마음이 전해지리라 믿으며. 하루를 시작할 때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좋아요, 이리드! 오늘 하루도 힘내 보죠!”

       

       “⋯⋯으흑흑흑!”

       

       “누구세요?!”

       

       대마법사는 그 모습을 보고 손수건을 질겅이면서 질질 짰다.

       

       페로와 다르게, 센트라는 자신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니, 멈춘 시간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 존재가── 창조주 비슷한 포지션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지만.

       

       “내, 내가 만나게 해 줄게⋯⋯ 훌쩍. 내가 지켜줄게, 사악한 제자로부터⋯⋯!”

       

       “그, 으음⋯⋯. 일단 코부터 풀까요? 자, 흥 해요. 흥.”

       

       일단은 달래고 봤다. 

       

       대마법사는 10분간 센트라-이리드 커플링에 대한 소감을 웅얼거리고 나서야 울음을 그쳤다. 그래도 어찌저찌 정보 전달에는 성공했다. 자신이 아군이라는 사실 말이다.

       

       ===============================================================

       

       아포칼립스 쉘터에 세 사람이 모였다. 모험가 소년과, 레지스탕스 숙녀와, 대마법사였다.

       

       “소개할게, 이쪽은 센트라야. 이쪽은 페로.”

       

       “반가워요. 센트라라고 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페로라고 해요!”

       

       “⋯⋯금발이네요.”

       

       

       센트라는 페로의 금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리드를 떠오르게 만드는 색이었다. 그러다, 혹시나 해서 유나에게 물어봤다.

       

       “이리드의 아이는 아니죠?”

       

       “⋯⋯?!”

       

       “제가 느낀 시간과, 바깥의 시간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나 해서.”

       

       “아냐, 페로는 너랑⋯⋯ 같아.”

       

       “아하.”

       

       

       반면 페로 또한, 센트라의 흉부 장갑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하필 떠올려도 그걸 보고 떠올리냐며, 유나는 페로에게 꿀밤 한 대를 먹였다. 소년은 은근히 호색한인 부분이 있었다.

       

       “잠깐, 금발에⋯⋯ 호색한⋯⋯.”

       

       유나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이 녀석, 이리드를 보고 만들었나⋯⋯!

       

       눈물점이 찍힌 걸 보고, 모험가 파티의 남자를 본떠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이리드와 매치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 

       

       이리드의 싱크탱크 회의장에서, 일레인이 자기 동생을 아낀다는 것을 파악하고 냅다 가져와 버렸던 게 아닐까. 

       

       

       “그럼, 저희를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 그게⋯⋯. 거래를 제안하고 싶어!”

       

       자아가 싹튼 이 캐릭터들을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 물론 있었다. 가능하다면 편의를 봐주고 싶었고, 더 나아가서 현실로 끄집어낼 수 있다면 만족감이 있을 것 같았다.

       

       해피엔딩 내 주겠다더니 이리드와 재회를 못 했잖아 이자식.

       

       그러나 자색 마탑주는 우선순위를 착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상황을 조성하려는 시도였다.

       

       시뮬레이션 세계는 취약하다.

       

       세계는 넓고 이종족은 많았으며, 괴물은 더더욱 많았다. 특히나 주의해야 할 것은 몽마 같은 녀석들이었다. 인간의 꿈에 파고드는 성질을 지닌 만큼, 시뮬레이션 세계에 숨어드는 것도 가능할 터.

       

       그러니까, 자의식이 싹튼 NPC를 일종의 백신으로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자경단이 되어 줘.”

       

       “어, 자경단이요?”

       

       “응. 새로운 멤버가 생기면 환영해 주고, 즐겁게 살다가, 이 세계에 뭔가 못된 녀석이 숨어들면⋯⋯ 혼내줬으면 해. 대신, 편의를 봐 줄 테니까⋯⋯.”

       

       “그건, 그러니까⋯⋯ 저희들을 대전사로 삼으시는 거네요, 신님!”

       

       페로가 눈을 반짝였다. 변이체의 준동과 함께 신앙은 씨가 말라버린 상황이었지만, 종교적인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서 알았다. 신께서는 대전사를 골라서 자신의 뜻을 대지에 펼치는 것이다.

       

       소년의 우러러보는 시선에, 마탑주의 어깨가 미묘하게 붕 떴다.

       

       이상하게도 마탑의 마법사들은 자신을 존경보다는 두려움이나 귀여움으로 대했다. 이런 순수한 우러름의 시선은 받아본 적 없었기에, 그만 우쭐해져 버린 것이다.

       

       “여러 장비도, 음식도, 편의시설도⋯⋯ 마, 맡겨만 둬. 데이터가 없으면 깎아서라도 만들어 줄 테니까⋯⋯!”

       

       우쭐우쭐해서 자기 가슴을 두드리는 마탑주에게, 페로와 센트라의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면 성검이라던가⋯⋯!”

       

       “장비를 요청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편한 전투복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지금 입고 있는 건, 가슴이 꽉 끼어서요.”

       

       “더블 배럴 샷건이라던가⋯⋯!!”

       

       “이리드와의 재회를 대비한 아름다운 드레스라거나⋯⋯.”

       

       우르르르르.

       

       마탑주는 천재성을 가감 없이 발휘하여 아이템들을 찍어냈다. 가슴의 형태가 드러나는 건 똑같지만 입은 사람은 편한 전신 타이즈라던가, 중간의 보석을 누르면 와이번 울음소리가 나는 성검이라던가 등등.

       

       창조주의 창조 파격 세일에, 두 사람이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일 무렵. 등이 상당히 패인 드레스를 구경하던 센트라가 살금살금 마탑주 옆으로 다가왔다.

       

       센트라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민하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 로냐. 로냐에게 들어오셨던 분⋯⋯에게는, 말씀 안 하셔도 되나요?”

       

       “마, 말 안 한 거 어떻게 알았어⋯⋯?!”

       

       “화병을 깬 걸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어린아이의 표정이라⋯⋯?”

       

       창조 쇼를 벌이면서도 눈동자에 머물러 있던 일말의 불안함을 읽어 낸 모양이었다. 

       

       들키겠지. 언젠가는 들킬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유나에게는 이유와 근거가 있었다. 이들은 ‘끝난 이야기’의 등장인물이었다. 그가 다시 재활용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쓰이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그때 가서 말해도 괜찮겠다는 꿍꿍이였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유나 입장에서는 그 시간을 최대한 뒤로 미뤄 두고 싶었다. 그는 ‘그것’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니까. 증세가 심해지면 센트라와 페로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그가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다음에 알려주면⋯⋯.

       

       우우웅.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마탑주님 거기서 뭐 해요?

       

       “흐끼야아아아악!”

       

       벌써부터 다 까발려질 위기가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는 꽤 많이 걸었습니다. 동네에 모 브랜드의 치킨집이 없어가지고, 30분 걸어서 다른 동네 찍었다가.
    그 가게가 개인사정으로 휴업이라 또 다시 걸어갔다가, 치킨을 시켜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싸늘한 기온이 치킨의 온기를 빼앗아가버린 바람에⋯⋯ 식은 걸 먹었습죠. 운명이란 이토록 잔혹합니다.

    요새 독감이 돈다는 모양인데, 조심하셔요 마이 프렌즈! 다 함께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