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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다음으로 단체 모의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경기장에 나무와 바위 등 다양한 지형지물이 나타난다.

     

    궁중마법사들이 이동마법을 써서 미리 준비한 지형을 가져오는 형식이다.

     

    근처의 물건만 가져올 수 있기에 텔레포트와는 원리가 달라서 어렵지 않은 마법이라는 듯하다.

     

    “평지에서 맞대결하나 했는데, 지형이 있다면 전략이 유효하겠군요.”

     

    어느새 숲처럼 변한 경기장 내부를 바라보며 타냐가 의견을 냈다.

     

    나는 아셀라와 함께 모의전에 참가할 기사들을 확인하러 대기실로 내려온 참이었다.

     

    아셀라가 기사들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총지휘는 훈련해온 대로 단장이 맡아. 타냐를 적극적으로 선두에서 쓰도록 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우리 앞에 모인 기사는 총 백사십이다.

     

    2연대 1중대는 계약대로 오늘 하루, 월광궁 소속으로 참전한다.

     

    내가 중대장에게 말했다.

     

    “중대장, 계약서 내용 기억하지? 행여나 토진궁의 사주를 받아서 움직이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곤란해질 거야.”

     

    “허, 거 참. 시작도 전에 의욕 빼놓지 마십쇼. 저희도 선생님께 받은 게 있는데 설마 그런 비열한 짓을 하겠습니까?”

     

    1중대 기사들은 기운이 펄펄 넘치는지 거나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내게서 받아간 아스피린 덕에 며칠 건강한 생활을 한 덕이다.

     

    “지켜만 보십쇼. 실력을 보여드리죠.”

     

    “좋아. 우리 기사들 말 잘 듣고.”

     

    그의 어깨를 툭 쳐서 격려해줬다.

     

    생각보다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백사십도 다른 파벌보다 전력이 조금 부족하긴 한데.”

     

    다른 파벌의 기사는 대략 이백씩이다.

     

    모든 파벌의 총 전력이 한 번에 경기장에서 전투하니 난전이 예상된다.

     

    비약 앰플은 많지 않아서 전원에게 배포할 수는 없다.

     

    “이 정도는 필요하겠어.”

     

    이럴 땐 알기 쉽게 효율적인 쪽으로.

     

    나는 품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오오, 성서입니까?”

     

    “아니, 소설이야. 추천받아서 심심할 때 읽고 있는데 재밌더라.”

     

    라우가가 말했던 연애소설이다.

     

    성서가 아니어도 대충 기도하는 모양새는 낼 수 있으니까 들었다.

     

    “아아, 여신인지 뭐시긴지 대충 알아서 들으시고.”

     

    기도를 읊으니 내 몸에서 새하얀 신성력이 화악 빛난다.

     

    “이들의 육체에 강인함이 깃들도록, 아멘.”

     

    시전을 마치니 지면이 반짝이며 기사들의 몸에 빛이 휘감긴다.

     

    “축복인가!”

    “이 느낌은… 한층 힘이 넘치는군!”

     

    기사들이 방방 뛰며 신이 났다.

    근력의 축복을 걸었다. 힘쓰는 친구들이니 근육이 두꺼워지면 좋아하겠지.

     

    대신 신성력은 바닥났다.

    어차피 신성주문을 쓸 일도 자주 없으니 상관없다.

     

    “이런 대형 축복까지 사용하시다니, 역시 내의원 주치의시군요!”

     

    중대장이 한껏 튼실해진 알통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원래는 돈 받고 걸어주는 거야.”

     

    “하하, 전쟁이라도 나면 얼마를 내도 좋으니 꼭 선생님 옆에 붙어있어야겠습니다. 사실 선생님이 치유술을 안 쓰시길래 못 쓰시는 줄 알았거든요.”

     

    “내가 치유술을 못 쓰긴 왜 못 써, 임마.”

     

    나보다 잘 쓰는 치유사도 내의원에는 몇 명 없을 건데.

     

    “하긴 더 좋은 기술이 있으시니 쓰실 필요가 없으시긴 하죠.”

     

    “그런 거야. 헛소문 내지 마라.”

     

    “어허, 제가 낸 거 아닙니다?”

     

    중대장이 억울하다는 듯 목을 쭉 뺐다.

     

    농담 삼아 한 말이었는데 진짜 소문이 돌아다녀?

     

    어디의 어떤 놈이야.

     

    “황녀님, 출전 명령을.”

     

    월광궁 단장이 절도있게 한쪽 팔을 수직으로 가슴 앞에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아셀라가 그에게 턱을 치켜올리며 권위 있게 명령했다.

     

    “승리하여라.”

     

    “예!”

     

    경기장으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기사들.

    철갑이 덜걱거리는 소리가 귀를 메운다.

     

    그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에, 나는 아셀라와 함께 다시 관중석을 향해 돌아갔다.

     

    도중 그녀가 내게 말했다.

     

    “공자, 치유술도 잘 쓰는구나. 축복 주문은 실제로 처음 봤어.”

     

    “아, 그러셨군요.”

     

    “…혹시 나 때문에 치유술을 안 쓰는 거야?”

     

    아뇨, 그냥 질려서 그런데요.

     

    황녀님도 백날천날 치유주문 셔틀로 용사파티에서 굴러보세요. 더 쓰고 싶어지나.

     

    내겐 이걸 쓰다가 죽은 경험밖에 없다.

    조건 자체가 불리한 극한 상황이긴 했지만.

     

    치유주문을 쓰면 그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들어버린다.

    절대 좋은 기억들은 아니지.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아셀라의 질문은 변명으로 딱 좋다고 생각됐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황녀님의 주치의이지요. 황녀님께 필요 없는 기술은 곧 제게도 필요 없습니다. 평생 황녀님을 위한 치료기술만을 연마하기에도 시간은 늘 부족하지요.”

     

    “그렇구나.”

     

    아셀라는 내 대답을 덤덤하게 들었다.

     

    덕분에 변명으로 써먹기에 좋은 명분을 얻었다.

     

    이 경기 다음은 마법 제전인가. 아셀라는 직접 출전할 예정이다.

     

    그러고 보니 시모어는 안 나오나 싶었다. 오늘 종일 코빼기도 안 비추는데, 아예 비무대회에 안 왔을지도 모르겠네.

     

    아셀라라면 알고 있으려나.

     

    “황녀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만.”

     

    “…….”

     

    어쩐지 아셀라가 대답이 없었다.

     

    “황녀님?”

     

    “어, 응?”

     

    두 번째 불러서야 아셀라는 내 말이 들렸는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 현자님께서는 안 오셨습니까?”

     

    “응, 안 오셨습… 후우.”

     

    어라, 방금 아셀라가 존칭 사용을 틀렸나?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평소 표정으로 돌아온 아셀라가 재릿 나를 노려보았다.

     

    “중요한 생각을 하는데 감히 그런 사소한 일을 내게 물어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또 기분이 상해 보였기에 즉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위험한 강을 건넜나 싶었나 긴장하고 있는데 아셀라의 침착해진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고개 들어.”

     

    “용서해주십니까? 처형 안 당하나요?”

     

    “안 해. 네가 죽으면.”

     

    아셀라는 다시 상념에 빠진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기에 그 뒤는 잘 못 들었다.

     

    “…평생 고쳐줄 사람이 없어져.”

     

     

     

    ***

     

     

     

    “자, 똑똑히 보라고. 토진궁 기사단의 장엄한 위용을! 갑주 하나하나가 드워프 장인들이 만든 토륨 재질이야. 숫자도 무려 이백!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건 당연하지.”

     

    관중석에 거만하게 앉은 게오르크가 자신감에 들어차 외쳤다.

     

    확실히 남쪽 병영의 2연대를 포함한 그의 기사단은 상당히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오빠, 그러다가 또 큰 코 다친다? 우리 금서궁 기사들도 강하거든?”

     

    “전염병도 낫지 않아 벌써 비실비실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잖아. 반면 우리 기사들은 특별히 내의원에서 관리시켰지.”

     

    “뭐야, 치사해.”

     

    “하하, 준비 단계부터 쓸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 싸움이야. 폐하께서는 평소 궁 내 영향력을 중요시하신다고.”

     

    게오르크가 맞는 말을 하긴 했다.

    기사들의 상태, 입은 갑주도 포함해 파벌 주인의 능력이다.

     

    “팔켄하인! 이번엔 틀림없겠지!”

     

    게오르크가 윽박지르자 팔켄하인이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예, 전하. 기사들은 철저히 관리하여 만전의 컨디션입니다.”

     

    “좋아.”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전투가 개시됐다.

     

    기사단의 함성이 하늘 높이 쏘아져 구름을 뚫을 기세다.

     

    경기장에 들어선 기사는 다 해서 천 명이 넘었다.

     

    파벌 별로 진지에서 출발해 험준한 지형을 넘어 적을 타격해야 한다.

     

    ‘확실히 게오르크의 기사단과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어.’

     

    재력과 배경으로 벌려놓은 차이는 실력만으로 좁히기는 힘들다.

     

    무기는 비살상용으로 규격이 통일되어있긴 하지만 피격당하면 부상을 입는다.

     

    갑주의 수준 차이는 전투 유지력과도 크게 연관된다.

     

    심지어 우리는 급히 합을 맞춘 1중대도 쓰고 있으니 전술에서 우위를 점하기도 쉽지 않다.

     

    타냐가 아무리 강해도 결국 한 명이니까.

     

    ‘그래서 라우가가 필요하지.’

     

    쾅!

     

    멀리 흙먼지가 인다. 수십 개의 방패가 동시에 충돌하는 소리가 드럼 비트처럼 흥을 돋운다.

     

    본격적인 경합이 시작됐다.

     

    빠르게 벌써부터 진형이 무너지고 기사들이 쓰러지는 교전도 있다.

     

    “뭐야? 저 부대는…!”

     

    깃발을 쌍안경으로 확인한 게오르크가 으득 이를 갈았다.

     

    첫 교전부터 자기 깃발이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우가, 네 부대잖아! 왜 내 기사단을 선제공격하고 있어!”

     

    라우가는 흥분한 게오르크를 향해 입을 가리고 키득댔다.

     

    “아직 탐색전을 이어야 할 시기야. 무턱대고 돌진하면 절대 우승할 수 없다고!”

     

    “난 우승 안 해도 되는데? 축제는 재밌으면 그만이잖아. 오빠, 그냥 앉아서 좀 즐겨.”

     

    오히려 뻔뻔하게 구는 라우가를 보고 게오르크가 어이없다는 한숨을 내뱉었다.

     

    “누가 봐도 악의적인 공격이잖아!”

     

    “왜에. 나도 나름 전략을 쓰는 거라구.”

     

    “저게 어딜 봐서 전략이야!”

     

    게오르크가 악을 쓰는 것도 이해가 됐다.

     

    라우가의 기사들은 무기는 들지도 않고 커다란 오크통을 맨 채 무작정 돌진만 일삼았기 때문이다.

     

    오크통에는 끈적거리는 슬라임 점액이 들어있다.

     

    별다른 효과는 없다. 뒤집어쓰면 기분이 나빠진다.

     

    게오르크의 기사들이 당황하며 진형이 무너진다.

     

    “이놈들은 뭐야! 무작정 달려들기만 해!”

    “저리 가! 끈적거리는 거 치워!”

     

    라우가의 기사들은 좀비처럼 그들에게 달라붙어 점액을 끼얹는다.

     

    “너희들, 쿨럭, 너희만 전염병을 치료받고… 치사한 자식들아!”

    “우리는 열이 펄펄 끓는데도 여기까지 끌려왔다고! 너희에게 전염병을 옮겨주마!”

     

    명예로운 전투는 온데간데없고 취객들의 난투 현장만이 남았다.

     

    황제가 그들을 보며 호쾌하게 껄껄댔다.

    분명 게오르크를 고평가해서 나온 감탄의 웃음은 아니었다.

     

    “아니 내 기사단이!! 무슨 원한이 있어서 내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라우가!”

     

    “오빠가 지난달에 나한테 진상된 케이크 뺏어먹었잖아. 기억도 못 하지?”

     

    “케이크? 겨우 케이크 때문에 이 중요한 비무대회를 망쳐놨다고?”

     

    “겨우 케이크으? 왕국에서 유명한 파티시에가 하루 스무 개 한정으로 만드는 진귀한 케이크거든!”

     

    “심지어 적국에서 수입했다고! 맙소사.”

     

    게오르크는 두통이 일었는지 머리를 감싸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경기장을 돌아본다.

     

    월광궁 기사단은 착실하게 고지대를 점령해가며 다른 파벌을 피해 전력 손실을 최소화한다.

     

    전방에서 타냐가 적군을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린다.

     

    이 정도 페이스면 꽤 괜찮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겠다.

     

    나는 아셀라에게 가서 회화를 걸었다.

     

    “황녀님, 2황자님이 두통으로 고생하시는 듯한데요.”

     

    “그러게나 말이야.”

     

    “어떻게, 아스피린이라도 빌려드릴까요?”

     

    내 농담에 아셀라가 키득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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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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